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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Jan 28. 2019

영화 멜랑콜리아,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에 관하여

영화 멜랑콜리아,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에 관하여.



어떤 종말


한국인들에게 바위는 특별한 존재였었다.  자연물의 한 단위로 절구나 맷돌과 같은 생활도구와 다양한 건축물의 재료로서 바위를 이용했었지만, 한국인들에게 바위는 이념과 신앙의 정신적 요소로서도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다. 신화와 설화에서는 서사의 근거를 바위로 하기도 했다. 부여의 해부루 왕은 아들이 없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던 길에 바위 아래에서 금빛이 나는 개구리 생김새의 아이를 데려와 자신의 아들로 삼았으니, 그가 금와왕이다. 경상북도 영주의 부석사 창건설화에서는 의상대사를 흠모하던 선묘라는 당나라 여인이 의상의 귀국길에 도움을 주기 위해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었으며, 의상이 사찰을 세우려는 것을 방해하던 도적들 앞에서 바위를 들어 올리는 신묘함을 보여 도적들을 물러가게 하고 사찰을 짓게 되었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진다. 왕위 계승과 종교 전승의 서사에서 중용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민중의 정신문화에서도 바위는 중요한 존재였다. 전라남도 무안군에 있는 물바위는 서사의 대상이 바위 자체다.



전남 무안군 현경면의 물바위



높이 1.9미터에 둘레 4미터인 물바위는 만조에 해조류가 자란 곳까지 바닷물에 잠겨있다 간조에 완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오랜 세월 자연이 만들어낸 이 둥근 모양의 바위는 인간의 서사가 합쳐져 마을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한 가장이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자 남겨진 가족들이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과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 바위가 떠올랐다고 한다. 계속 떠오르던 바위는 마을 사람들이 놀라며 소리치자 이 상태로 멈췄다고 전해진다. 그 이후 바위가 완전히 물에 잠기면 나라에 큰 재앙이 닥치고 해조류 부분을 넘어가면 홍수가, 해조류에 도달하지 못하고 수위가 아래에 있으면 가뭄이 든다고 마을 사람들은 믿어왔다.




흥선대원군 아버지 남연군의 묘, 충남 예산



불교에서는 오래전부터 석탑과 석불을 조성해 종교적인 상징물로써 이용했으며, 바위를 정신적이라기보다는 자연물이라 생각했던 유교에서도 바위는 망자를 기리는 기념비와 제례를 위한 제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인간 종족의 연쇄라 할 수 있는 자손 번성을 위한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다. 바위는, 이념과 삶의 의지와 영혼의 영원성을 자연에 약속 받았다는 징표로서 이용됐었다. 불과 100여 년 전의 일이었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근대(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에서의 해방)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져 간 1980년대까지 바위는 그 역할과 기능을 수행해 왔었지만 다음 세대들에게 바위는 자연물의 원소 단위일 뿐이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 역할을 원하기도 하지만). 놀랍고도 급작스러운 이 생각의 단절과 전환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조용하게 이뤄졌다. 이제는 어느 한국인도 바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으며 종족의 지속인 아이의 잉태와 출산이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바위를 갈아 마시지도 않는다. 영혼 영원성의 징표로서 바위의 정신적 역할은 "과거"라는 단어 하나로 종말을 고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끝난 것은 아닐지 모른다).



바위는 더 이상 한국인에게 자연의 경고가 아니며 생명의 시작을 제시해 주지도 않는다. 감각적으로나 의식적으로 명확하지 않지만, 인간 존재 사유의 한 수단이었던 바위가 더 이상 자연과 인간에 관해 설명해 줄 수 없다면 바위라는 존재의 사유 양식은 사라진다. 자연과 인간을 과학과 의학이 설명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옛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바위가 있다.




공주 웅신단과 웅신상



자연재해와 풍어를 기원하는 공주시 금강변의 웅신단의 웅신상은 해남의 바위와 다른 성분이거나 고유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웅신상이 해남의 물바위와 다른 점이라면, 사당이라는 건물의 형식을 통한 의식화와 옛이야기를 향유했던 공동체의 역사로 이론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바위에서 벗어나 웅신상으로 변화가 확정되면서 다른 창조의 가능성은 상실했다.



