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세요?
* 본 작품은 2021년 7월 31일 출간된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니다> (포춘 쿠키)에 실린 9편의 에세이 중 "제가 어떻게 하면 뽑아주시겠어요" 부분을 출판사 허가하에 연재한 것입니다.
* 본문의 주석은 번호와 밑줄로 표기한 후, - 구분자를 이용해 출판사 버전을 간소화하여 실었습니다.
나는 무명작가이며 잡식성 작가다. 좋게 말하면 호기심이 많고 나쁘게 말하면 족보가 없다. ‘너 참 별나다’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별나다’는 보통과는 다르게 특별하거나 이상하다는 뜻이다. 신기하거나 흥미롭다, 경이롭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지만 기괴하다, 엉뚱하다, 심지어는 불편하다 혹은 나댄다는 의미로도 쓰일 수 있다.
사회적 평판이 중요한 사람에게 작가라는 직업은 불리하다. 사회적 평판이 경제적 평판에 좌우될 때 특히 그렇다. 내가 대학로에서 지냈을 때, 무명 배우 연봉은 보통 약 300만 원이라 했다. 무명 배우 생활고 지긋지긋하다 생각했는데 작가도 별반 다를 게 없다고들 한다. 1) 이다혜 작가는 2015년 1년간 예술 활동을 통한 수입 평균이 300만 원이고 36.1%는 수입이 전혀 없었다며 원고료가 오르지 않는 시대의 에세이 쓰기에 대해 말한다. 2020년 [과학 스토리텔러 양성과정]에서 만난 곽재식 작가는 2017년 통계를 기준으로 출판작가 연봉이 평균 300만 원이라 했다. 그렇다. 300의 늪이다. 작가는 4대 보험 직장인도 아니고, 수입이 적어 개인사업자 등록하지 않으면 사업자도 아니다. 즉 대출받을 수 없다. 어쩌면 주변에서 ‘사람 구실 못 하고 산다’, ‘허영에 빠졌다’라는 끔찍한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내가 들어봤고, 내가 그렇게 늘 수입 걱정하고 산다. 그런데도 낮이고 밤이고 머릿속에 나만의 필름 릴이 돌아갈 때가 필름이 멈추었을 때보다 더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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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다혜, 위즈덤하우스, 2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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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는 케이툰에 〈은퇴한 아이돌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연재했다. 2016년에는 탑툰에서 〈오늘의 남편〉을 연재했다. 그러니까, 나는 웹툰 글작가다. 그렇다고 웹툰에만 관심 있는 것은 아니다. 2년 전쯤 쓴 SF ‘OS 새서울’의 배경은 사람들이 전두엽과 해마 사이에 네트워크 칩을 이식해서 살아가는 시대이다. 이건 도저히 웹툰으로 기획할 자신이 없었다. 빡빡한 웹툰 일정에 황폐한 서울과 미래 빈민촌이라니. 웹툰 스케치업 시장에 돌고 있는 통상적인 배경을 활용하기 어렵고, 낯선 관계와 사건들을 묘사하기에는 그림 컷 수가 너무 많이 늘어날 것 같았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를 웹소설 형태로 도전했다.
2015년에는 잠깐 팟캐스트 〈딴따랄라 히스토리〉, 〈심쿵쇼〉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즈음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는 신촌의 명물, 빨간 버스가 설치되었다. 빨간 버스 안에는 서대문구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팟캐스트 녹음실이 있는데 운 좋게도 기획이 두 건이나 통과되었다. 공동 진행자가 있기는 했지만 주로 자료를 넘겨받은 후 대본 집필은 내가 했다. 2)이 경력과 〈오늘의 남편〉 연재 덕분에 2016년 8월 팟빵에서 30, 40대 여성을 겨냥한 라디오 드라마 기획 미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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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팟빵 측에서 이미 연재한 이야기보다는 원천 스토리를 더 선호한다기에 무산되었지만……. 당시 미팅에는 영화 〈경축! 우리 사랑〉의 박윤 작가님도 계셨다. 글 쓸 기회를 찾아 여러 도전을 하는 극작가는 생각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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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전에는 주로 드라마, 영화 공모전과 카페 등에 뜨는 시나리오 모집에 계속 지원했다. 단편영화 공동집필을 한 적은 있으나 공모전에 당선된 적은 없다.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사극 판타지물 ‘고리’를 썼을 때는 기본 틀이 드라마였는데 영화사에서는 영화화 제안이 오고, 드라마 제작사에서는 너무 영화 같으니 드라마 제작환경에 맞춰서 수정한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결국, 몇 달을 오가며 수정만 할 뿐 연락이 오지 않았다.
드라마, 영화, 팟캐스트, 웹툰을 도전하기 전 맨 처음 극화를 공부한 것은 연극 대본이었다. 배경 설정, 해설, 지문, 대사, 기승전결, 등장인물 설정의 뼈대를 익힌 것도 연극 대본을 통해서였다.
이야기가 아닌 글쓰기는 칼럼을 연재한 적 있고 웹툰 비평 공모전에 도전했다. 지금은 당신이 읽는 에세이를 쓰고 있다. 여기저기 기웃기웃하며 글을 써댄 나의 필명은 때론 달달, 때론 흥부자였고, 가장 최근작에서는 ‘아노(Art Nomad)’였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주로 뭐 하세요?” 하고 물어올 때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 이 질문만 받으면 여전히 그렇게 허둥댄다. 여기까지 써 내려온 내력을 다 설명할 순 없다. 사람들은 간결한 대답을 원한다. 그래서 가장 유리한 걸 답한다.
웹툰 글작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