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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맵 매거진 Oct 19. 2022

우리가 몰랐던 예술가의 삶, 빈센트 반 고흐 3

파리부터 그의 마지막까지

“I put my heart and my soul into my work, and have lost my mind in the process.”

나는 내 심장과 영혼을 그림에 쏟아부었고 그러면서 미쳐갔다.

-빈센트 반 고흐- 


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Vincent van Gogh, 1889년, oil, canvas

전편 요약

그림 실력에 한계를 느낀 고흐는 미술을 접하기 위해 브뤼셀로 향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미술을 배우기엔 고흐는 너무 과격한 성격이었고, 다시 독학의 길을 걷게 된다. 사창가를 돌며 매춘부를 그리던 고흐는 매춘부 '시엔'을 만나고, 그녀와 동거하며 그녀를 모델 삼아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은 이를 좋게 보지 않았고, 계속된 갈등 속 고흐의 아버지는 사망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을에서는 고흐에 대한 구설수가 맴돌아 고흐는 아인트호벤으로 자리를 옮긴다. 아인트호벤에서 그는 호르트라는 농부를 만나고 고흐 생애 첫 완성작 '감자 먹는 사람들'을 완성한다. 하지만 작품에는 혹평만이 있었고, 고흐의 행색 때문에 그 마을에서조차 구설수에 휩싸인 고흐는 다시 안트베르펜으로 떠나는데...

 

| 파리에서 만난 화려한 색채 인상주의

Fritillaries in a Copper Vase, Vincent van Gogh, 1887년, oil, canvas


3개월 동안 안트베르펜에서 지낸 고흐는 테오의 부름을 받고 파리로 이동합니다. 당시 파리의 화상으로 일하고 있던 테오는 곧 인상주의 화가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직감했습니다. 테오는 고흐를 파리로 부름으로써 이 인상주의 화가 중 한 명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죠. 파리로 오게 된 고흐는 화려한 색채의 인상주의를 접하게 됩니다. 그중 고흐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은 바로 일본 판화, 당시 일본은 국경을 개방했었고, 그로 인해 파리에 수많은 일본판화가 들어오게 된 것이죠. 그 판화들은 일본에서 포장지로 사용할 정도로 흔한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파리의 화가들은 일본 판화 특유의 화려한 색채에 열광합니다. 고흐에게도 이 일본판화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 이후 고흐는 색채 연구에 몰두했고, 이 연구를 위해 40여 점이 넘는 꽃 정물화를 그립니다. 이 연구로 고흐의 칙칙했던 그림은 밝은색의 그림으로 점차 바뀌게 됐죠. 고흐 하면 생각나는 색채, 스타일이 바로 이 연구 이후 생겨난 것입니다.


| 고흐의 은인 탕기

pere Tanguy, Vincent van Gogh, 1888년, oil, canvas


당시 고흐는 파리의 인상주의 화가들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런 그에게 테오는 한 노인을 소개해줍니다. 바로 ‘줄리앙 프랑수아 탕기’, 그는 몽마르트에서 화방을 운영하는 한 상인이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화가들에게 물감과 붓 같은 화구, 캔버스를 건네주고 돈 대신 그림을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직접 화구를 들고 가난한 화가들을 찾아다니기도 했죠. 화가들에게 그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습니다. 물론 고흐에게도 같았습니다. 탕기는 그에게 모든 화구를 내어주고, 그가 그린 그림을 화방에 걸어 사람들에게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화가들을 만나지 못했던 고흐에게 여러 인상주의 화가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줬죠. 이 시기 고흐는 고마움을 담아 탕기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탕기 초상화를 보면 그가 그린 어떤 초상화보다 밝고, 인자한 표정을 띠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통해서 고흐가 탕기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탕기 초상화에서는 고흐가 빠져있었던 일본 판화들을 함께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탕기 초상화 배경에는 여러 그림이 걸려있는데 이게 모두 일본 판화라고 하네요. 파리에서 생활하던 고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마찰을 일으킵니다. 그림과는 별개로 파리의 화가와 고흐는 마인드 자체가 맞지 않았던 것이죠. 파리는 멋쟁이 화가들의 장소였고, 항상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있었던 고흐는 파리에 환멸이 난 채로 한 시골 마을 아를로 이동합니다.



