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이 그림이 왜 봄을 그린 그림인가?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읽기

by 수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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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봄의 알레고리인 <프리마베라>


09primax.jpg 보티첼리, <La Primavera> (1482)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미술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의 그림 <프라마베라 La Primavera>(1482)는 이탈리아어로 봄이라는 뜻으로 봄을 주제로 한 그림입니다. 하지만 현대인의 눈에 이 그림이 봄을 그린 그림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데요, 현대와 보티첼리의 시대에 봄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봄을 표현하기 위해 봄의 풍경을 직접 보여주는 반면, 500년 전 서양인들은 비유와 상징을 이용해 봄을 표현했습니다. 봄을 비롯한 계절, 사랑, 아름다움, 시간, 성욕 등의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대상 혹은 의인화 된 무언가를 통해 제시하는 걸 알레고리(allegory)라고 합니다. 알레고리는 15세기에 등장해 19세기 초반까지 약 400년 동안 꾸준히 사랑을 받았는데 <프리마베라>는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알레고리 그림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오늘날에는 그저 봄이라는 뜻의 <프리마베라>로 불리지만 정확한 제목은 <봄의 알레고리 Allegoria della Primavera>입니다. 보티첼리는 이 그림을 통해 알레고리의 정석을 보여줌으로써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1576)와 함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술가로 칭송 받게 되었습니다. 봄의 풍경을 그린 풍경화나 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풍속화는 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지만 <프리마베라>와 같은 알레고리 그림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프리마베라>는 봄을 시각화한 그림이지만 이 그림은 읽기 작업이 필요한 그림입니다. <프리마베라> 해석의 핵심 열쇠는 그림에 등장하는 아홉 명입니다.


2. 그림 속 아홉 명의 정체

그림의 가운데 축에는 중세풍의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아기 천사가 위치합니다. 젊은 여인은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인 아프로디테(Aphrodite)입니다. 우리에게는 로마 신화의 비너스(Venus)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죠. 여신답게 그녀는 오른손을 들어 축복을 내리는 듯 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미(美)와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의 머리 위를 날고 있는 아기 천사는 그녀의 아들인 로마 신화에서 에로스(Eros)로도 불리는 큐피드(Cupid)입니다. 큐피드는 날개 달린 어린 아이나 소년의 형상으로 활과 화살을 가지고 등장합니다. 큐피드는 단독으로 등장할 때도 있지만 이 그림처럼 대부분 어머니인 비너스와 함께 등장하는 편입니다.


11primav.jpg 보티첼리, <La Primavera> (1482) 세부


큐피드의 화살은 아프로디테의 오른쪽에 위치한 세 명의 여인들을 향합니다. 이들은 삼미신(三美神, Charites/Three Graces)입니다. 삼미신은 미의 여신들로서 각자의 영역이 있습니다. 아글라이아(Aglaia)는 아름다움과 찬란함을, 에우프로시네(Euphrosyne)은 기쁨과 환희, 즐거움을, 마지막으로 탈리아(Thalia)는 풍요로움, 활짝 핀 꽃망울, 축복 등을 상징합니다. 이들은 늘 붙어 다녔기 때문에 이렇게 세 명이 동시에 등장하는 편입니다.


삼미신의 옆에서 나무 열매를 따는 젊은 남성은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Hermes)입니다. 헤르메스는 제우스(Zeus)와 봄의 여신 마이아(Maia)의 아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헤르메스는 이미 태생적으로 봄과 관련이 있죠. 헤르메스는 날개가 달린 모자와 신발을 착용한 젊은 남성으로 묘사됩니다. 그는 어머니인 마이아보다 민간에서 더욱 인기가 높은 신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양계 첫 번째 행성인 수성이 그의 로마식 명칭인 메르쿠리우스(Mercurius)를 따 머큐리(Mecury)가 될 수 있었습니다. <프리마베라>에도 마이아가 아닌 헤르메스가 등장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10primav.jpg 보티첼리, <La Primavera> (1482) 세부


