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희곡 다시 읽기
* 이 작품은 계명대 김종환 교수 번역의 지만지드라마 판본으로 읽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보통 “성격 비극”이라고 특징한다. 한 사람이 가진 성격적 결함이 비극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야말로 그것에 가장 합당한 작품이 아닌가 한다. 귀족이자 장군으로써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운 사람이지만 그의 성격 탓에 삶이 비극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코리올라누스는 BC 5세기의 고대 로마 장군이었다. 귀족 신분으로써 전쟁에 나가면 승승장구하는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가이우스 마르키우스였다. 코리올라누스라는 이름은 나중에 붙여진 것이다. 그러면 코리올라누스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고 글을 시작하겠다. 주인공이 살던 시대의 로마의 적국 중 하나가 볼스키족이 다스리는 볼스키였다. 그리고 그 수도가 코리올리였다. ‘코리올라누스’란 바로 이 수도 “코리올리를 정복한 자”라는 칭호이다. 로마 장군 가이우스 마르키우스가 코리올리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자 로마의 총사령관이 원로원의 재가를 받아 하사한 이름이 코리올라누스였다. 그래서 그의 full name이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코리올라누스가 된 것이다. 전쟁 승리 후에 얻은 칭호이지만 나는 이 글에서 그의 이름을 코리올라누스라고 칭하겠다.
코리올라누스를 읽는 도중에도, 다 읽고 나서도 나는 생각이 좀 복잡했다. 이 뛰어난 장군이 도대체 무슨 결점이 있어서 그토록 험난한 인생을 살아야 했을까? 그 많은 공훈을 세우고도 왜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했을까? 그 정도의 공훈이라면 평생 존경 받으면서 남은 인생을 편안하게 살아야 했텐데 적군에 살해되어 비극적으로 삶을 마치고 말았으니.
그 원인을 보면 지극히 그의 성격적 결함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 성격에 결함이 있었다면 고쳐야 하지 않았을까. 또 시대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자기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을 바꿀 수 없었다면 바꾼 척이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그런데 그는 시대의 흐름도 거부했고, 자기의 생각을 바꿀 생각도 전혀 없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명예를 중시했고, 귀족으로서, 장군으로서 자기의 할 일에 전념했다. 결론적으로 그것이 나라와 시민들을 지키는 일이었음에도 그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행동은 그 자신의 명예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른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코리올라누스⟫를 쓰던 시기의 영국 상황
셰익스피어는 비극 ⟪코리올라누스⟫를 쓸 때 ⟪플루타르크스 영웅⟫에 나오는 코리올라누스를 참조하였다고 한다.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 것이 아마도 1605년이후일 것으로 보고 있는데, 당시의 영국의 정치상황이 코리올라누스가 직면했던 고대 로마의 정치 상황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영국은 제임스 1세의 통치기로 의회파와 왕당파 간에 극렬히 대립하고 있었다. 제임스1세는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는 의회파와 각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 시대에는 의회의 힘이 점점 커지고 있던 때이다. 코리올라누스가 살았던 로마에서도 시민들이 굶주림으로 폭동을 일으켰듯, 잉글랜드에서도 굶주린 민중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그런 시대 상황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던 고대 로마와 코리올라누스라는 한 인물에 빗대어 희곡화한 것이다.
작품의 줄거리
로마에서 굶주림으로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메네니우스라는 귀족이 나서 시민들을 달랜다. 시민들이 귀족의 창고에는 곡식이 넘쳐나는데 왜 우리는 굶주려야 하느냐. 귀족들의 창고만 풀어도 우리는 먹고 산다고 항변하자 메네니우스는 복부 우화를 들어 시민들을 달랜다. 몸의 모든 기관이 일하지만 그 음식이 도착하는 곳은 복부이다. 그런데 복부가 아무 일도 안했다고 복부를 공격해서 되겠느냐. 우리 몸이 돌아가려면 모두 협력해야 한다. 우리 귀족이야말로 복부와 같은 사람이다. 복부를 위해 모든 기관이 협력하듯 시민들도 우리를 공격할 것이 아니라 협력해야 한다.
