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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May 20. 2019

거위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굶을 줄을 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767      


2006년 세계는 한 무명의 수학자가 제시한 3개의 짧은 논문으로 인해 흥분했다.

그 논문에는 세계 7대 수학 난제 중 가장 어렵다는 ‘푸엥카레의 가설’에 대한 해답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수학적 사고만으로 우리 우주의 모양을 알아내는 데 한 걸음 크게 다가서게 할 수 있는 문제였다.     


수많은 수학천재들이 100년이 넘도록 풀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했던 바로 그 문제. 

이를 푼 사람은 러시아의 수학자 그레고리 페렐만이었다. 


페렐만이 제시한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참’인지를 검증하는데도 3년이 넘게 걸렸다. 마침내 2006년 수많은 수학자들의 검토 결과 그의 답이 ‘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수학계에서는 엄청난 대사건 앞에 환호했고, 페렐만은 전 세계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러시아의 수학자 그레고리 페렐만



그의 업적은 너무도 대단한 것이었고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은 당연히 그의 것이었다. 

필즈상, 이는 수학계 최고의 영예로운 상으로 수상자가 적다는 점에서 노벨상 이상으로 권위가 있다. 이 문제는 영국 클레이연구소가 제시한 100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의 유명대학으로부터 종신 교수로 스카우트 제의도 들어왔다.     


그런데 필즈상 위원회에 예기치 않은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페렐만이 미래가 보장되는 명예와 돈과 안정된 직장을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는 ‘자기는 우주의 비밀이 알고 싶을 뿐’이라 짧은 한마디만 남기고 숨어버렸다.      


언론을 통해 그가 처한 상황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모두 의문에 휩싸인다. 당시 그는 연구소에서 해직돼 노모가 매달 받는 5만5000원 정도의 연금에 의지해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집을 버리지 않았고 심지어 설득하러 온 그의 스승과의 만남조차 거부했다.      


그는 물질적 보상을 수학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연구를 팔아 돈을 벌고 명예를 얻는 것처럼 비치는 게 싫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수학을 그만 두고 노모와 함께 버섯을 채취하며 물질적으로 부족하지만 마음만은  여유로운 삶을 선택했다.     


명예를 얻기 위해 연구 성과나 업적을 부풀리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계에서 그는 ‘스스로의 만족’의 길을 갔다. 모든 인간의 욕심 사나운 본성을 과감히 떨쳐버림으로써 오히려 더 큰 자신을 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페렐만의 선택은 현실적 욕망의 추구가 당연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는 별종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뇌와 그것을 억제하는 뇌가 동시에 존재한다. 대개의 경우 전자가 승리한다. 억제한다는 것은 버려야 할 것과 감수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개인이 억제와 통제가 가능하다해도 가정, 사회, 직장 등 공동체의 한사람으로 위치할 때는 물질적 추구를 완전히 거부하고 차단하기란 불가능해진다.     



결국 균형이 필요한데 그 균형을 적절히 조절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경우 양자택일을 강요받게 된다.      



그런 양자택일의 구조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잘 그려낸 책이 서머싯 모옴의 ‘달과 6펜스’이다.     

이상의 추구를 상징하는 ‘달’,과 세속의 욕망을 대변하는 6펜스.

달은 아름답고 꿈을 심어주지만 닿을 수 없는 무한의 존재이고, 6펜스는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만족을 주지 못한다.      



뮤지컬 '달과 6펜스'



이 소설에서는 6펜스 대신 달을 따라 현실의 물질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과감하게 이상을 향해 고개를 돌린 화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바를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비정상적인 충동에 사로잡힌 사람의 이야기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세속적인 삶과 신비와 욕망, 이상이 살아 있는 달의 세계가 갈등하며 서로 다투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두 세계가 적당히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그 긴장이 흐트러질 경우, 예를 들어 달빛이 강렬해지면 6펜스는 더 이상 의미를 잃고, 6펜스의 물질적 욕망이 강해지면 그것이 달빛을 가리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물질에 대한 욕망을 거부하는 주인공과 철학조차 없이 오로지 잘 팔리는 그림만을 그리는 현실 속의 사람들의 대비를 통해 비정하면서도 냉철한 비판을 한다.


화가는 이러한 문제를 풀어가는 중매쟁이 역할을 한다.     

이 중매쟁이는 현실에서 소설로 데리고 들어왔다. 고흐의 친구이자 생명의 화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고갱’이 바로 ‘스트릭랜드’의 모델이다.


고갱의 자화상



또한 고갱이 말년을 보낸, 그리고 스트릭랜드에게도 낙원과 같은 타이티가 소설의 공간 배경으로 등장한다.     

극적으로 마무리되는 소설 속 스트릭랜드의 마지막과 실제 고갱의 생의 마지막은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그들이 보는 달의 모습은 닮아 있다. 



