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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Jul 09. 2019

검정: 삶과 죽음, 세계를 환기하라

베르나르 뷔페展

베르나르 뷔페展 - 검정: 삶과 죽음, 세계를 환기하라


https://artlecture.com/article/870


20세기 표현주의의 형성에는 미술계 내부의 구성원들이 회화의 본령과 독자성을 찾고자 하는 일련의 반성적인 탐구정신이 큰 영향을 끼쳤다. 허나 표현주의는 미술계 내부에서만 자생적으로 태동한 사조는 아닌데, 표현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외부의 사건을 꼽자면 그것은 다름 아닌 1차 대전이었다. 표현주의의 여러 분파, 다리파나 청기사파에 몸담고 있었던 당대의 청년작가들에게 1차 대전의 그늘은 결코 피해갈 수 없었다. 키르히너는 1차 대전에서 손목을 잃은 자신의 참상을 회화로 적나라하게 고발하곤 하였으며, 마케는 1차 대전 당시 복무하다 사망하였으며, 표현주의뿐만 아니라 역동적인 20세기 미술사를 이끌 수 있었던 인재였던 마르크 또한 1차 대전 복무 중 사망하였다. 생존한 이들은 예술의 비정치성을 강화해나가거나, 한편으로 정치성을 강화해나가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참극을 경고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허나 그 참극은 30년대 말에 다시금 되풀이되었으며, 나치즘에 의해 다시 한 번 예술과 세계의 위기를 느낀 키르히너는 두 번째 비극은 결코 버티지 못하고 자살해버렸다. 20세기의 비극이 1차 대전으로 온전하게 종결되었더라면 20세기 중후반의 표현주의는 보다 온건하고 미시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지 모른다. 허나 다시금 인류가 일으킨 재앙이 발발했기에 표현주의는 격정적인 방향으로, 또한 개인을 그려낸다 한들 거기에는 숨길 수 없는 거시적 영역이 포착되곤 한다. 2차 대전 이후의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이 바로 그렇다. 1차 대전이 끝난 1928년 출생한 베르나르 뷔페, 허나 그 평온함은 10년을 채 가지 못한다. 어린 뷔페의 영민하고도 예민한 감수성에는 2차 대전이라는 거대한 수심과 그늘이 침투하게 된다. 또한 개인에게 시대적 영향력이 전무한다 한들, 눈을 아무리 돌려도 황량한 폐허와 죽음, 폭력의 흔적, 상흔들만이 포착될 뿐이다.


그래서 뷔페의 회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2차 대전의 그늘을 드러낸다. 화가의 주관적인 시각에서도, 세계의 객관적인 시각에서도. 그래서 뷔페의 딱딱한 평면 구도와 날카로우며 신경질적인 검정선, 그리고 금기시 되는 검은 색채 자체를 회화의 전면에 내세운 양식은 2차 대전이 어떻게 개인에게 영향을 끼쳤는지가 드러나는 내면적인 형식으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풍경과 정물에 있어선 대상의 형태가 기본적인 조형으로 딱딱하고 삭막하게 환원되어 있으며, 인물을 그려내는 초상화의 영역에 있어선 표정이 은닉되어 있고 광대의 모습을 띠거나, 대상의 비례는 불완전하고도 가냘프게 늘여져있다. 인파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적막하고도 쓸쓸한 풍경에는 2차 대전 전후의 비극이 암시되고 있으며, 초상화의 영역에서는 광대의 모습을 띠지 않고는 감정표현을 행할 수 없는 인류를 무표정하게 만드는 시대상과, 이러한 시대를 근근이 버텨나가는 개개인들의 처절한 여정이 피골이 상접한 초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뷔페의 삶은 2차 대전을 배제하고서라도 비극으로 가득 차있다. 삭막한 세계를 버틸 수 있게 만들어준 어머니를 청소년기에 잃게 된 사건, 50년대 추상주의의 대두로 입지를 잃게 되며 얻게 된 고독, 파킨슨병을 앓게 되며 화가로서의 인생을 위협받게 된 것 등 2차 대전을 배제하고서라도 절망과 좌절로 가득했다. 그래서 2차 대전의 영향력이 점차 옅어짐에도 불구하고 밝아지지 않는 뷔페의 작품세계는 이러한 그의 삶 자체가 투영된 것으로도 읽어낼 수 있다. 그래서 뷔페의 작품은 당대의 시대상과 개인적인 삶이 얽혀지고 양자는 쉬이 분리되지 않는다.