앤디 워홀, 브릴로 상자



비과학적이며 미신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다른 존재 방식이지만 이론화를 통해서 존재하는 것은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아서 단토는 앤디 워홀의 작품을 통해 어떤 물체가 이론화 된다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멜랑콜리아"는 그렇게 존재하도록 이론화 된 것이 예술작품이 된다는 아서 단토 “예술의 종말”이라는 글을 영화로 시각화했다.  



멜랑콜리아 포스터와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



영화의 형식과 내용


대부분의 종말론적 영화들이 말세적 환경에 처한 인간 의지나 존재의 허무함을 다룬다면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는 아서 단토가 말한 "예술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영화에서 지구 종말 모습을 보면 지구보다 더 큰 행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설정인데, 직관적으로 불가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차라리 혜성이라면 상상할 수 있지만, 지구보다 더 큰 행성이 지구에 접근한다는 것은 태양계의 질서가 붕괴되었거나 블랙홀에 의해 우리 은하계 모두 파괴된다는 설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구적 종말로 한정한 것은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종말은 가상의 사건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영화의 설정은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에 관한 논의도 실제 예술계의 상황이 아니라 철학이라는 관념의 공간에서 논의되었음을 감독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포스터이자 영화의 한 장면인 주인공 저스틴이 신부의 옷차림으로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는 모습은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의 죽음을 영상화한 것이다. 햄릿의 오필리아의 죽음에 관한 서사를 그림으로 그려낸 존 에버렛 밀레이처럼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을 영상으로 그려냈다고 설명한다.



영화 "멜랑콜리아"의 특별한 점은 배경음악, 줄거리, 시각효과가 "종말"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각자 서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멜랑콜리아"를 통해서 소리층, 서사층, 시각층 세 개의 층이 동시에 장엄하게 종결되는 예술 종말의 쾌감을 관객이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세 개의 층



소리층


소리층은 아서 단토의 말을 빌리자면 바그너적 회상인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다. 서사층은 종말이라는 관념을 실체화하고 명확히 하기 위해 전형적인 소설 형식을 따랐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의 소돔과 고모라 편과 갇힌 여인 두 편의 감성을 담았다. 친절한 도입부와 강렬한 종결부가 인상적인 시각층은 서양 미술사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과 시각효과로 회화적으로 구성됐다. 영화의 세 층이 겹쳐 있기 때문에 글을 통해서 영화를 말하려 한다면 세 층을 나누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글을 통해서는 나누되 다시 합치는 다소 애매한 과정을 통해서 감독의 메시지에 도달하게 하고자 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그 의도로 제목을 정했을 듯싶다.  




친절한 도입부


영화의 첫 장면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영화 전체가 보여주려는 것들을 개괄하고 있다. 진행부에서 소리, 서사, 시각을 통해서 예술의 종말을 어떻게 보여줄지에 관해서 여러 개의 슬로 모션 장면으로 설명한다. 첫 장면은 종교적 종말에 관한 것으로, 창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주인공 저스틴 주위에 비둘기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소리층에서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이 연주된다. 서사층과 시각층은 노아의 방주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또다시 종말을 겪게 되며 이젠 구원해 줄 신도 없다는 듯 이삭을 물고 방주에 날아든 인간 구원의 증표였던 비둘기마저 죽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렇게 세 개의 층이 겹쳐진 영화라는 점을 밝히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두 번째 장면은 시간의 종말이다. 인간의 시간, 바그너의 트리스탄 코드에 의한 20세기 새로운 음악의 개시 이기도 하다. 미술사적으로는 고전주의(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원근법의 종말 이기도 하다. 이 장면 자체는 설치미술이면서 회화적 환영이 담긴 장면이다. 아주 작은 해시계는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너무 크게 그려져 있으며, 양 옆으로 늘어선 나무들은 원근법에 맞춰 크기가 조정되어 있다. 그 안에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은 너무 작다. 인문주의의 시작인 고전주의가 인간을 중심에 놓았다면서도 자연과 신, 시간에 의해 인간의 존재를 다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이자 페테르 브뤼겔의 눈 속의 사냥꾼



