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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톤 정경 Oct 08. 2015

예술가들의 모순을 자율(自律)하다

- 어느 예술인의 반성,

                                                                                                                                                                                                                                                                                                


 오늘날 우리는 200여 년 전 작곡된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들으며 깊은 감동을 느낀다. 그러한 고전음악의 매력이란 거장들의 손길에서 탄생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빚어낸 아름다움일 것이다. 순수예술가에게 고전은 대중이 받는 감동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시대를 아우르는 예술적 성취는 고귀하고 무결하게 여겨지며 때로는 신성시되기까지 한다.
  
 때문에 고전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변형 혹은 재해석하려는 예술가는 다른 예술가들에게 비판을 받기 쉽다. 그들은 이러한 노력이 오히려 고전을 고전답게 지키지 못하는 것이고, 고전을 있는 그대로 답습하는 것만이 순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현대의 예술은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모자라고 투박하며 깊이가 없는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이는 예술가들의 자가당착이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현대에 고전으로 분류되어 있는 작품들도 당대에는 대중의 인기를 얻고 흥행한 ‘대중문화예술’이었던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순수예술가들이 이러한 사실을 잊고 오늘날 유행하는 대중문화는 고전예술과 같은 위상을 얻을 수 없다고 여긴다. 이는 순수예술인의 자부심이라 보기에는 도리어 오만에 가깝다.




   
 지난 몇 년 간 대중문화 산업은 예술계 전반의 시장 확대에 큰 공헌을 하였다. 한류 열풍이 그 좋은 예다. 특히 지난 2012년, 전 세계적 인기를 누렸던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 건수는 무려 24억 뷰를 넘기며 단일 영상으로는 최다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여러 아티스트들 역시 국제적인 유명세를 얻고 있다. 우리나라 고전예술계가 수십 년에 걸쳐 끌어올린 문화적 장악력을 불과 몇 분짜리 영상으로 대중예술계가 단숨에 뛰어넘은 것이다.  


 이와 같은 대중예술계의 확장과 동시에 순수예술계의 시장 장악력은 나날이 위축되어가고 있다. 매분기, 매해마다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가 등장하는 대중예술계와는 달리 클래식 시장의 시간은 상당히 느리게 흐르고 있다.

 십 수 년 전부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가수로 이름을 날려 온 몇몇 이들을 제외하면 유명세를 누리는 새로운 얼굴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고 있다. 대다수의 클래식 공연이 지니는 티켓파워 역시 대중 예술에 비할 수 없으며 심지어 오페라로 대표되던 고급 공연문화마저 뮤지컬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절박한 몸부림은 학연과 파벌, 인맥으로 얼룩진 마이너스섬 게임(negative-sum game)으로 번져 서로의 기회를 박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결국 클래식 시장은 침체 일로를 걸었고, 어느덧 ‘배고픈 예술가’라는 표현이 고전예술인들을 일컫는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참으로 씁쓸한 결과다.




 지금의 순수 및 기초예술이 ‘대중화’를 지향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단순히 대중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두가 ‘함께 한다’는 의식 없이 진정한 의미의 대중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 예술인들 역시 ‘서로의 개성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바탕으로 기존 예술계, 나아가 대중예술계와도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순수예술가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은 명작을 다룬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서로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경쟁을 전개하면서 보다 여유로운 태도로 새로이 펼쳐지는 대중문화예술의 흐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시작한다면. 그리하여 자가당착에 빠진 자화상의 모순을 서서히 뒤집어나간다면.


 지금까지 계승된 고전예술과 이 시대의 기세를 담은 대중문화가 조화를 이루어 언젠가는 시대를 대표하는 미래의 ‘고전’이 탄생할 토양이 구축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바리톤 정 경의 [예술상인] 제 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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