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권력 감정은 어떻게 억압되고, 권력은 어떻게 감정을 조직하는가
Adolescence, 폭력은 조용히 자란다 – 여성혐오와 감정의 단절에 대하여
넷플릭스 드라마 Adolescence(소년의 시간)를 통해 청소년기의 정서 단절, 여성혐오의 형성과 재생산 구조, 그리고 심리치료적 관계의 실패를 상담 장면에 대한 대사 분석과 함께 Bowlby, Winnicott, Fonagy의 이론을 바탕으로, 감정 언어의 부재와 젠더 권력의 상호작용을 탐구한다.
폭력은 사회에서 고립된 감정의 흔적이며,
침묵 속에서 조용히 자란다는 메시지를
조용하지만 강하게 던진다.
Adolescence(소년의 시간) 4부작은 13세 소년이 여자 급우를 살해한 사건을 다루지만, 그 중심에는 단순한 범죄 서사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기원과 그 재생산의 메커니즘이 놓여 있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종종 ‘청소년 문제’라 부르는 것들에 내재한, 성별 권력 구조와 감정의 정치학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제이미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진짜 남자'가 되는 법을 배운다. 그가 접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여성은 신뢰할 수 없고, 남자는 감정을 보여선 안 되며, 남성은 지배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커뮤니티 담론이 아닌, 젠더 구조에 기초한 권력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이다.
가정 내에서 단절된 감정은 이 온라인 메시지들과 결합해, 엄마와 누나를 ‘억제자’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로써 내면화된 여성혐오가 생겨난다. 여성혐오는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선택하는 가장 극단적인 자기 방어다.
드라마는 사건의 원인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매노스피어(manosphere)’와 여성혐오적 인플루언서 문화를 조명한다. 앤드류 테이트와 같은 인물들이 퍼뜨리는 '남성 우월주의적, 반여성적 담론'이 청소년 남성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룬다.
극 중 형사 캐릭터는 이를 두고 '앤드류 테이트 식의 여성혐오적 이데올로기'라고 설명하는데
‘앤드류 테이트 식의 여성혐오적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편견이나 성차별을 넘어서, 조직화되고 반복적으로 유포되는 젠더 권력 담론으로 요즘 많은 10대 청소년들이 유튜브, 틱톡, 포럼을 통해 직접적으로 접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앤드류 테이트(Andrew Tate) 식 여성혐오 이데올로기의 핵심 특징은 남성 우월주의와 권력 중심 사고를 가지고 남자는 ‘지배하는 자’, 여자는 ‘복종하는 자’여야 한다는 위계적 사고를 한다.
“진짜 남자”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경제력·지배력·성적 정복력을 통해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감정 표현이나 공감 능력을 약한 것으로 여기고, 남성끼리도 상호 돌봄을 배척하게 된다.
또한 여성 비하와 비인간화하는데, 여성은 본질적으로 “조작적이고 감정적이며 믿을 수 없다”라고 일반화하며 여성의 가치는 외모, 순종성, 남성에게 얼마나 유용한가로 평가한다. 이는 여성은 소비하거나 소유하는 ‘대상’으로 묘사된다. 반복된 미디어 노출을 통해, 이런 관념은 무의식적으로 ‘정상’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 큰 우려가 된다.
피해자 코스프레: ‘남성 역차별’ 주장으로 여성 중심의 인권운동이나 페미니즘을 “남성을 억압하는 것”으로 왜곡하며 남성들이 오히려 피해자이며, 여성들이 특권을 누린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 사회적 구조 속 성차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온라인에서는 ‘남성이 차별받는다’는 프레임이 강화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확산 구조는 쇼츠, 릴스, 밈 등의 포맷으로 간결하고 강한 문장을 반복 주입한다. 알고리즘은 이 강한 자극을 ‘더 많은 남성 시청자’에게 자동 추천하고 이 세계관에 빠진 이들은 종종 현실 관계에서 여성에게 공격적이거나 냉소적으로 변한다.
이 이데올로기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은 자신이 ‘약하다’고 느끼는 청소년 남성에게 “지배적 남성성”을 통해 보상받으라는 메시지로 작동하며, 가정이나 학교에서 정서적 소통이 단절된 아이들에게 이 세계관은 오히려 ‘명확한 규칙’처럼 느껴지고 감정을 억누르고, 폭력이나 혐오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에 익숙해진다.
