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살다-부천 아트벙커 B39
지속가능한 도시로 안내하는 비상구, 비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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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 아웃라인
부천은 적은 면적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내 시군 중 인구가 다섯 번째로 많다. 굳이 계산해보지 않아도 부천시는 어마 어마한 인구 밀도를 자랑한다. 좁은 지역에 공장, 물류창고 등의 산업시설과 아파트가 밀접해 있다. 신도시 개발과 함께 도시의 전반적인 하드웨어는 부쩍 좋아졌지만, 1기 신도시 쇠락 시점과 맞물려 새로운 활력이 필요한 도시가 되었다.
부천시에는 세 개의 행정구(서울시나 부산시의 자치구와는 달리 자치권이 없는 구)가 있는데 남에서 북으로 이어져있다. 가장 위쪽에 위치한 행정구가 오정구, 중간에 위치한 행정구가 원미구, 가장 아래에 위치한 행정구가 소사구이다. 행정구별로 특징이 매우 뚜렷한데, 소사구의 심곡동에 위치한 부천역 주변은 부천시 전체의 원도심이라 할 수 있고, 원미구는 중동 신도시 개발로 인해 1990년대 초반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경험한 바 있다. 오정구는 산업시설이 밀집해 있어 일자리 창출의 허브라 할만하다.
이제 1시 신도시 중 하나인 중동 신도시 역시 쇠락의 조짐이 보이고 있고, 중동 신도시와 함께 건설된 오정구의 산업시설은 새로운 입주 기업을 찾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정구에는 부천시를 대표하는 일자리 허브, 부천시 테크노파크가 중동 신도시 건설 시기에 맞추어 들어섰다. 그 바로 인근에 오늘의 주인공인 지속가능한 도시로 안내하는 비상구, 부천 아트벙커B39(비삼구)가 있다.
갈등 위에 피어난 꽃, 부천 아트벙커B39
아트벙커는 오정구 삼정동의 소각장 사거리에 위치해 있다. 쓰레기 소각장으로서의 삶을 마감한 건물이 '쓰레기를 저장하던 벙커'에서 '예술을 저장하는 벙커'로 재탄생하였다. 그래서 아트벙커가 위치한 사거리의 이름이 '소각장 사거리'인 점이 특별하다. 아트벙커가 삶을 이어가는 한, 계속 사거리의 이름이 소각장 사거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가 건물의 역사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 쓰레기 소각장은 1990년대 초반 중동 신도시의 추진과 함께 건설이 확정되어, 1995년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삼정동 쓰레기 소각장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물론 매우 부정적인 뉘앙스의 명성이었지만, 계기가 바로 '다이옥신 파동'이다.
1997년 환경부 조사 결과에 의하면, 기준치의 20배를 초과한 다이옥신이 삼정동 쓰레기 소각장에서 배출되었다고 한다. 부천시에서는 재정비를 거쳐 재가동에 나섰지만, 여전히 이 소각장에 대한 민원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삼정동 쓰레기 소각장은 짧은 삶을 마감하고 2014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부천시 그리고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재생에 노력을 기울인 끝에 부천 아트벙커B39라는 이름의 문화예술 플랫폼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아트벙커의 입구는 기존 쓰레기 소각장의 정문을 그대로 보존한 듯 보였다. BUCHEON ART BUNKER B39라는 파란 글씨와 한글로 흰색의 부천아트벙커 B39글씨가 보이는데 매우 단조롭지만 구조물과 어울리고 있었다. 흐릿한 하늘이 아니었으면 조금 더 또렷하게 보였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자동차로 정문을 지나니 마치 경비실 같은 곳에 무엇이라 딱히 알아차리기 힘든 기계가 놓여 있었다. 다행히 이 장치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계측 장소란다. 쓰레기 차가 이 곳으로 들어와 쓰레기의 총무게를 재던 장소. 쓰레기 소각의 첫걸음이라는 소개가 눈에 띄었다.
계측 장소를 지나 큰 건물을 우측으로 돌아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방문객은 그 주차장에 주차를 해야 하는 것 같다. 차를 주차하고 건물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부천시의 창조성과 융합된 문화를 강조하는 아트벙커의 아이덴티티가 한눈에 들어왔다.
건물 안을 구경하기 전에 주차장 뒤편으로 매우 재미난 작품이 있어 발걸음을 잠시 옮겨 보니, 폐품을 재활용한 여러 대의 악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실로폰도, 팬플룻도, 드럼도 모두 단순 전시가 아니라 정말 예쁜 소리가 나는 악기였다. 천재 비트 메이커가 꿈인 유주와 함께였다면, 이 곳에서만 한 시간은 족히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두드릴 수 있는, 아니 연주할 수 있는 막대기가 있어 체험이 가능하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 보자. 가장 먼저 게스트를 반기는 장소는 넓은 로비를 활용한 'B39 카페'이다.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1층 실내의 상당한 공간이 카페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어댑티브 리유즈 프로젝트에서 매우 흔하게 발견되는 특징이 바로 카페이다. 한국인의 커피사랑을 이용해 방문객을 빨리 늘리려는 작전이라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공간에서 매우 유효하다.