비너스의 왼편에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화환을 쓴 아름다운 여인은 꽃의 여신 플로라(Flora)입니다. 그리고 플로라 옆의 젊은 여성은 클로리스(Chloris)입니다. 화면 가장 오른쪽의 인물은 서풍의 신인 제피로스(Zephyros)입니다. 꽃의 여신 플로라, 서풍의 신 제피로스, 그리고 이 둘 사이에 젊은 여인인 클로리스가 봄을 형상화한 보티첼리의 그림에 등장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3. 그림 속 아홉 명의 상징

인간은 오래 전부터 봄을 가장 아름다운 계절로 평가해 왔습니다. 5월은 흔히 계절의 여왕이라 불립니다. 5월은 봄이 절정에 달한 시기입니다. 5월에게 계절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부여한 건 봄을 가장 아름다운 계절로 여겨왔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런 봄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건 형형색색의 꽃입니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과 같은 봄꽃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물이 봄에 꽃을 피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봄을 시각화한 그림에 꽃의 여신이 등장하는 건 무척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 B.C. 43-A.D. 18?)는 꽃의 여신 플로라의 탄생을 시로 노래합니다. 서풍의 신 제피로스는 어느 날 클로리스를 만나 한 눈에 반합니다. 서풍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가장 온화하고 따뜻한 바람으로 주로 봄철에 부는 바람에 관한 명칭이기도 합니다. 서풍은 여전히 차갑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과는 구분되는 바람으로 겨울을 밀어내고 봄을 불러오는 바람이라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 봄을 상징하는 바람을 관장하는 신이 바로 제피로스이기 때문에 그림 속 제피로스가 창백해 보이는 파란색으로 묘사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사랑의 열병에 빠진 제피로스는 클로리스와 결혼하고 싶어서 결국 그녀를 납치하고 맙니다. 하지만 클로리스는 자신을 납치한 제피로스가 맘에 들 리가 없습니다. 제피로스는 클로리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그녀를 꽃의 여신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결국 클로리스는 제피로스에 의하여 꽃의 여신 플로라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클로리스와 플로라는 동일인물인 거죠. 보티첼리는 이 복잡한 이야기를 응축해서 보여주기 위해 화면 왼쪽보다 오른쪽을 보다 역독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로 결심합니다. 제피로스는 클로리스를 향해 다가가 그녀의 허리춤을 잡고, 제피로스의 등장에 클로리스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보티첼리는 제피로스를 클로리스에게 입김을 부는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클로리스의 신체를 스친 제피로스의 입김은 꽃잎을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보티첼리는 오비디우스 시의 복잡한 서사를 한 장면으로 응축해서 보여주는 데 성공합니다.


클로리스와 플로라는 같은 인물이지만 제피로스에 의하여 꽃의 여신으로 재탄생하기 전후로서 엄밀히는 서로 구분됩니다. 하지만 이 둘 모두 꽃의 여신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봄이 절정에 달한 5월뿐만 아니라 꽃망울이 올라오는 3월 역시 계절적으로는 봄에 해당합니다. 인간은 꽃이 만발하고 따뜻함을 넘어 살짝 더위를 느끼는 시기만을 봄이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한겨울 바람과 구분되는 온화해진 바람, 돋아난 꽃망울을 통해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 왔음을 느낍니다.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꽃이 만개한 5월을 플로라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꽃망울이 돋아나는 3월은 클로리스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플로라를 성숙한 여인으로, 클로리스를 아직은 덜 성숙한 소녀의 모습으로 묘사한 것도 봄이 이처럼 넓은 시간적 범위에 걸쳐져 있음을 제시하려는 보티첼리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12primax.jpg 보티첼리, <La Primavera> (1482) 세부


<프리마베라>는 가운데 아프로디테와 큐피드를 축으로 양쪽이 대칭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제피로스와 정확히 반대 위치에 헤르메스가 위치한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사자(使者)이자 신들 사이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령입니다. 헤르메스는 새로운 소식의 전달자뿐만 아니라 새로운 소식, 더 나아가 시작을 상징하는 신의 반열에 오릅니다. 겨울의 한 가운데인 1월을 한 해의 시작으로 하는 양력 체계가 세계 표준이 된 건 20세기부터입니다. 그 전까지 인류는 계절에 따라 1년을 구분했고 봄을 한 해의 시작으로 여겨 왔습니다. 많은 동·식물은 겨울 동안 활동을 멈춥니다. 그러다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마치 마법처럼 새 잎과 새 순이 돋아나고 겨울잠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런 이유로 인간은 오랫동안 봄과 시작이라는 개념을 연결시켰고 봄을 한 해의 시작이라 여겼습니다. 보티첼리의 그림에 헤르메스가 등장하는 건 그가 단지 봄의 여신 마이아의 아들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새 소식과 시작을 상징하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13prima.jpg 보티첼리, <La Primavera> (1482) 세부


