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ia O'keeffe
조지아 오키프의 <Jimson Weed/White Flower No.1>은 백악관 부시의 개인 다이닝 룸에 6년간 걸렸다. 이후 2014년 뉴욕 소더비에서 약 500억에 낙찰되었다. 백악관에 그림이 걸릴 만큼 미국 모더니즘 회화의 시작점에 있는 중요한 작가, 조지아 오키프는 꽃과 멕시코 자연풍경에 관심이 많던 화가였다. 외할아버지는 헝가리 백작의 후손으로 1848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오키프의 부모님은 평범한 농부였다. 오키프가 미국 위스콘신에서 태어나던 해 1887년 미국은 빠르게 산업 국가로 성장하고 있었다. 일곱 형제 중 둘째였던 그녀는 열 살쯤 나이에 예술가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오키프는 버지니아 대학에서 아서 웨슬리 도우(Arthur Wesly Dow) 교수의 강연을 듣고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 작품을 시작한다. 도우 교수는 일본 미술을 공부하고, <Composition>(1899)을 집필한 사람으로 선, 농도, 색과 다섯 가지 화면 구성 원리, 8가지 구성 원리에 관해 강의했다.
오키프는 작품 <죽은 토끼와 청동 주전자>로 상을 받고 장학금을 받으며 뉴욕 레이크 조지 여름 스쿨에 참가했지만, 아버지 사업이 파산하고 어머니가 결핵에 걸리며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오키프는 돈을 벌기 위해 시카고로 가서 친척이 운영하는 회사에 상업 미술가로 일하며 돈을 벌기 시작한다.
스타글리츠와 만남
오키프는 유명한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소유하고 있던 뉴욕 갤러리 291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피카소, 브라크와 같은 유럽 모더니즘 작품을 처음 접하고, 드로잉을 시작한다. 이후 완성한 목탄화 드로잉을 사진작가였던 친구 아니타 폴리처에게 보낸다. 폴리처는 드로잉을 스티글리츠에게 보여주고, 스티글리츠는 감탄하며 1917년 4월 갤러리 291에 전시한다. 오키프는 자신의 허락 없이 드로잉을 전시한 스티글리츠를 만나기 위해 갤러리를 방문한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23살 연상이었던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에게 자주 편지를 보냈다.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던 오키프는 일 년 뒤 스티글리츠가 있는 뉴욕으로 이사한다.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에게 그림 작업을 위한 경제적인 도움과 머물 곳을 마련해준다. 이 시기 스티글리츠는 양조회사 상속녀였던 에밀리와 결혼 생활이 좋지 않았다. 스티글리츠는 1918년부터 오키프를 모델로 누드 사진 시리즈를 찍기 시작한다. 아내가 없는 집에서 누드 사진을 찍다 발각돼 쫓겨나고 오키프와 동거를 시작한다.
스티글리츠는 성적인 분위기와 예술적 감성을 연결한 사진을 찍어 미술시장에 팔려 했다. 사진은 미술계에 새로운 충격이었다. 오키프는 자유롭고 현대적인 여성으로 인식되며 작가로서 인지도를 높여갔고, 스티글리츠 덕분에 갤러리 291을 찾는 중요한 미국 모더니스트 작가들을 만날 기회를 얻는다.
완벽한 호수
1918년 가을 오키프는 허드슨 강가에 조지라고 불리는 호수에 처음 간다. 호수 근처에는 스티글리츠가 36에이커에 달하는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둘은 1934년까지 이 호수에 자주 들렀다. 오키프는 이곳에서 대표작이라 꼽히는 꽃, 나뭇잎, 풍경화들 200여 점을 이 시기에 완성한다.
오키프에게 호수는 중요한 곳이었다. 호수 주변으로 파노라마처럼 넓게 펼쳐진 풍경과 열린 공간은 색과 형태, 추상화와 재현 사이를 실험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녀는 조지 호수를 완벽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특히 가을에 와서 그리기를 좋아했다. 이 작품 <조지 호수에 빨간 단풍>은 잎이 물에 젖은 듯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바람에 잎이 움직이는 듯 보인다. 붉은색과 검은색은 차분하면서도 각각의 색을 내며, 붉은색과 검은색이 연결되는 중간 부분은 수채화로 작업한 듯 두 색이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형태를 정확하게 표현하기보다 구성과 색에 집중하고 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때처럼 아주 가까이에서 본 자연물을 연상시킨다.
