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인간은 봄을 어떻게 표현해왔을까?

사진에서 풍경화로, 다시 알레고리로 feat. 보티첼리 <프리마베라>

by 수다인

본 내용은 유튜브 [미술에 관한 모든 수다] 채널에서 영상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인간이 봄을 재현한 방식에 관한 짧은 역사: https://youtu.be/3DEqoPs2Gk8

▶ 미술에 관한 모든 수다 채널: www.youtube.com/@art_sudain




1.

2026년이 시작된 지 3개월이 지났고 봄이 찾아왔습니다. 메마른 땅에는 새싹이,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새잎이 돋아나고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동백꽃과 개나리꽃은 이미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고, 진달래, 목련과 벚꽃 등이 봄의 절정을 아름답게 수놓아 줄 겁니다. 사람들은 이 다시 만난 세계를 마치 처음 만난 세계인 것처럼 감탄하며 휴대전화의 카메라로 그 아름다움을 담아낼 겁니다.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보면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가졌습니다. 오늘날에는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어 스마트폰만 있다면 누구나 봄의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봄의 아름다움을 어느 누구라도 평등하게 소유할 수 있게 된 건 불과 2-3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금이야 휴대전화에 카메라 기능이 기본이지만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휴대전화는 그저 전화기일 뿐 그마저도 엄청나게 비쌌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별도의 카메라가 있어야 했고 카메라 역시 고가의 전자 기기였죠. 비용 부담 없이 사진을 찍으려면 그나마 1회용 카메라를 구입해야 했고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는 카메라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엄청나게 비쌌으며 엄청나게 크고 무거워서 휴대하기도 어려웠고 전문가가 아니라면 쉽게 다룰 수 없었습니다. 컬러 사진은 이미 19세기에 등장했지만 오랫동안 대중화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봄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사진가라 하더라도 무채색의 겨울이 형형색색의 봄으로 대체되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그저 눈으로 즐길 따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여전히 봄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건 사진이 아닌 미술, 그 중에서도 회화였습니다.


2.

1920년대에서 시간을 다시 50년 전으로 돌려 1870년대로 날아가 볼까요? 1874년 4월 15일 총 30명의 미술가들이 약 165점의 작품들을 공개한 전시회가 프랑스 파리(Paris)의 카퓌신 가(Boulevard des Capucines)에 위치한 사진가 나다르(Félix Nadar, 1820-1910)의 작업실에서 개막했습니다. 화가이자 비평가인 루이 르루아(Louis Leroy, 1812-1885)는 이 전시를 관람한 후 전시 작품들의 수준이 형편없다고 판단해 전시를 주도한 미술가 끌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출품작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oleil levant>(1872)를 콕 집으며 이 30명의 미술가들을 “인상주의자(Impressionistes)”라고 조롱하는 비평문을 발표합니다. 이렇게 모던 아트의 시초인 인상주의(Impressionisme)가 시작됩니다.


스크린샷 2025-09-09 오전 10.55.46.png 모네, <Impression, Soleil Levant> (1872)


인상주의라는 명칭이 풍경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인상주의자들은 풍경을 집중적으로 탐구했습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의 광학적 효과를 탐구하기에 풍경화만큼 적합한 회화 장르는 없었기 때문이죠. 인상주의자들을 특히 매료시켰던 계절은 봄이었고 그렇게 인상주의자들은 아름다운 봄의 풍경을 그림으로 담아냈습니다. 인상주의가 처음 시작되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인상주의자들은 대부분 당시 미술계의 비주류였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생계를 꾸리고 창작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중계상을 통해 판매했습니다. 인상주의자들은 초기에는 조롱을 받았지만 오히려 미술시장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그림을 판매하는 미술 판매자들이 인상주의자들의 그림을 열정적으로 홍보했기 때문이죠. 그렇게 인상주의 그림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19세기 말·20세기 초가 되면 인상주의 그림들은 부르는 게 값이 될 정도였고 미술계에서의 평가 역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림에 관심이 있거나 혹은 그저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그저 투자 목적으로 그림을 구매하려는 사람은 봄의 풍경을 그린 풍경화를 구매함으로써 봄의 아름다움을 소장할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 인상주의가 등장했을 당시에는 21세기 현재와 달리 누구나 평등하게 봄의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1870년대와 2020년대인 현대 사회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소유하고 싶은 봄의 아름다움에 관한 시각 이미지는 그것이 사진이 되었든 풍경화라는 그림이 되었든 봄이 도래한 풍경을 다룬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다르지 않습니다.


스크린샷 2026-03-14 오후 5.10.28.png 피사로, <Printemps à Pontoise> (1877)


3.

