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 머레투는 1970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Ababa) 출신으로 뉴욕과 베를린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는 세계적인 작가다. 현대 미술계에서 드물게 흑인 여성 예술가로 이름이 올라가 있으며 6, 7년 전부터 미술 시장에서 블루칩으로 꼽힌다. 또한 2020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혔다.
머레투는 식민정책, 반란, 폭동, 전쟁, 자본주의, 집단 이주, 기후 변화 같은 사회 주제를 거대한 캔버스에 담는다. 연필, 펜, 잉크, 아크릴 물감을 겹겹이 그려 회화, 드로잉, 복잡한 판화 기법들을 한 곳에 모아 자신만의 3차원 추상화 풍경을 완성한다. 완성된 추상화는 혼란스러운 사회, 정치적 풍토를 나타낸다.
HOWL, eon을 작업하고 있는 머레투, image: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org
머레투는 초기 그림과 판화에 이르기까지 캔버스 사이즈를 계속 확장해왔다. 최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로비에 높이 820cm, 가로 975cm에 달하는 그녀의 대형 작품 <HOWL, eon> (I, II)이 걸렸다. 이 작품은 바티칸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보다 큰 크기이다. 머레투는 <HOWL, eon>에 미국 서부의 풍경과 폭력적인 식민지 역사를 담아냈다. 그녀는 "인종차별이 이 나라에 엄청난 부의 차이를 만들었기에 이는 진정한 형태의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캔버스는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안에서도 밝은 색을 찾을 수 있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바라보며 개념을 재맥락화(recontextualisation)한다.
Julie Mehretu, HOWL, eon (I, II), 2016-2017, ink and acrylic on canvas, 823 × 975.4 cm © Julie Mehre image: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org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 걸린 HOWL eon
머레투는 1977년에 일어난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의 오가덴(Ogaden) 전쟁을 피해 부모님과 미국으로 이주했다. 캘라마주 대학(Kalamazoo College)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을 졸업했다. 머레투는 미국 현대 미술가 샘 길리엄(Sam Gilliam), 쿠바 계 미국 예술가 코코 푸스코(Coco Fusco), 뉴욕에서 활동하는 미국 흑인 예술가 데이비드 해먼스(David Hammons), 로스앤젤러스에서 활동하는 다니엘 조셉 마르티네즈(Daniel Joseph Martinez)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머레투의 작품은 판화, 드로잉, 디지털 콜라주, 페인팅 등 작품에 응용된 요소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머레투는 그림에 그려진 자국을 캐릭터로 본다. 제각기 흩어져 있는 자국들은 그 자국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계속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 캐릭터는 머레투가 표현하고 싶은 세상의 언어다.
Julie Mehretu, Dispersion, 2002, ink and acrylic on canvas, 229×366cm © Julie Mehretu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and White Cube Gallery, London
이 작품 <Dispersion>은 기하학적 색채 모양과 소용돌이치는 선들이 결합한 지형도면처럼 보인다. 혼란스러운 선들은 해체되는 동시에 다시 모이는 통제된 혼돈이다.
Julie Mehretu, 제로 케니언 Zero Canyon(A Dissimulation), 2006, 305x214cmⒸMuseo de Arte Contemporaneo de c
<제로 캐니언 Zero Canyon (a dissimulation)>은 추상표현주의를 연상시킨다. 머레투는 만화, 특히 일본 만화, 중국 서예와 조경, 에티오피아의 책, 그라피티, 바로크 시대의 판화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녀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는 건축 도면이다. 머레투는 공공건물과 같은 건축물이 도시, 정치, 권력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을 캔버스에 담으려 한다. 건축은 권력을 나타내며, 그 둘 사이에는 끝없는 협상과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있다고 여긴다.