아무도 꽃을 보지 못한다.
오키프에게 꽃은 다양한 추상화와 재현의 도구이자 추상화의 언어였다. 꽃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손바닥 위에 올릴 만큼 작은 꽃을 보는데 우리는 오랜 시간을 두고 보지 않고 지나가듯 흘러가듯 꽃을 본다. 오키프는 친구를 사귀는 데 시간이 걸리듯 꽃을 보는 일에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초기 작품 중 걸작으로 꼽히는 <블랙 아이리스>의 꽃 안은 깊고 어둡다. 윗부분 삼각형과 아랫부분 어두운 삼각형이 만나며 안정감을 준다. 관능적이며 힘이 있다. 비평가들은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작품을 여성의 생식기와 닮았다고 언급하면서 프로이트 심리학을 대입시켜 해석하기도 한다. 오키프는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 자신의 꽃 그림을 여성 성기에 대한 환상이라고 말하는 부분에 동의하지 않았다. 숨겨진 상징성과 환상은 없으며, 단지 꽃은 꽃이라고 말한다. 오키프는 본 사물만 그리며, 크게 그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크게 확대된 꽃에 형태를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리고 뒤늦게 형태를 알아챈다.
멕시코 자연 풍경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와 결혼했지만, 3년 후 스티글리츠는 갤러리 후원자였던 부유한 유부녀, 도로시 노먼과 불륜을 저지른다. 1929년 오키프는 멕시코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서 돌아왔지만,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1933년 신경쇠약에 걸려 두 달간 입원하고, 이듬해 뉴 멕시코 아비퀴우 북쪽에 있는 고스트 랜치(Ghost Ranch)로 간다. 마음이 회복될 때쯤 찾은 고스트 랜치 풍경은 그녀를 사로잡는다. 1946년 남편 스티글리츠가 사망한 후 그녀는 멕시코로 이주한다. 멕시코 세로 페더널(Cerro Pedernal) 산을 가장 좋아했다. 페더널 산만은 오롯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 여겼다. 붉고 푸른 산으로 페더널 산과 주변 풍경을 캔버스에 담아냈다.
이 두 작품에서 오키프는 풍경을 추상화로 보여준다. 원근법 없이 평면으로 단순화한다. 색도 여러 가지가 아닌 몇 가지 정도만 사용했다. 오키프는 자연 풍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에 살기 원했다. 차로 사막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고, 덥고 무거운 바람을 맞으며 별이 보이는 하늘 아래 잠자리를 폈다. 자동차는 움직이는 작업실이었다.
오키프가 70세를 넘겼을 때, 미국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났다. 페미니즘 운동가 사이에서 오키프 작품은 그들의 운동을 대변하는 예술이었다. 그들은 오키프 작품을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선두에 내세웠다. 1920년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여는 여성작가 회고전에 오키프가 첫 번째 작가로 뽑히며 뉴욕 미술계에서 존경받는 추상화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80세를 넘긴 오키프는 침침한 눈 때문에 작업을 도와줄 조수가 필요했다. 조수로 27살 청년 존 해밀턴을 만나고, 사망할 때까지 13년을 함께 작업한다. 명예와 부를 가진 나이 든 여성 옆에 젊은 이 청년을 사람들은 돈 때문에 있는 게 아니냐며 수군거렸다. 오키프는 ‘왜 많은 남성 예술가들이 젊은 여성과 염문을 뿌리는 사실에는 놀라지 않으면서 내가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하면 충격적이라고 하는가’라며 신경 쓰지 않았다. 오키프는 사망하면서 많은 돈을 해밀턴에게 주었지만, 해밀턴은 다시 그녀의 가족에게 되돌려주었다.
오키프의 내면은 항상 자연에 반응하고 자연에 머물렀다. 오키프가 활동하던 시기 미국과 유럽 작가들은 추상화 작업을 많이 펼쳤지만, 이들 중 자연의 이미지, 특히 오랫동안 꽃을 가까이 확대해서 그린 작가는 오키프가 유일했다. 그녀의 꽃과 자연을 표현하는 독특하고 새로운 방법이 인정되며 모양과 형태를 단순화하는 선구자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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