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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벼농사꾼 Feb 07. 2020

'3살 아이' 낙서같은 그림에도 저작권이 있을까?

아트로 칼럼 ①   



지난 주말 삼청동을 산책하던 중에 우연히 Choi and Lager 갤러리에서 영국 작가 로즈와일리의 ‘내가 입었던 옷들’(Clothes I wore)이라는 전시를 보았다.


갤러리로 들어가 처음 접한 작품은 한 여성이 노란색 수영복을 입고 서있는 그림이었는데, 작가가 고심 끝에 그렸다 할지라도 내 눈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서툰’ 그림처럼 보였다.

3층까지 이어진 전시의 작품들이 모두 어린아이가 그린 낙서처럼 편안했고, 아마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본다면 자녀들이 스케치북에 그려 놓은 그림들과 비교해볼지도 모르겠다.


가끔 지인들과 함께 현대미술 전시에 가면 동행 중 한 명은 꼭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로즈와일리의 그림


지난 해 마이애미 아트바젤에서 전시장 가벽에 바나나를 덕테이프로 대충 붙여놓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작품명:코미디언)이 이슈가 되었을 때도 그 소식을 접한 우리는 현대미술작가 되는 것 쉽네, 하고 내심 생각했을 것이다.

 한 때 인스타그램 피드에 덕테이프와 바나나 사진들이 릴레이 하듯 올라오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누군가 작정을 하고 로즈와일리의 천진난만한 그림을, 카텔란의 바나나를 의도적으로 모작 또는 복제하여 판매한다면 어떨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더라도 ‘왠지’ 법이 그 누군가를 처단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왠지 모르게 로즈와일리와 카텔란만을 위 작품의 ‘저작자’로 인정하고 보호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들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상식의 영역에 자리 잡혀있는 ‘저작권’ 감성이다.


문화예술 분야의 분쟁을 주로 접하는 변호사로서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알게 된 것은 생각보다 저작권법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위에서 설명한 저작권 감성은 있으나, 저작자에게 어떠한 권리가 인정되는지 심지어는 저작자가 언제부터 저작권을 갖게 되는지를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오늘은 로즈와일리의 그림을 나도 그릴 수 있다고 말하는 이를 위해, 그녀가 그린 그림도 저작권법에서 보호하는 ‘저작물’에 해당하는가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



저작물이 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창작성’


저작권법에서 보호하고 있는 저작물이란 무엇일까. 내가 그린 그림 혹은 내가 찍은 사진이 ‘저작물’에 해당한다면, 나는 작품의 저작자로서 법의 보호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창작한 작품이 저작권법상의 ‘저작물’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단 말인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저작권법 제2조(정의)

1.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

2.      “저작자”는 저작물을 창작한 자를 말한다.



저작권법 제2조 제1항은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하고 있다.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이라..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모호한 정의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법문의 구체적인 해석에 의문이 생길 때는 법원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대법원은 저작권법에서 요구하는 ‘창작성’이란 완전한 의미의 독창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어떠한 작품이 남의 것을 모방한 것이 아니고 작가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 또는 감정의 표현을 담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라고 한다.(대법원 1995.11.14. 선고 94도2238 판결)


즉 고도의 독창성이 있어야만 저작권법상의 ‘저작물’로서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한 바가 담겨있는 최소한의 독자적 창작성(originality)을 갖추고 있다면 저작물로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일상생활에서 쉽게 누구나 쓸 수 있는 표현이나 누가 만들더라도 같거나 비슷할 수 밖에 없는 창작물은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저작물이라고 보지 않는다.


법원은 영화 ‘왕의 남자’에 나온 대사 중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 라는 대사의 저작권 침해가 문제된 사안에서, 위 표현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이므로 창작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한 맥주 광고카피로 쓰인 ‘최상의 맛을 유지하는 온도, 눈으로 확인하십시오.’라는 문구는 표현으로서의 참신성이 인정되지 않아 저작물이 아니라고 본 바가 있다.

미술저작물이라 하더라도 누가 그리더라도 같거나 비슷할 수 밖에 없는 창작물은 최소한의 독창성이 없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필자가 지난 주말에 감상했던 로즈 와일리의 작품으로 돌아가보자.

그녀의 작품들은 전혀 사실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물에 대한 진지함이나 고심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잭슨 폴록의 그림과 같은 즉흥적인 심미감이 있다거나, 김환기, 마크 로스코의 그림처럼 고도로 성숙된 예술가의 완벽한 추상이 돋보이는 작품도 아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스케치북에 크레용을 놀린 듯 천진난만한 순수함이 느껴질 뿐이다.


나는 3층까지 이어진 전시를 본 후 작가가 어린 아이이거나 혹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전시설명을 보니 로즈와일리는 47세가 되어서야 영국 왕립 미술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80대 고령의 화가였다.

그녀는 주로 자신이 살아온 과거의 기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 설명을 듣고 나서야 작가의 작품이 일관성있게 순수한 감성을 전달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녀가 그린 여성의 몸은 자신만의 언어로 왜곡되어 있었는데, 나는 대충 그린 듯한 선의 틀어짐과 그것이 용인되는 장면을 통해 편안한 자유를 느꼈다.

내가 여성의 몸을 그려보자고 한들 로즈 와일리의 감성이 표현된 저 작품과 동일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아마도 완전히 다른 그림이 탄생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과거에 대한 기억, 우리의 감성과 언어가 다른 것처럼.


결론적으로 로즈 와일리의 작품은 저작물에 해당하며, 그녀는 저작자로서 저작권법이 인정하는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저작자에게 최소한의 독창성을 요구하는 법원의 판례는 우리에게 두 가지의 다른 말을 건넨다.

첫째, 고도로 훈련 받은 예술가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그 속에 담긴 작가의 오리지널리티를 존중해야 한다.

둘째, 그러므로 당신도 언제든지 당신만의 언어로 저작물을 창작할 수 있다.


저작권법은 한계가 없는 인간의 정신적 표현인 예술을 규범 안에서 다루고자 하는 무모한 도전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저작권법을 설명한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향후 이어질 칼럼들을 최대한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들로 채우고자 한다.



다음 편 : 마이애미 아트바젤의 바나나 작품 ‘코미디언’과 저작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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