결코 양자를 분리하긴 어렵지만 우리는 풍경에서 당대의 시대상을 포착함과 동시에 이를 바라보는 뷔페의 시선을, 그리고 인물상 또한 당대에 의해 규정된 삶과 동시에 그들을 바라보는 뷔페의 시선을 나눠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당대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고, 이를 뷔페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먼저 정물화다. 전쟁이 갓 끝난 40년대의 정물화부터 살펴보자. 가장 먼저 소개되는 <바닷가재>, 아직 뷔페의 색채가 온전히 확립되지 않았기에 브러쉬 스트로크를 필두로 한 아카데미즘의 화풍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색채는 분명한 표현주의 경향, 자연 그대로의 대상이 지닌 색채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하지만 대상이 지닌 죽음, 부패, 황량함이라는 속성, 혹은 대상을 바라보는 뷔페의 시선을 강조하기 위해서 색채가 어두운 방향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것에서 우리는 그의 주관적인 색채 사용을 느낄 수 있다. 종전 직후, 하지만 그가 포착하는 것은 죽어가는 것, 특히 썩어가고 부패하는 우리의 먹거리들이다. 40년대부터 50년대까지, 뷔페의 화풍이 확립되어가며 그려지는 것은 일상의 것들이다. 절제된 색감을 필두로 뚜렷하고 격렬한 검은 선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절제된 색감은 한정적이다 못해 오직 무채색만이 강조되며, 원색에는 검은색이 섞여 들어가 대상의 운동감, 생명력을 무디게 만든다.

또한 배경이나 대상의 색채는 결코 온화한 붓질로 칠해지지 않는다. 자글거리고 날카로운 스크래치를 내어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가 결코 심미성에 빠지지 않게끔 만든다. 대상은 비교적 고전적인 미메시스의 경향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표현주의자로 규정할 수 있는 뷔페답게, 그 재현은 온전한 재현이 아닌 뷔페의 주관에 의해 변형된 재현이다. 대상들은 더욱 날카롭게, 그리고 앙상하게 그려진다. 형태에 대한 뷔페의 표현주의는 페르난도 보테로와 정반대 방향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리고 뷔페는 충실하게 미술사를 탐구하며 자신의 화풍을 확립해나갔다. 그래서 정물, 풍경, 초상 할 것 없이 고전의 영향과 오마쥬가 드러나는데, 정물화에서는 네덜란드 정물화나 로코코 시기의 정물의 영향이 도드라진다. 그래서 그에게서 정물은 일상임과 동시에 바니타스적인 상징이 교차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화풍 자체가 바니타스적이라 할 수 있다. 70~80년대에 뷔페의 검은 선은 죽음을 느껴지지 않게도 하지만, 이러한 특정 시기를 제외하고 뷔페의 검정은 불길함, 죽음과 같은 부정적인 상징들을 연상하니 말이다. 허나 화풍뿐만 아니라 구도, 대상, 배치에 있어서도 뷔페의 정물은 바니타스를 당대로 옮겨오는 실험을 행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과일 그릇>을 살펴보면 한정되고 넉넉하지 않은 과일들을 통해서, 죽음을 망각하고 있기에 이를 환기하는 바니타스가 아닌, 그저 만연해있는 죽음으로서 당대의 바니타스 정물을 그려낸다. 또한 정물의 대상들은 조화를 이루기보단 흐트러져 있고 널브러져 있다. 미와는 거리가 멀었던 당대를 여실히 드러내는 배치를 보여준다.


