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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재 Aug 19. 2019

음악의 돌파구, 과학

과학과 음악의 융합.

 1956년, 음악은 처음으로 허공을 비행하였다. 쾰른의 한 스튜디오에서 흘러나온 이 음악은 마치 새의 노랫소리 같았다. 관중을 둘러싸고 있던 5개 그룹의 스피커는 서로 대화하듯 음향을 뿜어냈고 공연장의 텅 빈 천장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다. 조용히 소년들이 성경을 읊조리는 소리로 구성된 이 음악은 온갖 실험적 기법으로 점철되어있었지만, 무엇보다 관중들은 이 파격적인 ‘비행’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음악의 2차원적 구조를 단번에 확장한 음악사의 역사적인 현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작곡가인 ‘칼하이츠 슈톡하우젠’은 더 이상 음악이 정적으로 머무르길 원치 않았다. 쾰른에서의 초연도 그가 차곡차곡 쌓아오던 음악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했다. “어째서 음악은 정적이어야 하는가?” 그는 음악의 공간배치라는 획기적 구상으로부터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작품 ‘소년의 노래’를 통해 음악에 날개를 달았다. 서로 다른 스피커에 다른 음향을 흘려보내어 공간의 방위성과 운동성을 음악에 도입한 것이다.


 음악사는 끊임없는 확장의 연속이었다. 바흐는 대위법을 통해 다성부 음악의 영역을 확장했고, 드뷔시는 텐션 코드를 통해 화성 음악의 영역을 확장했다. 하지만 현대 예술의 영역에 이르러서는 창작의 소재가 크게 고갈되었다. 이미 뛰어난 선배들이 충분히 훌륭한 아이디어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를 보고 거인의 그늘에 갇혀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슈톡하우젠은 매우 영리한 방법을 선택하였다. 그는 고전 예술의 틀에 갇히지 않고 현대 과학 기술을 도입하여 새로운 틀을 제안하였다. 사실 슈톡하우젠은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음향 공학에 대한 많은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 이러한 공학 지식은 창작의 큰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일화를 보고 현대 음악의 돌파구로서 과학 기술이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악에 과학 기술이 본격적으로 적용된다면 정해진 틀 안에서 기발한 해답을 찾는 기존 음악에서 벗어나 예술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시도가 이루어질 것이다.


 현대 과학기술은 음악의 다양성에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다. 현대 음악은 가상 악기와 전자악기의 등장으로 일대 혁명을 이루었다. 기존 악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하여 악기의 가용범위 이상의 음높이를 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연주자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생체공학적으로 연주할 수 없는 기교가 있다면 작품에 포함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상 악기는 이 모든 것과 무관하게 작곡가의 예술적 영감을 제한하지 않는 무궁무진한 음악을 작곡할 수 있다. 기존의 물리적 영역에서 음악이 자유로워지면서 음악의 다양성에 혁신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음향 편집기술이 도입되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소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주파수 필터(Frequency filter)라는 기술을 사용하면 소리의 특정 주파수만을 증폭 또는 억제할 수 있어서 고전음악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음향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슈톡하우젠이 사용했던 스테레오 녹음 시스템 역시 음악적으로 활용성이 높다. 왼쪽 귀와 오른쪽 귀에서 들리는 소리의 위상차를 응용하면 소리가 날아다니는 듯한 효과도 어렵지 않게 구현할 수 있다.


 현대예술의 추세가 융합예술이라는 점에서도 과학기술은 음악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시각 예술과 청각 예술이 분리되어있었고 서로 다른 영역의 예술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현대에는 백남준과 같이 공감각적 예술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디스플레이나 컴퓨터와 사용자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용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음악이나 사용자의 성격을 반영하는 음악은 정보과학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음악과 분리된 것으로 생각되었던 과학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어떤 형태의 창작활동이든지 ‘혁신’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저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말한 것처럼 과학기술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루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거인’의 어깨를 넘어서 새로운 음악의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음악학도도 첨단 과학기술의 포용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공학 전공자들처럼 어려운 이론을 숙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배워 음악에 응용할 수 있다면 더욱 왕성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시중에도 훌륭한 과학 입문서들이 많으니 그걸로도 충분할 것이다. 음악가들이 공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창의적인 대안을 제안한다면 음악계에 커다란 발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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