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친 순간 멈춰 설 수밖에 없는 황홀한 색감. 차가운 파란색을 사용하면서도 따듯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듯한 화면 구성. 그의 그림은 파랗지만 따듯하다.
그를 보고 있으면 사람 자체에서 따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팬들을 대하는 미소에서 진심이 느껴지기에 그의 인스타그램엔 1만 2천명이라는 수많은 팔로워를 보유 중이다. 팬들에게 많은 선물을 받기도 하고, 응원에 힘입어 더 좋은 그림으로 보답하기도 한다.
어떻게 지금에 도달했고,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할지 궁금해졌다. 그에게도 추억이 있는 구캔갤러리에서 두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 그림을 그리고 싶은 소녀. 』
- 하나비로 활동을 시작한 2021년 기록들에는 책 그림이 많이 보여요. 외주를 받는 상황인 것 같은데, 이때 기억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 2021년이 좀 저한테 많이 힘든 시기였어요. 21년부터 22년 이때가 너무 힘들어서 그때 글을 보면 좀 암울해요. 암울하고 그런 시기인데, 음... 더 옛날로 가보자면 원래 2019년에 캐릭터 작업을 했었어요. 알로하라는 파인애플 캐릭터로 처음 활동을 시작했는데 반응이 엄청 저조했어요. 아르바이트해 가지고 번 돈 탈탈 털어가지고 활동을 하고 그랬는데 아예 반응이 없으니까 '안 되겠다. 그냥 취업을 하고 이건 취미로 해야겠다.' 해서 취업을 하고 그림을 아예 접었었어요. 그냥 취미로만 하고 직장 생활하자 했는데 제가 직장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하는 거예요.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서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사람을 쉽게 대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적응을 너무 못해서 금방 직장 생활을 좀 못 하게 됐어요.
20년부터 21년 정도까지 직장 생활 정말 짧게 하다가 21년 3월에 하나비로 돌아왔죠. 이때 돌아와서는 캐릭터를 하지 말아야겠다. 근데 캐릭터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사실 저는 그림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캐릭터가 저한테는 좀 진입장벽이 낮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분야였어요. 근데 실패를 하니까 이제 쉽다고 생각했던 분야가 아니라 진짜 하고 싶은 거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가지고 삽화를 그리면서 외주작업을 좀 했죠. 책 표지 외주도 하고 여러 가지 디자인권 외주도 하고 분야나 장르 안 가리고 다 받았어요. 그때는 생계에 관련된 느낌이다 보니까 누가 일을 준다 하면 그게 마냥 감사해 가지고 그냥 무조건 다 했죠. 되게 많이 배우고 좋았던 것 같기는 해요.
특히 책 외주가 저도 좋았던 게 결과물이 나오잖아요. 물질로 나오니까 그걸 보면서 뿌듯하고 너무 좋았던 거죠. 근데 이제 처음이다 보니 네트워킹이 잘 안돼 있고 초짜 프리랜서한테는 외주를 구하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일이 간간이 들어오다 보니까 생계유지도 조금 많이 어려웠고... 제가 좋은 클라이언트들만 만났던 건 아니었어요. 힘든 분들도 많이 만났어요. 초짜다 보니까 저도 많이 커뮤니케이션에서 미숙했겠지만, 그분들도 저한테 기대치가 조금 더 있으셨겠죠. 그걸 제가 많이 충족 못 해드렸던 것 같아요."
- 비전공자인데 외주를 받는 게 가능한 거예요?
" 고등학생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던 애였어요. 미대 진학도 하고 싶었는데 집에서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수가 없으니까 다른 걸 해보면 안 되겠냐고 해서 그때 차선책으로 시각적인 걸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해서 영상과를 갔죠. 저희 과가 좀 되게 손가락을 이렇게 여러 개 담그듯 하는 과였거든요. 뭔가 하나만 특화된 느낌이 아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다양한 걸 준비하는 애들이 되게 많았죠. 하나비가 처음에 탄생하게 된 것도 학과 수업에서 탄생한 거였어요. 1인 미디어 수업이 있었는데, 꾸준히 할 수 있는 너네가 좋아해서 정말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거를 해봐라고 해서 그림 그리는 유튜브를 만들었었거든요. 그거에서 처음 생겨난 채널이 하나비였고 학교 수업하면서 그린 그림들이 많았죠.
