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맨땅에서 디지털 제품 로고 만들 때
이번에는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디자인 관점을 서비스 로고 제작에 대입해 보려고 합니다.
서비스의 생김새를 만드는 디자이너는 ‘멋져 보이는’ 서비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매몰되기 쉬운데요. 실제 디지털 제품에는 디자이너 본인의 취향은 잠시 접어두고 사용자에게 필요한, 혹은 시장(Market)이 원하는 방법인지 고민하고 제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시장과 유저의 반응을 얻어내는 서비스가 오랫동안 생존할 가능성이 높고, 이를 기반으로 자연스레 유저 경험을 설계할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좋은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실제 디지털 프로덕트를 만들거나 운영해보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에게 기대하는 것은 물론 심미적인 부분도 있지만, 결국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시도와 경험을 했는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경험이 실제 디지털 프로덕트 디자인 경험이고요.
그렇다면 디자이너가 서비스를 만들 때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까요? 이번 글에서는 예시로 ‘레시피 앱'을 디자인하는 상황을 연출해 보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리를 위해 참고하는 장르라 대중성 있고, 빠르게 리서치해본 결과 아직 한국 앱 시장에 독점적인 서비스가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 글의 분석은 독자들의 리서치를 돕기 위한 용도로, 실제 언급된 서비스의 전략과 무관합니다.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 것이므로 실제 유저 데이터, 브랜드 의도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로고는 고객이 그 서비스를 사용하기 전 접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이미지이기 때문에, 앞으로 디자인할 레시피 앱을 유저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첫인상이 됩니다. 먼저 이 세상에 출시된 로고는 어떤 것이 있고, 왜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지 유추해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의 로고가 존재하고, 각각의 로고를 분석해 보면 브랜드별 전략과 의도를 유추해볼 수 있는데요, 여기서는 디지털 서비스의 로고와 그 형태로 좁혀서 형태에 대한 이유를 분석해 보고, 우리가 디자인할 레시피 앱의 논리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스마트폰의 앱을 사용하며 보이는 수많은 아이콘, 기억하시나요? 로고란 간단히 말해 그 서비스를 대변할 수 있는 대표적인 형상인데요, 앱 서비스라면 일반적으로 앱 아이콘 영역에 그들의 로고를 넣습니다. 예시 이미지 속 로고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네이버 웹툰과 카카오톡의 경우, 로고에 서비스를 대표할 수 있는 단어가 메인으로 들어가 있네요. 만화 컷을 합쳐둔 듯한 형상, 말풍선 모양이 어떤 서비스인지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지그재그의 로고도 단어를 사용했지만, 조금 다른 형태입니다. 이렇게 지그재그 하면 연상되는 ‘길’의 형상과 단어 ‘Zigzag’를 한 번에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의집 로고는 어떨까요? ‘오’라는 서비스 첫 글자와 ‘집’ 모양이 합쳐진 로고인 것 같네요.
당근마켓의 경우, 서비스명을 그대로 활용한 당근(당신 근처) 모양 GPS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다섯 가지 서비스 모두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서비스에 직접 들어가 보지 않고 로고만 보더라도 한눈에 서비스의 특징을 인지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는 점입니다.
로고를 구성하고 있는 특징을 살펴보았으니, 이를 적용해 ‘레시피 앱’의 로고를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디자인하려니 다른 레시피 앱은 있는지, 있다면 어떤 로고를 쓰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다른 레시피 서비스의 로고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동종 업계 로고를 리서치하면 비슷한 로고 디자인(저작권 리스크)을 미리 제외할 수도 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표현 방법을 보고 영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스토어 상위권 레시피 앱 로고를 보면, 첫인상이나 생김새는 앞서 살펴본 서비스 로고와 굉장히 달라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형상이나 서비스명 첫 글자를 사용하는 등의 전략이 여기서도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두 가지 흥미로운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1. 로고를 구성하는 색상이 대체로 우리가 먹는 요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색(녹색, 갈색, 주황색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만약 로고의 색이 보라색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일반적으로 보라색은 식욕을 감퇴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레시피 앱에 사용했다면 제품의 첫인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만들고 싶은 서비스의 특징과 색상의 특징을 함께 고려하여 서비스 로고를 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2. 맨 마지막 ‘백쌤의 요리비책 레시피’ 서비스 로고는 새로운 유형이네요. 유명인의 일러스트레이션과 주력 상품명을 모두 로고에 넣어 서비스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전략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서비스 이전에 ‘백쌤'이라는 유명인, ‘요리 비책'이라는 레시피명이 이미 많은 소비자들에게 각인된 상태이기 때문에 유효한 전략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너무 많은 요소를 작은 공간에 넣어두었기 때문에, 다른 로고에 비해 로고의 의미를 바로 파악하기 힘든 특성도 갖고 있습니다. 유저에게 미리 각인된 요소 없이 처음부터 레시피 앱의 가치부터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전략은 위험이 더 커 보입니다. 정말 짧은 시간 동안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스토어 로고의 특성상 너무 많은 정보를 로고 영역에 넣게 되면 유저가 서비스를 주목하지 못할 확률이 높고, 서비스는 선택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시장에 나와 있는 여러 로고를 살펴보았으니 이제 서비스 로고를 직접 만들어볼 차례입니다. 로고 디자인에 손을 얹기 전에 어떤 콘셉트의 로고를 만들지 실제적인 구상이 필요한데요, 앞에서 다른 로고를 살펴보며 만들 서비스에 적용할 기준을 세웠습니다.