헤르메스 옆에 아름다움을 관장하는 삼미신을 배치시킨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시각을 비롯한 봄이 선사하는 감각적인 변화는 미술가·음악가·문학가와 같은 예술가들의 예술충동(Kunstwollen)을 자극합니다.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시각적으로는 아름답고 기후적으로는 온화해 활동하기 쾌적한 봄을 즐기고 찬양하기 위한 노래를 지어 부르거나 그림을 그려 왔습니다. 서양에서 중세 시대 동안 음악과 미술은 기독교를 찬양하기 위한 종교적 도구로서 활용되었지만 이미 보티첼리 시대에 예술은 점차적으로 종교와 분리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보티첼리 사후에 더욱 빨라졌고 점차 많은 음악가와 미술가들이 봄에 영감을 받아 위대한 걸작들을 세상에 남기게 되었습니다. 꽃이 봄의 아름다움을 의미한다면 예술은 봄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탄생한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삼미신은 아름다움 중에서도 특히 예술의 아름다움을 관장하는 여신입니다.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 삼미신은 예술 그 자체의 상징으로 자리 잡습니다. 보티첼리가 꽃을 상징하는 꽃의 여신들과 완전히 상응하는 자리에 예술의 상징인 삼미신을 배치시킨 건 이러한 정교한 개념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12primav.jpg 보티첼리, <La Primavera> (1482) 세부


큐피드 역시 주목해볼만 합니다. 아프로디테가 미와 사랑을 관장하는 최상위의 신이고 그 중에서 플로라가 꽃으로 대변되는 자연에서의 아름다움을, 삼미신이 예술로 대변되는 인공의 아름다움을 담당한다면, 큐피드는 사랑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봄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사랑의 완성을 의미하는 “5월의 신부”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사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계절입니다. 그러한 의미로 <프리마베라>에 큐피드가 등장하는 것도 매우 설득력 있는 결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프로디테 혹은 비너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민간에서 가장 인기 있는 12 주신(主神)들 중 하나였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가장 먼저 이름을 떠올릴만한 신들 중 하나입니다. 아프로디테는 삼미신, 플로라, 제피로스, 심지어 또 다른 12 주신인 헤르메스보다도 중요도가 높습니다. 그러므로 아프로디테가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가운데 자리에 등장하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단지 그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봄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인 꽃, 서풍, 한 해의 시작, 예술, 사랑 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상위 개념이 아름다움이라는 단어이기 때문일 겁니다. 보티첼리의 봄을 형상화한 알레고리 그림에서 사랑의 여신이자 아름다움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가 가운데 등장하는 건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4. 보티첼리와 비너스

보티첼리는 <프리마베라>를 통해 알레고리라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각 표현 기법을 훌륭하게 구사해 냅니다. 알레고리를 활용해 봄을 표현하는 건 보티첼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보티첼리에게 영감을 받아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1527-1593), 프란체스코 알바니(Francesco Albani, 1578-1660)와 같은 후대 미술가들은 뛰어난 봄의 알레고리 그림들을 남겼습니다. <프리마베라>에는 총 아홉 명이 등장하지만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입니다. 보티첼리는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와 떼래야 뗄 수 없는 화가입니다. 왜냐하면 그 후 보티첼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비너스의 이미지가 담긴 걸작 <비너스의 탄생 La nascita di Venere>(1485)을 완성하기 때문입니다.


6db0c6a1a420117808d58fc374338f6d-7632---Florence---Uffizi-Gallery-Tickets---15.jpg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갤러리( Galleria degli Uffizi)의 <La nascita di Venere> (1485) by 보티첼리


-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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