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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끝으로 길어 올린 삶의 속성과 그림

오소영 작가의 그림을 보고

by 김현명

오소영 작가의 그림을 보며 왠지 그림이란 무엇일까? - 라는 아주 초보적이고 기본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담무쌍하고 격정적이며 양식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어떤 작가들에게 경외심을 지니기도 하고, 깊은 철학적 사유에 큰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작지만 드라마틱한 동선을 지닌 공간(18-1갤러리)에 걸린 오소영작가의 그림이 '우리의 시대와 공간에서 그림이란 무엇일까?'라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추측해 보기는 오소영 작가가 오랜 시간 스스로 살아내었던 그 환경과 지역에 커다란 영향을 받은 시선으로 (어떤 예술 시장이나 지배적인 문화의 배경과 거리가 있는) 그려내는 풍경을 담아낸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환경과 조건에 매몰된 시선은 아닐 것이다. 풍경 속에서 작가는 스스로를 응시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그림은 찰나가 아니라 긴 밤의 지난 시간에 덧칠한 배경과 닥쳐올 적막한 무심함들을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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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같은 어둠을 가로지르는 낮은 지평선, 그 위로 번지는 여명이나 인공의 불빛, 고요한 밤하늘을 채운 깊고 푸른색의 변주. 이 모든 요소는 우리가 경험했을 법한 현실의 한 조각이다. 그러나 작가의 붓끝에서 이 풍경들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다. 외딴집의 실루엣은 고독과 안식의 양가적 감정을, 예고 없이 피어오르는 불길과 연기는 소멸과 생성의 에너지를, 광활한 하늘은 유한한 존재가 마주한 숭고한 세계를 상징하는 강력한 기호가 된다. 만일 이런 말이 가능하다면.. 그의 그림을 상징적 사실주의 Symbolic Realism라고도 부르고 싶다. 그림은 하나의 사실적 투영이면서도 액자-공간-상징을 필요로 하는 또 하나의 삶의 대상체 (아이콘) 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 미학적 표현을 제거한 좀 더 완곡한 표현인, 약간의 구성이 가능한 거울 이라고 해 두자.


삶의 조건과 환경을 관조하면서도 구도자로서의 고통을 기꺼이 수렴해 내는 감정을 눌러 담은 풍경들은 우리가 작품이라고 일컫는 ‘그림’ 그 자체의 속성에 관해 겸허하게 바라보게 한다. 우리의 삶과 조건이 하나의 그림이자 상징이라는 점. 그래서 사실주의와 상징이 하나의 액자 안에 전혀 거부감 없이 오롯이 담겨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림’이라는 것이 삶에서 지닌 가장 근본적인 환기이자 토대임을 일깨워 준다. 풍경들은 역설적으로 ‘그림’이라는 매체의 본질, 즉 세계를 담아내는 창(窓)이자 '시선이라는 속성 그 자체로 완결되는 실존적 울림'이라는 인간적 속성을 겸허하게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 안에서 사실주의와 상징주의는 조금의 거부감도 없이 온전히 하나로 녹아든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의 삶과 우리가 처한 시간의 조건 역시 그 자체로 하나의 실존의 흔적이자 상징임을, 현실이면서 동시에 의미를 품은 텍스트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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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영의 그림은 우리가 잠시 잊고 지냈던 삶의 근원적인 가치를 일깨우는 조용한 계시와 같다. 어쩌면 옳고 그름 그 자체를 떠나 (바로 우리 스스로의 자신을 옥죄던 율법으로부터 떠나) 늘상 우리가 잊었던 숭고하고도 거룩함으로써의 삶의 속성 - 그저 재현의 도구일 뿐인 - 우리의 짧고도 짧은 액자의 그림으로 남을 뿐인 불꽃같은 우리의 생명을 함께 떠 올리게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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