세 번째 장면은 자연주의의 종말이다. 페테르 브뤼겔의 "눈 속의 사냥꾼"은, 인간을 좌절시키는 겨울이라는 계절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혹독한 추위에 굴복해야 하는 인간에게 겨울은 아름다운 공간이 될 수 없었다. 적도를 기준으로 북반구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서 겨울은 인생의 사분의 일이지만 그만큼 그려내지는 않았다. 겨울은 오랫동안 예술의 세계에서 인간과 미덕적 관계가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 삶은 다르다.



브뤼겔은 인간의 생동하는 숨소리로 가득한 겨울을 그려냈다. 겨울은 사냥을 하기에는 최적의 계절이다. 사냥의 대상인 동물들은 눈 때문에 잘 드러나며 도망치기 어려워 잡기 수월하다. 생명을 위협하는 맹수들도 눈 쌓인 겨울에는 민첩하게 움직일 수 없어 인간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다. 브뤼겔의 겨울은 인간을 좌절 시키지만 인간에게 굴복하는 것들을 찾아 나서는, 종교와 신화라는 고상한 옷 대신 두터운 삶의 의지를 입고 있는, 종교와 신화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자연과 인간이 연결되었다면 사냥꾼들의 모습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이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네 번째 장면은 모성의 종말이다. 여성의 역사는 모성에 철저히 갇힌 역사였다. 출산은, 태어남의 이유였고, 삶의 과정 전체였으며, 죽음에 대한 보상이었다. 현대 여성은 생물학적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존재자로서 태어난 것이다. 관습적이며 도덕적인 잣대에서 벗어나 감정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자유를 얻었다. 자유를 얻은 여성의 삶이 아주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다. 여전히 스스로 전통에 갇히는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여성이라는 존재의 선언이 있었던 때부터 여성들이 그 흐름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제는 모성의 잣대에서만 여성을 말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한 장면과 에드워드 머이브릿지의 움직이는 말



다섯 번째 장면은 20세기 순수미술의 종말이다. 사진기를 통해서 시각의 동시성을 확보하고 관념적이었던 시간을 물리적으로 편집하게 된 에드워드 머이브릿지의 달리는 말이 미술계에 가져다 준 충격은 컸다. 사진기가 시간을 물리적으로 편집하기 시작했다면 공간을 관념적으로 편집하는 추상미술가들이 등장하게 된다. 추상미술이 과거의 회화적 기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로 말을 주저앉힌다.





여섯 번째 장면은 남성성의 종말이다. 과거와 달리 여성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창조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종교와 신화, 역사뿐만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여성은 남성에 의해 운명이 좌우되었으며 구원의 대상이 되는 기능적 역할을 했을 뿐이다. 자신의 손과 팔로 몸을 가린 정숙한 비너스의 모습이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도와 같은 저스틴의 모습은 세상의 시선을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차있다. 이를 보는 감정은 어떠한가? 자신감으로 차있는 여성의 신체는 바람직하지 않거나 부도덕함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남성 중심적 사고에 의한 윤리적 시선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저스틴과 조카 리아, 클레어가 대저택 앞에 서 있는 일곱 번째 장면은 모든 종말들의 모습이다. 그 중심에 바벨탑과 같은 자본이라는 의미의 저택이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이 장면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가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 줄 것만 같았지만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자본주의를 통해서 전 시대보다 나아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 문명사에서 전 시대보다 못한 다음 시대는 없었다. 그렇다고 과거와 비교해서 현재를 안도하거나 막연한 미래의 환영으로 현재를 비관할 필요 없다. 이 장면으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것은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과거와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 속의 관계를 재구성해 나아가는 것이 미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회주의가 몰락했던 것처럼 자본주의가 순식간에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이 아니라 우주에 낮과 밤이 동시에 있는 것처럼, 마음에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것처럼, 자본주의의 종말은 관계(자본과 사회주의적 요구, 개인과 사회)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종말의 날 집사가 출근하지 않는 것과 같이)





