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적인 조형원리로의 해체와 다시점으로 이뤄낸 혁신
올해 초에 열리는 세가지 블록퍼스터 전시를 기반으로 앞으로 1~3부작으로 기고될 예정입니다.
모더니즘-아방가르드-포스트모더니즘 순으로 이어지는 전시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1월: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는 피카소와 큐비즘 전, 소개: https://artlecture.com/project/2167
2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마르셀 뒤샹 특별전, 소개: https://artlecture.com/project/2062
3월: DDP에서 열리는 키스 해링전. 소개: https://artlecture.com/project/1655
피카소와 큐비즘 – 기초적인 조형원리로의 해체와 다시점으로 이뤄낸 혁신
*큐비즘이라는 이름의 기원
미술사를 공부하며 우리는 사조의 이름이 대단히 우연적이고, 때로는 성의 없게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마주하곤 한다. 이탈리아어로 기교를 의미하는 '마니에라'에서 기원하여, 전성기 르네상스의 황금비율 및 조화를 중시하던 풍토가, 기교를 중시하는 화파 아래 몰락했다는 바를 비하하기 위해서 태동한 매너리즘이 그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매너리즘 바로 이후에 '찌그러진 진주'라는, 이러한 '마니에리즘'의 연장선상에 다름 아니라는 뉘앙스로 모멸적인 어조의 바로크가 태동했다. 매너리즘과 바로크는 당대 르네상스의 완전적인 이상을 강조하기 위한 희생양에 다름 아니었다. 이후 인상주의의 명명 또한, 대중들이 그저 일련의 인상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비하적인 의미를 전달하다 탄생하였다. 야수파 또한 평론가 루이 보크셰르가 그들의 색채가 야만적이고 혼돈만이 가득하다는, 작가들을 '야수'로 모멸적으로 부르기 위한 속칭에서 비롯하였다. 그래서 대중들이, 한 평론가가 우연히 그리고 때로는 모멸적으로 던진 단어들에서 한 사조의 이름이 태동한 경우가 대단히 많다.
큐비즘도 마찬가지다. 야수파의 기수 앙리 마티스가 피카소의 작품을 보고 "입방체를 모아놓은 것 같다."라는 평을 평론가 복셀르가 모멸적으로 인용한 바에서 태동했으니 말이다. 허나 그 입방체의 종합, 그것은 곧 세잔이 보여준 가장 기본적인 조형들로 대상을 이룰 수 있다는, 모더니즘의 가장 대표적인 운동을 고찰한다는 바가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어쩌면 모멸적으로 태동하여, 그 이름 자체에서는 어떠한 미적 특질을 찾을 수 없는 사조의 이름들보다, 큐비즘은 그 사정이 훨씬 나은 셈일지도 모른다. 사조의 이름에서 사조의 특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말이다. 가장 기본적인 조형과 서양미술에 지배적이던 하나의 단일한 원근법을 탈피하는, 그 실험적인 화파의 일대기를 올 겨울 한가람 미술관에서 선보인다. 피카소와 큐비즘이라는 제목 하에, 큐비즘 이전의 영향력과 큐비즘, 그리고 큐비즘 이후를 포착하며, 20세기 서양미술의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를 총체적으로 관통한다.
*세잔과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이러한 큐비즘에 영향을 준 것은 바로 이전 시대, 야수파의 유산에 다름 아닌 자연적 색채 대신에 택한 자유분방한 색채 및 표현주의적인 거친 필치, 그리고 야수파 이전 시대의 인상주의자들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시시각각 변해가는 인상주의자들의 제작 태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허나 그러한 화가 및 사조들 중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후기인상주의자들 중 한 명이자, 모더니즘에 대단한 공헌을 보여준 세잔이다. 가장 대표적인 큐비즘 화가인 피카소에게 세잔은 "구, 원추, 원통" 이 세 개의 가장 기본적인 조형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기를 강조했다. 세잔은 이러한 원리를 통해 인상주의자들에게서 망각된 입체성을 다시금 회복하였지만, 큐비즘이 화가들은 이러한 원리를 극단적으로 밀고나가 구, 원추, 원통으로 이뤄진 인상주의자들보다도 더욱 평면적인 세계를 화폭 속에 담아냈다. 더욱이 세잔의 정물화에서 보이는 다시점 또한, 캔버스라는 2차원의 세계 속에서만 구축가능한 원리라는 바를 인지하여 그들의 화폭 속에 열렬히 활용하였다.
