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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yd Dec 29. 2020

전체론을 믿으십니까?

'더크 젠틀리의 전체론적 탐정 사무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초등학교 국어 시간 특유의 종이 냄새는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인류 역사에 힘을 실어 준 '말하기'와 '읽기', 그리고 '쓰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 어린 시절의 나는 보드라운 털짐승을 돌보듯 정성껏 수업에 임했다. 홀로 몰두하는 것을 즐기는 여덟아홉 살 꼬맹이에게 '쉬는 시간'은 그다지 중요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많은 정보를 무덤덤하게 나열하던 교과서는 교실 가득히 '인과 관계'라는 단어를 툭 내뱉었다. 이는 앞으로의 시험에서 시간 순서가 중요하게 다뤄질 것을 암시함과 동시에 동화책 속 주인공, 주인공의 적, 교단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선생님, 그리고 우리들까지 이 단어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거대한 선언과 같았다. 어린 나이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아직 없었다. 다만 집단의 가치관에서 한 끝 차이라도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는 패턴이 '인과 관계'의 결과물이라는 관찰 사실만 마음속에서 정의 내렸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강산이 한 번 바뀌고 뒤이어 삼 분의 이쯤 바뀐 현재, 수없이 긴 학교 생활과 산더미같이 쌓인 문제집들로부터 잠시 벗어난 지금, '인과 관계'의 눈앞에 마시던 잔을 쾅 내려놓을 수 있는 강심장의 소유자를 만났다. 그는 다소 평범한 체크무늬 셔츠와 청바지보다 요란스러운 색깔의 가죽 재킷과 코르덴 바지가 더 어울리며, 고양이와 강아지가 마주 보고 맞절하는 세상 속 사람이다. 그에게는 오늘의 살갗을 스치고 지나가는 산들바람이 어제의 돌개바람이었으며, 내일 먹을 피자 한 조각이 오늘의 신문 제1면을 수놓은 기삿거리다.

그의 미소를 믿지 못하겠는가? 기분 탓이다. (c. Netflix)

 그는 바로 '더크 젠틀리(Dirk Gently)'다. 그리고 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인 '더크 젠틀리의 전체론적 탐정 사무소(Dirk Gently's Holistic Detective Agency)'의 주인공이다. 또한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전체론(Holism)'의 산 증인이다. 이쯤 되면 필자나 드라마 작가가 사이비 종교인일 것 같아서 뒷걸음질 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원작 소설도 지닌 어엿한 SF 시리즈물이고 여기는 강남역 사거리도 아니니, 안심하고 읽어나가길 바란다.


 '더크 젠틀리의 전체론적 탐정 사무소'의 원작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인 더글라스 애덤스의 동명 소설 시리즈다. 드라마와 소설은 주인공인 더크와, 그의 뿌리 깊은 신념이자 능력인 전체론을 제외하면 사실상 서로 다른 플롯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에 의존하거나 비교할 필요 없이 책은 책대로,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최고 강점 중 하나다. 세상은 넓고 시간은 많다. 더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냇물'과 같다. 강 상류, 중류, 하류의 풍경에서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면 단조롭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리부트(reboot) 작품이 필요한 이유다. 원작 팬과 드라마 팬이 충돌 없이 작품을 향유할 수 있어 즐길거리가 풍부하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추천 요소를 지닌 셈이다.


 그렇다면 최고 강점 중 두 번째는 무엇이냐고? 바로 시리즈의 철학을 잇는 '색'이다.

 인간의 시신경은 생각보다 예민해서 색깔에 따라 정보를 구분하는 데 탁월하다. 그 특징은 오늘날의 웹 디자인과 광고, BI, 하물며 IDE 창까지도 정보의 성격에 따라 색을 지정하고 '키 컬러(key colour)'를 확립하는 데 일조했다. 드라마를 리뷰하다가 왜 갑자기 색 이야기로 빠지는지 의아할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디지털 기술로 간단히 도출할 수 있다. 바로 '카메라 필터'다.

색의 대비가 뚜렷한 장면들을 통해 시신경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드라마. (c. Netflix)

 모두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 기본 카메라나 인스타그램, 사설 카메라 앱에서 사진에 필터를 씌워 사진을 찍는 상황만의 분위기를 부각한 경험 말이다. 그만큼 사진, 영상에게 색은 중요한데, '더크 젠틀리의 전체론적 탐정 사무소'에는 자신만의 뚜렷한 색 일관성이 존재한다.

 드라마의 로고에는 밝고 쨍한 노란색이 들어가 있다. 그 노란색은 더크가 시즌 1에서 분신처럼 걸치고 다니는 재킷의 노란색과 흡사하다. 아무런 대사 없이 창문을 통해 가택침입을 하는 장면만 재생해도 ' 저 녀석이 주인공이겠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탁월한 선택이다.

Before / After (c. Netflix)
Before / After (c. Netflix)

 다른 주인공들은 또 어떤가? Parabulitis([패:러뷸라-이티스], 드라마 속 가상의 질환)를 앓는 토드와 아만다 브로츠맨 자매는 병과 가난에 시달리며 채도가 낮고 어두침침한 색깔들 속 세상에서 지냈다. 하지만 더크 젠틀리, 그리고 전체론의 또 다른 산 증인인 'Roudy 3'를 만나며 그들의 세상과 안목은 넓어졌으며, 이들의 주변은 도시의 불빛과 그 위의 하늘, 또는 넓은 들판이나 지하 공간의 색으로 가득 찬다. 다른 차원으로 던져질지언정 생동감 넘치게 변한 남매의 필터는 반길 만하다.

