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오늘 하루도 고단했다. 걸음은 자연스레 마트로 향한다. 오늘같이 업무로 고단한 날은 진한 술 한 잔이 자동적으로 생각나기 마련이다. 마트에 도착하여 장을 조금 보고 필요한 물건들을 샀지만, 막상 술을 사려니 망설여진다. 당신은 술들이 진열된 코너에서 서성인다, 술을 살까 말까 고민하면서.
새로 생긴 마트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위스키를 종류별로 많이 팔았다. 근래에는 이쪽으로 다니지 않아서 새로 마트가 생긴 것도 모르고 있었다. 마트가 새로 생긴 것을 보고 구경 왔을 때 술을 좋아하는 당신은 진열된 술들을 보면서 사지도 않았는데 묘하게 설렜다. 그 뒤로부터 당신은 은밀히 욕망했다, 언젠가 저 술 중에 하나를 사겠다고. 그래서 다시 그 코너 앞에 당신은 서 있게 된다.
술을 살까 말까? 사도 될까? 고민하면서.
당신이 사고 싶은 술이 위스키이기에 당신은 고민하고 있다. 아직 당신에겐 위스키가 한 병을 구매하기 조금 부담스러운 술이었기 때문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코너를 가로지르며 당신은 생각한다. 비싸기도 비싸고, 독하기도 독해서. 통장도 쓰릴 것이고 당신의 속도 쓰릴 것이다. 그럼 당신은 쓰린 마음에 또 술잔을 채우고 비우고 술을 많이 마시고 더 자주 취하게 될 것이다.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코너를 가로지르며 당신은 생각한다. 최근에 밖에서 친구들과 술을 먹은 적이 없어서 술에 쓸 돈이 여유가 있고, 한 번 사면 오래오래 두고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소주 몇 병과 맥주 몇 캔을 사는 것과 결국 같은 금액 아닐까 그렇게 합리화도 한다. 만원의 4캔이 10번이 있어야 위스키 한 병이 되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한다. 당신은 지독한 자기합리화의 덫에 빠져 일자로 쭉 뻗은 마트의 코너를 미로처럼 헤매고 있다.
순간, 술 앞에서 고민하는 자기 자신이 낯부끄러워진다. 당신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지만 당신의 고민은 술을 살까 말까이지, 어떤 술을 살까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이 앞에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세제와 샴푸와 바디워시가 있는 사이에서 다시 당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지르며 생각하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지르며 고민한다.
결심을 하고 다시 미로 앞으로 돌아왔을 때, 당신은 당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것이 분명한 남자의 형체를 발견한다. 그는 금빛 액체에 눈길을 뺏긴 것 같았다. 아마 당신처럼 마음과 생각도 뺏겼을지도 모른다. 그는 좀처럼 그 앞을 떠나지 못하면서 영롱한 갈색 병의 자태에 홀린 듯이 그 앞을 서성거렸으나 선뜻 병에는 손을 가져가지 못했다. 아까 당신의 모습도 저랬으리라. 당신은 그 생각에 웃음이 났다. 비싼 수를 사려는 사람의 마음은 다 똑같구나. 당신은 그 장면이 왠지 웃기고 귀여웠지만 동시에 씁쓸하다고 느낀다.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으니, 세월에 검게 그을린 피부와 붉은 얼굴이 당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당신이 처음 위스키를 마신 날까지 기억은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마신 위스키는 아마 아빠들의 위스키였을 것이다. 당신은 이 뒤, 몇 주가 지난 후에 아버지를 생각하며 선물로 위스키 한 병을 사서 당신의 아버지를 방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