<빨간 냄비>, 1951


또한 대상의 형태나 색채는 어떠한가. 네덜란드의 정물화가 앞으로 썩어갈, 활짝 만개한 과실들, 먹거리들을 그려내었다면 뷔페는 이미 상한 것, 부패한 것, 이러한 방향이 적나라하게 예고된 것을 포착한다. 탐스럽게 오동통한 형태, 기름지게 윤택한 찬란한 원색은 찾아볼 수 없다. 말라비틀어져있고 원색이어야 마땅한 대상의 자연색은 무채색으로 환원되거나 이 같은 둔탁한 색채가 섞여 들어간다. 그래서 40년대부터 50년대, 전쟁 직후의 정물화에선 이 같은 황량한 현실이 드러난다. 하지만 50년대에 이르러 그의 작품은 색채의 회복이 도드라지긴 하지만, 그의 정물, 풍경, 초상 모든 영역에서 죽음은 분리되지 않는다. 51년의 <빨간 냄비>는 40년대에 살펴본 작품들보다 분명 감각적이다. 배경과 대상 모든 부분에서 원색이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제에선 오히려 전통적인 바니타스를 유희하게끔 만든다. 채소와 과일들 옆에는 칼과 냄비가 있어 이들이 결국 소비될 것임을, 찬란함은 곧 죽음으로 귀결될 것임을 암시하며 삶의 덧없음을 드러낸다. 또한 56년의 <생선 정물화>를 보면, 다시금 색채는 40년대의 삭막한 색채로 뒤바뀌었다. 그의 색채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다. 그의 정서에 따라서 언제나 찬란한 원색은 무채색으로 변환되어 앗아가 버릴 수 있다. 40년대보다 분명 먹거리가 풍족함이 드러남에도 말이다. 먹을거리가 아닌 대상을 그려도 뷔페의 정물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식기장>을 살펴보자.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 유리잔들을 그려내던 바니타스의 전통을 뷔페의 화풍으로 이어나간다. 식기장은 닫혀서 깨지기 쉬운 것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열려 있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시킨다. 이들은 깨질 것이, 곧 죽음이 예고되어 있다. 배경도 회색빛에 식기장의 내부도 불길한 붉은색으로 위협적이다. 또한 식기들은 널브러지고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이 불안한 배치를 보인다.


<생선 뼈>, 1963


하지만 이렇게 죽음이 예고되어 있어도 생은 영위될 것만 같다. 그것은 식기장에 어울리지 않게 녹색의 과실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전시된 죽음으로부터 유일한 피난처처럼 보이지만, 이 같은 생명과 죽음의 대비가 뷔페가 세계와 삶을 바라보는 철학일지 모른다. 만연한 죽음으로부터 희소한 삶, 죽음이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흘러가는 삶이라는 의도에서의 녹색 과실. 그리고 정물화라고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정물화처럼 보이는 <숫양>을 보자. 살아있는 대상을 그렸음에도 본 작품이 정물화처럼 보이는 이유는 렘브란트의 <도살된 황소>와 같은 네덜란드 정물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뷔페의 필치는 복실 거리는 양의 털을 묘사하는 것 같지 않다. 하강하는 수직적인 기다란 필치이기에 마치 뼈대처럼만 느껴진다. 렘브란트가 도살되어 내부가 열어젖혀진 황소의 내부를 여실히 그려냈다면, 뷔페는 외부를 그려내면서도 이후 양이 마주하게 될, 내부가 드러나게 될 운명을 그려내는 것만 같다. 또한 질척거리는 대지는 불길하고도 역겨운 갈색, 검정으로 칠해져 있는데 이로부터 양은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더불어 양의 뒤편에 위치한 작은 마구간, 이로부터 양은 결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존재를 그리면서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 존재의 죽음을 뷔페는 그려낸다. 정물화로서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생선뼈>라는 작품으로서 그간 뷔페의 정물이 암시적인 형태를 띠었다면 본 작품은 대단히 직설적이다. 중앙 구도에 적나라하게 담아낸 생선 뼈는 부패되고 있는 살도, 죽음이 암시된 양의 털가죽도 없다. 모든 것이 귀결하게 될 유일무이하고 궁극적인 귀결점에 다름 아니다. 검게 칠해진 뼈를 통해서 그가 사용하는 색채의 상징성도 강조되며, 이후 초상 영역에서 이 같은 직접적인 메시지는 <에코르셰>에서 다시 반복된다.