그렸던 그림들을 다듬어서 포트폴리오를 만든 다음에 좋은 출판사거나 아니면 좀 작은 출판사다 싶으면은 무조건 먼저 DM을 걸거나 메일 주소 확인하고 포트폴리오를 투척했거든요. 하나만 좀 봐줘라 하고서 다 보내고 연락 오는 곳이랑 일하고 좀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런 식으로 일하고 이제 개중에 몇몇 군데에서는 지난번에 이거 했으니까 스타일 아시니까 이것도 해주실 수 있겠냐 해가지고 하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 나만의 그림을 찾아서. 』
- 2022년부터 인스타를 활발하게 하기 시작했어요. 사람을 되게 잘 그리세요. 동화 같은 느낌.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왜 요즘은 이렇게 안 그리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사실 저 원래 사람 그리는 거 되게 좋아하는데 특히 동화 같은 느낌이라고 얘기하셨잖아요. 학창 시절에 사람 그리는 걸 되게 좋아했는데 그 당시에 좋아했던 거는 일본 애니 같은 그림이에요. 근데 그런 걸 막상 그리면 오타쿠 같은 거예요. 대략 8-10년 정도 전의 시기인지라, 애니와 같은 그림체를 선호하는 취향을 살짝 부끄러워했어요. 요즈음에는 비교적 다양한 취향들을 존중하는 시야를 가진 분들이 많지만, 그 당시에는 애니 취향을 놀리거나.. 부끄럽게 여기고 숨기는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오히려 요즈음에는 숨길 취향의 그림들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게 조금 덜 오타쿠 같지 고 생각을 해 가지고 이제 제 나름대로 그렸던 사람 스타일이 요 친구들 스타일이에요. 요 친구들이 제일 자연스럽게 나오는 스타일이거든요. 생각보다 그리기 정말 쉬워요. 노트에 낙서하듯이 하면 따라 하시기도 되게 쉽거든요. 사람 그리는 걸 되게 좋아해서 캐릭터 잠깐 하고 접었을 때 아이디어스라는 플랫폼에서 캐리커처도 그려드리고 했었어요.
꾸준하지는 않았지만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 그린 것들에 대한 반응이 많이 없었어요. 제 나름 스트레스였거든요. 이게 딴에는 뭔가 사람도 그리고 싶고 그리고 사람이 들어있는 게 몰입하기도 좋고 메세지 같은 거 전달해도 더 좋지 않나라는 생각도 때문에 계속 그리고 싶었는데, 사람이 있는 것과 단순 풍경만 있는 거 이렇게 같이 올려놓으면 풍경만 있는 것들에 대한 반응이 훨씬 좋은 거죠.
그래서 이제 계속 고민을 하고 그러다가 이제 여기까지 온 거고, 그런 느낌이에요. 한때는 사람을 웬만하면 잘 안 넣으려고 했던 때도 있긴 했었어요. 제 그림풍이 사람이 묘하게 귀여운 풍이다 보니까 사람을 넣으면 동화 같은 느낌이 들고 사람이 안 들어가면 조금은 연령대가 살짝 높아진 느낌인 거예요. 어떤 연령층을 잡아야 할까라는 느낌으로 고민을 했는데 그거는 그때 고민이고 사실 지금은 찬희님처럼 그냥 사람이 있든 없든 그냥 다 좋게 봐주시는 편이어가지고 요즘은 그리고 싶은 거 그냥 그려야겠다. 그런 편입니다."
- 2022년 그림에는 배가 많이 나와요. 그림 중 하나인데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해주신다면.
" 이 그림은 라푼젤을 보고 그렸던 거고, 22년이 제가 공백기였어요. 일이 안 들어오는 거예요. 외주가 안 들어와서 순수 개인 작업으로만 근근이 버티던 시절이었어요. 진짜 막 버티면서 너무 힘든 거예요. 이때 당시엔 힘들어서 주변에 진짜 히스테리란 히스테리는 다 부리고 다녔어요. 왜 아무도 안 좋아해 이렇게 그려재끼는데 왜 아무도 안 봐 막 그랬었거든요. 지금도 사회 초년생이지만 그때 당시엔 더 사회초년생 마인드잖아요. 불안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있고 외로워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있고... 첫 시작은 힘들어서 그리는 거거든요. 좀 힘든 걸 해소하려고 달래려고 그린 건데, 배가 많이 나오는 게 보통 그림 속의 배경이 바다거나 하늘이에요. 이게 제 나름의 비유지만 특히 바다에 대한 비유가 좀 많은데 일상이 그냥 맨날 이렇게 불어오는 파도를 맞으면서 나아가는 것 같고, 이제 그 속을 항해하는 거 같고, 일상을 항해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라는 말을 되게 많이 하는데 이제 그 항해하는 느낌에서 저희는 이제 한 척의 배라던가, 하늘을 뚫고 올라오는 고래라던가 뭐 이런 식으로 좀 나아가는 듯한 소재에 저희를 비유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배를 많이 넣은 거 같고요."
