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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Feb 28. 2020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ka)

아르데코 Art Deco의 여왕

https://artlecture.com/article/1431


중학교 시절의 나는 그리 부드러운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늘 날카롭게 나를 방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지요. 그래서인지 말을 쉽게 거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사춘기라는 것을 혼자 이겨내는 것이 많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그 시절 부모님은 내가 중학교를 입학할 때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시골 동네에 하나 밖에 없던 여성용 자전거를 사 주셨어요. 나는 그 자전거를 타고 30분이나 되는 거리를 등하교하였습니다. 그것도 3년 동안.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흰색의 안장 그리고 파란색의 핸들, 따르릉 소리를 내던 경고 벨. 그 자전거는 3년 동안 나와 붙어있던 유일한 친구이자 안식처였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차가운 공기를 가로지를 때는 손이 얼어붙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페달을 밟으며 공기를 가로지르는 것이 왜 친구와 노는 것보다 더 즐겁고 행복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중학교 3년 때쯤인가 담임선생님께서 어느 날 "너는 꿈이 뭐니?"라고 물었을 때 나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저는 여군이나 종군기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고등학교 2학년쯤이었나? 어느 가을밤 집으로 전화가 왔어요."어~ 잘 지내니? 나 김 선생이야" 아니 중3 때 나에게 꿈이 무엇이냐 물었던 그 선생님이 느닷없이 전화를 하신 겁니다. "어제 저녁 길에서 우연히 너를 봤다. 너의 뒷모습이 기운이 없어 보이더구나. 무슨 일 있니?"하시는 순간 공중전화기의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계속 들려왔었습니다. "너의 꿈이 여군이나 종군기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었지? 만약 그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라. 세상은 자신이 갈 길이 따로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하시며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그 당시 나에게 너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사람은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처음이었습니다. 당시 선생님은 제 꿈이 무엇이었는지 그 사실을 잊지 않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어린 나이의 나는 왜 여군이나 종군기자의 꿈을 꾸었을까요?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평화주의자이거늘. 고등학교 시절도 그리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살림살이를 살아가는 부모님에게 떼를 쓰는 것이 죄송했기 때문에 나에 대해 (내적 갈등) 그 누구에도 이야기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그때 선생님께서 왜 전화를 하셨는지 그리고 느닷없이 나의 꿈에 대해 물었던 이유를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습니다. 짐작컨대 말 수는 많지 않았으나, 나의 정의롭던 정신과 할 말은 했어야 직성이 풀리는 거침없던 발언에 대해 선생님은 인상 깊게 생각하신 듯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리에게 꿈이란 꼭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꿈이란 나이가 들수록 그 크기가 소박해지더군요. 경제적, 물리적(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나이 제한 등)의 제한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삶이란 우리에게 그리 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미술용어로 아르데코(Art-Deco)란,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시각 디자인 스타일로 전 세계적으로는 1920년-1940년 사이에 유행한 미술의 한 장르를 일컫습니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ka1898-1980). 그녀는 폴란드 태생으로 큐비즘의 마지막 단계인 종합적 큐비즘과 부드러운 큐비즘을 수용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탄생시킨 여성 화가입니다. 타마라는 신여성의 대명사이자 시대의 아이콘으로 회자되었던 화가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녀의 그림은 ‘근대적 여성’ 가르손느의 이미지를 충분히 재현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리고 타마라는 더 나아가 마치 자신이 ‘가르손느’의 화신이 된 것처럼 살았습니다.