<장례식>, 1949


다음으로 풍경화다. 역시 전쟁 직후인 40년대의 풍경부터 살펴보자. 가장 이른 시기의 풍경에 그려지는 해변을 다룬 작품들로서 가장 먼저 <바다>라는 작품을 보자. 우리가 바다에 기대하는 색채는 무엇인가. 아마도 모래사장의 흰색 내지는 황색, 광대한 바다가 띠는 청색과 녹색의 조화, 넘실거리는  바다 위로 펼쳐지는 희고 시원한 색채의 하늘일 것이다. 허나 뷔페의 바다는 원색이 부재한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는 흐려 구분하기 어렵고, 분명 바다의 형태가 미약하게 남아있어 추상의 경향도 보인다. 물론 이 같은 추상의 경향은 전쟁 직후 결코 미적일 수 없었던 바다, 그리고 뷔페의 주관적인 시각에 상응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로서의 바다, 그 바다는 오직 회색, 갈색, 검은색만을 띠어 생명력을 부재한다. 전쟁 이후를 살아가던 예민한 이의 시선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 인물이 있는 바다로서 <해변>을 살펴보자. 샤르댕이 그려낸 바니타스적인 속성이 드러나는 썩어가는 가오리와 같은 물고기들이 배치되어 있고, 이외의 사물들도 모두 버려지고 파괴된 쓰레기들 뿐이다. 이러한 황량한 풍경을 사람들은 결코 유희할 수 없다. 풍경에서도 바니타스에 대한 그의 관심은 다시 한번 반복된다. 도시 내부로 진입하여 <장례식>을 살펴볼까. 휘슬러나 몬드리안이 본 작품의 제목을 지었다면 '흰색, 회색, 검은색의 배열'이라고 지었을 것 같다. 도시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평면적이고 얕은 구도와 건물의 형태들, 오른편에 대로가 있어 깊이감의 형성을 시도하지만 뷔페는 이를 의도적으로 끊어낸다. 대로가 넘어가는 지평선 너머에 암시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작품의 제목처럼 죽음이라는 공허만이 가득하다.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침울함과 동시에 개개인들을 구분할 수 없다. 이는 익명적인 즉자로 규정되어 버려 자유롭고 존재를 드러낼 수 없는, 뷔페의 초상 경향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피아제타, 베니스>, 1962


시대를 좀 나아가 50~60년대 이후로 향해 가보자. <피아제타, 베니스>와 같은 작품의 유형은 뷔페가 건물을 함께 그려낸, 뷔페의 풍경 유형 중에는 가장 널리 알려진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뷔페는 인물에 있어서는 비자연적인 색채를 담아내기도 하였지만, 비교적 자연적인 색채에 거칠고 격렬한 검은 선과 점을 섞어내는 방향으로 표현주의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인물들과 달리 건물의 형태에는 큰 변형을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상이 원래 가진 색채 때문에 경쾌한 속성을 그대로 담아낼지라도, 죽음을 담아내는 그의 색채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건물의 분홍빛에서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을 엿보았고, 그것은 상승하는 우리의 삶에 상응하듯 작품의 상단에 위치하였다. 하지만 하단부에는 결코 피할 수 없는 불길하고 역겨운 죽음이 스멀스멀 덩어리로 엉겨있다. 이러한 색채를 상승과 하강하는 운동감으로 배치하는 것은 다른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자연의 대상을 그려낸 <만개한 분홍 사과나무 꽃>은 오히려 <피아제타, 베니스>보다 이 같은 경향을 여실히 느껴볼 수 있으리라. 사과꽃이 만개한 작품의 상단에는 피어나는 생명, 근원적인 기쁨으로 가득하고, 또한 경쾌하고 가볍게 하늘로 두둥실 날아올라간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피어나는 생명에 다름 아닌 꽃들의 모든 색채가 낙하하고 뒤엉킨, 생명의 궁극적인 귀결점으로서 둔탁한 죽음이 어지러이 뒤엉켜있다. 뷔페의 색채 중에서도 가장 대비가 적나라하며, 우리의 삶은 상승하다 결국에는 떨어질 것이라는 바니타스적인 메시지도 가장 두드러지는 풍경이다. 다시 한번 바다를 포착해볼까, <해변과 요트>를 살펴보자. 40년대의 바다에 비해서 색채는 밝아졌다. 세계는 파라솔이나 텐트 등으로 상승적인 운동감을 보여주고, 또한 바다의 요트도 움직이는 듯한 운동감을 보여준다. 허나 이 세계에서 두 인류는 늘어진 채로 무기력한 뒤태만을 보인채 부동한다. 이는 찬란한 세계에서 삶을 만끽할 수 없는 뷔페의 심정이 투영된 것일까. 그래서 뷔페의 풍경은 입체적이다. 심미적인 감상의 한편에는 언제나 고통과 불편함이 자리한다.      