저스틴의 손에서 전기가 뿜어져 나오는 장면을 건너뛰어 여덟 번째 장면으로 선택한 장면은 예술의 종말이자 감상자의 종말이다. 우리의 시선이 신부만을 떼어내어 감상할 수는 없다. 그녀를 설명해주는 것은 신부의 옷차림이 아니다. 아름다운 신부만 그려졌다면 미적 체험은 종료되겠지만, 신부의 허리춤부터 발끝까지 얽힌 그녀를 붙잡고 있는 검은색 끈이 우리의 판단을 종료시키지 않게 한다. 서양 미술사 천 년의 시간 동안 질서였던 모방이라는 예술의 이론적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신부가 달리는 장면만을 그려야만 했다면 추상미술가들은 철학적 이미지들을 결합시켰다. 예술이 예술의 참된 철학적 본성을 깨닫게 된다는 데 “예술의 종말”이라는 의미로서서의 아서 단토의 말처럼, 기존의 예술이 색채, 정서, 감각과 같은 것들을 통해서 호소하던 예술이 지금도 존재하지만, 그것을 벗어나 새로운 시대, 예술 작품 스스로 자신의 내러티브를 선언하는 다원주의 시대로 진입하려는 새로운 시대에 미술가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감상자는 어떤 처지에 놓여있게 되는가.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이 지구에 접근하는 장면은, 감상자의 종말이다. 예술은 오랫동안 감상자의 수준에 상응하는 작품들이 생산되었다. 인상주의 이후의 예술은 예술가의 내면과 철학적 결과물이 되었다. 관람자의 위상과 크기를 축소시킨 결과를 초래했다. 예술도 낌새를 차리지 못하고 대중의 곁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 중 하나가 되었다. 어떤 예술 작품은 우리 가까이 있으면서도 시야에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의미는 복잡해졌으며 경험세계에서 떨어져 나간 듯하다. 예술은 어디에 있는가?




서사층



페테르 브뤼겔의 바벨탑



등장하는 그림과 배우들의 대화를 통해서 얻은 단서로 보자면(혹은, 감독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종교와 문학으로 보자면), 영화의 서사 토대는 성경과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생각된다. 1부 저스틴 편에서는 탐욕의 양식으로 쌓아 올린 대저택에서 파국으로 치닫는 저스틴의 결혼식을, 2부 클레어의 이야기에서는 "멜랑콜리아"라는 행성과 지구의 충돌로 인한 종말이라는 사건에 따른 감정의 붕괴를 보여준다. 영화의 간략한 서사를 채우는 것은 배우들의 감정 변화를 관찰하는 관객 자신이다. 바벨탑의 찬란한 모습을 그려낸 브뤼겔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붕괴도 보고 있는 것과 같은 것처럼 관객의 생각 안에서 영화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어떻게 보이고 생각될 것인가.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의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 둥글게 철사를 구부린 것처럼 영화를 보는 관객의 내면에서 정상의 범위를 정하고 저스틴과 클레어의 감정상태를 판단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발견되는 것은 두 사람을 바라보는 관객의 척도다. 그 척도를 통해 보게는 것은 세상과의 단절과 모성이라는, 저스틴과 클레어가 관계를 맺는 대상과 방식에 따라 그들의 감정 변화가 타당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감정은 미의 척도처럼 시대에 따라 기준은 달라질 수도 있다. 우울증은 치료가 필요한 질환의 하나지만 암울한 시대를 살아내게 했던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시대가 채색한 우울한 감정의 빛깔이었다. 그래서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이 지구에 접근하는 사건의 흐름 속에서 우울증을 앓고 있어 비정상적인 모습이었던 저스틴은 영화 말미에는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되고, 이성이 마음의 균형을 잡아주던 클레어는 감정의 심연으로 침몰하면서 과도하게 비정상적으로 폭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대를 초월해 모범이 되는 감정의 척도는 없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감정보다는 이성을 통해서 시대를 초월하려 했다. 고흐의 신발 주인 찾기 논쟁 이후에 다른 양상으로 흐르게 됐지만, 역사 철학이 시대의 종결자 여야 개시자가 될 수 있었다면 예술에서는 감정의 포착을 통해서 새로운 사조의 문을 열기도 했다. 타인의 마음과 생각에 개입하려는 욕망을 버린 고흐의 그림에는 시대의 감정이 포착되어 있다.