다른 공간 업사이클링 건물과 달리 아트벙커에서의 카페는 매우 특별나다. 다른 프로젝트의 카페는 건물의 1층의 특정 공간, 주로 작업실로 활용되던 방 등에 위치하고 있다면, 아트벙커는 1층 전체가 카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려있는 공간에 위치해 있다. 게스트를 반겨주는 느낌이 들도록.
기능을 상실한 건물을 재활용하여 새롭게 탄생한 공간을 찾게 되면, 습관적으로 먼저 확인하는 것이 바로 층별 공간 계획에 대한 안내(플로어 가이드)이다. 기존의 건물이 구석구석 어떻게 재활용되고 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 어떤 동선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분명 4층 건물인데 1층과 2층 공간 계획만 안내되어 있었다. 잠시 후 아트벙커를 소개하고 있는 브로셔를 확인해보니, 3층과 4층은 일반 게스트에게는 공개가 안 되는 듯했다. 특별한 행사가 있거나 단체 관광객의 사전 신청에 의해서만 개방이 되는 듯했다.
아트벙커의 매우 큰 특징은 쓰레기 소각장의 주인공이었던 쓰레기 저장공간과 재처리 공간 등이 모두 그대로 보존되었다는 점이다. 쓰리게 저장공간(벙커)이나 소각 후 재를 저장했던 재벙커 등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소각 과정의 가스를 제거하기 위한 유인송풍실 역시 마치 여전히 활용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그대로' 있을 곳에 있었다. 심지어 2층에 위치한 중앙제어실에 들어서면 마치 오래전 만화에 등장하는 로보트의 조정실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소각장의 각종 기계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실제로 중앙제어실은 '박물관'이다.
중앙제어실을 잠시 찍고 2층에 올라서면, 작은 세미나실, 교육실, 오피스 등으로 보이는 방들이 죽 줄지어 있었다. 아트벙커의 정체성답게 대부분의 공간에서 멀티미디어 교육을 위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관련 교육기관과 시민사회와의 협업을 통해 이 공간들이 멋지게 활용된다면 갈등 위에 피어난 꽃, 아트벙커가 이제는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공간으로 완전히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실내의 벽에 영상을 투사하여 공간에 느낌을 더하고 있는데, 이제 곧 아트벙커라는 공간의 시그니쳐라 할 수 있는 유인송풍실을 만나볼 차례이다.
1층과 2층 두 개 층에 걸쳐있는 유인송풍실은 소각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와 증기를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는 기계설비라 할 수 있다. 다이옥신은 제초제나 살충제에서 흔하게 검출되며, 쓰레기 소각과정에서도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인체에는 암을 발생시킬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화합물이다. 따라서 아트벙커로서의 새 삶을 살기 전 이 소각장을 둘러싼 갈등의 중재자는 바로 이 유인송풍실이라 할 수 있다. 갈등 중재를 얼마나 잘했는지를 떠나 자연을 위해, 사람을 위해, 지구를 위해 매우 핵심적인 공간이었음에는 분명하다.
후기: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1997년 리우 데 자네이루의 환경 정상 회의(environmental summit) 이후, 해마다 UN은, 그리고 우리나 환경부를 포함한 각국의 환경 주무 부처는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development)을 위해 다양한 비전과 조약,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딱히 지구의 환경이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를 찾기 힘들다. 오히려 파란 하늘을 만나기 어려줘 졌을 만큼 초미세먼지의 침략에 숨쉬기 조차 힘들어지고 있다.
거창의 비전의 제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오히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카페를 가기 전에 텀블러를 준비하는 것, 아이디어를 끄집어내기 위한 끄적임은 굳이 이면지를 찾아 활용하는 것, 학생들로부터 과제를 받을 때 출력물로 받지 않는 것, 이왕 쓸 샴푸와 세재라면 환경을 덜 헤하는 것을 찾아 쓰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 등과 같은 작은 실천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건물 역시 새로 짓지 않고 - 이미 우리는 차고 넘치는 건물을 지어 버렸다. 도시는 건물로 충만하다. - 기존 건물의 역사를 보존하여 재활용하는 것도 세상을 바꾸는 훌륭한 실천 전략 중 하나가 아닐까.
건물 하나 짓기 위해 파괴되는 자연은 비용으로 환산조차 되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성장은, 우리의 다음 세대도 우리가 즐기고 있는 자연환경 정도는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최소한의 배려이자 우리의 의무이다. 내 지갑을 두둑이 채우기 위해 내 자녀의 미래를 망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할 우리의 현재이자 미래이다.
여기 지속가능한 도시로 안내하는 비상구가 있다. 아트벙커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와 정체성은 우리를 지속가능한 도시 즉, 사람과 환경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로 안내할 것이다. 그 길을 걷자.
*위치정보
글_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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