머레투는 공항이나 스포츠 경기장과 같은 공간을 언급하며 다양한 집단들이 모여있는 공공장소이지만 감시되고 있음을 언급한다. 2001년 9월 11일 뉴욕과 워싱턴 테러 공격이나 2005년 뉴올리언스 허리케인 카트리나(Katrina) 같은 사건들을 떠올리며 시대와 장소, 정보와 사건들을 혼합한다. 큐레이터 더글라스 포글은 머레투의 회화를 '새로운 형태의 역사 그림'이라고 표현한다. 뉴스의 사진과 이미지가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전달될 때, 지구 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때로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머레투는 '나는 개인과 공동체의 정체성(identity)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장소, 공간, 시간의 다면적인 층에 관심이 있다.'라고 말한다. [2]
Julie Mehretu, Congress, 2003, ink and acrylic on canvas, 183x284cm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and White Cube Gallery, London © Julie Mehretu
머레투는 인류 문명과 예술 역사에서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고 예상치 못한 반향을 찾는다. 고대 바빌론 벽돌이나 석재에서 건축적 스케치의 아이디어를 얻고 유럽 회화부터 아프리카 해방 운동의 상징과 장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얻는다. 이 다양한 것들의 기원(origins)에서 작품의 이미지와 제목에 힌트를 얻어 그녀만의 추상화를 완성한다. 머레투가 내놓은 그녀의 언어는 표현주의가 시간을 붕괴시키고 새로운 장소로 가는 통로 역할을 한다.
Julie Mehretu, Stadia II, 2004. Ink and acrylic on canvas, 272.73 x 355.92cm Carnegie Museum of Art, Pittsburg; gift of Jeanne Greenberg Rohatyn and Nicolas Rohatyn and A.W. Mellon Acquisition Endowment Fund 2004.50. Photograph courtesy the Carnegie Museum. © Julie Mehretu
머레투는 바로크의 연극적 요소(카라바지오의 작품 <The Seven Acts of Merrcy>(1607년))[1], 이탈리아 미래주의의 아나키즘 혁명, 러시아의 구성주의의 유토피아적인 사회적 비전 등 다양한 미술사 요소들에 영향을 받았다.
좌) Untitled 1, © Julie Mehretu 우) 자코모 발라, 줄에 매인 개의 움직임, 1912, image:wikipedia 2010년 소더비에서 100만 달러에 낙찰된 이 작품 <Untitiled 1>은 이탈리아 미래주의 자코모 발라(1871~1958)의 <줄에 매인 개의 움직임>(1912)에서 보이는 움직임과 역동성, 카지미르 말레비치 작품에서 보이는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보인다.
Julie Mehretu, Black Ground, 2006, acrylic and ink on canvas laid down on board182.9x243.8cm©Julie 2019년 소더비 경매에서 이 작품 <블랙 그라운드>(Black Ground)가 4,420만 홍콩달러에 낙찰돼 머래투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Julie Mehretu, Sing, Unburied, Sing(J.W), 2018, Ink and acrylic on canvas, 274.3x304.8cm Photo: Tom Powel; courtesy the artist,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and White Cube, London; © Julie Mehretu
2019년 5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작품 8점에서 지도, 건축적 다이어그램, 그리드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방법에서 건축적 시스템까지 완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추상화를 선보였다.
머레투는 동굴 벽화, 지도, 수학, 디자인, 동양의 서예, 서양 미술사, 그라피티, 건축, 뉴스에 나오는 이미지에서 다양하게 영감을 얻으며 추상화 건축, 풍경화, 형상화를 내보이며 그 안에 살아있는 경험과 감정을 담아낸다.
머레투 작품을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는 스페인 센트로 보틴(Centro Botin) 미술관 전시실
참고문헌
[1] Lawrence Chua and others, Julie Mehretu: Black City=Ciudad Negra exhibition catalogue, 2006, pp.132-133
[2] Douglas Fogle, Olukemi llesanmi, Julie Mehretu, Walker Art Center, Julie Mehretu: Drawing into Painting exhibition catalogue, Minneapolis, MN, Walker Art center, LA, 2003,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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