(좌) <타워 브릿지, 런던>, 1972 / (우) <퐁 투아즈, 생 마클루 성당>, 1976



풍경에 대한 뷔페의 색채는 70년대에 이르러 다소 약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특정 공간에 의한 것이 아닌, 뷔페 개인의 정서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을 보고 그린 풍경인 <타워 브릿지, 런던>에서부터 프랑스를 보고 그린 <메스놀즈 슈브로즈 도로>, <퐁 투아즈, 생 마클루 성당>까지 70년대의 풍경들은 고전주의로의 회귀를 보인다. 오히려 시기를 지우고 본다면 초기 시기로 착각할 정도다. 다만 뷔페가 잠시 선회한 이 같은 고전성으로부터, 그의 격렬한 검은 윤곽선이 대상을 현실적으로 재현하고자 한 고전의 윤곽선의 과격한 변주요, 객관의 영역이 아닌 주관의 영역으로 가져온 것임을 우리는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뷔페의 어린 시기를 보면 모더니즘에 입각한 천재가 아닌, 아카데미즘에 입각한 천재였다는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대상을 엄밀하게 재현하는 능력도 뛰어났던 뷔페의 실력을 70년대에 여실히 느껴볼 수 있다는 방향으로 이 시기를 감상하면 되리라. 뷔페가 온전히 고전주의로 회귀한 것이 아닌, 자신의 색채를 약화하는 방향에서 고전성이 엿보인다는 것에 주목하자. 검은 윤곽선이 보다 객관성과 절충하며 풍경에 있어서는 대상의 형태나 색채에 있어 비교적 자연주의적이었던 뷔페의 화풍이 드러난다. 그의 원근감이나 입체감도 여실히 드러나며, 세계는 아주 충실하고 탄탄한 형태로 구현된다. 다만 노브러쉬 스트로크가 아닌 여전히 브러쉬 스트로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고전주의의 뼈대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일상에 대한 그의 관심이 도드라지며, 여전히 표현주의의 경향이 남아있기에 70년대 뷔페의 풍경은 전생애에 걸친 블라맹크의 풍광과도 유사성이 남아있다.      



(좌) <록펠러 센터, 뉴욕 풍경> / (중) <브루클린 브릿지, 뉴욕 풍경>, 1989 / (우) <브르타뉴의 폭풍>, 1999


말기 뷔페의 풍경은 매너리즘으로 귀착된다. 후술 할 인물화에서는 그 전향이 개성을 잃은 방향으로 실패했었다면, 풍경의 영역에서는 반복으로 그의 세계에 지리멸렬하게 느껴졌다. 다만 우리는 말기 시기의 뷔페가 파킨슨 병으로 실풍경을 보고 그려내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말기에 뷔페가 그려낸 풍경들은 실경보다도 그의 추억 속의 풍경들이 대두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 속에서도 건질만한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닌데, 미국에 대한 감흥을 그린 두 작품은 전성기의 작품들과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감정이 아닌, 고층빌딩들이 즐비한 미국의 현대적인 풍경에서 느낀 뷔페의 당혹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내기에 이 시기의 풍경이 매력적인 것이리라. <록펠러 센터, 뉴욕 풍경>부터 살펴보자. 검게 쌓아 올려진 높은 고층빌딩은 결코 매혹적이거나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 거대함은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위협한다. 인류가 만든 피할 수 없는 정글과도 같다. 이러한 세계에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을까. 삭막하게 쌓아 올려진 물질만을 중시한 결과물인 고층빌딩에서 뷔페는 생명력을 포착하지 않는다. 다만 오른편 아래에 성당을 녹색으로 그려내며 삭막한 세계에서 일련의 위안을 삼는다. <브루클린 브릿지, 뉴욕 풍경>또한 어떠한가. 형태는 분명 역동적이다. 형태에서 느껴지는 동세만 놓고 보자면 풍경에 대한 인상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색채는 삭막하고, 모순적이게도 둔탁하다. 역동적으로 진보하는 기술이 드러난 풍경에 뷔페는 제동을 건다. 그것은 정신성의 부재일 것이고, 생명을 위하지 않는 물질 중심적인 발전방향을 경계한 것이리라. 그래서 도시에 대한 뷔페의 인상은 오히려 부정성만이 강조되고, 정신성이나 자연이 이와 대비되는 이상적인 추구 방향으로 그려진다. 풍경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본 그의 최후의 작품 중 하나인 <브르타뉴의 폭풍>은 80~90년대에 이르러 느슨해졌던 그의 화풍을 다시금 부활시킨 사활이 담긴 작품으로서, 이 시기에 삶과 죽음, 철학에 대해 더욱 천착했던 시기답게 마치 그가 살아온 세계를 상징적으로 담아낸 것처럼 보인다. 거센 파도와 불길한 까마귀들로 가득한 세계, 허나 그럼에도 우뚝 서있는 등대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이전 시기가 삶에서의 죽음이라면, 종교에 귀의했던 후기, 말기 시기는 죽음 속에서의 삶을 포착하는 그의 염원을 담아낸다.      