" 이 그림은 저희 아빠거든요. 그림 속의 캐릭터는 소년인데 제목이 아빠와 바다라는 그림이에요. 저희 아빠를 보고 생각해서 그렸었어요. 바다에서 나고 자란 아저씨인데 옛날 추억을 되게 많이 하세요. 옛날에 할아버지랑 배 타고 놀면서 되게 좋았었다. 이런 얘기 하셨어서 그걸 생각하면서 그렸던 그림이었어요. 이거 말고 나머진 좀 다 같은 맥락이에요. 그리고 지금 그리는 그림 속의 배들도 다 비슷한 맥락이에요."
- 우리가 세상을 항해하는 것을 배에 비유를 하셨다는 말씀이시죠. '배는 불안정하다'라는 말을 최근에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말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 배 불안하죠. 많이 불안하죠. 제가 불안해서 배를 그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이 그림 같은 경우에는 바다에 떠 있는 종이배잖아요. 찬희님이 배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거라고 얘기를 했었는데, 저는 그냥 이 일하면서 오래 사는 게 인생 최고 목적이거든요. 그냥 이 일 하면서 오래 살자 이거밖에는 전 목적이 없어요. 한편으로는 제 목적을 띠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되게 자유분방한 느낌의 그림이에요. 자유를 표현하고자 종이배처럼 표현한 것도 있었고, 그 자유분방함 속에서 어쩌면은 저는 불안했는지도 몰라요. 이 그림 그릴 당시엔 진짜 불안했던 사람이니까.
22년 당시 직장인 친구가 퇴사하고 저한테 한 말이, 불안하지 않냐 나는 너무 불안하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저도 직장을 나와서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니까 그때는 엄청 불안했거든요.
사실은 어디에나 불안이란 요소는 있다 보니까 이제 그 불안을 저희가 어떻게 맞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다가오는 불안에 대해서 감내하고 안아 가서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점점 나아가던지, 아니면은 불안하니까 나는 내 딴에 다른 안전한 길을 찾을 거야 하고 모색해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던지 이런 것들을 각자가 생각하는 게 훨씬 더 필요한 얘기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요."
『 고래와의 여정을 시작하다. 』
- 어느 순간 고래 그림이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고래라는 주제를 어떻게 잡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 22년 12월에 서일페라는 행사에 처음으로 나가게 됐어요. 그때 당시 제 그림에서 고래가 비중이 크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보면서 자꾸 고래다 고래다 이러면서 지나가는 거예요. 그림들 중에 유독 고래를 기억을 많이 해주시네를 캐치했죠. 그리고 23년 1월에 구캔갤러리에서 단체전을 했었는데 그때 오시는 분들이 고래 그림을 보면서 너무 좋았어요. 이런 얘기를 하니까 그러면은 고래로 컨셉을 잡아봐야겠다. 내가 가진 강점 중에서 하나라는 생각으로 그때부터 컨셉을 고래로 잡았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누군가의 반응을 추적하면서 그렸다는 거에 대해서 너무 세속적인 사람 같아서 좀 부끄럽기도 해요.
근데 작년 말쯤부터는 저도 고래에 대해서 일부러 계속 공부를 하고 있는 편이거든요. 제가 고래를 좋아하는지 저도 몰랐어요. 전 고래 그림만 좋아하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제가 동물 고래를 좋아하더라고요. 고래가 가지고 있는 상징들이 있잖아요. 행운의 상징이기도 하고 날아오르는 모습 혹은 바다 위에 올라서 지느러미치기를 하거나 꼬리치기를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희망을 느끼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어려서부터 계속 갖고 있었던 생각이 상어는 공격적인데 고래는 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고래는 평화로워 이런 느낌이어서 좋아했었던 것 같아요. 희망적이고 평온함을 주면서도 되게 힘차고 행운도 상징해 되게 좋은 동물이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고래가 사랑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많은 동물들을 보호하고 배려하기도 하면서 되게 인간에게 친화적이잖아요. 쟤는 우리가 잔인한 걸 알까? 어쩜 저렇게 사랑스러울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제가 그리고 싶은 메세지의 총집합체인 동물이기도 하고 제가 원하는 인간 군상이에요. 사랑이 많고 누군가한테 평온함을 주면서 희망적이고. 그러다 보니까 저는 그리면서도 되게 만족하고 있는 방향이고 더 다양한 걸 앞으로도 그리겠지만, 계속 고래를 그릴 것 같아요."
[2022.12.09 - 12.18] 꼴라보하우스 문래 제1회 RAF : "끝". 그리고 시작
- 전시장 입구가 작가님의 그림으로 크게 되어있어요. 꽤나 특별한 경험일 것 같은데, 입구 전체를 본인의 작품으로 했을 때 기분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 기분 너무 좋았죠. 제가 이거를 막 도맡아서 하겠다 한 게 아니라 저는 그냥 단체전에 참가하는 하나의 사람이었는데. 그때 참가하는 2점의 그림이 정말 우연히 고래 2마리였어요. 주최 측이 이 그림을 좋게 보고 하게 된 거예요. 이때 진짜 신났었어요. 신나가지고 동네방네에서 소문내고 그랬어요. 정말 신났었어요. 되게 재미있는 전시였죠."
