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렉처 ARTLECTURE Nov 11. 2019

안드레아스 에릭슨, 자연의 질감

전시소개링크

https://artlecture.com/project/3969


https://artlecture.com/article/1108


전시장 흰 벽을 가득 채우며 대형 캔버스가 걸려 있다. 옅은 갈색과 회색을 주색으로 채도가 낮고 탁한 녹색, 분홍색, 베이지색이, 덧대고 기운 옷처럼 조각조각 화면을 채우고 있다. 선명하게 보이는 붓의 자국이 어떤 때는 위 아래로, 때론 사선으로, 가로로 면적을 거칠게 메운다. 색감이 독특한 추상화인가, 하고 계속 보고 있자니 화면에 어떤 윤곽이 잡히고 형태가 생겨난다. 왠지 모르게 산과 그 앞을 흐르고 있는 강물이 떠오른다. 정확히 경계를 짚어낼 수는 없지만 저 부분 즈음은 하늘이고, 여기는 산, 여기는 수풀인 것 같다. 


<세마포어 지리산>



그렇다면 이 색들은 무엇인가? 어느 계절의 풍경인가? 어떤 경관을 그린 것일까?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대입해보아도 뚜렷이 이 계절이라는 인상이 오지는 않는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 같은데, 하며 추상화가들, 혹은 세잔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이름을 떠올려 보아도 쉽사리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그러다 동양화, 산수화, 에서 생각이 멈춰선다. 이장손 전 <산수도>같은 관념산수화가 떠오르며 이들이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시각적으로나 작업의 매체에서나 전혀 다르지만 이들은 어떤 정신적 측면을 공유하는 것 같다.   



이장손 전 <산수도>



이 작업은 안드레아스 에릭슨이 학고재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최신 대형 회화들이다. 한국 전시를 기념해 여기에 <설악산>, <세마포어 지리산>, <세마포어 한라산>, <세마포어 가리왕산> 등 한국의 산 이름을 붙였다. ‘동양적이다’라는 수식은 에릭슨의 작업과 자주 연관된다. 매체도 표현방식도 다르지만 동양의 산수화가 연상되는 것은 이 작업이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과 자연과 맺는 관계가 산수화에서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산수화는 사실보다는 사의, 즉 정신세계와 정취를 표현하는 것을 중시했다. 한 폭의 산수화가 자연 전체와 그 정신성을 함축하는 것이다. 


안드레아스 에릭슨의 작업 방식은 이러한 정신성과 관련된다. 그의 작업들은 실제 경치 앞에서 이를 그린 작업이 아니다. 그는 자연 경관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받은 인상과 감각들을 그렸다. 자연에 둘러 싸여서 사는 그에게 자연은 무한하고 무계획하고 숭고한 대상,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대상이었다. 이렇게 구체적인 시공간의 풍경이 아니라 자연 자체와 그 표면과 질감, 색과 형태, 그것이 주는 감정과 생각들을 그린 그의 그림은 깊은 정신성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 



<세마포어 설악산>


<한>



독일 베를린에서 작업하던 스웨덴 작가 안드레아스 에릭슨은 전자파에 통증을 느끼는 병을 얻어 귀향한 이후 2001년부터 스웨덴 북부 시네쿨레산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곳에서 에릭슨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관찰하고 그것이 불러 일으키는 정서적 반응들을 탐구한다. 일상생활과 자연에서 오는 작은 사건들이 그의 작업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Content is a glimpse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브론즈 캐스팅 또한 일상적 사건에서 출발한 것이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와 두더지 둔덕을 캐스팅한 연작이다. 짙은 흑색의 구리는 작가의 거친 터치를 숨기지 않고 있다. 작업실의 유리에 부딪혀 죽은 새들을 애도하기 위해 캐스팅했다는 <Content is a Glimpse>는 박제보다는 짙은 먹으로 그린 절지화를 연상시키고, <두더지 둔덕>은 언뜻 석가산을 떠오르게 한다. 한편 그가 사용하는 매체의 물질성과 질감은 반향을 주며 말을 건넨다. "스웨덴 곳곳에서 생산된 천연 리넨 실로 1000시간 동안” 짠 그의 태피스트리 작업 속 여러 색조와 채도의 갈색 천도 고요하고 넓은 생각의 공간을 열어준다.



<두더지 둔덕>


<바이젠시 no6>


에릭슨은 자신의 작업이 다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유화, 리넨 천, 브론즈 등 여러 매체로 작업하지만 그는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들은 모두 자연을 보고 듣고 느낀 한 인간의 감각과, 삶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그는 작업을 통해 ”삶과 예술의 무계획성에 대해, 모든 것이 빛과 어둠, 그리고 우연의 관계에 의해 연결되어 있음에 대해” 말한다. 


예술가는 자연과 세계의 숭고함을 작업 속에서 재정렬해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신체와 감각을 거쳐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우리에게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제시해준다. 이 앞에서 우리는 또 다른 연상과 상상을 하고, 마음 속에 뭉쳐오는 이미지들을 해석하고 의미화해 붙잡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안드레아스 에릭슨이 보여주는 자연은 학고재 갤러리에서 11월 3일까지 만날 수 있다. 삼청동에서는 '하이앤로우'를 주제로 회화와 조각, 판화, 태피스트리 27점을, 학고재청담에서는 '인-비트윈스'을 타이틀로 15점의 회화 연작이 전시된다. 




글.아트렉처 에디터_지도그림


Artlecture.com

Create Art Project/Study & Discover New!

https://artlecture.com

매거진의 이전글 왜 백남준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