본 전시에서도 이러한 세잔의 영향력을 꼼꼼히 포착한다. 1관에서 마주할 수 있는 세잔의 <물가의 저택>을 바라보자. 세잔은 인상주의의 전통과 그 성취를 계승하되, 인상주의의 한계에 다름 아니던 무너진 대상의 견고한 형태감에 있어서는 다시금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선보였다. 허나 그것은 근대시절의 고대 그리스 고전주의로의 회귀가 결코 아니었다. 2차원의 화폭에 견고한 3차원의 환영을 구축해내려는 시도가 아니라, 단순화된 조형을 통해서 대상을 재현해낼 수 있다는 대담한 시도였다. 그래서 본 작품에서의 집들도 기초적인 조형만으로 미니멀하게 이뤄지고 있다. 또한 색채는 드로잉 없이 그것 자체로도 형태를 이루거나, 선은 색채가 행하던 역할 중 하나인 그림자를 이루는 역할을 도맡으며 그간 서양미술에서 대립하던 선과 색의 정형화된 역할 또한 깨뜨리고 있다. 더욱이 강가에 비춰진 저택의 풍경은 세잔 자체가 3차원적인 환영을 포기하고 있다 보니 대단히 평면적이요, 이렇다보니 강가에 비친 환영의 풍광과 실재 저택의 풍광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이렇게 실재 대상과 비친 대상 등, 일련의 구획되어지던 대상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바 역시 이후 큐비즘의 기수들에게서 계승된다. 세잔이 화폭 속에 포착한 대상들의 위계를 설정하지 않고 단순화된 조형과 다시점을 통해 자유분방한 구성의 가능성을 열어젖힌 것처럼, 이러한 그의 유산을 큐비스트들은 피사체와 사물, 배경 등이 모두 혼재된 구성을 통해서 계승해낸다.
이러한 세잔의 영향력이 큐비즘 이전, 즉 1900년대 초반에 어떻게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넘어갈 법 하다. 우선 야수파의 선구자 중 한명인 블라맹크의 <부지발>의 경우 세잔의 풍경화가 어떻게 영향 미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단순화된 조형과 세잔이 허물어낸 선과 색의 고착화된 역할을 벗어난 그야말로 ‘야수적인 필치’와, 그리고 마찬가지로 강에 비친 풍경 속에서 2차원적인 캔버스의 매체성이 드러난다. 그리고 오귀스트 에르뱅의 <카토-캉브레지 부근 풍경>으로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와 야수파를 거쳐 더욱더 단순화되고 추상화되는 풍경의 경향을 보여준다. 색점들과 붓터치들이 모여서 형성하는 나무와 숲의 형상은, 직선적이고 단순화된 색면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굳이 숲과 나무에 집중하지 않더라도 길과 집, 하늘과 같은 풍경들은 세잔의 영향에 따라 미니멀한 최소한의 기초적인 조형들로만 대체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앙드레 드랭의 <목욕하는 여인들>의 경우 후기인상주의의 고갱을 거쳐 야수파의 마티스를 관통하고, 이내 곧 피카소와 같은 큐비스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는 원시주의에 대한 당대의 관심이 표명된다. 이러한 드랭이 화폭에 구현해낸 여인의 누드상은 대단히 딱딱하다. 세잔의 표현처럼 길쭉한 원통만으로 이뤄진, 미니멀한 조형으로 환원된 인물들에 다름 아니다. 또한 인간의 나약하고 내밀한 살갗을 표현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그러한 표현이 자리해야할 공간에는 원시적인 적갈색이 거칠고 투박하게 칠해져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미니멀해지고 2차원적인 회화의 본질을 강조하는 표현 속에서 세잔의 영향력이 드러나며, 또한 당대 서구 화가들의 관심이 적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세잔 이후, 그리고 큐비즘 이전의 화가들에게서 우리는 세잔의 화풍이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향후 큐비즘의 방향을 예측해볼 수 있다.
