여행도 결코 '나'를 떠날 수 없다
우리의 삶을 단순히 '시간'을 기준으로 구분하자면 '평일의 삶'과 '주말의 삶' 정도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평일에 나의 일과 함께 잘 살고, 주말에 나의 가족/친구/연인과 함께 잘 살 수 있다면, '참 잘 살고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우리의 삶을 단순히 '장소'를 기준으로 구분하자면 '일상지에서의 삶'과 '여행지에서의 삶'으로 구분할 수 있다. 비록 '여행지에서의 삶'이 '일상지에서의 삶'만큼 길지는 않겠으나, 그것이 우리 삶을 채워주는 영향력은 참으로 지대하다.
평일 못지않게 주말의 삶이 중요하듯, 일상지 못지않게 여행지에서의 삶 역시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다. 무엇보다, 여행지에선 새로운 환경과 상호교감 할 수 있고, 그 속에서 낯설게 반응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왜 이 낯선 환경에서 생고생을 하고 있는가?', '나는 왜 이곳에서 외로움을 느끼는가?', '나는 왜 이곳에서 일면부지의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끼는가?' 등등...
일상의 무게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무한 자유와 인생의 리셋(reset)이 주어지는 곳에서의 나의 선택과 나의 감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점점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게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 인생을 더 단순하고 심지있게 살아갈 수 있다.
20대엔 여행을 가면 열심히 발품 팔아 한 곳도 빠짐없이 유명 스팟들을 "찍고 와야" 했다. 요즘 청년들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수 있는(instagrammable) 곳"에서 사진을 찍고 오는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여행에 자신감이 생기며 (극도의 무계획의 'P' 성향인 나는) 첫날 숙소만 잡아놓고 이후엔 발길 닿는대로, 우연히 만나는 사람 따라 여행했던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여행의 본질은 예기치 않은 세상과 만나는 기쁨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p51)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예상대로 착착 진행되었던 여행은 그리 기억에 남지 않는 것 같다. 반면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은, 그것이 좋은 일이든 개고생이든, 기억에 참 오래도록 남는다. 나는 "시간의 주관적 길이"를 믿는데, 같은 일주일을 쓰더라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일상은 0일, 반면 순간 하나하나가 슬로우모션처럼 기억나는 여행은 1달과 같단 생각이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어쩌면 "주관적으로 오래 살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사람은 예측 가능한 공간에서의 안정을 원하면서도, 때론 예측 불가능한 공간에서의 파장을 바란다. 그것의 조합이 온전히 나를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무엇을 하든 '목적'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창업을 한 목적은 무엇인가?' '내가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내가 여행을 떠나는 목적은 무엇인가?' 등등... 어렸을 땐 모든 것이 "성장" 혹은 "경쟁에서의 승리"와 연결되어 있어야 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도, 휴식을 취하는 이유도 모두 "성장" 때문이어야지, 그렇지 않고 그저 즐겁기 위해 무언갈 한다는 건 곧 죄악처럼 느끼곤 했다. 그래서 책은 늘 전공서적을 떠나지 못했고, 휴식을 취하면서도 머릿 속은 계속 다음 스텝을 고민하곤 했다. 참 피곤하게 살았었다.
다행히 작년 말부터 조금씩 그런 빡빡한 삶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목적 없는 방랑에 마냥 관대해진 것은 아니다. 요즘에도 나는 종종 서울을 떠나 동해안에서, 제주에서 일을 하곤 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도 그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없었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리셋(reset)"이 내가 종종 서울을 떠났던 마음을 잘 설명해 주고있다.