윙? 이 무슨 논리인가? 나도 설마하여 셰익스피어가 코리올라누스를 쓸 때 참고했다는 ⟪플루타르코스 영웅⟫ 속의 코리올라누스를 읽어 보았다. 두 작가의 작품 속 코리올라누스의 인생에 대한 묘사는 별로 어긋나는 부분이 없었다. 단지 플루타르코스가 코리올라누스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듯이 썼다면 셰익스피어는 코리올라누스를 주인공으로 하여 실제로 그가 로마에서 겪고 있는 현재형으로 작품을 각색하였다. 그리고 민중의 대표였던 호민관을 등장시켜 이 호민관이 어떻게 로마 시민들을 선동하는지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 속의 코리올라누스에도 바로 이 복부 우화가 등장했다. 이 연설을 듣던 시민들이 얼마나 기가 찼을 것이며, 귀족들이 시민들을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로 여겼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폭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 코리올라누스는 적국인 볼스키와 싸워 승리한 후 귀국했다. 그는 귀족 신분으로써 전쟁에 나가면 승승장구하는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러나 로마를 위해 많은 전공을 세웠지만 그의 도처에 적이 있었다. 그가 지나치게 오만한 것이 그 이유였다. 특히 시민과는 첨예하게 각을 세웠다.
적국인 볼스키와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고 돌아온 그에게 원로원은 집정관으로 그를 임명하고자 했다. 그런데 집정관이 되려면 시민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그는 누더기 옷을 입고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자기의 전공을 홍보하기도 하고, 전쟁에서 입은 상처들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시민들에게 동의를 끌어내야 했다. 그렇게 시민들이 로마를 위해 공헌한 그의 전력에 감동하여 찬성을 해주어야 집정관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이 당시의 일반적 관행이었다. 그러나 그는 시민들의 찬성을 얻기 위해 전쟁에서 입은 상처를 일부러 보여주며 동정을 호소하여 집정관이 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노모가 설득하고, 원로원의 귀족들도 그리해야 한다고 설득하니 그는 마지못해 그 일을 시민 앞에서 했다. 그가 자존심에 상처까지 보여주면서 동정표를 구하는 짓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시민들 앞에 서서 자기의 전공을 홍보했고, 시민들도 그의 노고를 칭송하여 집정관이 되는데 동의를 했다. 그런데 호민관인 시키니우스와 부루투스는 코리올라누스가 자기들에게 여전히 뻣뻣하게 구는데 화가 나서 민중들을 선동했다. 오만한 코리올라누스가 집정관이 되면 시민들을 더 핍박할 것이며 자기들을 더 깔볼 것이라고 하면서…. 그에 호도된 시민들은 찬성을 파기했다. 호민관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나중에 코리올라누스가 우리에게 보복할지 모르니 그를 아예 추방하자고 시민들을 선동하였고, 실제로 추방령이 내려졌다.
그는 귀족으로서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시민들을 얕잡아 보았기에 귀족의 권력이 시민들에게 양도되는 것이나 귀족이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서 직위를 가지게 되는 것에 대단히 분노했던 사람이다. 귀족정 시대의 전형적인 인물이 코리올라누스라 하겠다. 그럼에도 노모와 그를 좋아하는 원로원 귀족들의 설득으로 할 수 있는 한 시민들 앞에서 자기를 낮추었지만, 중간에 호민관들의 농간과 선동으로 일이 틀어졌고, 게다가 귀족들 중에도 자기를 지지해 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에 원한을 품고 로마를 떠났다. 한편에서는 그가 없다면 적군들이 로마에 쳐들어 올텐데 어떻게 나라를 지킬 것이냐고 걱정하는 귀족들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쫓겨난 그는 바로 전에 승리를 거둔 볼스키로 넘어간다. 그의 마음에는 오로지 로마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볼스키군들과 로마의 변방을 침공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제 다급해진 쪽은 로마였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나가서 싸우려 하지 않았고, 호민관들은 귀족과 시민들로 부터 동시에 추궁을 당했다. 그를 쫓아낼 때는 호기롭게 쫓아냈지만 정작 로마가 침공을 당하고 보니 적군에 맞서 싸울 용장이 없었던 것이다. 귀족들이 호민관들에게 잘잘못을 따지자 호민관들은 “지금 그런 것 따지고 있을 때이냐. 빨리 이 문제 부터 풀어야 하지 않느냐.” 라고 하며 적반하장격으로 원로원의 귀족들에게 빨리 사절을 보내서 전쟁을 그치도록 하라고 다그치는 뻔뻔스러움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절을 보냈지만 코리올라누스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볼스키측의 장군과 그는 같이 로마를 점령하기로 계획을 세웠고, 같이 그 계획을 실행중이었다.
