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 재 Dec 23. 2023

동지, 새롭게 태어나는 날

동짓날의 의미

고고학자 닐 올리버의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를 읽고 있다. 마침 동지와 관련한 부분이 있어서 반가웠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마침 오늘이 동지라 시간적으로 되새김질 해보아도 좋겠다 싶다. 


다음은 2번째 챕터 <지구> 편에 실린 세 편의 글 중 두번째 글인 "원을 향한 끌림"에 나오는 글이다. 



"아일랜드 미스에 있는 뉴그레인지(Newgrange)와 노스 연도분은 기원전 3200년경에 만들어졌다. 뒤이어 다른 곳에서도 원들이 신성한 땅을 에워쌌다. 스코틀랜드 오크니제도, 윌트셔 에이브버리에 살았던 농부들은 저마다 기반암을 둥근 모양으로 파내기 시작했다. 암반에 도랑을 파 땅을 감싼 다음 그 안에 원형으로 선돌을 세우고, 그 안에 또 다른 원이 들어앉는 식이었다. ....


뉴그레인지 무덤의 내부로 들어서면 동짓날에 해가 뜨는 방향으로 돌들이 이어진 널길이 나오고, 그 끝에는 둥근 돌방이 있다. 이 방은 입구보다 180cm 가량 높은 곳에 자리해 있다. 이는 동짓날에 태양 빛이 무덤 안으로 들어와 생명의 불꽃을 되살리길 바랐던 건축가의 세심함이 반영된 설계다. 아일랜드 미스 카운티에서 한겨울 새벽녘의 햇빛은 다이아몬드 만큼이나 귀하다. 일 년 중 바로 그날이면 햇빛이 18m 길이의 널길을 지나 봉분 깊숙한 곳까지 들어올 것이고, 거기 새겨진 세 갈래의 소용돌이를 17분가량 비출 것이다. 소용돌이 또한 원을 그린다. 세 가닥으로 뻗어나가는 양치식물, 파도의 세 갈래 물결이 떠오르는 문양이다. 혹자는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뉴그레인지처럼 가장 오래된 고대의 맥락에서 이 문양은 무한함과 시간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닐 올리버,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뉴그레인지(또는 뉴그랑지)는 선사시대의 거석 무덤이다. 위의 닐 올리버 글에 묘사된 부분에 해당하는 사진을 en.wikipedia.org에서 가져왔다. 윗 글에 표현된 무덤의 형태를 아래 사진과 비교해 보자. 


뉴그레인지의 겉모습
뉴그레인지 도면
가장 끝 방 (내쌓기 기법으로 만들어진 천정을 아래에서 올려다 본 모습)
가장 안쪽 방 상판에 장식된 3갈래 회오리 패턴
길게 이어진 passage(널길)와 동지무렵 무덤 안으로 길게 들이 비치는 햇살







나이가 들수록 나의 관심은 과거로 향한다. 초기 인류의 삶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힌트라도 찾을 수있을 듯하여... 


자연에 기대어 살던 시절, 죽음은 재생을 보장했다. 천지 사방으로 사냥하고 채집하며 먹고 살던 시절. 겨울이면 만 생명이 종말을 고한 것 같았는데, 봄이 되면 모두 돌아왔다. 봄이면 곰은 오랜 동면을 마치고 새끼들을 데리고 동굴에서 나왔고, 뱀도 돌아왔다. 사슴에게는 새뿔이 솟기 시작했다. 겨울에 어디론가 떠났던 새들도 돌아왔다. 나무와 식물들은 새싹을 틔웠다. 


하지 이후로 점점 짧아지던 햇살. 게다가 북극에 가까운 곳이라면 그 짧은 햇살 조차도 사라져 버리는 시기. 그러다 동지를 기점으로 햇살은 다시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햇살은 만생명에게 에너지를 주어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죽은자도 부활시켰다. 거석 무덤. 그 무덤 속 가장 깊숙한 곳까지 동지의 햇살이 닿았다. 영혼이여 부활하라! 깨어날 때가 되었노라! 


주역에서도 꽁꽁 얼어붙은 땅에 따뜻한 양기가 하나 들이비치는 것을 상징화한 지뢰복괘를 통해 동지 무렵을 나타내고 있다. 


지뢰복괘



이런 동지날이 어찌 신성한 날이 아니었겠는가! 그래서 고래로 동지를 새해의 첫날로 삼는 문화권이 많았다. 동지는 그런 날이다. 새롭게 태어나는 날. 



매거진의 이전글 눈 내리는 설날 아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