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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녘올빼미 Dec 23. 2017

돼지, 여자, 인간, 자연(然)

Motion #56, 1999 by Laura Aguliar



Newyorker 메인에 뜬 이 멕시코계 미국인 여성의 사진은 클릭을 할 가치가 충분해 보였다.(https://www.newyorker.com/culture/photo-booth/a-mexican-american-photographers-body-on-display-and-invisible) 그녀의 이름은 Laura Aguliar. 자연 속에서 셀프 누드 포트레잇 사진을 찍는다. 그녀의 사진은 자연과 교감하는 심호흡에서 시작한다. 그녀가 혼자서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는 과정을 상상해봤다. 맨 발에 닿는 눅눅히 쌓인 나뭇잎의 딱딱한 잎줄기, 맨 몸에 달라붙는 바람, 그녀 앞에 덩그러니 놓인 자연의 굴곡과 질감들. 모든 시선으로부터의 일탈과 그걸 담아내는 렌즈의 시선. 아이러니하다. 사진으로 찍지 않았다면 그녀의 행위는 일탈이고 회복이었겠지만, 카메라의 시선이 그 은밀한 방 안으로 들어온 순간 그녀의 행위는 투쟁이 된다. 이런 과정으로 몸의 자연성을 회복했다는 것을 그녀의 사진이 보여준다. 나른하게 늘어진 그녀의 몸은 자연 곳곳에 점착되어 있고, 몸과 자연은 굴곡을 따라 하나의 무늬로 연결되어있다. 그녀의 사진은 이렇게 자연으로서 자신을 회복한다.



Grounded #108, 2006 by Laura Aguliar



그녀의 사진을 보고 인스타그램에서 즐겨 보는 Thomas Holm 작가의 사진이 떠올랐다. 그의 뛰어난 몇몇 작품도 그녀의 작품에서와 같이 자연성의 회복과 몸을 이용한 자연의 묘사와 합일을 보여주는데 Aguliar와 Holm의 작품은 유사하면서도 극명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Untitled by Thomas Holm (https://www.instagram.com/p/Bb6HAI_nfVU/?taken-by=thomasholmphoto)



Nature Self-Portrait #6, 1996 by Laura Aguliar



보면 누구나 안다. Aguliar의 피사체는 뚱뚱하고 Holm의 피사체는 날씬하다. 


사진을 통해 Aguliar는 뚱뚱함을 그녀의 몸에 삽입시키는 사회와 투쟁하고 Holm은 피사체의 유미적인 아름다움으로 selling point를 만든 것일까? 물론 그런 의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이 작업을 통해서 '뚱뚱함과 날씬함', '혐오감과 섹시함'과 같은 권력의 개입으로부터 몸의 객체적 특이성이 자유로워 지고 자연성을 회복한 것에 집중하고 싶다. 이런 자유로움은 감상자를 자연을 경의에 차서 보듯 그 피사체를 하나의 자연물로서 encounter하게 되고 비로소 자기 자신도 이런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감상을 하게된다. 이로서 Aguliar와 Holm의 피사체는 한 그루의 나무, 하나의 바위, 산, 바다와 같아 진다. 然



Untitled by Thomas Holm (https://www.instagram.com/p/Bb_OjcZHbA2/?taken-by=thomasholm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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