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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출신 작가 세실리아 비쿠냐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렸다. 비쿠냐는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미술 작가이자 영화 제작자, 시인, 그리고 운동가로서 그의 작업은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을 미술 언어로 제시한다. 그는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로도 이름을 올렸으며 설치 작업 〈소리가 꿈꾼 비〉(2020)에서 차학경의 창작집 『딕테』(1982)를 소개한다. 비쿠냐와 차학경의 만남이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둘의 관계성은 디아스포라 정체성, 페미니즘과 샤머니즘의 맥락을 관통한다.
많은 작가들이 작업을 자신만의 언어로 여기지만, 관람객들이 그것을 온전히 독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쿠냐의 작업은 여러 겹의 정체성을 표방하며 고대와 현재를 언어로 연결하고자 한다. 특히 리만머핀 서울에 전시된 작품은 ‘키푸’라는 고대 안데스의 언어 체계에서 따온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과는 굉장히 먼 문화의 언어를 재현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술이라는 시각 언어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읽어낼 수 있는 시(詩)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민족·디아스포라의 언어]
1층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작품은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키푸 기록(Quipu Girok)>이다. 염색한 끈으로 매듭을 지어 소통하는 잉카 제국과 고대 안데스의 언어 체계를 뜻하는 말인 ‘키푸’에 한국어 그대로 ‘기록’을 조합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남미의 문명과 한국의 문화가 조응하는 작업 양식을 취하고 있는데, 한국의 전통 직조물과 채색한 거즈, 실크와 폴리에스테르 등의 천이 수직으로 길게 늘어진 설치 작품이다. 말이 음성 또는 시각 언어인 데 반해 키푸는 시각과 촉각 언어라는 것이 특이한데, 따라서 전시장 내에서 키푸는 공연성을 가진 언어이자 시(詩)적 독해를 제공하는 창이다. 전시장 밖에서 바람이 들어올 때마다 살짝 일렁이는 작품의 모습을 보며 사회를 부유하는 디아스포라적 정체성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군사 쿠데타를 피해 칠레에서 이주한 후 자신의 고고학적 뿌리를 찾으려는 비쿠냐의 노력은 일련의 ‘키푸’ 작업을 통해 행해져 왔다. 서구의 사유 전통에서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음이란 곧 공적 공간에서 주체로 드러날 수 있음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주장처럼, 비쿠냐는 고대의 언어를 발굴하고, 찾고, 재현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또한 2021년에 제작된 이 작업은 1970년대의 회화 작업을 모체로 한다. 즉 고대 안데스의 언어로부터 자신의 초기 회화 작업과 2021년의 설치 작업으로 이어지는 역사는 비쿠냐 작업의 계보이자 속성인데, ‘발굴하고 찾고 재현하는’ 행위를 통해 자기 인식과 생을 향한 강렬한 열망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언어]
그의 자화상에서는 페미니즘과 샤머니즘으로부터 발현된 언어를 읽을 수 있다. 제목의 Humps는 ‘툭 솟아 오른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봉우리처럼 튀어나온 이미지는 여성의 신체 기관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고 이는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이 발현된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머리카락처럼 길게 뻗어 나온 것은 키푸의 매듭처럼 보이기도 하며, 바탕의 흙색은 대지의 여신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전체적인 형상은 다소 그로테스크하다. 굳게 다문 입술의 표현에서 어딘가 불편하고 병든 것 같은 느낌을 주며, 기이한 신체의 표현은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낸다. 이렇듯 시각적 충격에 의한 ‘낯섦’은 불쾌의 감정을 유발함과 동시에 인식의 틀을 재고한다.
사실 이 작품은 비쿠냐의 친구가 꿈에서 본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재현한 것이다. 내가 나를 ‘나’로 인식하고 드러내는 방법에는 타인의 인식에 기대어 반성적 사고를 하는 것도 포함된다. 즉 친구의 꿈에 나온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삼아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으로, 비쿠냐는 친구의 무의식으로부터 비롯된 본인을 자신만의 언어(회화 작업)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미술이라는 언어를 거친 비쿠냐는 관람객들 앞에 낯선 이미지로 등장하여 개인을 구성하는 다층의 정체성을 상기시킨다.
[각성의 언어]
2층으로 올라가면 한국어, 안데스어, 스페인어로 써진 ‘진실을 일깨워라’라는 문구를 만날 수 있다. 이는 칠레 군사 쿠데타를 향한 저항의 언어이자 읽는 사람을 각성시키는 메시지이다. 운동가로서의 비쿠냐의 면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진실’이라는 소재는 옆에 설치된 영상 작업에서도 언급된다. 영화 제작자로도 활동하는 그는 <Truth Flag>라는 영상 작업을 통해 진실을 마주해야 함을 강조한다.
한 벽면을 채우고 있는 것은 비쿠냐의 작업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프레카리오(Lo Precario) 연작이다. 이 작업은 인간이 만든 쓰레기들을 모으고 연결하여 작은 오브제로 재탄생시키는 것으로, 작가가 직접 여러 곳을 여행하며 수집한 것들을 결합한 형태이다. 이는 쓰레기가 범람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로 읽을 수 있으며, 각 오브제가 온 곳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환경 문제는 한 개인이나 사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범지구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것까지 파악할 수 있다. 한편 프레카리오 작업을 통해 축적의 미학 또한 발견할 수 있었는데, 오브제끼리의 결합이라는 조형적 해석을 넘어 오브제 사이에 켜켜이 쌓인 서사적(narrative) 정체성을 읽어냈기 때문이다. 작가는 직접 여행을 하며 사물을 선택하고 수집하였다. 그 후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하나의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따라서 이 오브제에는 환경과 소비구조, 물성이라는 내러티브가 축적되어 있으며, 이는 디아스포라, 여성, 창작자, 운동가라는 비쿠냐 자신의 다층적인 정체성의 은유이자 발현으로 읽을 수 있다.
낯선 문화, 낯선 작가의 작품을 보고 추론과 독해의 이어달리기를 한다는 것, 동상이몽일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비쿠냐의 언어를 보거나 들으며 적당한 공감대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는 바로 식민사회, 군사 쿠데타, 남성중심주의, 자연재해, 환경오염 등 칠레와 한국의 공통된 유산이 각 개인의 정체성에도 뿌리내렸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보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 작가의 이야기가 시(詩)로서 다가올 때, 비쿠냐의 작업은 온전한 언어가 될 것이다.
참고
리만머핀 갤러리, ‘키푸 기록’ 전시 안내문
광주비엔날레 홈페이지
폴 리쾨르, 『타자로서 자기자신』, 김웅권 역, 동문선, 2006.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이진우 역, 한길사, 2019.
글 아트렉처 에디터_어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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