좌<The Telephone/타마라 드 렘피카/  oil on canvas/1930>             

우<Blue Women with a Guitar/타마라 드 렘피카 oil on canvas/1929> 




타마라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근대화가 본격화되던 시기 변화되어 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자신만의 화법을 화폭 위에 재현했지요. 또한 파리와 뉴욕을 오가며 1920년대 사교계와 예술계에서 초상화가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그녀는 여성성을 강조하던 기존의 여성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과감하게 파괴하고, 성에 대한 주제를 매혹적이고 관능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또한 귀족부인, 사교계의 유명인사들을 세련되면서도 매우 퇴폐적으로 묘사했습니다.(한 때 그녀는 먹고살기 위해 귀족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그녀에게 그려진 초상화는 바로 부와 계층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ㅡ당시 파리의 여성들은 치장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그들의 계층을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타마라는 귀족부인 등을 비꼬듯 퇴폐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당대 예술계는 타마라의 솔직함과 대범함에 주목했고 경악했습니다. 나는 타마라의 그림을 마주할 때 마다 늘 차갑게 얼어버린 철 덩어리를 만지듯 차갑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생명을 가진 동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인물이 액자 속에 갇힌 듯 한 느낌을 갖곤 합니다. 마치 사회와 남성에게 종속되어 자신을 찾지 못하는 여성을 표현한 듯 말입니다. 그림 속의 인물은 아주 우아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유혹하기도 하고, 때로는 경멸하는 시선으로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위의 그림은 타마라를 상징하는 아주 대표적 그림입니다. 독일의 '디에 담므(Dia Dame)'라는 잡지의 표지 삽화를 위해 특별 주문을 받고 그린 1929년작 <자동 초상화:Auto Portrait>로 아주 작은 크기의 그림입니다. 참고로 이 그림은 <녹색 부가티를 탄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부가티는 부의 상징이었어요. 그러한 자동차에 자신이 앉아 운전대 위에 무심히 손을 올려놓고, 현대의 사냥꾼으로 변신한 타마라는 흡사 사냥의 여신 댜나(Diana-희랍 여신)을 연상시킵니다. 그림 속의 그녀는 매우 현대적인 여성의 운전복을 입고 헬멧을 쓰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갑옷으로 자신의 온몸을 둘러싸고 기계화 그리고 남성우월주의의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모습과도 같아 보입니다. 또한 매우 관능적이며 나른하고 무거운 눈꺼풀을 가진 눈과 뜨겁게 타오를 듯 한 붉은 입술로 인물의 강한 성격을 표현하고 있지요. 이 작품은 여성의 해방과 당시 산업화로 인한 생산도구의 급격한 기계가 자동화로 변하게 되자, 기계의 자동화로 생산된 차로 인해 제공받게 된 '독립 즉 개인의 독립된 공간'이라는 장소를 만들어낸 곳이 바로 자동화된 시스템 즉 '공장'이라는 것을 타마라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세계에서 '자동 Auto'이라는 단어의 중요성이 커져 감을 자동(Auto)이라는 단어와 초상화라는 단어를 조합하여 그 안에 사회에 대한 비판을 은유적 제목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P la의 초상화/1930/유화/개인 소장>와 같은 초상화에서도 보이듯, 여인의 몸은 매우 매끄럽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마치 한 겨울 추위에 꽁꽁 얼어버린 대리석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차갑고도 매끄러움 말입니다. 타마라는 그림 속 여인의 강철같이 단단해 보이는 피부를 차가운 대리석과 같이 표현함으로 인간미를 배제한 채 마치 그리스 조각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여성의 손은 남성의 손과 같이 크고 우람하게 표현하였지요. 이것은 더 이상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것이 아닌 여성 자체로써의 독립적 존재임을 알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또한 타마라는 인물이 입고 있는 옷이 접히게 표현하는 붓질과 그녀의 모든 그림에서 보이듯 매우 절제된 색감으로 인물을 표현하여 더욱 드라마 틱 즉 극적으로 보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평생 절제된 색감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그림은 매우 화려하고 관능적입니다. 이러한 절제미 속에 보이는 여성의 관능미는 사회적으로 남성과의 동등한 위치를 가지기를 원하지만, 그 속에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여성미? 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겠습니다. 그녀의 화려하고 감각적인 작품들은 현재 유명 아티스트 마돈나를 비롯해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드(얼마 전 사망)와 루이비통의 마크 제이콥스 등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발코니에 있는 키제트(딸)/타마라 드 렘피카/ <portrait of man or Mr Tadeusz de oil on canvas/1927/퐁피두국립현대미술관> Lempicki(남편)/타마라 드 렘피카1928>




타마라의 꿈은 원래 화가는 아니었습니다. 본래 귀족의 아내였으나, 남편과 파리로 이주하며 생계가 어려워지자 어린 시절 그렸던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된 것입니다. 삶은 얄팍한 잔재주를 부려 우리를 간혹 농락하기도 합니다. 꿈을 포기하게도 하며, 어쩌다 아주 우연히 이루게 되기도 하고, 무던히 노력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준비되어 있지 않은 자에겐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는 희박하지요. 타마라가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렸으나 그녀는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여성으로써 자신을 거침없이 표현하였습니다.



원대한 꿈만이 우리는 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일상에서 소소한 꿈을 꾸고 싶습니다. 현재의 나는 타마라와 같이 어린 시절 갖고 있던 꿈과는 동 떨어진 삶을 살고 있지만,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마라와 같이 나를 무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살았던 사회와 지금의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많이 진화하였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나를 스스로 너무 무장한다면 사회와는 동 떨어진 고립된 삶을 살아갈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사회에는 남성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힘의 우월성은 분명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으로 부터 그저 나를 지킬 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지금 나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Noting'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의 애완견 두 마리와 함께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그림을 연구하는 것이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구지 꿈을 찾으라고 한다면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쓰고 싶고 나의 아이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잘 성장하길 바라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소소한 꿈이라도 지니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생명이 없는 삶일 것입니다.


지금 이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 꿈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그 꿈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실현되어야 하는지 당신은 그 이유를 알고 있나요?




글 아트렉처 에디터_C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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