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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May 24. 2019

'미스트'그 치명적인 자욱함이란

'미스트'그 치명적인 자욱함이란

파멸을 부르는 공기, '에어포칼립스(airpocalyps)'



"something in the mist!"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에 갇힌 사람들은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안개 속에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있다’고 외치다 있다. ‘something’, 존재하지만 존재를 알 수 없다는 말에서 전혀 낯선 두려움을 읽을 수 있다.      

2007년에 만들어진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 한 ‘the Mist'의 대사 중 하나다.

영화는 공포 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 원작이라는 사실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를 잘 그려내고 있다는 호평에 세간의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영화에서 사람들에게 익숙한 공간은 안개에 의해 미지의 공간으로 바뀌며 전혀 낯선 세계가 된다. 이들이 싸워야 할 공포의 대상마저 안개에 싸여 있어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 즉 공포의 대상이 불분명하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큰 공포였을 것이다. 



자욱한 안개 속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위협 속에서 사람들은 이성을 잃어간다. 


공포가 극에 달하자, 맞서 싸우자는 사람과 그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사람, 심지어는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까지 등장한다.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것은 안개 자체일 수도 있고, 안개가 주는 보이지 않는 위협일 수도 있다. 그 두려움이 무엇이든 영화 속의 두려움은 오늘날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영화의 안개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괴물이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뿌연 먼지 안개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영화 속 괴물은 국가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무분별한 과학 실험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미세먼지라고 불리는 이 치명적인 자욱함 역시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우리 스스로 자초한 재앙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 미세먼지에 황사가 겹쳐 온통 안개가 낀 것으로 착각할 만큼 연일 상상을 초월할 수준으로 온종일 대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보고 있자면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작품 속 무대인 무진(霧津)을 안개가 자욱하게 감싸고 있는 모습은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고 표현했지만, 지금의 모습은 미세먼지가 안개 대신 주변 모든 것들을 멀리 유배시켜 버린 듯하다.   



문제는 그 위험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만 놓고 보면 카드뮴, 수은, 납 등의 중금속을 비롯한 여러 유해물질우리의 호흡기를 통해 체내에 들어오면 천식, 만성폐렴과 같은 감염성 호흡기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다고 한다. 심지어 뇌졸중, 협심증 등의 심뇌혈관 질환을 유발하고 암의 위험도 높여 조기 사망의 위험까지 커진다고 얘기한다.     

그런 위험성에 비춰 지금까지 제대로 된 대책은 고사하고 발생 원인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과거 환경부에서는 고등어를 미세먼지의 주범이라고 했다가 애꿎은 고등어만 우리 건강의 원흉 취급을 받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평생 담배 한 개비 피우지 않으신 어머님이 폐암으로 사망한 게 결국 고등어구이를 좋아한 자신 때문이냐며 자조석인 한탄까지 내놓기도 했다. 


그 대비책마저도 사람들을 어이없게 만든다. 기껏 내놓은 대책이 외출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는 정도이다. 허술한 대비책에 사람들은 방사능 오염 시의 두려움의 수치를 능가하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탓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은 이웃나라의 대처에 분노만 할 뿐 하늘 하나 지키지 못하고 무방비로 노출시킨 상황에 대해서는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다. 



가장 좋은 선례는 영국의 런던이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런던에 안개가 많은 것은 영국의 먼 바다를 흐르는 해류 때문이었다. 


코난 도일의 소설 속 주인공 셜록 홈즈는 안개 낀 영국의 날씨를 "마치 우유를 쏟아 부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영국인들의 일상과 함께하는 안개는 런던의 명물이었다. 

문제는 매연(smoke)이 런던의 안개(fog) 합쳐져 스모그(smog)가 만들어지면서부터다. 하지만 19세기 초까지 런던의 스모그의 폐해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심지어 스모그에 의한 안개는 예술가들의 작품 소재가 되기고 했다.     


프리드리히, 모네, 휘슬러 같은 화가들은 런던의 자욱한 스모그 안개에 빠져 그림으로 남겼다. 심지어 프리드리히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안개에 싸인 풍경은 더욱 광활해 보이고 상상력을 북돋우며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베일에 가린 소녀와 흡사하다." 

인상파 화가 모네 역시 자신의 아내 엘리스에게 쓴 편지에서 런던의 안개 낀 런던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런 안개가 없었다면 런던은 아름다운 도시가 되지 못했을 것이오. 이 엄청나게 멋진 광경은 고작 5분간 지속될 뿐이오! 미칠 노릇이지!" 

의붓딸 블랑슈에게 쓴 편지에서는 “날마다 런던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는구나”라고 감탄했다. 