[2022.12.22 – 12.25]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v.14
- 첫 페어죠. 지금과는 좀 많이 다른 느낌이 있어요. 지금은 부스도 넓고 큰 그림들도 많고 굿즈들로 빽빽이 이루어져 있잖아요. 이때는 정말 처음 시작하는 느낌이 나는 기분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첫 페어 참여하면서 느꼈던 기억들이 궁금하네요.
" 사실 제 눈물샘 같은 사진이라 가지고... 이때 당시의 기억이요. 제가 21년, 22년이 공백기였다 했잖아요. 그림과 저를 동일시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습관적으로 동일시하게 되거든요. 내 그림이 인정을 못 받나 봐, 외면받는 느낌, 내가 이거를 이렇게 먹고살아도 될까라는 생각에서 이제 거의 끝을 달리다가 제 나름의 마지막 도전이었어요. '안 되면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큰 기대도 없었어요. '하루에 얼마라도 벌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왔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왔던 곳이었는데. 사실 행사장에 사람이 워낙 많았던 덕이 컸을 거예요. 좋은 반응을 되게 많이 봤어요.
그때 처음으로 느꼈던 게 '계속해야겠다. 내가 이거 아니면 뭐해. 나 이거 해야 돼.' 이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고, 그동안의 노력들을 다 돌려받은 느낌이었어요. 사실 저는 찬희님이 말씀하셨던 22년 그림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풍이라고 얘기하지만 제 눈에는 고칠 부분도 너무 많고요, 모자란 부분도 너무 많아요. 근데 이 모자란 애들이 조금씩 조금씩 점진적으로 쌓이고 쌓여서 나아가는 거잖아요. 이 모자란 애들이 저를 뒷받치고 저를 지지하고 있는 느낌인 거예요. '내가 얘네랑 함께 견뎌왔지.' '내가 얘네랑 함께 여기까지 왔지.' 이 생각을 이때부터 했던 것 같아요. 모자라도 얘네를 좋아할 수밖에 없구나. '내 건데 내가 싫어하면 어째.'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래서 돌려받은 느낌에 기뻤고 여러 가지 감정이었어요. 사람들이랑 처음으로 만나 뵈면서 또 벅차기도 벅찼고 음... 이때 당시에는 제가 인류애가 바닥나 있는 상태였거든요. '내꺼 왜 안 봐줘, 세상 다 싫어' 이런 느낌이었어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느낀 게 나는 누군가의 그림을 저렇게 진심으로 몇 번이나 봤을까? 내 그림을 이렇게나 오래 보는 사람도 있구나. 그림 너머에 있는 나라는 인간한테도 말을 걸어주는 분들이 있구나. 따뜻한 분들이 많구나.
지금도 제가 오프라인 페어를 계속 나가는 이유가 그 어떤 전시보다 많은 사람에게 그림을 보여드릴 수가 있어요. 페어만큼 많은 분들께 그림을 보여드릴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거예요. 제가 개인적으로 전시를 연다고 해도 제가 부를 수 있는 분들은 한정적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페어는 가장 많은 분들의 반응을 가장 빠르게 볼 수 있는 곳이었어요."
『 고마움의 연속. 』
[2023.01.05 – 02.12] 구캔갤러리 / 새로운 시작
- 단체전을 참여하셨는데, 전시 기간 동안 갤러리에 꽤나 많은 시간을 상주해 계셨어요. 이곳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던 이유가 궁금하네요.
" 진짜 솔직하게 얘기하면은 처음에 단체전에 참가할 때 규칙으로 '몇 회 이상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을 해 주셨어요. 근데 그때 저랑 다소금 작가님이었을 거예요. 저희 둘이 이거를 상주를 많이 해야 된다고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상주 계획을 진짜 알차게 많이 짜 놓은 거죠. 이렇게 써놓으니까 반박도 할 수 없고 그래서 왕창 온 거죠. 맨날 와서 앉아있고 그랬었는데, 하다 보니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무조건 상주를 많이 하고 싶다. 최대한 많이 하고 싶다.
올해 4월에 개인전 했을 때는 매일 갔어요. 상주 소식을 많이 알리는 만큼 많이들 보러 오시니까요. 제 방보다 멋진 공간에 제 그림을 걸어놓는 거잖아요. 이 기회가 또 언제 있어요. 이 기회를 누려야 되잖아요.