*분석적 큐비즘과 종합적 큐비즘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영향 하에 태동한 큐비즘은 초기시기인 분석적 큐비즘과 이후 시기인 종합적 큐비즘으로 나뉘게 된다. 시기상으로는 전자가 1909년부터 1911년까지, 그리고 후자가 1912년부터 1914년까지로, 이를 초기 큐비즘과 후기 큐비즘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분석적 큐비즘이 관심가진 바는 3차원의 이 세계를 어떻게 2차원의 캔버스 내에 구축할지에 대한 방법론에 관련된다. 그들은 우리가 신체의 눈, 마음의 눈, 그리고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한 대상이 대단히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에 주목한다. 즉 3차원 및 하나의 시점으로 포착된 대상은 그저 하나의 시점에 불과할 뿐, 다양한 각도 및 시선에서 바라본 대상의 다양함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가장 단순한 조형들인 구와 원추, 원통으로 형태를 해체하면서 오히려 그것이 종합되었을 때 드러날 다양한 형상을 암시한다. 그리고 다시점을 적극 활용하여 2차원의 세계 속에서, 다양한 대상의 모습을 구축해내려 시도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가시적인 측면보다도, 대상을 분석적으로 사고하고 분해하며 다시금 구축해내는 관념적인 측면이 강조된다. 이러한 그들의 시도는 단순히 회화라는 장르의 캔버스 속에만 갇히지 않고, 조각에서도 포착되는데 3차원의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2차원의 방법론을 택하여, 시점에 따라서 감상이 달라지는 바로크적인 조각보다도 더욱더 진보한 2차원적인 다시점의 조각을 선보인다. 더욱이 중심인물 및 배경을 명쾌히 나누지 아니하여, 세계와 명쾌히 분리되지 않은 채 관계 맺는 대상이라는 측면을 강조하고, 이는 대상과 공간을 균일하게 채워내는 방식 및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적 큐비즘을 이끌던 작가들에게서 본인들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반성에 빠진다. 더 이상 그들의 실험은 새롭지 않았으며, 또한 그들은 재현과 구축 양자의 균형을 의도하였으나 구축에만 치우쳐 더 이상 예술과 현실을 매개해내지 못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그들은 인상주의자들의 한계를 고전성과의 결합 및 재현의 복권으로 절충해낸 르누아르나 세잔의 방법론 대신, 실제 현실의 오브제들을 화폭 속에 들여오는 방법론을 택한다. 이러한 방법론의 모색이 종합적 큐비즘의 정신이 된다. 이를 위하여 그들은 콜라주 기법을 사용하여, 직접적으로 실재의 사물들을 화폭 속에 집어넣으며, 전통적 회화에서의 거짓 환영이 아닌, 리얼리즘을 일깨운다. 한편 그렇게 캔버스에 침투한 오브제들은 실재의 기능과는 거리가 먼 형식미와 관련되거나, 2차원적인 세계 속에서 고유의 기능을 부여받으며, 실재를 재현해내면서도 화폭 속에서 독립된 세계를 구축한다. 그래서 분석적 큐비즘이 회화 고유의 역할 및 물성, 2차원성을 중시하는 모더니즘과 관련된다면, 종합적 큐비즘에서도 고유하고 독립된 세계를 구축하려는 정신은 모더니즘과 관련되나, 이를 위해 실재와 매개하거나 더욱이 캔버스 바깥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시도는 아방가르드와 더 유사하다. 이렇게 캔버스 바깥으로 나아가고 회화의 고유한 매체성을 혼성적으로 어지럽히는 분석적 큐비즘은 모더니즘의 견지에서, 종합적 큐비즘의 경우 아방가르드의 견지에서 읽혀지곤 한다.
*피카소와 브라크
이러한 큐비즘을 열어젖힌 두 기수인 피카소와 브라크, 그리고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 세잔이 전시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할 작가일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아카데미즘의 재현에 치중하는 화풍에 통달한 피카소는 그 예술적 지평을 파리에 오면서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1901년에 처음으로 파리를 밟게 되고 이후 바로셀로나를 오가며 활동하였다. 허나 이 시기에 피카소는 결코 기쁘지 않았다. 그 젊은 시기의 우울함과 궁핍함으로 인해 어두침침한 색채 및 비관적이고 침울한 내면을 주로 표현하였으며, 1901년부터 1904년까지의 청색의 음울함에 천착한 시기를 ‘청색시기’로 구분한다. 그리고 1905년부터 1906년까지 파리에 정착하고 파리 화단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던 시기에 그는 차갑고 우울한 청색에서 탈피한다. 장밋빛 시기로 규정되는 본 시기에서, 보다 난색으로의 전향하며, 주제에 있어서는 고갱의 원시주의와 유사한 육체 및 욕망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시기의 미술들은 후기인상주의에서 야수파로 넘어오는, 보다 자유분방한 묘사 및 색채가 중시되는 경향이 그에게서도 포착됨을 볼 수 있다.