소설 속으로 들어 온 것은 인물과 공간 뿐 아니라 작품까지 들어와 있다. 실제로 달과 6펜스에서 주인공이 찾아 헤매다 죽기 직전 찾은 예술의 세계는 고갱의 한 작품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라는 긴 제목의 그림이다.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고갱은 스트릭랜드 만큼이나 깊은 절망의 시간 속에 있었다. 자신의 예술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 타이티로 이주해 왔지만 그의 작품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여전히 없었다. 게다가 그가 타이티에 온 지 6년 째 되던 해, 딸 알렌이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사실 그 소식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의 선택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늘 자신만만해 했다. 그에게는 고흐로부터 물려받은 그림에 대한 열정이 타이티에 와서도 여전히 살아 꿈틀거렸다. 그가 만난 고흐란 사람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의 철학자였다. 그러한 고흐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고흐에게 빚진 것이 두 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나의 잠들어 있던 열정을 깨워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보다 더 비참한 인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 그것이 나를 절망으로부터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1897년 그 꼿꼿하던 고갱에게서 달의 세계를 추구한 자신을 후회하는 듯이 보였다. 6펜스의 세계는 그에게서 너무 멀어져 버렸고, 건강마저 그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딸의 죽음은 그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고갱은 그 두 세계 사이에서의 갈등을 그림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그의 가로 347센티미터, 세로 139.1센티미터에 이르는 이 거대한 작품은 두 세계 속에서 우리의 길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이 지배하고 있다. 그림의 위쪽으로는 멀리 바다가 펼쳐져 있는 정글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아래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세 그룹의 사람들이 보인다. 오른쪽의 어린 아이와 세 여인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Where Do We Come From?)'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고갱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중앙의 여인은 이브가 두 팔을 들어 나무에 달린 경험과 생명의 열매를 막 따려 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런데 이 열매는 6펜스의 물질적 세계의 욕망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 주변으로 배치된 다양한 원주민 여인과 아이들은 인생에서 우리가 겪게 되는 상황들을 암시하고 있다. 


달의 세계와 6펜스의 세계 가운데서 갈등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누구인가(What Are We?)' 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뒤로 보이는 신상은 인간의 욕망이 잘 드러나는 영원성을 상징하는 푸른빛으로 그려져 있다. 신은 달과 함께 이상의 세계지만 욕망의 색이 칠해지면서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림의 왼쪽으로는 죽음을 기다리는 여인의 체념어린 모습을 그려 놓았다. 우리가 추구하는 세계가 과연 우리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를 말하는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이다.      


소설에서 그려진 무한한 공간의 이야기와 시간의 영원성을 고갱은 이 작품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외로움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지친 영혼이 마침내 목적을 이룬 것처럼 현실 속에서 고갱 또한 그의 달을 찾았다고 말하는 것일까? 혹은 여전히 갈등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고갱이 찾고자 했던 인간이 가진 세속적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는 이렇게 작품으로 남았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상과 세속의 시소 위에서 균형을 상실한 듯 보일 수도 있다. 엄밀히 말해 잃은 부분이 더 많다고 말할 수 있다.      



균형 잡힌 삶,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건강하게 산다는 것, 이는 어찌보면 족함을 알고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다. 이는 달의 세계를 지향하면서 6펜스의 만족을 찾는 길이다. 이를 가로막는 것이 탐욕이다. 탐욕은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달의 세계를 지향하면서 6펜스의 만족을 찾는 길, 이는 탐욕을 억제하는 것이다



거위에 대한 우화가 있다.


한 농부가 우연히 야생 거위 한 마리를 잡게 된다. 그는 거위의 살을 찌워 잡아먹을 요량으로 불에 익힌 기름진 음식을 줬다. 거위는 이내 살이 쪄 날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거위가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농부는 거위가 병이 난줄 알고 더 맛있는 음식으로 줬다. 그럼에도 거위는 그 음식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거위는 열흘을 아무런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러자 거위의 몸은 야생 상태의 날씬한 몸으로 돌아왔고 힘찬 날개짓과 함께 멀리 날아가 버렸다.     


이는 자신을 부르는 달을 외면하고 탐욕으로 달빛을 가려버리는 인간들에게 내리는 죽비다. 거위가 음식을 계속 탐했다면 인간에게 잡아먹혔을 것이다. 거위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굶을 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보기에 좋고 탐나더라도 먹을 것이 있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세속의 물질적 탐욕은 자신을 망가뜨리는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인간의 무리한 탐욕을 경계하는 '영수세이(潁水洗耳)'란 말도 있다. 

이 말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고결한 삶을 살아가는 절개와 의지를 뜻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요나라 허유는 옳지 않은 자리, 부정한 음식은 결코 가까이 하지 않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허유의 성품을 알게 된 요임금이 자신의 자리를 허유에게 물려주고자 했다.

하지만 허유는 완곡하게 이를 거절했다.      


"뱁새가 깊은 숲 속에 둥지를 짓는다 해도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고 두더지가 커다란 강물을 마신다 해도 작은 배를 채우면 그만입니다. 누울 곳만 있으면 그만이지 저에게 천하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더러운 말을 들었다며 영수의 흐르는 강물에 귀를 씻었다. 마침 소에게 물을 먹이려 왔던 소부가 그 이유를 묻자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소부는 소에게 더러운 귀를 씻은 물을 먹일 수 없다’며 강의 상류 쪽으로 올라가 물을 먹였다고 한다.        


청 말 화가 임백년의 '영수세이(潁水洗耳)'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치게 되는 탐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고사다.      

지나침은 부족함보다 못하다. 탐욕이 부르는 것은 재앙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나친 혐오와 무관심도 사회 속에서의 자신을 상실하게 한다. 


달과 6펜스의 두 세계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는 것, 다시 말해 탐욕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야말로 인간을 아름답게 한다. 

탐욕이 지배하는 속에서도 그 세계에 물들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인 것이다.




글: 고산&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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