반 고흐, 신발



“이 구두라는 도구 밖으로 드러난 내부의 어두운 틈으로부터 들일을 하러 나선 이의 고통이 응시하고 있으며, 구두라는 도구의 실팍한 무게 가운데는 거친 바람이 부는 넓게 펼쳐진 평탄한 밭고랑을 천천히 걷는 강인함이 쌓여 있고, 구두 가죽 위에는 대지의 습기와 풍요함이 깃들여 있다. 구두창 아래는 해 저물녘 들길의 고독이 깃들여 있고, 이 구두라는 도구 가운데에서 대지의 소리 없는 부름이, 또 대지의 조용한 선물인 다 익은 곡식의 부름이, 겨울 들판의 황량한 휴한지 가운데서 일렁이는 해명할 수 없는 대지의 거절이 동요하고 있다. 이 구두라는 도구에 스며들어 있는 것은, 빵의 확보를 위한 불평 없는 근심과 다시 고난을 극복한 뒤의 말 없는 기쁨과 임박한 아기의 출산에 대한 전전긍긍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의 전율이다. 이 구두라는 도구는 대지에 속해 있으며, 촌 아낙네의 세계 가운데서 보존되고 있다. 이 보존된 귀속으로부터 도구 자체의 자기 안식이 생긴다.”  -마틴 하이데거-



즉각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미의 척도였던 당대에 외면 받았던 고흐가 그려낸 신발의 빛깔을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는 찬탄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이자 비평가인 칼 샤피로는 하이데거의 해석에 의문을 제기한다. 신발의 주인은 농부가 아닌 고흐 자신이며 하이데거의 말은 처음부터 자기기만과 위선으로 가득 찼다고 비난한다. 신발 주인 찾기의 논쟁은 데리다의 말처럼 의미 없을 수도 있다. 하이데거와 샤피로가 삼은 대상은 달랐기 때문이다. 하이데거가 그림이 일으킨 자기감정과 관계하고 있다며 샤피로는 신발 자체를 말하고 있다. 신발 주인 찾기의 논쟁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철학자들이 이성으로 향하며 멀어지려던 감정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저스틴이 이성으로, 클레어가 모성을 통한 감정으로 다가가듯이.




시각층


스웨덴 쇌레홀름 저택, Tjolöholm castle, 영화의 한 장면



스코틀랜드 태생의 무역업자(목재와 철강) 제임스 프레드릭 디커슨이 영국의 튜더 양식(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의 결합)으로 지은 스웨덴 예테보리 40여 킬로 남쪽 해안가의 쇌레홀름 저택에서 영화가 촬영됐다. 지금은 건물 자체가 보존 대상인 박물관이자 숙박과 음식, 행사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결혼식을 올리는 관광명소로서 스웨덴 신혼부부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아마도 저택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은 남편 대신 아내 블랑셰 디커슨이 완공한 이유로 부부 사랑의 상징성을 획득했던 모양이다.  



쉘레홀름 내부출처, https://www.tjoloholm.se/en/&prev=search


식당 내부를 보면 장식과 문양이 화려하다. 오른쪽 벽면에는 비너스 그림과 왼쪽 벽면에는 블랑셰 디커슨 부인이 좋아했다던 셰익스피어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영화에서는 파혼과 파국이라는 반대의 의미로 채워지는 공간이 되었다. 결혼식이 열리는 곳인 이곳을 영화에서는 파국의 장소라는 의미로 채우려 한 것은 어떤 의도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혼은 시작인가 종결인가. 그 다음으로 감독이 제시한 것은 그림이다.