 드라마에서 제일 강한 주인공들인 패러 블랙과 바트는 서로 대비되는 색을 지닌다. 패러는 개인 경호원 출신으로 누구보다도 선민 정신이 투철하고 정의에 불타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진중하고 단정하며 차분한 색이 주를 이룬다. 반면 바트는 '물줄기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목표물을 찾는' 전체론적 암살자다. 자유분방하게 팔락이는 잎사귀 같은 바트는 어두워도 가벼운 느낌을 주는 색들의 소유자다. 영화, 드라마를 볼 때 스토리뿐만 아니라 소품도 주의 깊게 보는 내 특성상 이런 꼼꼼한 연출은 내 눈을 정말 즐겁게 해 주었다. 필자와 비슷한 감상법을 추구하는 독자가 있다면 시즌 1 1화부터 꼭 재생해 보시길.

 이제 눈이 즐거웠으니 두뇌가 즐거울 차례다. '더크 젠틀리의 전체론적 탐정 사무소'가 지닌 가장 강력한 추천 요소는 뭐니뭐니해도 '스토리'다. 더크는 탐정이 맞으나 법의학적 근거로 추리하지 않는다. 관찰력이 뛰어난 것은 맞으나 집중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사건을 수사하느냐, 지금까지 계속해서 언급된 '전체론'이다.

 드라마의 초반부에서, 더크는 자신을 절대 믿지 못하는, '친구도-아니고-조수도-아닌' 토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Everything is connected. Nothing is also connected.' 그래서 이 드라마는 지금까지의 추리물과 다르다. 한 시즌에 한 사건씩 해결하니, 호두까기 인형처럼 한 화에 한 사건을 너무 쉽게 뚝딱 해결하는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한 사건은 과거가 미래에, 미래가 과거에 서로 맞물려 끊임없이 순환한다. 오늘 아침 호텔 cctv에 찍힌 수상한 사람이 그 시간대의 사람인지 의심할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사연 많은 동물 탈들이 등장한다. (c. Netflix)

 그래서 소품 하나하나가 중요하고, 대사 한 줄 한 줄이 중요하다. SF 장르이긴 하나 다른 드라마처럼 하늘에서 후추통같이 생긴 외계인이 등장하지도 않고, 지하에서 괴상한 바이러스가 솟구쳐 온 지구를 혼란의 도가니에 몰아넣지도 않는다. 그래서 편하다. 한 시즌에 하나씩, 주인공들을 따라 함께 머리를 굴리고 나면 광고 속 할아버지보다 더 상쾌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권선징악은 절대 아니다. 3 x 3 큐브가 눈앞에 떠다니는 듯한 이야기, 그보다 훨씬 고차원적이며 이리 쿵 저리 쾅 하는 등장인물들. 우리 같은 시청자들에게는 더없이 안락한 드라마다. 우리도 고차원적인 인물들이므로 우리의 이야기나 다름없다. 그 어떤 '성장물'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우리가 국어 시간에 그토록 파고든 '인과 관계'로 다시 돌아와 보자. 교과서 속 소설, 수필, 시나리오 등에서 '주인공 아무개가 이렇게 행동한 이유는?', '밑줄 친 부분의 결과로 적당한 것은?' 등의 선지를 많이 봤지만 그 반대는 전무하다. '결과 r을 도출하지 않기 위해 인물 p와 q가 보여야 할 태도는?'이나 '인물 p가 특정한 방면으로 행동했더라면?'과 같은 선지는 없었다. 왜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모든 분야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나 '결과와 원인의 관계'는 그것을 일컫는 단어조차 없을까?

 우리는 과거를 후회하지 말라는 격언을 많이 듣는다. 현대인처럼 입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류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인류보다도 과거에 얽매인다. 과거 일거수일투족을 정확한 숫자까지 붙여가며 저장하고 알림을 띄워주는 소셜 미디어 때문인지, 눈 깜빡할 새 바뀌며 한 치의 잘못도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하나는 확실하다. '인과 관계'에 지나치게 파고든 나머지 3 x 3 큐브와 같은 우리네 삶을 '플랫랜드'보다 더 평평한 틀에 가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 말이다.

 '더크 젠틀리의 전체론적 탐정 사무소'는 그래서 특별하고, 그래서 추천한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의 '사건'들을 나름대로의 '추리'로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막막한 사건이라도 언제고 뒤집을 능력이 다분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다른 시간대의 내가 현재의 내 능력치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했다고 상상 가능하다. 요즘 유행하는 '과거의 나야, 왜 그랬어?'라는 자책의 말 대신 '미래의 나야, 너 딱 기다려!'라는 말을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우리는 순환하고 있다. 이 세상 속에서, 정돈된 카오스 속에서, 마찬가지로 고차원적으로 살아갈 자신감을 주는 이 드라마와 전체론, 같이 한 번 믿어 봅시다!

(추신. 이토록 귀여운 고양이가 오른쪽 사진만큼의 사고를 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c.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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