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 중에 "체르노빌"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나도 체르노빌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곳이 어떤 곳이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전에 그곳은 소비에트 연방이었고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 폭발로 더 이상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고, 그 정도만을 알고 있었다.
한동안 "체르노빌"에 빠져 있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나 싶지만. 그곳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란 작품을 읽고 나서 나는 한 동안 체르노빌에 관련된 영상과 책을 연달아 찾아보게 되었다. 처음엔 그 작가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을 생각이었으나 (잘 기억나지는 않으나) 해당 작품이 없어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나는 이미 몇십 년이 지난 일이고,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다 읽은 뒤 체르노빌에 대한 생각을 그만할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먹먹하고 갑갑하게 우울하게 했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 같다. 아직도 그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도무지 그냥 "그런 일이 있었구나.", "원전이란 위험한 거구나."하고 경각심을 깨닫고 반성하고 그런 수준에서 그 이야기를 끝낼 수가 없었다.
체르노빌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고, 그곳에 사진들을 검색해 보기도 했으며, 엠마뉘엘 르파주의 "체르노빌의 봄"이라는 책도 읽었었다. 보기 힘든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들을 계속 보았고, 왜 보기 힘들었는지도 명확하게 모르겠지만, 그리고 내가 그걸 보고 안다고 해서 뭐가 바뀌지도 않는데 계속해서 나는 먼 나라에 있는 이미 이전에 일어나버린 사건에 잠시 동안 매여 있었다.
아직도 체르노빌이라는 단어는 내게 울림이 크고,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감 때문일까? 아니면 인류가 건드려서 안 될 것을 건드렸다는 조바심 때문일까? 그 안에 그 재앙을 겪으면서 이유도 모르고 사라져 간 사람들 때문일까? 아니면 해결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사람들 때문에? 무엇 때문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와 "체르노빌의 봄" 그리고 "BATTLE OF CHERNOBYL"을 보고 짤막하게 썼던 메모들이 있다. 생각나는 것들을 썼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뭐였는지 확실히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완성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그 토막들은 완성되지 않은 채 내 컴퓨터에 남아 있었다. 오늘 막 HBO에서 제작한 "체르노빌" 5부작 미니시리즈를 다 보았다. 그리고 그 토막글과 드라마를 보고 내가 느꼈던 것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면서 생각이 든 건데, 체르노빌이라는 사건은 나에게 단순히 하나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을 넘어서 수십 개의 생각 거리들을 던져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빠져있었나 싶다.
알렉셰이비치는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나는 과거를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라고 썼다. 체르노빌은 분명 과거에 일어난 일이지만 지금도 진행되는 일이기도 하고,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원자력 재난은 단지 그 사건이 일어난 그때 그 시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행할 이야기이다. 그건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일이기도 할 것이다. 일본에서 계속 나오는 원자력에 관련된 사건들을 보면 그녀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단지 소련과 일본의 일만이 아닐 수도 있다. 원자력 발전소를 쓰는 나라가 그 둘밖에 없진 않으니까.
불안을 회피하고 무시하고 싶은 것은 모든 인간의 심리인 걸까?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 바로 지금 당장 고쳐야 하는데 그게 마치 괜찮을 것처럼 자신을 속인다. 드라마 체르노빌에서 보리스가 레가소프가 말해준 대로 앞으로 그 두 명에게 일어날 일들을 들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래도 자신에게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믿게 되었다는 말처럼. 우리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괜찮을 거라고 믿고 싶은 건 아닐까? 문제를 모른 척하고 괜찮다고 자신을 속여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체르노빌의 마지막 화에서 법정에서 레가소프가 진실을 호소하는 장면이 이 글을 쓰고 싶게 한 것이 크다. 진실을 마주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문제는 단순히 개인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을 넘어서 국가가 거짓의 주체가 되는 것까지 나아간다. 그 정도가 되면 개인이 진실을 말하고 짊어진다 해도 진실이 제 힘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아 진다. 국가들은, 정부는, 기관들은 왜 사실을 은폐하는가? 모두들 왜 나중에 갚아야 할 진실의 대가를 얼마나 쌓아놓으려고 그러는 것일까? 체르노빌의 사건도 사건에 규모와 그로 인한 피해자의 수와 같은 정확한 수치들을 아직까지도 은폐하고 있다. 문제를 인정했을 때 생기는 일을 감당하고 싶어서 은폐하는 것은 단순히 진실을 은폐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숨김으로써 또 다른 문제를 양산하는 것이다.
원자력 재난이 내게 경악스러웠던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실상 사람의 삶과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경제적, 사회적 문제보다 생명의 가치를 우리는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도 가끔 이럴 때 보면 인간의 생명과 삶이 가장 우선시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 맞나? 그런 의구심이 든다. 그냥 우리는 지금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는가? 사실, 문제는 계속 있어 왔고 일어나고 있는데.
진실을 대면하는 일은 어렵다. 왜냐면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나면 이제 우린 그 문제를 방관할 수 없고 몰랐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고 해결해야 하니까. 그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에는 자신의 터전을 되찾아 그 주변을 떠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그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다른 곳에서 그들은 배척받는 대상들이었고 그들의 전통과 삶이 녹아있는 그 땅을 떠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원자력, 방사능이라는 이 보이지 않는 적이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전시에만 한정된 시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우리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단지 우리의 생명과 건강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터전과 생활, 문화까지도 앗아가니까.
그래도 그들은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읽으면서 왜 우는지도 모르면서 많이 울었다. 이것을 단지 어떤 타인의 재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관광화 되어 구경하는 구경거리인가? 그 사건으로 인해 그 땅의 작은 개인들의 역사는 완전히 바뀌었다. 피폭된 사람이 가족인 자는 병원에서 그들의 가족이 아니라 그들이 곧 단지 방사능체로 여겨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며, 한 사람의 남편이고 누군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다. 방사능은 사람을 폐기시켰지만 그럼에도 생의 이름은 꿈틀거린다. 드라마 속 류드밀라의 남편 발레리와 그의 동료들의 장례식 장면의 기이함이 생각난다. 그들의 시체를 담은 관은 여러 겹으로 쌓이고 그들의 육체는 완전히 밀폐된다. 시멘트로 무덤을 채우는 장면은 원자력 재앙이 얼마나 기이한 일인지 보여준다.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왔던 그 모든 것들이 불가능해지는 일.
타인의 고통을 대해서 생각해본다. 우리에겐 충격적인 한 번의 사건이겠지만, 단순히 그들에게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 "그래도 살아야 한다"라는 그들의 말처럼 그들은 그 재앙과, 고통을 안고 결국 살아가고, 다시 말하면 그건 생이 된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애처로우면서도 생이란 건 정말 아름답고 곧고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 속 보리스가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레가소프에게 고백하고 자신의 바지 위에 붙은 꿈틀거리는 벌레를 보고 아름답다고 말한 것처럼. 애처롭고 비극적임에도 불구하고, 생의 꿈틀거림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진실을 말함으로써 그간 쌓아왔던 거짓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그 생의 의지는 지긋지긋하게 우리를 이 땅에서 살아가게 만들 것이니까.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 , 김은혜 역, 새잎, 2011
2. 엠마뉘엘 르파주, "체르노빌의 봄", 해바라기 프로젝트 역, 길찾기, 2013.
3. HBO 제작 미니 시리즈 드라마 "체르노빌"
4. 디스커버리 채널 제작 "체르노빌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