브라크 또한 그가 기술을 익혀가던 초기에는 고전주의에 경도되어 풍경화를 추구하던 화가였다. 허나 차츰 후기인상주의 및 야수파의 실험에 매혹되기 시작하며, 이 두 기수들은 이내 곧 이러한 표현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나 20세기 화파들 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이라 할 수 있는 큐비즘을 열어젖히고, 이시기 이후의 작품들이 본 전시에서 소개된다. 이 두 기수들의 차이로는 피카소에게선 청색시기 및 장밋빛 시기의 영향이 여전히 생애 전반에 걸쳐 남아있어 보다 색채가 강조되고 객관적인 조형성을 중시하는 큐비즘임에도 일련의 표현주의적이고 감정적인 성향이 포착된다면, 브라크의 경우 이러한 표현주의적인 경향을 아예 소거해냈다는 데 있다. 그래서 브라크의 작품들의 경우 실제를 개념화하는 이미지와 추상성, 그리고 현실의 원색으로부터 유리되는 기계적이고 어두운 색채를 피카소와의 상반점으로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분석적 큐비즘과 종합적 큐비즘의 작품들이 본 전시에서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브라크의 <여인의 두상>이다. 1909년 작품으로서 큐비즘이 탄생될 시기에 함께 발표된 작품이다. 초창기 큐비즘의 실험에서 그들은 의도적으로 어두운 색채를 사용한다. 그것은 산업시대라는 당대의 새로운 풍광에서도 기인한 색채였지만, 그들이 이성적으로 행한 해체와 분할 속에서 자연스레 강조된 원리가 선이었으므로, 정념적인 색채가 등한시되게 된 것은 서양의 근대미술에서와 마찬가지로 당연한 결과이리라. 이러한 색채의 역할은 피사체와 사물, 그리고 배경들을 사실상 유사한 색채들로 칠해내어, 그들 간의 명확한 경계를 허묾에 있다. 그리고 선의 역할은 기본적인 조형들로 환원된 대상들의 경계를 구분해내고, 또한 다시점을 명백하게 구축하는 역할로서 색채보다도 더욱 중요하다. 즉 구성을 이루는 선들은 초기 큐비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리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딱딱한 직선에 의해서, 한 개인의 얼굴이 딱딱한 조형들로 환원되는, 초기의 큐비즘의 기계적인 초상의 경향이 본 작품에서 보여 지고 있다.
그리고 조르주 브라크의 <유리잔>과 피카소의 <남자의 두상>의 대비를 통한 분석적 큐비즘에서 종합적 큐비즘으로 나아가는 경향을 포착하자. 언뜻 보기에 한 정물과 한 초상은 대단히 유사해 보인다. 둘 다 유리잔이라는, 그리고 남자의 두상이라는 대상은, 큐비스트들이 단순화된 조형과 다시점으로 분할하고 해체하는 실험 속에서 사실상 부재하고 있다. 2차원적인 캔버스에 어울리는 형상으로 환원된다. 하지만 피카소의 작품에서 주목할 바는 좌측에 존재하는 GR, 그리고 우측에 존재하는 KOU라는 이니셜으로서, 훗날 오브제가 캔버스 안에 침투하게 될 종합적 큐비즘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종합적 큐비즘의 경우 피카소의 <르 비유 마르크 술병>에서 콜라주를 통해 얻어낼 수 있는 효과를 유화에 접목시켜 온다. 더욱이 피카소의 초기시절을 장밋빛 시기와 청색 시기로, 즉 색채로 구분하는 것처럼 피카소에게서 색채의 포기란 어려운 것일테다. 이러한 피카소의 다채로운 색채가 본 작품에 의해 다시금 부활되고 있다. 그리고 테피스트리로 소개된 <무용>을 통해서, <아비뇽의 처녀들>에서도 감지되는 원시주의에 대한 관심을 포착할 수 있다. 마티스의 <춤>을 연상케 하는 길게 늘여진 역동적인 포즈와 비로소 과감한 대비를 이루며 온전히 부활한 피카소의 색채 속에서, 1910년대의 큐비즘 작품들이 기계적임을 택하며 배제한 생명력이 다시금 부활되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러한 큐비즘의 유산과 다시금 부활한 색채와 생명력을 바탕으로 피카소는 그의 예술세계를 이어나간다.