Adolescence에서 제이미는 이런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아이다. 그는 감정을 말하지 않고, 여성에게 적대감을 품고, 지배하려 하며, 그것이 ‘남자다움’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 믿음은 자기가 사랑받지 못했다는 감정을 감추기 위한 철옹성 같은 자아 방어다.
*앤드류 테이트 식 여성혐오적 이데올로기 : 권력, 통제, 증오의 정서가 조직되는 방식
제이미와 상담사의 장면은 단순한 치료 세션이 아니라, 힘의 역학과 정서적 진실이 충돌하는 감정의 링이야. 그 장면을 심리치료적 시선, 그리고 드라마적 내러티브가 독보인다.
“감정의 맨손 전투 – 통제의 환상 속에서 교환되는 상처”
상담실에 들어온 제이미는 처음부터 눈을 피하고, 팔짱을 끼거나, 몸을 돌리는 등 방어적인 신체 언어를 사용한다. 이는 제이미의 전략적 침묵과 통제 욕구로 보인다. 제이미는 상담사의 질문에 대답하되, 의미 없는 대답만 골라한다.
예를 들어 “무슨 생각이 들었어?”라는 질문에는 “그냥요” / “몰라요” / “아무것도요” 같은 식으로 반응하는데, 단순한 무지나 감정 표현 미숙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감정적 영역에서조차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통제의 몸부림으로 보였다.
그의 이런 태도는 오히려 심리적으로 굉장히 성숙한 자기 방어 기제로 보이는데 자신이 무력하거나 들켜선 안 된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는 침묵과 무표정을 ‘도구’처럼 사용한다. 전형적인 회피형 애착 스타일의 특성을 보인다.
상담사의 당혹감과 감정의 균열
그녀는 반복적으로 질문을 바꾸고, 제이미의 마음을 열기 위해 말을 낮추고 어조를 바꾸지만—그 모든 시도가 먹히지 않는다. 인상적인 점은 상담사 역시 흔들린다는 점이야.
“난 그냥, 네가 느끼는 감정이 궁금해.” / “아무 생각 없어요.” / “그럼… 여기 오는 게 불편해?” / “…글쎄요. 괜찮은데요.”
이 반복 속에서 상담사의 표정에 미세한 변화가 나다는데, 처음엔 전문성과 거리감을 유지하려 하지만, 어느 순간 피로, 분노, 서운함 같은 감정이 표정과 눈빛에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상담사가 감정적으로 ‘객체화’되는 순간, 제이미는 처음으로 자신이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쾌감을 동반한 권력감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제이미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상담사의 감정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이며, 일종의 역전된 감정 역동이 일어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이 장면은 제이미가 어른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복수하는 순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언제나 통제당하고, 이해받지 못한 존재였다는 경험을 해왔고, 상담사조차 그 체계 안의 어른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그는 상담사를 ‘지치게 만들고, 무력하게 만들고, 감정적으로 흔들게 만드는 것’을 통해 관계의 권력을 되찾고자 한다.
상담사가 우는 장면은 단순한 공감의 눈물도, 프로페셔널 실패의 좌절도 아니다. 그건 훨씬 더 복합적인 정서의 겹이 쌓여서 통제불가능한 제이미를
보며 전문가로서의 역할이 무너지는 감각을 느낀다.
상담사는 내내 ’이 아이를 이해하고 구조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제이미를 대하지만, 제이미는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상담사의 말과 태도를 천천히, 은근하게 흔든다. 그녀는 질문을 바꾸고, 어조를 낮추고, 시선을 맞추지만—어떤 것도 뚫리지 않는다.
이 순간, 상담사는 ‘나는 이 아이에게 아무 영향도 줄 수 없다”는 무력감을 체감히며 자신이 쌓아온 치료자 정체성이 흔들린다.
제이미는 직설적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침묵과 무표정, 피식 웃음, 무의미한 대답 등을 통해 상담사를 감정적으로 시험하고 반응을 유도하며 감정적으로 ‘도구화’되었다는 느낌을 받고, 결국, 그가 어떤 말도 없이 상담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상담사’가 아니라 ‘상대방 감정 실험의 대상’이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그건 일종의 심리적 도구화이고, 그걸 인식하는 순간 모욕과 혼란이 동시에 몰려온다
사실 그 눈물은 제이미를 향한 연민과 절망, 자신을 향한 분노와 실패감이 모두 얽힌 감정의 폭발이다.