| 고갱과 아를로 떠나다

Still Life - Vase Fifteen Sunflowers, Vincent van Gogh, 1888년, oil, canvas

 

아를로 가기 전 파리에서 알게된 몇몇 화가들에게 화가 공동체 생활을 제안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을 받는 화가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을 받아준 단 한 명의 화가가 있었죠. 그의 이름은 ‘폴 고갱’, 사실 고갱은 고흐와 성격이 그렇게 잘 맞지 않았습니다. 고갱은 화가 공동체 생활이 그렇게 내키진 않았지만, 그에게는 금전적인 문제가 있었고, 테오가 지원을 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를로 이동합니다. 이 시기 고흐는 고갱을 정말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는 고갱의 작품뿐만 아닌 고갱 자체에 반했었고 그와의 우정을 소중히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 유명한 해바라기 그림도 고갱과의 우정을 보여주는 그림, 고갱이 머무는 침실에 걸어줄 그림으로 그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고흐와 고갱은 추구하는 그림부터 성격까지 모두 달랐고, 둘 사이에는 자주 마찰이 있었습니다. 애초에 고갱은 작품을 팔아 돈이 마련되면 아를에서 나올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죠. 심지어 당시 고흐의 작품은 한 개도 팔리지 않았었지만, 고갱의 작품은 연달아 팔리고 있어서 고갱의 오만함은 하늘을 뚫었습니다.


|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 그리고...

The Starry Night, Vincent van Gogh, 1889년, oil, canvas


여기서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고흐가 자기 귀를 자르는 사건. 여기엔 수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 고흐가 파리 시절부터 즐겨 마신 술 ‘압생트’의 중독으로 인해 정신이 망가졌고 그의 귀에 환청이 들려 자기 귀를 자른 것이다.’ 두 번째,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에서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본 고흐는 고갱이 자신을 조롱한다고 느끼고 나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며 자기 귀를 자른 것이다.’ 세 번째, ‘그가 이전에 그렸던 ‘아를 투우장의 관장’의 배경에는 소의 귀를 자르는 것이 승리로 여겨졌고, 고갱과의 논쟁에서 승리했다는 의미로 자기 귀를 자른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갱이 고흐와 싸우다 그의 귀를 자른 것인데, 우정을 소중히 생각했던 고흐는 그 사실을 비밀로 한 것이다.’ 등 수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흐는 자신의 자른 귀를 가지고, 사창가로 갑니다. 그리고 그 귀를 가끔 만나던 매춘부 라셸에 건넸고, 라셸은 그것을 보고 놀라 그를 신고합니다. 그로 인해 고흐는 아를 시립병원으로 입원하게 되죠. 시간이 지나고 의사 레이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고흐를 긍정적으로 생각해 그를 퇴원시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흐는 다시 발작 증세를 일으켰고 사람들의 신고로 다시 입원하게 됩니다. 자신을 신고했다는 사실 때문에 아를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낀 고흐는 테오가 소개해준 생레미의 생폴 정신병원으로 가게됩니다. 그렇게 생레미로 이동한 고흐, 여기서 고흐 희대의 걸작, 별이 빛나는 밤이 탄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흐가 죽은 후 명성을 얻었다고 알고 있겠지만 사실 이 시기부터 고흐의 그림은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생레미에서 퇴원한 그는 오베르라는 프랑스 지방으로 떠납니다. 고흐의 걸작 중 한 가지 까마귀 나는 밀밭에 나오는 장소가 바로 이 오베르입니다. 그곳에서 약 2개월간 생활한 고흐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지금까지 빈센트 반 고흐 이야기 재밌게 보셨나요?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사랑받는 작가로 평가되고 있는 반 고흐.
그도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네요.
다음에는 반고흐 에필로그로 돌아오겠습니다! 



글 | 아트맵 에디터 노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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