*그리와 레제
이러한 두 기수 이외의 큐비스트들도 주목해야만 한다. 그들은 피카소보다도 특히 브라크에게서 포착되던 일련의 한계를 극복하며 큐비즘의 스펙트럼을 넓히는데 공헌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화가들의 첫 번째로 먼저 후앙 그리의 경우 세잔을 독학하고, 피카소를 바라보며 큐비즘의 운동에 동참한 화가였다. 그는 급진적인 다시점보다도 세잔과도 같은 하나의 일관된 시점을 지향하는 비교적 온건한 다시점을 추구하였으며,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였다. 더욱이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영감을 받았듯, 그는 브라크의 어둡고 기계적이며 가라앉은 색조로부터, 보다 화사하고 영롱한 색채로 선대 기수들의 한계를 극복한다. 페르낭 레제의 경우에도 색재를 보다 확장시켰지만, 브라크의 산업시대의 기계화된 인물 및 사물들의 구축이라는 주제의식은 여전히 계승하여, 산업시대의 도래로 이전과는 새로운 풍광을 포착하는 새로운 양식으로서 큐비즘에 주목했다. 또한 그는 건축가이기도 했는데, 이러한 바는 튜브 및 원통에 주목하던 화풍으로 드러나고, 이러한 그는 ‘튜비스트(tubist)’라는 별칭이 생기기도 했다.
먼저 후안 그리의 <책>이다. 본 작품에서 큐비즘적인 해체와 분할은 앞서 언급한 스테인드글라스의 분할처럼, 브라크와 피카소에 비한다면 보다 명확한 분할을 선보인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분할된 책의 일면들이 모두 각기 다른 시점에서 포착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스테인드글라스의 영향처럼 폐쇄적인 색채로만 가득했던 초기 피카소나 브라크의 작품들에 비해, 개방적인 색채와의 조화가 이뤄져 한껏 다채로운 큐비즘을 보여주며, 이러한 그에 의해서 색채는 다시금 부활되고 있다. 그리고 콜라주를 통해 캔버스와 전통적인 회화의 영역을 벗어난, 종합적 큐비즘으로 나아가는 아방가르드의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페르낭 레제의 <파이프를 든 남자>이다. 레제 역시 멸시되었던 색채를 다시금 부활시키고 있다. 허나 레제의 색채는 미래주의의 화가들이 전쟁까지 옹호하며 당대의 기술혁명을 찬미하고 관심 가졌던, 그 역동적인 당대의 풍광에서 비롯된 색채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그의 색채는 여러 원색들이 빠르게 뒤섞이는, 당대의 재빠르게 흘러가던 시대상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그가 조형으로 환원한 인물이나 배경들은, ‘튜비스트’라는 별명처럼 당대의 메탈 원통 및 튜브라는 새로운 조형들로 이뤄져,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초상을 구현해낸다.