(좌) <이젤과 자화상>, 1948 / (우) <생선 장수>, 1951
(좌) <실내에 앉아있는 남자, 1953 / (우) <여장 남자>, 1953


마지막으로 그의 초상화들을 살펴보자. 다시 한번 전쟁 직후로 향해보자. 과연 어둠으로 가득한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어떤 형상을 띠었을까. 그의 <자화상>을 살펴보자. 우리는 정물에서 앙상하고 날카롭게 표현된 대상의 주관적인 형상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경향은 초상화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자기 자신은 피골이 상접한 상태로 곯아있어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색채도 창백한 회백색을 띠고 있다. 그는 하얀 캔버스에 그릴 대상을 골똘히 탐구하는 것 같지만, 그의 시선은 공허하고 또한 바라볼 세계로서 그림의 배경은 황량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캔버스는 그저 공허한 흰색으로밖에 남을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즉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그리겠다는 그의 예술관이 투영된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전쟁 직후의 삶을 그려낸 <생선장수>는 어떠한가. 여인은 생선을 팔고 있지만 어떠한 생기도, 열정도 포착할 수 없다. 그녀의 주변에는 팔기 위해 전시된 죽은 생선들이 즐비해있다. 하지만 죽은 생선들의 색채 및 포즈는 곧 여인의 형상과 유사하다. 전쟁 직후에 삶은 온전히 복권된 것이 아니다. 살아있어도 기쁨과 즐거움 없는 세계는 곧 죽은 것과 다름없다. 그가 좋아한 시골 풍경을 넘어서 도회적인 세계로 파고들어가 보자. 그의 작품들이 실존적이라 하는데 이 같은 특징을 보여주는 <실내에 앉아있는 남자>와 <여장남자>를 살펴보자. 우선 전자의 남자는 누드로 앉아있다. 이 누드는 이상화와는 거리가 먼 형태를 띠고 있다. 피골이 상접한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여실히 드러낸다. 하지만 그 진실한 존재는 실내 안에서만 가능하다. 작품 속 세계의 다른 이들은 이 같은 존재를 바라볼 수 없고, 오직 은닉된 환경에서만이 이를 드러낼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색채를 오롯이 뽐낼 수 있는 존재로서 배경과, 그럴 수 없는 침울한 남성의 대비는 적나라하게 강조된다.      


