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을 말하다
명품(名品)이란 무엇일까?
사전적으로는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혹은 작품’을 일컬으며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살아남은 재화들을 가리킨다. 상품으로서의 명품이 꼭 값비싼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상품이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그 자체로서 무한한 가치를 지녔거나 하나의 기호로서 얼마가 되었든 투자할 만하다면 우리는 비로소 이를 명품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예술에도 명품이라는 잣대를 적용할 수 있을까. 예술을 향유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어떤 작품이 명품이다 아니다를 판가름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는 바로 ‘감동’의 유무일 것이다. 일견 주관적인 판단 기준이기는 하나 관점을 달리하면 이는 작품을 평가하는 가장 명확한 잣대로도 볼 수 있다.
예술가로서 내가 분류하는 ‘명품’의 기준은 이러하다. 일반적으로 ‘예술적 가치’라 하면 작품에 담긴 테크닉, 즉 기술적인 역량으로 평가를 받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나 기술적인 우위만으로는 명품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 예술로서의 명품이란 그와 같은 기교를 바탕으로 예술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독창적 자아’가 온전히 표현된 작품이어야 한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현 시대 혹은 인류의 삶과 부합하는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하며, 나아가 다음 세대와의 접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연결 고리로서의 철학과 신념을 담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모든 예술 작품은 명품으로 거듭나기 위한 ‘현재진행형’이다. 이와 함께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이 명품의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필요한 역량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며 첨예한 비평과 비난 속에서도 옳다고 믿는 예술적 가치와 기준을 지순하게 추구해야 한다. 극찬 속에서도 반성할 수 있어야 하며 혹 자신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작품이 있다면 주저 없이 모든 것을 출발점으로 되돌려놓을 수 있는 신념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나 역시 오늘도 ‘완벽한 실연’만을 추구하는 작품세계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노래와 교육, 강연 이외의 시간에도 이 시대가 잊거나 잃어가고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지금 시점에서 가장 되새길 필요가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일례로 내가 기획하고 있는 오페라마 토크콘서트 ‘정신 나간 작곡가와 kiss하다’는 실연과 공연 해설을 넘어서 ‘소통’을 위한 포맷을 지향하고 있다. 매회 한 명의 작곡가를 선정해 그가 만든 곡의 기원과 당대에 지녔던 사회적, 역사적인 의미를 짚어보고 직접 연주하는 것은 물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즐기면서 클래식에 담긴 철학 및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소통하고자 한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도 있다. 왜 성악가가 노래는 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인지, 고전예술의 순수성을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한다. 분명 지금 나의 시도는 시행착오가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과도기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과도기는 명품으로서의 예술이 탄생하기 위해 새로운 플랫폼(형식)의 개발이 필연적이라고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생소한 형식의 작품이 대중의 인식 속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충분한 역량과 생존력을 갖추어야 한다. 동시에 작품으로서 빼어남을 갖춘다면, 그리고 이러한 겸비를 오랜 시간 유지하여 많은 관객들의 기억 속에 ‘감동적인 경험’으로 남을 수 있게 된다면, 비로소 예술로서의 명품이 탄생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 바리톤 정 경의 [예술상인] 제 18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