*다채로운 큐비즘
이러한 그리, 레제와 함께 살펴볼 브라크와 피카소 이외의 큐비스트들을 살펴보자. 우선 오귀스트 에르벵으로 그가 1914년 제작한 <여인들과 아이들(가족)>을 살펴보자. 에르벵은 보다 온건한 큐비즘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단순화된 조형으로 환원되고 있지만, 다시점은 비교적 온건하게 사용되어 재현대상의 본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렇게 갖춰진 본래 대상들은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이 아이들을 지켜내는 어머니들로 그 따스한 여성들의 풍광을 다채로운 색채를 적극 활용하여 펼쳐낸다. 색면과 색면들 간의 분할이 아닌, 여전히 색면에는 선이 덧칠해져 선이 조형으로 분할된 공간들의 구획을 이룬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큐비즘에서 색면으로서 색채가 다시금 부활될 수 있을 가능성과, 다채로운 색채를 통한 따스한 큐비즘이라는 가능성이 그에게서 포착된다. 이러한 정념적인 큐비즘은 장 매챙제의 <레이스 옷을 입은 여인>에서도 드러난다. 마티스의 붉은 방이 연상되는 강렬한 원색의 배경과, 이를 둘러싼 아라베스크 문양들이 야수파 및 표현주의와의 결합이 느껴진다. 배경을 이루는 강렬한 원색이 감상자의 정념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모델이 되는 여인의 따스한 피부색을 비자연적인 차가운 색채로 환원시키지 않은 것, 그리고 대상의 온화한 감정이 느껴지는 미소를 차가운 조형으로 환원하지 않음을 통하여 정념적인 큐비즘이 표현되기도 한다. 즉 대상의 감정을 이루는 측면은 차가운 조형 및 해체된 형태로 환원시키지 않으며, 보다 온건하게 감정이 남아있는 큐비즘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 매챙제는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개개의 대상들을 각자 조형으로 환원하고, 이를 자유분방하게 재배치하는 새로운 큐비즘의 구성을 보여준다. 3차원의 현실에서 화가가 포착하는 일련의 풍경을 2차원에 재배치하는 것이 아닌, 3차원의 현실에서 화가가 개별로 포착한 바를 2차원의 화폭 속에 한데 모으는 기법을 매챙제가 선보인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똑같은 다시점이면서도 가장 이상적인 풍경 개개를 하나의 화폭 속에 모아놓은 동양 산수의 방법론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태동한 <우의적 구성>은 매챙제가 선보이는 일련의 알레고리로서, 대단히 모호하고 은유적인 상징들로 가득 차있는데, 초현실주의의 효시가 되었던 키리코의 회화를 연상케도 한다. 이러한 키리코의 영향은 레오폴드 쉬르바주의 <풍경(니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차원적인 구성이라는 형식에서는 큐비즘에 다름 아니지만, 실재의 인물형상이 아닌 그림자를 강조했다는 측면과, 합리적이고 계획적인 분할보다는 보다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배치 속에서 초현실주의와 결합하는 이후의 큐비즘의 모습이 예고된다.
*오르피즘
이러한 큐비즘의 영향은 이후의 모더니즘 운동에 큰 반향을 일으키나, 보다 직접적으론 오르피즘에 영향을 끼친다. 시인 아폴리네르가 그들의 작품을 보고 음악과 상당히 유사한 순수회화라는 측면에서, 그리스신화의 악신 오르페우스의 이름에서 그 사조의 이름을 따온 오르피즘에서는, 후기 큐비즘의 모습과 초기 추상의 맹아가 포착된다. 오르피즘의 화가들은 큐비즘의 정신이기도 한 독자적인 세계의 모색을, 현실과 유리되어 독자적인 세계를 표현해나가는 음악에서 찾아내려 하였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에 다름 아니었던 당대의 이미지 자체의 역동성과 형태미, 추상성 특히나 색채에 주목하였고, 색이야 말로 순수하고 외부의 재현과는 무관한 독자적인 아름다움으로서, 색의 강조에서 음악과의 유비를 보여줬다. 이러한 오르피즘은 큐비즘과 추상미술을 이어주는 중간에 위치한 사조로 작용하며, 모더니즘의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로베르 들로네
이러한 오르피즘에서 큐비즘의 연장선상을 보여주는 화가는 로베르 들로네다. 그는 피카소 및 브라크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대의 ‘기계’에 매혹을 느꼈는데, 한편 그는 기계의 기하학적인 전환이나 이를 구축하는 그들의 관심과는 상반된, 기계의 급진적인 속도와 광선에서 포착되는 순수하고 다채로운 색채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큐비즘에서 색채를 열어젖힌 레제와도 유사하다 볼 수 있고, 이러한 기계의 색채를 강조하여 회화 고유의 독자적인 세계를 펼쳐내고자 하였다. 하지만 레제가 색채의 부활을 통해 현실과의 매개를 추구하였다면, 들로네는 현실과의 결별을 추구했기에, 이 둘도 엄연히 다르다. 무엇보다 들로네는 1912년도 프랑스에서 최초의 비구성 회화이던 <둥근 형태들>을 통해, 추상으로의 전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회화가 색채 및 색채의 대비만으로 이루어지고, 이 색채 속에서 리듬과 움직임의 표현이 동시에 지각된다는 바를 강조하여 자신의 회화를 '동시주의'라 명명하였다. 시공간이 혼합된 이러한 경향 역시 대상과 배경의 경계를 허물던 큐비즘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최종적으로 들로네는 큐비즘과의 결별을 보여주지만, 이러한 그의 화풍 및 예술관에 있어선 큐비즘이 추상과 같은 모더니즘 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가 드러난다.
