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최진영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는 원도가 어떤 아이였는지부터 보여주는 글로 시작된다. 그 후로 원도의 시선으로 죽음을 목전 앞에 두고 삶의 회상하는 그의 파편화 되고 분절된 사고들로 내용은 전개된다. 원도의 생의 기억과 함께 그렇게 소설은 진행된다.
글의 문체가 상당히 내 취향이었다. 간결하면서도 때로는 강하고 거친 느낌의 글이 때로는 까뮈가 생각나기도 하고 카프카가 생각나기도 해서 좋았다. 빠르게 내뱉는 듯한 숨 가쁜 그런 느낌도 드는 글이었다. 문체가 상당히 거칠고 남성적이어서 작가분도 남성분이겠거니 했더니, 웬걸 여자 분이셨다. 어쨌든 이런 느낌과 분위기의 문체가 참 좋다. 흑백 톤이 생각나는 그런 글들.
사건은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듯하다. 유아기에서 성년으로 성년에서 유아기로 시간을 오가고, 대상을 오가면서 소설의 흐름은 무의식적으로 무작위로 흘러가는 듯하지만 일련의 규칙을 가지고 차근히 전개된다. 왜냐하면 “내 생을 이 지경에 이르게 까지 한 결정적인 것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생을 돌이키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죽은 아버지 그리고 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에서 마지막엔 다시 산 아버지와 죽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그리고 원도에 대해서 이야기로 회귀한다.
원도는 생의 끝에 서있다. 원도는 이 곳에서 “나는 왜 살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를 반문한다. 무엇이 그를 죽음 앞에 서게 만들었는가? 그는 자신의 죽은 아버지와 산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리고 유경과 그녀 그리고 장민석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살아왔던 생의 기억을 다시 돌아본다.
읽으면서 생각이 든 것은 이 소설은 주제보다 소설 안에 담고 있는 원도의 생각들이 현대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기존 상식과 지식에 대한 거부나 회의,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엿보인다. 자신이 대출을 해주는 금융업에 종사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진행되는 돈에 관한 원도의 생각은 최근에 상영했던 일본의 “종이달”이라는 영화를 생각나게 했다.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되는 사회. 그러나 실상 그 돈은 무엇이었나. 종이 쪼가리였으며 의미 없는 숫자들이었다. 돈은 중요한 것이었지만 그러면서 공허하고 가장 실체 없는 것이었다. 그런 것이, 0이 더 붙고 덜 붙고 그게 사람을 가지고 논다. 이런 자본의 실체를 원도는 회사를 다니면서 깨닫게 된다. 이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현대 사회가 얼마나 공허하고 실체 없는 텅 빈 것인지를...
그러나 이러한 현대 문물에 대한 공허만이 원도가 이 곳에 이르도록 이렇게 원도를 만든 것만은 아니다. 원도가 이해할 수 없는 것, 이해하는 것, 용서하는 것, 책임감이라는 것. 원도는 죽음을 앞에 두고 그동안 살면서 강요당했던 알 수도 없고 의미도 모르겠는, 그냥 끄떡일 수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삶의 전체를 훑는 이 소설은 단순히 한 이야기를 하기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내가 자주 했고, 생각해 볼만한 그런 작은 주제의식들이 소설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을 하나하나 다 쓸 수 는 없을 것 같으니까....
세상은 늘 원도가 “정말로 그렇다.”라고 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러면서 원도는 늘 자신과 닮은 누군가와 경쟁해야 했다. 그때 원도의 경쟁자가 되었던 것이 바로 장민석. 원도가 장민석을 이겨보려고 하는 과정에서 늘 경쟁해야 하는 압박감에서 원도가 가질 수 없었던, 타인에 대한 자신의 인정을 부러워하며 시기한다. 이 과정에서 원도는 자신의 존재를 타인을 통해서 인정받고 싶어 한다. 유경에게 또는 그녀에게 또는 어머니와 산 아버지, 죽은 아버지. 그들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근원적인 단독적인 인간으로서의 고독을 그 외로움을 그는 타인을 통하여 늘 의존하고자 하였다. 그것이 원도를 이 지경에 이르기 까지 했을까? 소설은 카메라가 줌 인 되는 것처럼 원도의 삶의 겉에서 안까지 깊숙이 치밀고 들어간다. 그 속에서 원도는 자신을 찾지 못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런지 원도가 다시 차가운 거리에서 다시 여관방으로 향할 때 원도의 입 속에서 나오는 “나 혼자요.”는 어떤 울림을 준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고, 나 혼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