절친했던 친구 메네니우스가 그를 찾아가서 설득해도 듣지 않자 마침내 귀족들의 부인들이 나섰다. 그리고 코리올라누스의 어머니가 나서줄 것을 청했다. 마침내 코리올라누스의 어머니는 코리올라누스의 아내, 그리고 어린 손자까지 대동하고 적진으로 그를 찾아가 설득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전쟁에 이겨도 전쟁에 져도 그의 상황이 진퇴양란일 것이라는 충고를 하며 양국이 전쟁을 그치고 화해하도록 노력한다면 결국 두 나라에게 모두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고 설득한다. 마침내 누구의 설득도 듣지 않던 코리올라누스는 어머니의 설득을 받아들여 로마와 볼스키간의 화해를 선언한다. 양측 모두 만족한 듯 보였다.
그러나 볼스키측 장군 툴루스는 이 화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툴루스는 볼스키족 사이에서도 전쟁의 전공을 모두 코리올라누스가 차지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코리올라누스에 대해 심한 질투심을 느끼고 있던 툴루스는 코리올라누스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만약 코리올란누스가 애초의 약속대로 자기들 편에서 로마를 쳤다면 그들이 로마를 점령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양국의 화해를 선언해 버리는 바람에 그 기회가 물거품이 되었다. 심지어 화해를 선언하기 전에 그에 대한 어떤 상의도 자기와 하지 않고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서도 대단히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결국 툴루스 장군과 그의 측근들이 코리올라누스를 제거하기로 작정하고 시민들로 부터 축하를 받고 있는 사이에 시민들 사이에 섞여들어가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그를 찔러 죽이고 말았다.
코리올라누스의 성격적 결함
코리올라누스는 귀족으로서, 그리고 장군으로서 자기의 역할에 자긍심이 컸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도 전리품을 사적으로 챙기거나 재물에 욕심을 두지 않았다. 전리품을 나눌 때도 일반 병사들과 같이 평등하게 나누었지 먼저 독차지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것을 상대를 진정으로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것이 귀족으로서 자기가 지켜야할 명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시민들에게 권력이 점점 더 주어지는 것에 대해 대단히 분노했다. 시민들은 어리석으며 권력자의 이간질에 부화뇌동하는 하찮은 인간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전혀 그들에게 잘보이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친절하지도 않았다. 이미 시대는 귀족과 함께 시민들에게도 권력이 주어져 있었던 시대임에도 그는 고위직의 귀족이자 장군으로써 시민들의 힘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니 시민들의 대표인 호민관들에게 친절할 리가 없었다. 이미 시민들의 동의가 필요한 직위가 많았지만 그는 그것에 개의치 않았고, 전혀 자기를 굽히지 않았다. 그러니 뛰어난 전공을 세워놓고도 호민관들의 이간질로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같은 귀족 내부에서도 그의 능력을 시기 질투하여 그를 끌어내리려고 하는 세력들도 있다 보니 결국 그는 추방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또한 추방을 당했다고 바로 적군으로 넘어가 로마를 공격한 그의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 하겠다. 그는 나라를 지키려고 전쟁터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명예를 위해서 전쟁터에 나간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니 나라에서 추방을 당하자 바로 자기의 복수를 위해 맞서 싸웠던 적군으로 투항하여 그들과 함께 로마를 공격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옳은 행동인지 한번만 생각해 봐도 결론은 뻔하다. 그가 적군의 편으로 넘어가 로마를 침공하여 성공을 거둔들 로마는 자기의 가족이 사는 땅이 아닌가. 또 그가 로마를 정복하고 적군의 장군으로 산다한들 그 적군들이 얼마나 그를 신뢰하고 존경해줄 것인가.