(좌) <서커스, 자전거 타는 곡예사>, 1955 / (우) <서커스, 두 곡예사>, 1955


그가 진실한 존재를 드러낼 수 없는 것은 외부에서 타인, 구조, 이데올로기의 무수한 시선들에 의해, 이보다 선행해야 할 대자로서의 존재는 망각되고, 타율적으로 구성된 즉자만이 남게 되기 때문이다. <여장 남자>에서도 이 같은 주제의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여장을 한 남자는 침울하다. 표정뿐만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그려낸 하강하는 필치 또한 본 작품의 침울함을 강조시킨다. 하지만 여장을 해서 침울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여전히 배경은 실내다. 그것은 여장할 수 있는 환경이 자신만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세계는 섹스와 젠더의 일치를 요구하는 즉자로서의 자신을 구성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결코 정체성에 있어 자유로울 수 없는 남자의 슬픔으로 <여장 남자>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즉자들의 일대기로서 광대를 그려낸 테마를 살펴보자. <서커스, 자전거 타는 곡예사>와 <서커스, 두 곡예사>를 살펴보자. 현실을 이탈하는 환희와 축제의 세계로서 서커스를 그려내던 샤갈과는 정반대의 광대들을 그려낸다. 배경은 40년대에 보여줬던 침울한 무채색이요, 인물들의 형태, 분장도 마찬가지다. 원색은 모두 생동감 없는 무채색에 섞여 들어가 둔탁하게 변질된다. 전자의 작품을 보면 바닥에 꽃다발이 널브러져 있다. 그녀의 곡예에 누군가는 환호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환호에도 그녀는 기쁘지 않다. 자전거 타는 그녀, 연주하는 두 남성들의 행위는 결코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언제나 타인을 웃기기 위해서, 그들에게 선행하는 행위이기에 광대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이 웃긴다는 것도 관객인 타인들에 의해 규정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웃기거나 즐거운 행위는 은닉될 수밖에 없고, 이로써 자유와는 멀어진다. 뷔페는 광대들에게서 이 같은 즉자성을 마주한 것으로 보인다. 타인의 요구에 얼굴에 분칠을 하고 우스운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을 마주한 그는, 광대의 외피가 아닌 내면을 작품에 담아낸다.      


(좌) <에코르셰,(벗겨진 등)>, 1964 / (우) <렘브란트 이후의 해부학 강의>, 1968



이후 60년대는 고전에 대한 오마쥬의 시기로 넘어간다. 정물화에서 언급한 <에코르셰>부터 살펴보자. 베이컨의 작품을 연상케도 하면서도 렘브란트가 적나라하게 까발린 황소라는 대상을 인류의 살갗으로 뒤바꾼듯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64년에 그려진 앞과 뒤의 두 <에코르셰>와 68년의 <빨간 머리> 그림과 한 쌍으로 보인다. 배경의 묘사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삶과 죽음의 영역을 이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살아서는 광대로서 언제나 타인들을 위해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어떠한 삶을 살았던 그 이후에 자리한 것은 결코 극복할 수 없는 비정한 죽음이다.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다 이렇게 가혹한 죽음을 맞는 것이 죽음보다도 더 비정하지 않은가. 한편 가죽이 벗겨진 참혹한 형상은 누드와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의 존재일지 모른다. 죽음을 드러낸 존재, 허나 그러한 대자로서의 존재에 타인과 구조는 언제나 옷 입히려 하는 것인지 모른다. 여하튼 <에코르셰>의 테마는 분명 죽음이다. 렘브란트에 대한 직접적인 헌사와 오마쥬가 돋보이는 <렘브란트 이후의 해부학 강의>가 동시기에 그려지고, 이 작품을 통해서 뷔페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관심과 세계의 시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원전에서 해부학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은 강사와 인체의 신비를 내보이는 주검에 주목하고 있었다. 허나 본 작품에서 학생들도, 그리고 강사의 시선도 죽음으로서 <에코르셰>에서 보인 육체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죽음으로부터 시선을 회피하며, 이를 외면하고 있다. 또한 공허한 초점은 과연 그들이 어떠한 방향을 보고 살아가는지도 알 수 없다. 그들의 시선은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무것도 보지 않은 거짓의 시선이다. 하지만 죽음은 산자를 또렷이 응시하다. 우리는 그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좌) <미친 사람들, 식사 2, 1970 / (우) <오딧세이-사이렌>, 1999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진실한 삶의 방향성을 뷔페는 광인으로부터 찾은 것 같다. 우리는 뷔페의 이전 초상들에서 무표정이나 침울한 인물들의 무감함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광인들의 표정은 다채롭다. 표정과 더불어 색채도 다채롭다. 색채는 뷔페의 작품들 중에서 유일하게 온화한 조화를 보인다. 그들은 활기를 띤다. 그간 뷔페의 작품에서 마주한 무감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의 주변에는 죽음의 상징들이 가득하다. 바니타스적인 두개골과 불쾌한 절단된 발이 놓여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에 슬퍼하거나 좌절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죽음에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또한 진정한 즐거움을 보인다. 광대들이 웃긴 행동과 분장에도 타인들만을 위한 것이기에 웃지 못했다면, 광인들은 그들이 진정을 즐겁기에 행복한 표정을 띠는 듯하다. 광인들은 타인들의 기대와 구조의 규정에서 벗어난 이들이다. 광인들은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 언제나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들이다. 그래서 뷔페는 진정한 대자를 광인으로 바라본다. 타인과 제도의 시선으로부터의 일탈, 나를 위한 즐거움을 생각했을 때 우리의 형태에 색채를 칠할 수 있고, 무감한 표정은 환희를 띨 수 있으리라. 하지만 죽음, 광대, 광인을 그려낸 이후 뷔페는 지지부진한 시기에 접어든다. 팝아트와의 결합된 화풍으로 그는 변주를 가한다. 형태, 색채, 검은 선들은 더욱 직관적으로 변모하고, 뷔페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깊은 정신성은 가벼운 위트와 패러디 수준으로 얕아진다. 그래서 이 시기에 그의 작품은 큰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유명인, 역사 속의 위인들을 그린 작품들도, 또한 신화를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해낸 작품들도 그렇다. 옅어진 그의 검은 선, 그리고 강렬하게 튀는 검은 점들의 부재에 작품들은 밋밋하고 안일한 일러스트를 보는 것만 같다. 다만 이 시기의 신화 그림 중 <오딧세이-사이렌>은 주목할 법하다. 뷔페의 작품들에서 남과 여의 차이는 얼굴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본 작품에서도 여성으로서 세이렌의 얼굴, 남성으로서 오디세우스 일행의 얼굴의 차이는 거의 없다. 육체로만 성별을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오딧세이-사이렌>의 의의는 명확한 경계와 구분을 흐리게 만듦에 있다. 성별을 넘어서 신화에서 악하다고 묘사된 사이렌과 선한 인물들인 오디세우스 원정대의 묘사에서 차이를 엿볼 수 있는가. 원전의 신화가 오딧세우스에 편향되었다면, 뷔페는 양자에 대해 중립적인 시각으로 주관적인 재해석을 행하고 있다.      


