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산책-마크 로스코의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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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미술 작품들은 작가가 '무엇을' 그렸는지, '왜' 그렸는지 에 대해 알고 머리로 이해하게 된 다음에야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작품들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큰 감정의 파도를 관람객에게 일으키기도 합니다.
후자의 작품들을 대표하는 하나가 오늘 이야기드릴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그림은 마크 로스코의 작품 '무제(1970)' 일명 '레드'로 알려진 작품입니다.
불타오르는 듯한 강렬한 붉은색이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죠. 격정적이고 역동적인 붉은 빛, 하지만 이 빛깔은 또한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조이는 불안감이 느껴집니다. 마크로스코의 작품 '레드'는, 작가가 1970년 2월 25일,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손목을 긋고 자살하기 전 삶의 마지막에 작업했던 그의 유작 중 하나입니다.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캔버스 한 가득한 핏빛과도 같은 붉은 빛을 하염없이 덧칠했던 마크로스코가 이 그림을 통해 말하려고 했던 것을 무엇일까요?
사실 마크로스코의 작품 중에서는 위와 같이 화사한 색깔들로 구성된 작품들도 많습니다.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색상의 색구름들의 조화로만 이루어진 작품들이죠. 마크로스코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립해 가기 시작한 시절부터는 이렇게 단순한 색의 구성으로만 이루어진 작품들을 그렸는데요. 마크로스코가 이런 작품들을 그렸던 이유는 바로 자신의 작품이 어떠한 해석이나 설명이 없이도 관람객이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랬기 때문입니다.
어떤 작품들은 해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작품에 그려진 것들이 관람객의 경험이나 정보가 없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죠. 르네상스 시대 정물화에 자주 등장하는 해골이,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의미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상징이었다는 것은 이 정보를 알지 못하면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연인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은 이런 경험을 해 본적이 없는 7살짜리 어린 아이에게 아무 감동이 없죠.
하지만 '색깔'이란 것은 인종이나 국가나 성별, 나이를 떠나 우리 모두가 각자의 주관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어떤 것이죠. 그래서 마크로스코는 관람객이 직접 작품과 관계를 맺도록 하는 작품의 도구로 '색'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크로스코는 형태가 없이 색면으로만 이루어진 자신의 작품들을 사람들이 '추상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굉장한 반감을 드러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한가지 분명히 말하건대, 나는 추상주의자가 아닙니다.
나는 색과 형태의 관계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비극, 황홀경, 운명같이 근본적인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많은 이들이 나의 그림을 보고 울며 주저앉는 것은
내가 이러한 근본적인 인간적 감정들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내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내가 그리면서 겪었던 종교적 체험을 똑같이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작품의 색채들 간의 관계만을 가지고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면
제대로 작품을 감상했다 할 수 없습니다.
마크로스코는 관람객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거대한 색상들을 통해 주관적인 '감정'에 젖길 바랬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형태나 구도, 작가의 의도 같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색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거기서 느꼈던 감정을 떠올리기를 바랬던 것이죠.
황금빛으로 빛나던 사랑의 순간,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이 이어지던 어두운 회색의 나날들, 여린 연두빛과 같던 풋내나는 싱그러움이 가득하던 청춘의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울부짖었던 갈색빛 시간들… 인간으로 태어나 느끼게 되는 수많은 감정들, 스쳐 지나가 버렸던 무지개 빛의 감정들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환기할 수 있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마크 로스코는 50대가 되어서부터 작품이 인정을 받고 인기를 끌게 됩니다. 작품으로 많은 돈을 받으며 위상 또한 높아져가고 있었지만 로스코는 한편으로 불안감도 커져갑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랬던 로스코에게는 사람들이 자신을 작품을 단순히 예뻐서, 공간을 꾸미기 위해서, 사게 되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끔찍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작품이 온전히 이해 받기를 원한 예민한 감수성의 화가는 작품 세계에 골몰하며 점점 편집증적으로 변해갑니다. 말년의 그는 과도한 음주습관과 담배, 약물로 인해서 건강도 무척 나빠지고, 자살을 하기 몇 년 전에는 가정 생활까지 파탄나게 되어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작품의 색깔도 점차 어두워지고 단일한 하나의 색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그려나가게 되죠.
생을 마감하기 2년전부터 죽기 직전까지 골몰했었던 로스코 채플이 바로 그 작품들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휴스톤에 위치한 이 성당은 어두운 보랏빛과 짙은 갈색 캔버스 14개로 꾸며져 있습니다. 작품을 통해 관람객의 영혼을 울리고 싶었던 로스코에게 꿈의 실현과도 같았던 이 예배당은 로스코의 사후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의 벽을 넘어 다양한 종교의 의식이 이루어지는 영혼의 예배당으로써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색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던 마크 로스코가 그의 마지막 작품 '레드'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는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이 작품을 작년에 예술의 전당에 있었던 '로스코전'에서 직접 보았는데요. 전시회의 클라이막스 부분으로 가장 마지막에 전시가 되어있던 작품입니다. 저는 로스코가 자살을 했다는 것도, '레드'가 자살 전까지 작업했던 작품중의 하나라는 것도 알고 있어서 이 작품이 주는 느낌은 '불길한 핏빛' 아닐까 예상했었어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던 죽음을 암시하는, 고통의 색이 아닐까 생각을 했었거든요.
하지만 어두운 방에 들어가서 이 작품을 직접 마주한 순간에 제가 처음 느꼈던 감정은 바로 '생명력'이었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듯한 열정, 불 같은 기운, 힘차게 뛰는 붉은 심장.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더라구요. 저 그림과도 같은 붉은 색 피가, 우리 몸 속을 끊임없이 돌고 있는 저 피가 있기에 우리의 심장이 뛰고 그래서 살아있을 수 있다는 느낌. 제 예상과는 정말 정 반대의 느낌을 갖게 되었던 거죠. 아마도 로스코는 자신의 생명을 끊어야만 하는 정신적 고통속에서 작가로서의 마지막 생명력을 이 작품에 쏟아 부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로스코의 작품 '레드'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한마디로 정확히 말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그 작품이 어떤 것을 품고 있는지는 로스코만이 알고 있겠죠. 아니, 어쩌면 이 작품에 대한 의미는 로스코가 원했던대로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작품에서 어떤 감정이 느껴지세요?
그리고 당신의 기쁨과 슬픔, 눈물과 행복은 모두 어떤 색인가요?
분명히 말하건대,
생명의 맥박이 느껴지지 않는
뼈와 살의 구체성을 결여한 추상이란 있을 수 없다.
고통과 환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그림이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나는 생명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그림에는 관심이 없다.
- Mark Rothko
글.아트렉처 에디터_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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