추상미술 이전과 이후


테오 반 두스뷔르흐의 반구성과 말레비치의 두 개의 공간에서의 자화상



결혼하는 신부가 행복한 미소를 짓지 않는다고 해서 파혼하게 된다면 좀 억울할 듯하다. 언니 클레어는 저스틴의 무표정을 나무라며 결혼식에 어울리는 태도와 표정을 요구한다. 영화의 시각층에서 보여지는 감각적 인상 너머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화가 난 저스틴은 말레비치와 두스뷔르흐의 작품이 실린 책을 덮고 페테르 브뤼겔, 카라바조, 한스 홀바인, 존 에버렛 밀레이, 칼 프레데릭 힐의 그림들이 실린 책으로 바꾼다. 미술 양식사를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는 앞서의 진열된 책들은 추상주의 이후의 미술가이고 새로 진열되는 강요된 책들의 작가들은 추상주의 이전의 작가들이다.



이성과 합리주의가 유토피아를 실현할 것으로 믿었지만 전쟁과 대학살이라는 참혹한 재앙만을 가져다 주었다. 추상주의 이전의 그림들이 세계에 대한 찬사라 한다면 추상주의는 그 현실세계를 떠나 자기 내면의 영혼의 율동을 발견하려 했다. 그래서 추상주의 이전을 문학적이라 하고 추상주의 이후를 음악적인 회화의 시대라 구분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저스틴이 이성과 합리주의를 벗어나 원시의 세계, 감각의 세계로 떠나 감각으로 세계와 자신의 영혼을 감지하려 한다. 하지만 추상주의 화가들이 수학과 물리학을 받아들였고 이후의 예술가들이 철학의 세계로 진입한 것처럼 저스틴은 원시에서 문명으로 돌아간다. 이성과 과학이 자신을 지켜준다는 믿음을 가졌던 클레어는 자신 안에 갇혀 있던 요동치는 영혼의 울림을 만난다. 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1960년대 추상주의 이전과 이후의 미술들이 그랬던 것처럼, 종말로 향한다.




종결부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앙트완 페브스너의 Column of Peace



코마르와 멜라미드 형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중산층 백인 남성의 44%가 좋아하는 색은 파란색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이 그린 “미국인들이 가장 원하는 그림”에는 44%의 파란색 하늘과 미국인들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조지 워싱턴과 사슴을 그려 넣었다. 그렇다고 그 그림이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되지는 못했다. 멜랑콜리아는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파란색에 자랑스럽지 않은 역사인 인디언을 상징하는 막대 기둥을 등장시킨다. 미국 인디언들이 평화를 얻기까지 그들 대다수는 죽어야 했다. 페브스너의 평화의 기둥은 인디언 역사의 역설적인 증언과 같아 보인다. 페브스너의 작품과 인디언의 종말에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종말을 맞이하는 공간에서 인디언의 주거공간이었던 천막을 떠오른 것은 느낌에 의해서지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인디언의 종말과 페브스너의 작품이 관련 있다 생각한 이유는 어떤 물음에 역사적 사건으로 답하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서사 또한 도입부와 종결부로 구성된 역사의 증언 방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역사에서 의미를 찾게 된 이유다.



기존의 영화들이 서사가 주를 이루고 음악과 시각효과가 부수적이었다면 멜랑콜리아는 각 층이 완성된 서사다. 각 층이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방식의 영화가 아서 단토의 의견에 따라 성공적인 종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관객이 영화의 역사철학 본질을 발견해 내는 것이어야 한다. 소리층, 서사층, 시각층에서 제시한 역사적 맥락에 따라 해석되는 것을 찾아내고 이해되지 않는 것에 관해서 질문을 멈춰서는 안된다. 아서 단토가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예술의 종말"에 이르게 했다면 우리는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의해 아서 단토적 영화의 종말은 시작된다. 멜랑콜리아의 종결은 이 물음을 통해서다. 한 작품, 혹은 하나의 시대양식이 역사적으로 종말을 맞이 해야만, 기존의 규칙을 발견하고 깨뜨릴 수 있어야, 새로운 예술 창조의 가능성을 열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제작되고 2년 후, 2013년 아서 단토는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이 영화를 보았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아트렉처 에디터_꼭그래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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