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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Oct 29. 2019

예술과 시간(1) 시간의 수수께끼

누구에게나 같지 않은 시간의 속도와 의미

https://artlecture.com/article/1138


"시간이란 무엇인가? 누구도 나에게 시간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때는 시간이 무엇인지 아는 것 같은데, 정작 묻는 이에게 설명을 하려면,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 없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이다.


고대부터 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시간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이고 물리학적인 시간의 존재를 규명하는 일은 여전히 묘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을 경험한다. 태양이 뜨고 짐에 따라, 계절이 바뀜에 따라, 사물의 외형이 변함에 따라, 출생과 죽음을 목도하며 우리는 시간은 인지한다.


누구나 시간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시간의 의미와 속도가 동일하고 일정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윌리엄 터너의 유명한 그림 <비, 증기, 그리고 속도>는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일정한 속도로 흘러간다고 믿은 기존의 시간관념을 통째로 뒤엎는 근대적 사건을 보여준다.


터너, <비, 증기, 그리고 속도>, 1844



화폭 속에 우렁찬 굉음과 뜨거운 증기를 내뿜으며 기차가 달려온다. (이제 것 경험하지 못한)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기차를 무겁고 장엄한 에너지가 에워싼다.


18세기 중반, 영국의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유럽 전반의 사회와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기술혁신의 정점은 철도였고 이 철도의 시대가 열리자 근대인들의 시간 개념에 변화가 생겼다.


성난 괴수처럼 무섭게 돌진하던 기차는 별안간 눈앞에서 사라진다. 감각을 동원하여 포착한 이 생생하고도 비일상적인 사건은, 화가로 하여금 객관적이고 기계적인 실체라고 여겼던 시간관념에 의심을 품게 하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지금은 황당한 소리로 들리지만 터너와 동시대에 산 사람들은 달리는 기차 안에 탄 승객들이 시간의 빠른 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내장이 파열될 거라 겁을 집어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리어 달리는 기차 안에서 승객들이 경험한 시간은 더디게 흘렸다.


이 수수께끼는 반세기가 흘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통해 풀린다.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물체가 정지 상태이냐 운동 상태이냐에 따라 시간의 속도는 다르게 경험된다. 움직이는 물체는 시간이 더디 가며 질량이 증가한다.


심리학자 칼 융의 동시성 이론 역시 정상과학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이를테면 인과적 질서가 거부되고 과거와 미래가 뒤섞이는 등 심리적이고 주관적인 시간의 리듬을 논의 한다.


이 주관적인 시간 개념은 비단 과학자와 철학자뿐만 아니라 화가들에게도 흥미로운 주제이다. 많은 화가들이 시간을 회화의 주제로 삼았는데 그중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진지하게 성찰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이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어 친숙하다.



달리, <기억의 지속>, 1931



마치 열이 닿은 치즈처럼 흘러내리는 시계 그림은 달리의 대표적인 작품 <기억의 지속>이다. 화가가 저녁 식사메뉴로 나온 말랑한 까망베르 치즈를 보고 착안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 껏 늘어진 시계는 더디 가는 시간에 대한 지겹고 무료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 어떤 감각적인 사건일랑 없는 상태, 좀체 끝날 가망이 없어 보이는 공허의 지속은 정처 없는 진공상태의 무한한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


붉은색의 회중시계에 들러붙은 개미와 그 옆의 늘어진 시계 위에 앉은 파리가 붕괴된 시간 속에서 허덕이는 자아의 환멸과 피로를 핥는다. 그 뒤로 보이는 나무는 앙상한 팔 하나만 겨우 남긴 송장이다. 새벽이 밝아와도 그칠 줄 모르는 이 고통스러운 시간은 가히 죽음과도 맞먹는 형벌이다.




무엇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 불면의 밤을 끝장내고, 무기력의 늪에 빠진 자아를 구원해줄 수 있을까?



저 멀리 푸른 바다와 태양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절벽이 보인다. 달리의 고향인 스페인 바닷가 마을인 피게레스 풍경이다. 항구에서 저무는 석양의 풍경을 보고 이 그림을 그린 달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오줌 누던 유아시절의 황홀경에 도달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의 붕괴를 선택했다고 한다(이하린).



달리의 그림은, 현재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정지시키는 건 과거의 황홀경을 기억해내 삶으로 끌어오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림의 제목이 <기억의 지속>인 것도 그 때문이다.


해안선을 경계로 낮과 밤이 갈리고, 현실 풍경과 초현실 풍경이 대치되어 감상자로 하여금 아이러니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달리의 그림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칼 융의 비인과적인 연결 원리에 영감을 받아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던 고전역학적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뒤바꾸어 놓고, 누구에게나 객관적인 것으로서 여겨지던 시간의 의미를 전복한다.


[참고문헌]

위키피디아, https://ko.wikipedia.org/wiki/%EC%8B%9C%EA%B0%84

이하린, http://www.focuscolor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2422




글_아트렉처 에디터&칼럼니스트_양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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