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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RAVEL Sep 27. 2017

비화(秘話) 혹은, 비화(悲話)

발리行 여행인문학

발리行 여행인문학

비화(秘話) 혹은, 비화(悲話)



루왁(LUWAK)이라고 불리는 커피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로 유명하다. 루왁은 인도네시아어로 '사향고양이'라는 뜻. 커피 이름에 뜬금없이 동물 이름이 사용된 것은 이 커피의 원두가 생산되는 특별한 제조 과정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 서식하는 사향고양이는 잡식성 동물이다. 그 중에서도 커피 열매를 간식거리로 자주 먹곤 한다. 커피 열매를 먹은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소화가 되지 않은 커피 열매가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루왁 커피의 원두가 된다.


루왁커피는 19세기말 네덜란드의 식민통치 하에 있던 인도네시아 커피 농장 노동자들이 처음 발견했다. 당시 인도네시아산 커피는 유럽에서 인기가 아주 좋았다. 네덜란드는 더 많은 커피를 유럽시장에서 팔기 위해 인도네시아 커피 농장 노동자들을 압박했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먹을 커피 열매조차 남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동자들은 커피를 먹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 사향고양이 배설물 속 소화가 덜 된 커피 열매였다. 노동자들은 배설물을 물에 씻어내고 커피 열매만 골라 커피를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인도네시아 커피의 인기는 시간이 갈수록 높아졌다. 네덜란드는 더 많은 양의 커피를 생산하라고 압박했다. 노동자들은 커피 상납 날짜를 맞추기 위해 일반 커피 원두에 루왁커피를 섞어서 넘겨주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인들은 커피의 맛과 향이 변했다는 것을 눈치챘고, 그 독특한 향과 맛이 나는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점점 수요가 늘어나자 네덜란드는 향이 다른 커피를 추적했다. 그렇게 루왁커피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루왁커피는 만드는 과정이 특수하고 야생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을 찾는 일이 어려워 가격대도 상당히 높게 책정됐다. 그럼에도 루왁커피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루왁커피는 단순히 맛 좋은 커피가 아니라 부의 상징이 됐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증가하자, 인도네시아의 커피농장주들은 루왁커피를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결국 찾아낸 방법은 사향고양이 농장을 만들어 사육하는 것이었다.


현재 판매되는 대부분의 루왁커피는 사향고양이 농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농장에서 사육된 사향고양이들은 커피원두를 생산하기 위해, 평생 작은 철창 안에서 커피 열매만을 먹으며 살아간다. 실제로 농장의 사향고양이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못 이겨, 정신이상이나 탈모 같은 질병에 시달린다고. 발리에서도 많은 종류의 루왁커피를 판매하는데, 몇몇 브랜드는 '자연산'이라고 표기한다. 그러나 루왁커피 농장을 탐사하고 있는 환경단체들에 따르면, 현재 자연적인 방법으로 생산되는 루왁커피는 없다고 한다. 제국주의 국가의 억압에 의해 발견된 루왁커피. 억압의 최하층민들이 먹던 커피가 또 다른 억압을 낳고 있는 것이다. 돈을 벌려는 사람들에 의해 힘없는 사향고양이들은 오늘도 자신들의 삶을 모두 잃어가고 있다.


글│아트래블편집부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 ARTRAVEL 

www.artrav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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