(p64)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데이비드 실즈
(p65) 그 덕분에 우리는 호텔의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마치 새집에 들어선 것 같은 설렘을 느낀다.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 몇 시간 전에 누군가가 서둘러 체크아웃하고 나갔을 것을 짐작하면서도, 눈으로는 활짝 젖힌 커튼 밖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고, 코로는 세제와 방향제 냄새를 맡으며, 그런 찜찜함을 잊어버리고 만다. 호텔에선 언제나 삶이 리셋되는 기분이다. (중략)
그래서 일상사가 번다하고 골치 아플수록 여행지의 호텔은 더 큰 만족을 준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문제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고 나에게 그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할 것 같다. 삶이 부과하는 문제가 까다로울수록 나는 여행을 더 갈망했다. 그것은 리셋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어렸을 적 내게 "연인 관계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라고 물어보면 나는 곧잘 "리셋(reset)"이라고 대답하곤 했었는데, 우리의 삶은 완벽할 수 없고 (마치 컴퓨터의 memory leak처럼) 계속 누적되는 데미지가 있기 때문에 가끔은 리셋 버튼을 눌러 깨끗한 초기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단 이야기였다. 그래야만 1년이든, 10년이든, 100년이든, 과거의 슬픈 기억에 갇혀 살지않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 물론 요즘 나는 이것이 완전히 옳은 태도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여기엔 일종의 회피가 섞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셋은 참 손쉬운 솔루션을 준다. 깨끗하게 정리된 호텔의 침구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나도 종종 호캉스를 떠나 하루종일 운동하고 책읽고 그러나보다.
이 책에선 여행의 또다른 이유를 '사회적 관계'에서 찾았다. 여행지에서의 나는 그야말로 nobody가 된다. 말도 안통하는 낯선 여행지에서 사람들은 종종 위험과 불안을 느끼지만, 한편 그런 위험 속에 낯선 사람을 믿고 따라 나섰을 때 결과적으로 얻게되는 예기치 못한 기쁨 속에서 "신뢰가 주는 짜릿함"을 맛보기도 한다. 원래 신뢰란 별 근거 없이 먼저 risk-taking 하며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보낸 신뢰에 상대가 응답했을 때, 우린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몇 없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여행지에서의 신뢰는 이런 경험을 짧고도 압축적으로 가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p144) 그리고 성적인 매혹도 신뢰와 아주 흡사하다.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푹 빠지면 한없이 끌려가게 되듯 무조건적인 신뢰도 마찬가지다. 역으로 신뢰에도 성적인 면이 있다. 왜냐하면 신뢰는 타인의 알 수 없는 핵심에 집착하는 맹목적인 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뢰는 타인의 감정 및 영향력과 연결된다. (중략) 신뢰란 대담하면서도 아찔하고 탐욕스럽다. - "길위에서 만나는 신뢰의 즐거움", 알폰소 링기스
내가 하는 여행의 이면에도 영화"Before Sunset" 같은 신뢰의 짜릿함을 기대하는건 아닌가 싶다. 낯선 곳에 여행을 떠나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며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서로 아무 배경을 모르는 stranger로서 이야기 나눠볼래요? 나를 한번 믿어봐요'라는 신뢰의 짜릿함... 일상에서의 신뢰는 그것보다 훨씬 더 무겁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며, 짜릿함의 시간보단 숙고와 인내의 시간으로 점철되지만, 여행은 신뢰의 기쁨을 한결 가볍게 준다.
이 책은 작가 김영하에게 있어서의 '여행의 이유'를 말하고 있다. 저마다 '여행의 이유'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다들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은, 처음엔 여행의 이유가 '유명지 관광'과 같이 밖에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중엔 나와의 대화를 위해 여행을 한다는 걸 결국 깨닫는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일관되지 않고 양면적인 모습을 가진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난 조용한 곳을 좋아하면서도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며, 자유를 꿈꾸면서도 지독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이내 나를 속박할 상대를 찾아 헤매기도 한다. 지난 인생은 세상의 인정을 갈구하며 살았던 것 같지만, 이젠 그러지 않고 나만의 의미를 찾고있다. 그런 혼란 속에 사는 나에게 여행은 세상의 다양한 기대들로부터 나를 분리해 나를 고요히 볼 수 있게하는 좋은 방법이며, 어쩌면 그 자체가 수단이 아닌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생각이 여물지 않았지만, 언젠간 나도 나에게 있어서의 "여행의 이유"를 차분히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