레시피 서비스 관련 키워드(요리 or맛 or레시피)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이미지
캐주얼한 느낌, 다가가기 쉬운 이미지
가능하다면, 입맛을 돋울 수 있는 이미지
정보의 양이 많지 않은 이미지
완성된 로고 시안 중 왼쪽의 이미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입맛을 다시는 표정’ 은 위 네 가지 기준에 부합하면서도 현재 한국 시장의 로고와도 차별성이 있는 상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포인트가 되는 혀의 빨강 컬러도, 실제 요리 재료에 많이 사용되는 컬러이자 입맛을 돋우는 색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서비스와 궁합이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서 오른쪽 ‘맛보기'를 로고로 도출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로고 이미지와 함께 서비스명도 고민하게 되었는데요, 이 역시 네 가지 기준을 고려해 캐주얼하면서 입맛을 돋울 수 있는 서비스명인 ‘맛보기’라는 이름으로 선정했습니다.
서비스명을 한 번에 선정한 이유는 이를 타이포 형태의 로고로 함께 고민, 제작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이 역시 위 네 가지 기준을 생각하며 시각화했습니다. 구체적인 기준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입맛을 다시는 메인 비주얼과 잘 어울리고,
2. ‘다가가기 쉬운’이라는 기준과 잘 맞고,
3. 비용 제한, 승인 없이 바로 쓸 수 있는 ‘상업적 무료' 폰트를 검색했습니다.
4. 무료 폰트 중, 폰트 자체의 특징이 다른 의미로 인식될 여지가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미 전국적으로 널리 사용되어 특정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폰트, ‘본문’에 어울리는 가독성 위주 폰트 등은 제외했습니다.
이런 기준으로 여러 폰트를 비교한 후, 가장 적합해 보이는 ‘넥슨 메이플스토리 Bold’ 체를 선정했습니다.
직접 제작한 폰트가 아니라면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브랜딩에 사용될 폰트가 상업적 이용이 가능한 상태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폰트가 있을 경우, 배포 중인 웹사이트에서 해당 폰트의 사용 범위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폰트를 찾아볼 때, 비용 효율을 위해 상업적 용도로 무료 이용 가능하도록 배포된 폰트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데요, ‘눈누’라는 서비스를 이용하면 한국의 상업적 무료 이용 폰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폰트 사용 정책 표기 예시. 폰트 배포처에서 명시한 용도와 내 폰트 사용 목적이 일치하는지 꼭 확인하고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회사 작업의 경우, 저작권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폰트 사용은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로고 디자인을 진행하며 서비스명까지 함께 고민했기 때문에 실제 서비스의 형태, 다른 레시피 서비스와의 차별점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로고는 서비스의 첫인상을 가장 잘 대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서비스가 아직 구현되지 않았다면 더더욱 서비스명 선정 시 서비스에 대해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초기부터 서비스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 일단 가제로 시작해 어느 정도 서비스의 구체적인 방향이 잡힐 때까지 서비스명을 함께 고민하며 확정 짓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서비스명과 로고를 함께 고민하면 서비스에 대한 표현 방법을 다각도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번에 사용한 방법을 정리하면 [정보수집]-[패턴 발견]-[원칙 수립]-[실제 적용]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 상황이라면 프로세스 중간중간 다른 이해관계자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이를 함께 고민해 디자인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피드백받는 과정을 포함한다면 이번에 진행한 방법은 유명한 디자인 방법론 중 하나인 더블 다이아몬드와도 유사한데요, 로고가 아닌 다른 디자인을 진행할 때에도 비슷한 프로세스를 적용해 작업을 진행하면 효과적입니다.
프로덕트 디자인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품의 성공에는 디자인뿐 아니라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이 방법이 특정 제품이나 조직, 상황에 더 잘 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덕트 디자인을
1. 고객을 찾고
2. 고객이 만족할 만한 제품을 찾아
3. 만들어 제시하는 일
이라고 정의한다면, 극단적으로는 지금 글을 읽고 계신 이 순간에도 고객의 니즈나 행동이 변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덕트 디자이너에 대한 기대 역량은 회사, 상황, 연차별로 다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의 흐름을 따라 디자인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실제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일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며,
논리와 분석적 사고가 제품 디자인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고,
유사한 방법론을 통해 본인의 포트폴리오에 대한 생각을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방법론을 참고하여 제품을 출시, 테스트해보고 매력적인 인사이트를 도출하기 위한 고민 과정은 현재 상당히 많은 회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량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함께 서비스 로고를 분석, 구상, 발전시켜 보았는데요. 이런 식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다양한 로고 속 의도와 전략을 짐작, 패턴화해 우리의 디자인에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이 모든 디자인 방법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잠깐 보고 지나칠 수 있는 로고 영역을 고객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어필 포인트를 전략적으로 찾고 고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기를 바랍니다. 이 방법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려면 단순히 예쁜 로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략적인 관점에서 고민하고 도출하는 역량이 필요할 것입니다. 회사는 비즈니스를 하는 곳이고 고객의 관심을 끄는 디자인은 비즈니스 관점에서 유용하기 때문에, 실무 디자인에서도 설득력 있는 접근법이 될 것입니다. 물론 조형, 심미성에 대한 이해와 표현 능력은 디자이너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이기 때문에 이렇게 쌓은 논리를 디자이너로서 멋지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