제가 있을 때 저인지 알아보고 말을 거시는 분들도 있는가 하면 절 찾았다가 저를 몰라보고 못 찾고 그냥 가시는 분들도 계세요. 원래 저는 '전시 보러 왔으면 그냥 그림 보고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었는데, 저를 찾아서 왔다는 분들이 계신 거예요. 가끔 일정 잡고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림만 보는 게 아니라 나와 얘기도 나누고 싶은 거구나. 그러면 가서 앉아 있어야지.' 이런 생각도 하고 또 그런 얘기를 하는 속에서 좀 더 깊게 유대감이 형성되는 부분도 있고 제가 얻는 부분들도 많아요. 그렇다 보니까 저는 상주를 진짜 많이 하는 것을 원하죠."
[2023.10.13 ~ 10.15] 2023 수원 일러스트코리아
- 2023년은 정말 바쁜 한 해를 보내게 됩니다. 페어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7~8개 정도 정말 많은 페어에 참여를 하셨는데 팬들과의 소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 페어는 인류애를 충전하는 장이거든요. 가끔 의심을 하게 될 때가 있어요.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저는 나름 사랑이 원동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요. 그림이라는 것을 불안을 달래기 위해서 그렸던 거긴 하지만 나는 이 행동을 너무 사랑했고 사랑으로 달려왔어요. 이런 저의 마음이 닿아서 누군가는 위로를 받았다고 저를 보러 오고. 결국 이 사람들이 또 얹어져서 내 원동력이 되고 있으니까 '난 이걸로 살아가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 연료가 조금씩 닳아버리면 또 이게 사람이 힘든 시기가 오더라고요. 페어는 그럴 때마다 부정적인 것들을 많이 달래주는 게 되기도 하고 사실 제가 '팬' 이런 말이 아직은 되게 민망하거든요. 팬들을 기억을 좀 잘하는 편이에요. 몇 번 봤다 싶으면 다 기억하려고 하는 편이고 기억이 잘 나요. 그 사람이랑 했던 대화가 잊혀지지도 않고 팬이라기보다는 좀 지인의 느낌이거든요. 제가 친구가 많이 없어가지고 기억이 잘 나는 것 같아요. 친구면 기억해야 될 사람이 많은데 기억해야 될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 팬에 대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이분은 정말 기억이 잘 남는다.
" 기억에 잘 남는 분 같은 경우에는 조금 많은 편인데 세분만 얘기하면 음 한 분 같은 경우엔 구캔갤러리에서 단체전 했을 때 만나 뵀던 분인데 아까 봤던 소녀가 고래 등에 타고 있는 우영우 그림 있잖아요. 그걸 핸드폰 바탕화면 해놓고 매번 보면서 항암 치료를 하셨대요. 지금은 완치를 했다고 이제 오신 노부부이신데, 남편분이랑 항암 치료하신 아내분께서 오셔서 너무 고마웠다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제가 매번 한 말 중에 하나가 '반응이 지금 안 올지 모르겠지만,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는 누군가는 이거를 보고 뭔가 힘을 내겠지. 진짜 멀리 있는 어떤 누군가는 내가 행복하길 바라고 있겠지.' 이런 말을 자주 했었는데 딱 그분들이 거기 계셨던 거예요. 저의 말을 증명해 주는 사람이어서 그때는 되게 뭉클했었던 것 같아요. 정말 살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이겨내주시고 살아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진짜 말 그대로 살아주신 게 감사했어요."
" 두 번째는 어떤 여성분인데, 고등학생이세요. 지금도 행사장에 되게 자주 찾아오시는 여성분인데 눈이 엄청 반짝반짝거리는 거예요. 자리도 잘 안 뜨세요. 일러스트를 너무너무 좋아하시고 자기도 이런 걸 하고 싶다고 말씀을 하시는 여성분이 계셨어요. 음 저 사람은 언젠가 하겠네 이 생각을 하면서 되게 계속 봤던 분이 계셨거든요.
근데 조금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그 저희 부스의 도우미로 둘비 님이라고 계세요. 저를 도와주시고 저한테 조언을 해 주시는 분이에요. 그림에 대한 조언보다는 사람을 대하는 조언이나 마케팅적인 조언을 좀 많이 주시는 분입니다.
둘비 님과 했던 얘기가 있는데, 저는 너무 세상을 환상 어린 눈으로 보는 게 있어요. 영상과를 갔던 이유도 그 당시에 되게 유행했던 피노키오라고 기자 드라마였거든요. 그때 그거 보고 이제 나도 저렇게 사명감 있는 사람이 돼야겠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온 거였어요. 근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거예요. 갔던 회사들도 다 안 맞았고 적응도 못 했지만, 그때 당시에 제가 느꼈던 거는 생각보다 세상이 많이 녹록지 않구나 일하기가 참 쉽지도 않고 나는 왜 그런 환상을 품어 가지고 이렇게 된 걸까. 차라리 환상이란 게 없었으면 좀 편하게 적응했을 텐데. 둘비 님은 이런 생각이 전혀 없는 스타일이세요. 환상이 없고 현실적인 분이시다 보니까 '난 그런 거 잘 없었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근데 그 환상이 있어서 뭔가를 시작하지 않나? 환상으로 인해서 잘되고 싶은 꽃밭의 나래를 펼쳐서 잘 된 거 아닌가?' 이런 얘기를 하시는데 맞는 것 같은 거예요. '그렇다면 그 환상은 결국에는 자기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거 아닌가? 결국 다 계속 달리게 만드니까 그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맞는 것 같더라고요. 결국에는 내가 그런 환상을 갖고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삶을 믿으면서 살면 그게 또 현실이 되겠지 이런 얘기로 저희가 마무리를 지었거든요.