모네, '워털루 다리'



그는 런던의 안개 낀 풍경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의 '워털루 다리'는 안개 낀 도시에 옅은 붉은 색을 물들이고 있는 흐릿한 풍경이 담겨있다. 1901년에 그린 ‘런던 국회의사당’ 또한 이른 아침의 희미한 색상으로 묘사되어 있다. 



모네,  '런던 국회의사당'



인상파 양식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끝까지 고수했으며, 연작을 통해 동일한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탐색했던 모네. 그는 빅토리아 시대 런던을 휘감았던 두터운 스모그의 목격자이기도 한 것이다.      

제임스 휘슬러 역시 ‘녹턴:배터시강’(1878년 작) 역시 영국의 수도를 관통하며 물 위를 떠다니는 짙은 안개를 캔버스에 옮겼다. 



제임스 휘슬러, '녹턴:배터시강'



휘슬러는 런던 첼시에서 템즈강이 내려다보이는 제방 근처에 살았다. 그는 계절별로 다양한 모습의 강을 동판화와 유화로 표현했다. 그런데 안개가 심해지고 정체되어 있는 한 겨울 템즈강의 모습은 어렴풋한 실루엣만으로 남아 있다. 그가 그린 풍경을 안개로만 바라본 오스카 와일드는 “그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런던엔 안개가 없었다”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산업화 이후 런던의 이러한 대기오염은 문학에서도 잘 드러난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1854년에 발표한 소설 『어려운 시절』에서 ‘코크타운’이라는 소설 속 가상의 도시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코크타운은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어쩌면 붉은색이 아니었을 그 벽돌들은 연기와 재로 붉게 변했는지도 모른다. 도시엔 기계와 높은 굴뚝만이 있었고 거기에서 나오는 연기는 뱀처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뻗어 있었다. 그 도시엔 검은 운하가 흘렀다. 그리고 역겨운 냄새가 나는 자줏빛으로 염색된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찬사의 대상이 되는가하면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 런던의 안개 스모그는 20세기로 넘어와 크나큰 재앙이 되었다. 



1948년에 스모그에 의한 사망자가 300명을 넘기더니 1952년, 기록적인 '런던 스모그'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이 발생할 즈음 런던은 겨울이었다. 추운 겨울에 사람들은 항상 그래왔듯이 난방을 위해 석탄을 땠다. 석탄 연기에서 나온 아황산가스는 안개와 만나 치명적인 황산으로 변했고 어린아이와 노약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희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데는 바람이 불지 않았던 요인이 크다. 대기가 정체되면서 안개는 더욱 심해졌다. 



1952년 런던의 스모그



걷히지 않는 안개로 인해 도로는 통행 불능 상태가 되었고, 열차와 선박이 서로 충돌하는 사고도 일어났다. 이 극심한 스모그는 4일 동안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4000명이 사망하고, 그 후 만성 폐질환으로 8000명이 더 목숨을 잃었다.  



1952년 런던의 스모그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은 생명을 잃게 되자 영국은 강력한 환경 개선 정책을 내놓았다. 최초의 대기오염 방지법인 '청정대기법'을 1956년도에 제정한 데 이어, 지난 2003년부터 런던 도심을 운행하는 자동차들에 혼잡통행료와 독성부담금을 부과하고 있는 것. 거기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환경 개선을 위한 불편함은 감당할 수 있다는 인식이 일반 시민들에게 뿌리 깊게 인식되어 있다.

오늘날 영국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산업화가 된 나라이면서 동시에 가장 깨끗한 환경을 가진 나라다. 한때 죽음의 강으로 불렸던 런던 템스강엔 지금은 유람선이 다니고 물고기가 노닌다.     

과거 런던의 전철을 밝고 있는 도시가 베이징이다. 베이징의 미세먼지 농도는 ㎥당 최고 500마이크로그램에 육박한다. 이는 런던 스모그만큼이나 치명적인 수치다. 게다가 런던 스모그와 닮은 난방용 무연탄이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스모그 미세먼지는 황사보다 10배나 작아 폐 세포에까지 파고든다 하고 이로 인해 중국에서만 한해 120만 명이 조기 사망하는 걸로 추정되고 있다. ‘뉴욕타임즈’가 파멸을 부르는 공기라는 뜻의 ‘에어포칼립스(airpocalyps)’라 표현할만하다.

이 스모그가 주변 이웃인 한국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겨울에는 복사냉각으로 스모그가 발생하기 쉽고 북서풍이 불기에 한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정부의 역할은 바로 국민들의 불안을 없애줄 실질적인 노력이 될 것이다. 

애꿎은 고등어나 탓하는 한 국민들의 불안해소는 요원해질 것이다.          






글_고산_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_일명 바람난 공학자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_ 하버드대 대학원(동아시아언어문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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