“이 아이는 도와줄 수 없을지도 몰라.” / “나는 이 자리에서 무력하다.” “이 아이는 이미 감정을 말하지 않는 방법을 완성해버렸다.” / “그런데 왜 그걸 보면서도 나는 이 자리에 있어야 하지?”
이건 치료자의 자기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 장면은 전형적인 감정 역전(emotional reversal)*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상담사가 주도해야 할 감정적 구조를, 내담자인 제이미가 침묵과 고요로 완벽히 점령한 상태로 정서적 역전, 나아가 피해자가 되는 순간이다.
그 결과 상담사는, 이 관계에서 도움 주는 자에서 상처받는 자로 위치가 바뀌게 되며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순간, 방어가 해제되며 치료자가 아닌 인간으로서 제이미의 ‘무감정’ 앞에 무너졌기 때문에 눈믈을 흘린다. 그 눈물은 치유 실패의 눈물이라기보단, 관계의 실패, 신뢰의 단절, 그리고 자기 해체의 눈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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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측면에서 감정흐름이 이 장면은 아주 밀도 있게 처리되는데
카메라 앵글은 두 사람 사이를 단 한 번도 넘지 않고 탑다운도 없고, 주관숏도 없고, 둘의 감정은 그 좁은 공간 안에서만 움직이며, 탈출구가 없는 느낌이다. 배경음 없음이 몰입감을 높이며 오직 호흡 소리와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만 존재한다. 상담사의 한숨, 눈 깜빡임, 손의 떨림까지 카메라가 아주 천천히 포착한다.
제이미는 상담실에서 감정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타인의 감정을 통제한다. 이는 단순한 청소년의 무관심이 아니라, 자기 보호를 위해 정서적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상담사는 전문적 위치에 있음에도 감정적으로 흔들리며, 진심과 역할 사이에서 고립된다. 이 장면은 ‘도와주려는 자와 그 도움을 거부하는 자’ 사이의 비대칭적 감정 구조를 보여준다.
Adolescence는 제이미가 엄마와 누나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서사적 장치가 아니다. 이 침묵은 정서적 단절(disconnection)의 상징이며, 여성혐오가 개인 내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확산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정서심리학자 Sue Johnson에 따르면, 부모-자녀 관계에서 애착이 무너지면, 아이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감정의 고립을 선택하게 된다. 제이미는 안전하지 않은 가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숨기고 침묵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을 학습한 것이다.
이 침묵은 단순한 무표정이 아니라, 표현해도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자기 검열의 결과이며, 이는 극단적 고립감과 왜곡된 자기 인식으로 이어진다.
대화를 하지 않는 가족, 침묵 속에 심어진 증오
Adolescence는 제이미가 엄마와 누나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서사적 장치가 아니다. 이 침묵은 정서적 단절의 상징이며, 여성혐오가 개인 내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확산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제이미는 엄마와 같은 공간에 있어도 말을 걸지 않고, 시선을 피하거나 짧은 단답으로 응수한다. 누나와는 말다툼조차 제대로 발생하지 않으며, 관계는 사실상 기능적 무관심 수준이다. 중요한 건 이것이 그저 ‘사춘기적 반항’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애착의 붕괴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서심리학자 Sue Johnson은 부모-자녀 관계에서 애착이 무너지면, 아이는 정서적 표현을 억제하고,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감정의 고립’을 선택한다고 설명한다.
제이미는 “정서적으로 안전하지 않은 가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숨기고 침묵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을 학습한 것이다.
이 침묵은 단지 ‘말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감정을 말해도 소용없다고 믿게 되는, 자기 검열의 결과이며, 이는 극단적 고립감과 왜곡된 자기 인식을 형성한다.
Adolescence는 에피소드 전체를 컷 없이 촬영하는 원테이크 기법을 사용한다. 이는 단순히 스타일리시한 연출 선택이 아니라, 이야기의 본질 - 단절되고 밀폐된 관계 속에서 쌓여가는 긴장과 폭발 - 을 공간과 시간 속에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이로 인해 보는 이는 인물과 동일한 시간 흐름을 경험하며, 감정의 도피처 없이 서사에 갇히게 된다. 감정이 압축되고 축적되는 느낌은 바로 이 촬영 방식에서 기인한다.