너무 좋은 대화였다고 생각해서 이 얘기를 주제로 인스타에 글을 쓰고 있었는데, 눈이 반짝이는 소녀분이 생각이 났었어요. 그런데 이 글을 보고 그 소녀분한테 연락이 오는 거예요. 그 글을 보고 너무 자기 얘기랑 똑같아가지고 너무 힘이 됐다. 제 얘기를 한 건데 의도치 않게 그분께 힘이 되어드린 신기한 경험이었죠."
" 마지막 한 분은 매 행사 때마다 계속 와주시는 분이 계신데, 부산에서 카페를 운영하시는 분이 계세요. 이분 같은 경우에는 정말 지역 안 가리고 와주셨는데 올봄에 했던 개인전 때 제가 상주해 있는 날 오셨더라고요. 처음으로 좀 오래 대화를 했었는데 그분이 얘기하시기를 '오랫동안 이걸 했으면 좋겠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왔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거든요. 그림이 좋았다. 그림으로 내가 위로받았다. 이런 얘기들도 너무 감사하고 좋았는데 '당신이 이걸 오래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얘기를 직접적으로 들어봤던 거는 처음이었어가지고 그때 또 되게 뭉클했죠."
『 고래, 날개를 펼치다. 』
- 굿즈 종류가 참 다양합니다. 키링, 우표, 스티커, 엽서, 티켓, 부적 등 굿즈 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저 같은 일반인들은 이런 걸 어떻게 만들지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아이디어부터 주문하고 만드는 전체적인 과정이 좀 궁금하네요.
" 처음에는 그래도 되게 단출하게 시작했거든요. 엽서랑 스티커 이게 다였어요. 정말 그냥 일반적인 10센티에서 15센티 엽서 하나, 조금 더 큰 A5 사이즈 엽서 하나, 스티커, 벽면에 붙이는 큰 포스터 하나 이게 다였어요. 행사를 하면서 굿즈에 대한 반응을 보다가 점점 다양하게 만들고 싶기도 했고, 굿즈를 계속 해나가려면 신상이 계속 나와야 되는 상태인 거예요. 제가 국밥집은 아니잖아요. 국밥집이면 매일매일 똑같은 걸 끓여도 되는데 저는 국밥집이 아니라서 신상이 나와야 되니까. 회전하는 게 중요하다. 계속 새로운 게 나와줘야 되는구나라고 생각을 해서 새로운 거를 만들려고 매번 엄청 생각하는 편이에요.
처음에는 스티커도 고래 스티커가 그 당시에는 없었어요. 그 당시에 만드는 방법이 저한테 너무 어려웠던 거예요. 고래 모양으로 똑 떼지게 잘리는 칼선을 넣어야 되잖아요. 그런 것도 너무 어렵고 내가 이제 이거 어떻게 해 그래서 그냥 사각형 모양으로 그림 있는 스티커만 해 가지고 몇 점 안 되게 넣어놨었어요. 그러다가 이제 어쨌든 간에 새로운 게 나오려면 하기는 해야겠다 해서 아이디어를 충전하려고 소품샵같은 곳을 진짜 많이 다녔어요.
의외로 일러스트 페어 현장에서는 아이디어 충전이 잘 안되는 게 너무 많은 부스가 있다 보니 잠깐 보고 넘어가고 보고 넘어가고 하게 돼서 자세하게 못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각 잡고 소품샵을 가서 보고 오거든요. 소품샵도 빈티지 소품샵 아니고 문구 작가들 입점해 있는 홍대 팝업 그런 데로 가는데 몇 곳을 계속 보면서 괜찮은 레퍼런스들 있으면 사 와가지고 한 번씩 보고 그랬죠. 처음에 했을 때는 키링 같은 애들을 하자니 저한텐 위험한 물건인 거예요. 제작을 하자니 비용도 많이 들고 그리고 이게 많이 뽑았을 때 보관도 난감해서 함부로 도전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키링이 그동안 없다가 작년 연말에서 올 초 사이에 나왔어요. 그전까지는 키링 없이 지류로만 했거든요. 나는 지류에서 최대한 창의적인 컨셉을 넣어서 다양한 지류를 뽑아야 돼 이 생각으로 계속 돌렸거든요. 그래서 나왔던 게 티켓, 부적이에요."
