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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맵 매거진 Oct 13. 2022

우리가 몰랐던 예술가의 삶, 빈센트 반 고흐 2

브뤼셀부터 뉘넨까지 그리고, 시엔과의 이야기

“I dream my painting and I paint my dream.”

나는 내 그림을 그리는 꿈을 꿨고 나는 내 꿈을 그린다.

-빈센트 반 고흐-

Self Portrait with Felt Hat, Vincent van Gogh, 1887년, oil, canvas

전편 요약

종교와 미술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고흐,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던 그는 어떠한 이유로 자퇴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그는 그의 삼촌 센트가 만든 구필 화랑에 취업했고 전도유망한 화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 날 그는 구필 화랑의 런던지점을 위해 파견을 가게 된다. 런던 파견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다름 아닌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 그로 인해 고흐는 회의감을 느낀 후 미술을 그만두고 성직자의 길을 택한다. 하지만 고흐가 원하는 성직자의 길로 가기는 어려웠고, 한 목사의 조언으로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그리는 것을 목표로 다시 미술에 발을 들이민다.



| 그림 실력에 한계를 느낀 고흐 브뤼셀로 


고흐의 첫 목표는 보리나주 탄광에서 힘들게 일하는 광부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고흐는 미술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자신의 그림 실력에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미술을 가까이 접하기 위해 브뤼셀로 떠납니다. 브뤼셀에는 화가들이 많이 모여있었고, 고흐의 동생 테오도 이 브뤼셀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브뤼셀로 온 고흐를 만난 테오는 고흐에게 당시 유행했던 여러 미술사조를 가르쳐줍니다. 하지만 미술 관련 지식이 거의 없었던 고흐에게 미술사조를 말로 듣고 이해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고흐가 이 미술사조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흐의 독특한 화법이 생겨난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독 위의 양떼 Sheep on a dyke, Anton Mauve


고흐는 미술을 독학한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미술을 독학했던 것은 아닙니다. 미술 독학에 한계를 느낀 고흐는 브뤼셀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데생을 배웠고, 그의 외사촌 ‘안톤 모베’에게 잠시 미술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미술 견해 차이와 고흐의 과격한 성격 때문에 자주 갈등이 있었고, 고흐는 다시 독학의 길을 걷게 됩니다.


| 고흐가 사랑했던 여자 시엔

고흐가 시엔을 그린 드로잉


브뤼셀에서 시창가를 돌아다니며 매춘부를 모델 삼아 그림을 그리던 고흐, 길거리에서 ‘크리스티네 클라시나 마리아 호르니크’라는 매춘부를 만나게 됩니다. 고흐는 이 여자를 ‘시엔’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이 시엔과 그의 만남이 그를 나락으로 끌고 갔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시엔은 당시 5살짜리 딸이 있었고, 임신 중이었습니다. 출산이 다가온 그녀는 일하지 못했고, 막막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녀를 만난 고흐는 그녀에게 동거를 제안했고, 숙식비로 모델을 서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오갈 데 없던 시엔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고흐와 시엔은 동거하기 시작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고흐의 주변 사람들은 고흐를 미친 사람 취급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빈센트는 시엔과 동거를 이어 나갔고, 그녀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면서 그의 주변 사람들과 고흐는 서서히 멀어지게 되죠. 그를 가르쳤던 외사촌 모베는 그와 절교를 선언했고, 그를 평생 따랐다고 알려진 동생 테오조차 고흐를 말렸습니다. 고흐의 아버지는 그를 미쳤다고 생각해 정신병원까지 보내려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존경해 왔던 고흐는 이 사건 이후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생기게 됩니다. 또 아버지가 목사였던 탓에 종교 자체에 반감이 생겼다고 하네요. 이 사이를 고흐의 주변 사람만 반대한 것은 아닙니다. 시엔의 가족들도 둘의 사이를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시엔의 가족들은 시엔의 매춘부 생활을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 상황이 모두 겹쳐 시엔과 고흐는 헤어지게 됩니다. 이후 고흐는 호헤벤으로 떠났고, 시엔은.. 몇 년 후 강에 빠져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집으로 돌아간 고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떠나다

결별의 아픔과 죄책감을 느끼던 고흐는 호헤밴에서 잠시 하숙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화가들이 모여있다고 알려진 니암스테르담으로 향합니다. 니암스테르담에서 그림을 그리던 고흐, 테오가 독자적인 화랑 구축을 생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 다시 가족들이 있는 뇌넨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시엔의 일로 고흐는 아버지에게 여전히 반감을 품고 있었고, 아버지를 계속해 비난했습니다. 고흐의 이런 행동 때문에 집안 분위기는 당연히 좋지 않았고, 이 때문에 그의 가족들은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로 인해 고흐의 아버지는 고흐와 협상합니다. 고흐가 어떠한 행동을 하든 그냥 두는 대신, 고흐는 아버지를 더 이상 비난하지 않기로.

뇌넨에서 생활하기로 마음먹은 고흐는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도망치듯 떠납니다. 바로 ‘마르호트 베흐만’과 있었던 일입니다. 그녀는 고흐를 보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고흐의 행색 때문에 그녀의 집안은 반대했고, 그녀의 정신상태가 온전치 않았기 때문에 고흐의 집안도 이 사이를 반대했습니다. 심지어 당사자인 고흐조차 그녀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고흐와 연애를 하지 못했던 그녀는 불안정하던 정신상태가 폭발해 약을 대량으로 먹고 발작을 일으킵니다. 뇌넨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마을 곳곳이 퍼졌고, 고흐는 이 마을을 떠나 아인트호벤으로 향합니다.


| 고흐의 첫 완성작 '감자 먹는 사람들'

감자먹는 사람들 The Potato Eater, Vincent van Gogh, 1885


아인트호벤으로 향하던 고흐는 한 가정집에 방문합니다. ‘호르트’라는 이름을 가진 농부는 그를 집안으로 안내했고 그곳에서는 여자 네 명이 감자를 먹고 있었습니다. 1편에서 말했듯이 고흐는 농민 화가라고 불렸던 ‘장 프라수아 밀레’의 작품에 푹 빠져있었고, 당시 이 장면을 보고 크게 영감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을 그리기로 마음먹죠. 이 그림을 그리던 당시 고흐의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사망합니다. 장례식에 나타난 고흐는 삼촌들에게 비난당했고, 감정이 오락가락했던 고흐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미완성이었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다시 그리기 시작합니다. 이때 탄생한 작품이 바로 ‘감자 먹는 사람들’, 고흐가 처음으로 습작이 아닌 완성작으로 생각했던 그림입니다. 당시 고흐의 동생 테오는 독자적인 화랑 구축을 포기하고 구필화랑에서 일하며 여전히 고흐를 지원했는데 고흐는 이 ‘감자 먹는 사람들’을 테오에게 보내 판매를 부탁합니다. 하지만 당시 유행했던 미술사조는 밝은 색감의 인상주의였고 칙칙한 색감의 고흐의 그림은 혹평을 받게 됩니다. 이 와중에 ‘감자 먹는 사람들’의 모델인 호르트의 가족 중 결혼하지 않은 딸 한 명이 임신하게 되는데 마을 사람들은 고흐의 몰골 때문인지 이것이 고흐의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고흐는 마을에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고 안트베르펜으로 떠나게 됩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다음 이야기에는 고흐의 걸작들이 대거 등장하니 기대해주세요!



글 | 아트맵 에디터 노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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