카메라는 중간 거리에서 인물을 따라가며,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는다. 이는 시청자에게 관찰자의 시선을 부여하고, 제이미와 타인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을 시각화한다. 조명과 색채 또한 회색과 청록 계열의 낮은 채도를 유지하여 감정의 냉각 상태를 강조한다. 음악 대신 생활 소음이 지배하는 사운드 디자인은, 제이미의 침묵을 단지 말 없음이 아닌 정서의 결핍으로 전환시킨다.
“단절된 시간의 실시간성 – 리얼타임 연출이 감정 구조에 개입하는 방식”
One-Take (싱글 테이크) 기법: 감정의 도주로를 차단하는 리얼타임 구조
정지된 시간, 누적되는 감정
보는 이는 인물과 동일한 ‘호흡’을 공유하며, 현실에서 도망칠 수 없는 감정 구조에 갇히게 된다.
컷 편집이 주는 일시적 탈출이나 반성의 순간이 사라짐으로써, 감정의 응축이 무한히 이어지는 듯한 정서적 폐쇄성이 생긴다.
Laura Mulvey의 “narrative cinema”에서 제시한 ‘시선의 통제’ 개념을 확장하면, 원테이크는 서사뿐 아니라 감정의 흐름까지 통제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Mulvey, L. (1975). Visual Pleasure and Narrative Cinema, Screen, 16(3), 6–18.)
카메라의 물리적 거리 – 감정적 비접촉의 시각화
이 드라마는 대부분 중간 거리(medium shot)에서 롱테이크로 인물을 따라가는 방식을 취한다.
카메라는 인물과 너무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다. 이 적당한 거리감은 시청자에게 관찰자의 위치를 부여하며, 제이미와 주변 인물들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시각적으로 번역한다.
특히 상담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거의 정면 위치를 고수하며,
둘 사이의 탁자를 넘지 않는 시점으로 대화를 담는다. 이것은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관계의 미세한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조명과 톤 – ‘사실성’과 ‘감정 잔여물’ 사이의 미장센
Adolescence는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을 표방하지만, 그 리얼리즘은 빛의 사용과 색채 톤 조절을 통해 감정의 농도를 조절하는 미세한 연출을 포함한다. 실내 장면은 대부분 자연광 혹은 그것을 모사한 부드러운 조명으로 처리되어, 인물의 피부톤과 눈빛의 흔들림이 도드라진다. 학교 복도, 병원 상담실 등은 회색과 청록 계열의 낮은 채도를 사용하여, 감정이 일종의 냉각 상태에 있다는 정서를 시각화한다. 유일하게 따뜻한 색감은 가족이 부엌에 함께 있는 장면에 등장하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감정은 가장 단절되어 있다—이것은 미장센과 감정의 아이러니한 배치이다.
Mise-en-scène에서 색채는 단순한 분위기 이상의 심리적 암시의 기능을 수행한다.
사운드 디자인 – 침묵이 말하는 방식
Adolescence는 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인물의 호흡, 방 안의 정적, 문 여닫는 소리 등 비언어적 사운드만으로 감정의 밀도를 구성한다. 상담실의 시계 초침 소리, 누나의 발소리가 계단에서 멈추는 순간, 엄마가 물을 끓이는 소리, 이러한 사운드 디자인은 제이미의 침묵을 단지 “말 없음”이 아니라, 말보다 강한 정서적 부재로 만들어낸다. 이런 일상의 소리들이 오히려 인물 간의 거리, 불신, 정서의 압박감을 고조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Adolescence는 가해자의 행동을 개인의 일탈로 축소하지 않는다. 제이미가 보고 듣고 믿게 된 모든 정보는 가정, 교육, 미디어 플랫폼이라는 구조 안에서 반복되고 정당화된 것이다. 폭력은 갑자기 터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랫동안, 조용히, 우리가 외면하는 사이 자라난다.
이 드라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을 제시한다:
왜 그는 여자아이를 향해 분노했는가?
그를 둘러싼 어른들은 왜 아무것도 듣지 못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