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식인에게 ‘평이함’이란
지식으로 편안하게 대화하는 법
얼마전 업무에 참고하기 위해 책 하나를 구입했다.
빠르게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하여 읽어도 되는 책이었는데, 일부만 읽어보아도 저자의 특성이 드러나 책의 맨 앞으로 돌아가 '발간사'를 읽어보았다.
법조인이나 법학자가 쓴 글은 변호사인 나도 (지루해서..)집중력을 길게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 책은 조금 달랐기에 발간의 의도가 궁금했던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법을 연구한 학자였기에 긴 세월 법서를 읽고 법률용어로 글을 쓰고 강의를 했을 것이다.
어떤 동기가 저자로 하여금 자신의 언어(법률용어)를 이해하기 쉬운 일상어로 번역하는 수고를 감수하게 하였을까.
요즘 문화예술법 칼럼을 '최대한 쉽게." 쓰느라 아주 고생 중인 나로서는 너무 궁금한 것.
저자가 적은 발간사의 일부를 발췌해본다.
"현대법학은 전문화의 경향이 뚜렷합니다. 전문화된 법학이 자기 폐쇄 경향으로 이어져 다른 학문 분야와의 융합 기회를 소홀히 한다든가 일반인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한다면 법학의 전문화는 그 의미를 잃거나 혹은 최소한 새로운 발전 동력을 상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법학적 이슈가 법률가라는 전문가 집단 안에서 폐쇄적 담론으로 그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 (중략)..
이 시리즈는 사회적, 실천적 의미를 가진 법적 이슈를 선정하여 시각은 전문가 수준을 유지하되 표현방식과 문체는 매우 평이한 모습(!)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중략)..
이 주제에 대하여 법학 외의 학문을 하는 분들, 더 나아가서는 일반인들과 소통하고자 합니다."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비교법연구센터 소장 명순구
“표현방식과 문체를 매우 평이한 모습으로 유지한다”라..
이렇게 까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과 문체로 글을 쓰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시작하는 글이라니 몹시 반갑다.
어쩌면 글을 쓰는 지식인의 태도는 오랜시간 지식과 경험으로 다져진 저자의 세계관, 직업관의 또 다른 모습이다.
지식이나 기술을 쌓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고도의 전문적 언어로 인사이트 담긴 글을 적어내려가는 것도 마찬가지.
그러나 세상과 소통하는 단계에서 무엇으로 분하여 어떤 모양새로 지식을 나눌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과, 그 의지를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늘 이 책을 만나게 되어 또 다시 의지를 다져본다.
최대한 편안하고 쉬운 글로 법학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과 문체를 유지해야 할 것인지에 관하여.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방식과 문체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면, 적어도 나의 쓸모가 ‘평이한’ 것이 되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