" 부적은 제 친구들 중에 아이돌 덕질하는 친구가 있는데, 걔가 추천해 준 아이디어였어요. 부적 인기 좋더라 너 한번 만들어보는 거 어때? 이렇게 얘기를 하길래 처음엔 좀 흘려 들었거든요. 근데 얘가 꾸준히 부적 얘기를 하는 거예요. 얘 왜 이렇게 부적 얘기를 많이 해? 하면서 만들었는데 정말로 사랑을 많이 받아서 신기했죠. 일단은 의미가 다 다르게 적혀있다 보니까 지나가다가 1장씩 꺼내보시고 궁금하신 것 있으면 말씀해 달라 하면은 되게 재밌게 보세요. 굿즈라는 게 필요에 의해서 사는 게 아니라 예뻐서 사거나 갖고 싶어서 사거나 선물하려고 사거나 하다 보니까 부적이 딱 그 선물하기 좋고 간직하기 좋고 들고 다니는 게 좋다 해 가지고 애정을 많이 받는 그런 아이들이죠."
" 티켓 같은 경우는 컨셉이 되게 잘 맞았던 것 같거든요. 티켓 안에 보면 여러 단어들이 있는데, 그게 다 제 나름대로 단서라 해야 될까 떡밥처럼 이렇게 넣어놓은 것들이 되게 많아요.
제 딴에는 이런 애들을 좀 더 다양하게 더 만드는 게 목표거든요. 부적과 티켓이 좀 스테디한 느낌으로 애정을 많이 받으니까 이런 식으로 반응 좋은 애들을 계속 만들고 싶다. 이런 생각으로 요즘 이런 거 개발하는데 미칠 것 같아요."
" 그리고 이제 나왔던 게 키링이었는데. 키링중에 카세트 테이프 키링이 인기가 진짜 많은데 '고래 노래'를 주제로 한 키링이거든요. '고래와 나'라는 전시회가 있어서 갔는데 고래가 잠자는 영상을 보여줘요. 바닷속에서 일자로 서서 잠을 자거든요. 자면서 우는소리가 들려요. 고래 울음소리를 듣는 시간이 있는데, 되게 평온한 거예요. 이거다. 이걸로 만들어야겠다."
" '고래의 노래'라는 키워드를 제가 너무 좋아해서 음악을 담은 카드라고 CD 형태의 엽서도 만들었어요. 근데 얘는 앞으로 더 만들 계획이 없어요. 만드는 데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요. 되게 예쁘고 저는 좋아했는데 디자인이 만드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제가 디자인에 너무 약하거든요. 제일 어려워해요. 만들면서 지금까지 만들었던 모든 굿즈들 중에 역대로 가장 오래 걸리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는 못 만들어 얘네 여기서 끝이야 그러고 포기했거든요. 그랬던 앤데 이런 카드 형태의 엽서가 될 수도 있지만 스티커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키링이 될 수도 있고 '고래 노래'라는 키워드로는 계속 뭔가를 만들 계획이에요.
제작은 제가 뭔가 말씀드리기가 되게 애매한 게 사실 저는 유튜브에 있는 스티커 만드는 방법 뭐 이런 거 검색하면 브이로그나 방법 알려주는 게 되게 많이 나와 가지고 그런 걸 보고 따라 한 것도 있었고, 캐릭터 만들 당시에 지금보다 더 다양하게 엄청 많았어요. 꿈에 절어가지고 온갖 걸 다 만들었거든요. 그때 막 인형도 만들고 그립톡 케이스 손거울 진짜 온갖 거 다 만들었어요. 그때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사실 제작에 대한 방법은 아마 저보다는 유튜브로 알려주시는 것들을 보고 익히시는 게 좀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네요."
- 2023년은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한 해가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었어요. 인스타에 길게 쓴 글이 좀 많았어요. 많은 걸 느끼셨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2023년은 전체적으로 어땠나요?