(좌) <음악 광대들, 여가수>, 1991 / (우) <복장 도착 해골>, 1998


뷔페의 일대기가 이 시기에 끝났다면 대단히 아쉬웠을 것이다. 80년대 말까지 다시금 그의 화풍으로 회귀해도 그저 배치와 구도로 커다랗게 강조된 무감한 얼굴만이 차이점일 뿐, 이외의 새로움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기의 뷔페는 다시금 그의 전성기 화풍을 되살린다. 다만 화풍과 소재는 유사할지언정 다뤄내는 주제에 있어선 젊은 날과 반대된다고 할 수 있다. 말기에 그는 광대와 해골을 그려낸다. 이제는 광대가 웃는다. 광인이 아니라 광대라 적혀있음에도 말이다. 그것은 과연 현실일까, 아니면 그의 희망일까. 최소한 광대로서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 웃고 분장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다. 해골이 웃고 즐기는 회화들 또한 <생선뼈>나 <에코르셰>에 <광인>의 정신을 결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해골은 언젠가 우리가 향할 형상이자, 결국 지금 여기의 우리도 지니고 있는 형상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웃고 즐기고 노래해야만 하리라. 죽음을 앞둔 뷔페는 광인만이 가능한 즐거움이 아닌, 보편적인 우리들로서 광대와 해골이 가능한 즐거움을 희망처럼 담아낸 것처럼 보인다. 한편으로 해골 시리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자전적인 작품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청년기에 뷔페는 살아있는 대상들의 무감함과 슬픔을 담아냈다면, 말기의 뷔페는 죽음이라는 필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져야만 하는 삶의 축복과 감각성에 집중한다. 죽음은 근접하였고 파킨슨병으로 화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에도 사형선고가 내려진 셈이지만,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 오히려 그는 희망을 엿보았다. 이렇게 뷔페의 인생, 그리고 전시는 마무리된다. 화가로서 뷔페의 시작과 끝을 오롯이 담아낸, 연대기 순의 정석으로 충실한 전시다. 우리는 변화하는 뷔페의 형식적 다채로움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삶, 뷔페의 철학에 어떻게 상응하는지를 전시를 통해 마주할 수 있다. 또한 뷔페의 일대기가 오롯이 녹여진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고찰해본다.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죽음 앞에선 우리는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지,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과연 지금 여기로부터 견고할지 무던히 변화할지.




글_아트렉처 에디터_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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