또 하나 그의 불찰이라면 양국간의 화해를 할 때 볼스키의 장군인 툴루스와 사전에 의논을 해야했다. 그런 것도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하여 화해를 하는 그를 보고 과연 볼스키의 장군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이런 모습을 보면 코리올라누스가 얼마나 독선적이고 오만한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비극은 그가 자초한 측면이 대단히 크다.
이래저래 코리올라누스를 읽으면서 그의 천성이 조금 더 사회적이었더라면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위직의 귀족으로써 그는 시민을 적대시했고, 시민들의 능력을 앝잡아 보았다. 그는 모든 것은 귀족을 통해 시민에게로 나눠지는 것이지 시민이 권리를 가진다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못했다. 그는 시민들을 향해 그들이 나라를 위해 전쟁에 나가길 하느냐, 오히려 전쟁터에는 나가지 않으려 하면서 자기들의 권리만 누리려고 한다고 말한다. 일면 맞는 말이다. 사실 시민들은 공적을 세우고 돌아온 그에게 칭송과 감사를 표해야 했다. 그럼에도 집정관에 나선 그에게 자신들에게 자세를 낮춰주기만을 바랬다. 호민관들도 그가 전혀 시민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았다고 하며 시민들을 선동하여 동의를 철회한데는 호민관들을 업수이 여긴다는 괘씸한 마음도 작용했다. 권력자를 시민의 이름으로 자기들 앞에 무릎꿇리려고 하는 호민관들의 개인적 복수심을 보고 있으면 귀족이자 장군인 코리올라누스의 분노를 이해못할 바도 아니다.
정작 적군이 쳐들어 오고 로마의 도시들이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호민관도, 시민도 아무 것도 못하고 발만 구르고 있었으니 장군인 코리올라누스의 입장에서 그들을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누리려는 그들에게 분노가 치밀 수 밖에 없었을 듯하다. 자기는 목숨을 걸고 나가서 전쟁을 치르고 돌아왔는데, 그 공로로 직위를 받을만도 하건만 누더기를 입고 전쟁에서 입은 상처까지 보여주며 동정심을 구걸하여 시민의 호응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멸적이었을지 충분히 이해가 가기 때문이다.
고전이 전하는 현재성
이 작품을 쓰던 시기의 영국은 시민들의 힘이 점차 성장해가던 시기였다. 그런 시대에 제임스 1세는 왕권신수설과 같은 시대에 뒤떨어진 논리를 펴고 있었고, 시민을 대표하는 의회파와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었다. 이 갈등은 그의 아들인 찰스 1세 통치기까지 이어지며 내전이 일어나고 말았다. 결국 찰스 1세는 의회파에 체포되어 처형되고 말았다.
당시 왕정파와 의회파 간에 벌어지는 갈등상황이 코리올라누스가 처하고 있던 시대상황과 비슷했다. 코리올라누스를 왕당파에 비유한다면 의회파는 시민들을 상징하고 있으니. 코리올라누스가 시대의 변화를 무시하고 귀족으로서의 자기 명예에 천착했던 것처럼 제임스 1세와 이어지는 찰스 1세까지도 그 시대상에 맞서다 코리올라누스처럼 결국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 작품을 읽다보면 전적으로 누가 옳다고는 말하지 못할 상황이 대부분이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조금씩 감정이입이 되기 때문이다. 작품을 다 읽고난 이후 느낌은 코리올라누스가 살았던 2500년 전이나,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4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것이 고전의 힘일 터이다. 각자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최대한 자기들의 욕망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살이라 하지만 공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만큼은 정의와 공정성을 원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시민들의 힘이 훤씬 더 커졌지만 여전히 시민들이 뽑은 위정자들이 그 권력을 시민들을 위해 정당하게 쓰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귀족이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시민들이 뽑아준 그 사람들이 시민을 위해 일해주기 보다는 작품 속의 귀족들처럼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면서 시민들을 업수이 여기는 위정자들이 많으니. 적어도 시민의 대표로 뽑힌 사람이거나, 나라의 고위직에서 한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이라면 그 권력을 정당하게 써주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가 아니겠는가. 코리올라누스를 읽으며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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