본 전시에서는 들로네의 작품들 다수가 소개된다. 허나 큐비즘과의 차이를 보여주는 비교적 초기작품을 하나 꼽자면 <책 읽는 여인(머리 손질하는 누드)>가 있다. 우선 본 작품에서는 온전한 순수추상으로 향하기 이전의 들로네의 관심이 표명된다. 르누아르와 유사한 고전적인 여인에 대한 관심과, 그 형태를 비교적 왜곡하지 않으려는 시도가 드러난다. 그래서 큐비즘이 대상의 3차원적 형태를 2차원적인 형태로 환원시키려는 시도와 차이를 둔다. 물론 들로네도 대상을 조형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를 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인의 육체를 가득 메우는 원형과 마주할 수 있다. 허나 그것은 여인의 풍만한 육체를 훼손하지 않는, 본래 여인이 가졌을법한 조형으로서의 원형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들로네는 대상이 본래 갖고 있는 조형성에 집중하지, 대상의 형태를 도식적으로 환원시키는 딱딱하고 건조한 조형성과는 차별을 둔다. 더욱이 들로네에게서 강조되는 것은 화사하고 다채로운 색채와 이를 표현하는 부드럽고 유려한 곡선으로, 큐비즘이 보여주던 제한된 색채와 딱딱한 직선들과는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 들로네가 몸담는 오르피즘의 사조 명자체가, 정념이 가장 강조되는 음악의 신인 오르페우스에서 따온 것이니만큼, 그들은 정념적인 회화를 위해서 큐비즘의 영향력을 일면 수용한 것뿐이다.
*추상으로의 나아감
물론 들로네는 본 전시에서 소개되는 초기시기의 작품들에서는 고전적인 재현을 여전히 지켜나가고 있다. 허나 본 전시의 마지막 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순수추상 및 비구성회화로 나아가는 20년대 이후의 장식적이고 추상적인 경향의 들로네랄지, 그리고 레제의 영향을 받은 헬젠과 같은 화가들은 선과 색, 그리고 구성을 통한 순수 형식미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큐비즘이 보여주는 재현 대상이 간소화되는 가능성을 통해, 아예 대상이 부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고, 큐비스트들이 행한 형식에의 집중에 그들은 더욱 극단적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기초적인 조형들의 순수한 형식만을 남기고, 이를 통해 극단적인 형식미만을 강조하는 추상미술에 대한 큐비즘의 영향관계가 드러나며, 본 전시는 마무리된다.
*정리
이렇게 본 전시는 큐비즘의 탄생과 전성기, 그리고 그 이후의 영향관계를 총망라한다. 큐비즘이 태동하기 이전 그들이 어떠한 영향관계에 놓여있었고, 그들이 태동할 시기의 파리 미술계는 어땠는지를 1900년대의 작품들을 조망하며 다뤄낸다. 그리고 1910년대 태동한 그들의 큐비즘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대단히 딱딱하고 색채가 배제되던 그들의 한계는 이후의 큐비스트들에게 어떻게 극복되는지가 드러난다. 또한 그들이 추구한 형식미의 경향이 20~30년대에 이르러 어떻게 추상미술로 변천해나가는지 또한 오르피즘을 통해서 드러낸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의 작품들이 오브제 중심적이고 해체적인 경향 때문에 동시대의 감상자들과 소통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면, 모더니즘의 작품들은 추상주의 및 큐비즘에서 포착되는 대상의 부재 때문에, 여전히 미메시스를 주로 기대하는 감상자들과 소통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리라. 허나 본 전시에서 전개하는 모더니즘의 가장 큰 주역에 다름 아닌 큐비즘의 일대기는, 왜 그들이 대상의 부재를 향해나갈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2차원의 한계 및 본질을 드러내는 실험을 감행한 바에 대한 당대의 시대정신과 명분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멀찍이 갈등을 지속하고 있던 모더니즘과 감상자간의 분열을 보다 메워낼 수 있으리라.
아트렉처 에디터_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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