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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맵 매거진 Jan 13. 2023

몽환적인 색감 속 숨은 이데올로기, 마리아 스바르보바

푸른 수영장에 붉은 수영복을 입고 나란히 선 인물들. 아마 여러분도 어디에선가 마주한 적 있을지 모르는 수영장 사진, 바로 세계가 주목하는 '마리아 스바르보바(Maria Svarbova)'의 작품입니다. 


Future, 2016 © MARIA SVARBOVA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2016년 International Photography Awards 수상을 시작으로 주목받은 슬로바키아 출신의 사진작가입니다. 2018년 핫셀블라드 마스터 아트 부분 1위에 오르고, 포브스에서 선정한 '30세 이하 영향력 있는 30인'에 선정되기까지.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은 여성 작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시선을 사로잡는 투명하고 환상적인 파스텔 색감, 치밀하게 짜인 황금 비율과 대칭적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색감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인공적이고 서늘한 분위기를 떨칠 수 없는데요. 이는 작품 속에 현대사회의 이데올로기적 풍경을 반영한 작가의 의도이기도 합니다. 


© MARIA SVARBOVA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Swimming pool(수영장)' 시리즈에서 그러한 경향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2014년부터 슬로바키아에 위치한 수영장을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오래된 수영장만이 지닌 기하학적이고 대칭적인 아름다움,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이질감은 매혹적인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왜 하필 수영장이었을까요? 슬로바키아 출신의 작가는 사회주의 체제 아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데올로기적 특성상 개인보다 집단, 사회생활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이는 대중들을 억압하고 경직되게 했습니다. 비자유 속 생활을 영위하던 사람들에게 '수영장'이란 유일하게 숨통을 트일 수 있었던 자유의 공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개개인의 기호를 담은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기괴할 정도로 경직된 인물들의 행동과 무표정한 얼굴은 누군가 갖다붙인 것처럼 인공적으로 나열되어 보는 이들에게 긴장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수평적인 대칭과 몰개성한 디자인의 수영복은 그러한 분위기를 더욱 가중시키죠.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공간에 붙들려 조각처럼 전시된 인물들. 아름다우면서도 으스스한 풍경은 그녀가 반영하고자 했던 사회 이데올로기적 면모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스바르보바 : 어제의 미래》 전시전경, 제공 컬쳐앤아이리더스


2019년 롯데갤러리에서 열린 《Swimming Pool》은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국내 최초 개인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말인 2022년 12월,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작품을 총망라하는 대형 기획전이 또 한 번 국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된 《어제의 미래 : FUTURO RETRO》


미래지향적이면서도 레트로적 감성을 자극하는 마리아 스바르보바만의 '퓨트로 FUTRO' 감성을 담아낸 제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시는 총 5개 섹션으로 구성되어, 사진과 영상, 설치작품 등 다양한 구성과 연출로 선보입니다. 가장 대중적인 수영장 시리즈 이외에도 쉽게 만나기 힘들었던 다른 시리즈들도 공개한다는 점이 뜻깊은데요.


Origins, 2019 © MARIA SVARBOVA


특히 마리아 스바르보바가 처음으로 미국에서 제작한 프로젝트 <Lost in the Valley 로스트 인 더 밸리> 시리즈가 기대됩니다. 사막이라는 특별한 자연경관, 녹지 없이 텅 빈 표면은 마리아가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에도 완벽한 장소입니다.


그녀는 건조한 사막과 숨막히는 산 사이의 대조를 섬세하게 담아냈는데요. 인간이 범한 잘못ㅡ환경오염ㅡ으로 생겨난 대표적 장소인 만큼, 바라보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듯합니다. 마리아는 이 시리즈를 통해 인간과 환경에 대한 내용을 다루며, 암울한 소재를 조화롭게 더해 아름다운 작품으로 빚어냅니다. 


Flowers, 2021 © MARIA SVARBOVA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신(New)과 구(Old) 사이 적절한 조화를 통해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그녀의 작품은 오래된 공간과 과거의 향수를 담은 풍경을 담아내지만 미래지향적인 특별함을 품고 있습니다. 앞으로 마리아 스바르보바가 얼마나 더 멋진 시리즈들을 보여줄 지 기대되는데요.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대표작들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전시, 《마리아 스바르보바 : 어제의 미래》는 올해 2월 26일까지만 개최되니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글 | 아트맵 에디터 이지민

자료 | 컬쳐앤아이리더스, © MARIA SVARB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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