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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달 Sep 13. 2016

우리는 귀어 했다

우리 집 앞에는 풀과 소문이 무성하다

사람은 '돈이 되는 일'을 해야 진정 행복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혹자는 자원봉사만으로도 의미 있는 삶이라고 말하지만 나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그렇게 악착같이 일해왔을까?


우리 집은 앞쪽으로는 바다가 있고 옆으로는 밭이 있으며 뒤로는 산으로 둘러 쌓여 있다. 참~좋은 곳이다. 이렇게 자원이 많으니 생활비는 안 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과는 달리 시골에는 안 쓰는 땅(밭)이 널브러져 있다. 귀퉁이 조금 갈아서 해 먹는다고 크게 뭐라지도 않는다. 물론 양해를 구해야겠지만...


무언가 하고자 하면 그에 따른 행동을 하면 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난 이 말을  참 좋아한다.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작물로 밭을 일궈야 하지만 도시에서 내려온 우리는 알 수가 없었다. 대충 이때쯤이면 이게 나올 거라는 짐작은 하지만 정작 심을 때를 놓치곤 했다. 이럴 땐 눈치만이 살길이다. 아니면 여기저기 밭을 기웃거리며 무얼 심었는지 관찰을 하거나 물어봐야 한다. 이 사소한 한 가지도 부딪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런 상황들 때문에라도 이웃들과 최소한의 교류는 필요하다. 이것저것 밭을 일궈놓으니 이제 정말 수익창출을 해야만 이런 좋은 환경도 지속되겠구나 싶어 돈 되는 일에 대한 열망이 피어올랐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해나가야 하는 과정일 것이라 생각했다.


갑자기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지금이라도 다시 올라가면 사장님 소리 들어가며 살 텐데...


바다에는 밀물과 썰물이 있다. 밀물이 거의 끝날 때쯤 썰물이 드는데 이때는 배가 없어도 맨손으로 잡을 것들이 지천이다. 소라며 박하지며 바지락이며... 우린 준비되지 않은 귀어인들이었기에 맨손으로 할 수 있는 바다 것들을 잡기로 했다. 우선 장화 비옷을 한벌씩 장만해서 무작정 바다로 나가 갯벌에 몸을 맡겨 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잡히는지, 돈은 어떻게 되는지 몸소 뛰어 보았다. 종류도 참 다양했다. 잡은 것들을 분리해서 수산물시장으로 들고나갔다. 부안에는 곰소라는 읍내가 있는데 알고 보니 젓갈과 곰소 천일염으로 유명한 곳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참~ 뻘쭘하고 한편으론 솔직히 주춤했다.


"소라랑 박하지 방금 잡아온 건데 안 사실래요?"

...

가게마다 기웃거리며 물어봤다. 물론 우리 남편도 참 힘든 순간들일 텐데 표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고맙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도시생활에서 느끼는 부부의 개념 하곤 완전 다른 느낌이었달까. 그건 삶을 함께 살아가는 부부 이상의 신뢰와 의리가 끈끈하게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우리는 서로를 더 끔찍하게 위하게 됐다. 그리고 우리를 찾아오는 귀어 새내기들에게 "가능하면 이런 행운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길 바란다"라고 말한다.


많은 것을 얻었다는 만족감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모르긴 해도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생각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주 적은 소득이지만 재미가 쏠쏠했다. 그때 나의 생각은 "어쩌면 이렇게 돈이 쉽게도 벌리는 거지?" "이렇게도 돈이 벌리는구나.."였다. 놀라웠다. 내가 아는 '돈'은 엄청나게 스트레스받아가며 머리를 굴리고, 원치 않는 인간관계를 이어가며 그 이상의 것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 몸하나 움직였을 뿐인데 돈이 생겼다. 참 신기하기도 하고 믿어지지도 않을 만큼 단순했기 때문인데 이것은 주어진 환경을 파도 타듯이 강약을 조절할 수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부부의 최대의 장점은 '환경을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산다는 것이다. "이긴 사람이 강한 게 아니고 이겨 낸 사람이 강하다"라는 글귀를 본 기억이 난다. 하루하루 이 모든 것들이 쌓여가면서 주변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아졌고 급기야 하나둘씩 의문을 가지며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웃기는 건 이런 사소한 질문조차도 정말 이쁘게 봐주지 않으면 지속적인 관심을 받긴 어렵다.


그저 서울서 뭐 해 먹다 왔는지, 망해서 내려왔는지, 그냥 남들이 말하는 전원생활의 끄트머리만 잡고 까불다 안 되겠다 싶으면 내뺄 것인지... 그들 나름대로 간을 본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따듯한 말 한마디 건네주지 않는 게 현실이다. 시골 사람들은 새로이 영입되는 주민들을 이쁘게 봐주지 않는다. "아직은 순수해서"라고 말하면 틀린 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전자라고 말하고 싶다. 처음엔 잘 몰랐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더니 하나부터 열까지 알면 알수록 힘들어지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도시에서는 남의 말을 자꾸 해대는 사람은 아주 몹쓸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어쩌면 이렇게 할 일이 없나"라고 생각될 만큼 이야깃거리도 아닌 것 같은데 이슈가 되어서는 나를 괴롭혔다. 목소리가 걸걸한 나를 남자 같다느니,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로 남편 상투 잡고 꼼짝도 못 하게 한다느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동네에 둥둥 떠다녔다. 더 웃기는 건 그 말을 나한테 와서 시시콜콜 잘도 전해준다는 게 미치는 일이다. 차라리 안 들으면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도 없을 텐데... 시골생활 몇 년만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도시에서의 뒷말은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속셈이 있는 것'이고 시골에서의 뒷말은 '아무 뜻이나 흉 거리로의 전락이 아니라는 것'이다. 밭에서 뜨거운 햇빛 아래서 일하다 보면 그 시간을 좀 더 쉽게 보내려는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인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난 순수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심각하게 고민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니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지나칠 수 있었다.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그 말을 한 것조차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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