" 작년은 도약하는 일들이 많았던 해라고 해야 되죠. 22년은 힘들었고 23년은 도약했던 해. 그때 당시에 페어를 7번을 했는데 어디 보자 부산도 가고 광주도 가고 대구도 가고 전주에서 개인전도 하고 단체전도 하고 했는데 이게 저한테 다 처음이었거든요. 대구도 처음 가보고 부산 태어나서 처음 가봤고 광주도 처음이고 다 이제 난생처음 가보는 도시들이다. 아예 다 처음 가봐서 새로운 걸 되게 많이 배워서 그때 당시엔 느낀 게 많았을 수밖에 없죠. 그리고 여유가 아예 없었어요. 뭔가 시작을 하겠다고 질러놓고 처리하는 과정이 작년이었던거든요. 일을 지르고 해결하고 또 지르고 해결하고 이러면서 작년을 메운 건데 이 치르는 과정에서 제 불안도가 너무 높은 거예요. '잘 될까? 잘 안되면 어떡하지? 사람이 많이 안 오면 어떡하지? 반응이 저조하면 어떡하지?' 많이 불안한 거예요. 근데 막상 끝나고 난 후의 느낌은 또 다른 거예요. 반응이 어쨌든 간에 그 속에서 또 저는 배우는 게 있었다 보니까, 시작할 때의 느낌이랑 의외로 다르게 끝난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여러 가지로 좀 불안과 부담이 많았는데 부딪치면서 깼던 한 해였던 것 같아요. 부딪치면서 불안을 굳이 가질 필요 없구나 하고 이제 깼던 해였던 거 같고, 재미있었죠 "
[2024.07.04 ~ 07.07]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V.17
- 정말 바빴던 2023년이 끝이 나고 2024년이 시작이 됩니다. 저는 이번년도가 더 바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요. 너무 무리해서 일정을 진행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앞으로도 계속 바쁠 예정인가요?
" 네 더 바빠져야죠. 일단은 제가 페어에 안 나가면 아마 얘기할 자리가 많이 줄어들 거예요. 전시를 제가 막 계속 주구장창 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얘기할 자리도 많이 줄어들 거고, 그러면 아마 그 사이에서 잊혀지기도 쉬울 거 같은 느낌도 있고요. 그리고 제가 사실 폐어를 뛰는 이유가 제 나름의 텐션이에요. 혼자 일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루즈해지기가 너무 쉬워요. 너무 쉽게 풀어지다 보니까 페어를 나가는 일정이 생기면 그거에 맞춰 가지고 부랴부랴 준비하는 면도 있거든요.
계속해서 이걸 굴려가기 위한 나름의 사이클이 되기도 해가지고 나가는 것도 있죠. 나가 가지고 반응 보는 것도 재미있죠. 예를 들면 새로운 거를 찾는 사람들에 대한 반응도 있고, 지금의 것과 새로운 신작을 냈을 때 그 차이를 잘 못 찾는 사람들의 반응도 있고, 트렌드라는 게 계속 바뀌면서 유행하는 컬러도 시기별로 다르기 때문에 어떤 색을 선호하는지도 계속 달라지고, 이런 흐름을 잡고 가려면 계속 봐야 되더라고요. 제가 방구석에서 못 잡는 게 너무 많아가지고 나가는 게 좋아요."
『 끝으로, 하지 못한 이야기. 』
- 살짝 개인적인 질문일 수도 있어요. 되게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생각을 해요. 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건지 좋은 사람이 곁에 많은 건지, 작가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합니다.
" 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죠. 외동딸이어서 사랑을 독차지하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제가 미대를 가고 싶었는데, 경제적으로 미대까지 지원해 주긴 어려우니까 다른 걸 해보는 게 어떻겠냐라고 얘기를 했다 했잖아요. 저희 집이 좀 많이 가난해요. 조금 많이 가난한 편인데 예전에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이런 수저론이 돌았던 적이 있잖아요. 제가 엄마랑 얘기하다가 우리는 흙수저인가 이런 얘길 했는데 엄마가 아니 우린 손으로 퍼먹어야지 손수저야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저희 부스 보면 크다고 막 되게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챙겨오는 것들이 제가 봐도 진짜 부피가 엄청 크거든요. 테이블 같은 경우도 행사에서 주는 게 아니라 제가 따로 챙겨온 것들 추가하는 거거든요. 테이블을 원래는 하나만 제공해주고 제가 거기다가 따로 제 테이블 따로 추가하고 이제 뭔가 거치대 같은 경우도 제가 이제 딱 이제 매번 추가될 때마다 새로 만들어 가지고 가지고 오고 액자만 해도 부피가 되게 커서 차에 안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대로 가다가는 용달이든 렌트를 하든 그럴 날이 머지않아 오겠구나.
근데 저도 큰 공간의 욕심이 되게 많거든요. 그래서 이거에 대해선 지금 계속 고민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중이거든요. 이게 저 혼자서는 안 돼요. 이걸 다 도와주시는 분들이 저희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매번 와 가지고 도와주세요. 근데 제가 하지 말라고 해도 도와주시거든요. 사실 짐 나르고 하는 게 어르신들한테 되게 힘들잖아요. 안 했으면 좋겠는데 우리 부모님이 항상 달고 계시는 말이 우리가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이런 거라도 해줘야지 하고 도와주시는 분들이시거든요. 그래서 요즘 느끼는 건데 진짜 손으로 이렇게 하나하나 도와주고 손으로 물려주는 거 보면 진짜 손수저구나. 좀 웃픈 이야긴데 사랑을 되게 많이 받기는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