187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이제 1480년대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로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볼까 합니다. 당시 피렌체는 “위대한 자 로렌초”(Lorenzo il Magnifico)라 불린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Medici, 1449-1492)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는 미술가들을 전폭적으로 후원해 왔습니다. 당시 로렌초 데 메디치가 가장 애정했던 미술가는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입니다. 보티첼리는 메디치 가문을 위해 1482년 가로 319㎝, 세로 207㎝의 거대한 크기의 패널에 템페라(tempera) 그림을 완성합니다. 이 그림이 현재 피렌체 우피치 갤러리(Galleria degli Uffizi)에 소장되어 있는 <프리마베라 La Primavera>(1482)입니다. 보티첼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1576)와 더불어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중 한 명입니다. <프리마베라>는 보티첼리의 최고 걸작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애초부터 <프리마베라>라는 제목이 붙었던 건 아닙니다. 메디치 가문의 카스텔로 별장(Villa di Castello)에서 이 작품을 본 16세기의 미술가 조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는 이 그림을 봄을 형상화한 그림이라 설명했습니다. 최초의 미술사학자인 바사리의 설명에 따라 보티첼리의 거대한 템페라 그림은 그렇게 이탈리아어로 봄(primavera)을 뜻하는 <프리마베라>라는 제목으로 굳어졌습니다.


09primax.jpg 보티첼리, <La Primavera> (1482)


보티첼리의 그림은 봄을 그린 그림이라지만 현대인들에게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풍경화나 사진처럼 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보티첼리는 봄이 도래한 자연 환경을 묘사하기보다는 그림 속에 인물들을 잔뜩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그림 속에는 총 아홉 명이 등장합니다. 중세풍의 쉬폰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그녀의 머리 위를 날고 있는 아기 천사가 그림의 가운데에 위치합니다. 이 둘을 중심축으로 오른쪽에는 속살이 보이는 실크 드레스를 입은 세 명의 여인들과 모자를 쓴 젊은 남성이 위치합니다. 중심축의 왼편으로는 꽃무늬가 수놓아진 옷을 입고 화환을 쓴 젊은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의 옆으로는 역시 속살이 보이는 실크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있는데 이 여인은 창백한 푸른 색 피부를 지닌 인물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듯 뒤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화면 오른편의 실크 드레스를 입은 세 명의 여인들은 서로 둥글게 서서 손을 맞잡고 있고, 그림 왼쪽의 속살이 보이는 옷을 겨우 걸친 여인은 창백한 피부의 남성의 등장에 반응하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옆에 누가 서 있는지,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거의 전라에 가까운 세 명의 젊은 여인들이 서 있지만 화면 가장 왼쪽의 젊은 남성은 그녀들이 보이지 않는 듯 나무 열매를 따는 데에만 집중합니다. 화환을 쓴 여인은 자신의 바로 옆에서 소란이 발생하는 데도 평온하게 화면 앞쪽을 바라볼 뿐입니다. 아기 천사는 손을 맞잡고 있는 세 여인들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것 같지만 타겟이 세 여인이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으며 심지어 왜 세 여인들에게 화살을 쏘려는지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림 속 아홉 명의 인물들 중 일부는 서로 상호 작용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마치 다른 등장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서 있어서 그저 우연히 한 화면에 같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현대인들은 이 그림이 뭘 표현한 것인지 전혀 감도 잡을 수 없지만 조르지오 바사리는 단번에 이 그림이 봄을 표현한 그림이라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 이 그림이 봄을 표현한 그림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요?


4.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그림을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대상이 실제를 얼마나 있는 그대로 재현했는지를 식별하고자 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사물을 그린 정물화, 풍경을 그린 풍경화, 특정 실존 인물을 그린 초상화를 보면 사람들은 묘사된 대상이 얼마나 실제와 유사한지를 주로 판단합니다. 하지만 마치 사진을 찍듯 일정한 포즈를 취한 채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그림이 특정한 사건이나 장면, 즉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고 인식합니다. 하지만 서양에서 오랫동안 이야기 전달은 그림의 주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보티첼리가 <프리마베라>를 제작할 당시에는 비(非) 종교미술인 초상화라는 장르가 등장한지 얼마 안 됐고 풍경화나 정물화는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미술의 주류는 종교미술이었죠. 기독교 미술은 중세 초기부터 이야기 전달 의도가 없는 이콘(icon)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습니다. 15세기가 되면 기독교 미술에서도 이야기 전달의 중요성이 커지기는 했지만 기독교 미술의 핵심 목표는 여전히 관람자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데 있었습니다. <프리마베라>는 이러한 전통이 여전히 지속되던 시대에 제작된 그림입니다.


22adorat.jpg 보티첼리, <The Adoration of Magi> (1475) (관람자 쪽을 바라보는 남성은 보티첼리의 자화상)


조르지오 바사리는 보티첼리의 그림이 봄을 형상화한 그림이라고 서술했을 뿐이며 후대의 사람들이 바사리의 표현을 빌어 이 그림에 <봄>이라는 제목을 부여했습니다. 오늘날에 이 그림은 <프리마베라>라고 불리지만 바사리와 16·17세기 사람들은 보티첼리의 그림을 <봄의 알레고리 Allegoria della Primavera>라 불렀습니다. 봄은 인간에게 매우 친숙한 단어지만 본질적으로는 실체가 없는 추상적 개념입니다. 새싹, 여린 나뭇잎, 개나리꽃, 진달래꽃, 벚꽃, 파종하는 장면이 봄을 연상시키지만 그 자체가 봄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보티첼리 시대의 사람들도 봄이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봄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요소들을 차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인상주의자들과 같은 근대인들, 20세기·21세기의 현대인들은 새순, 만개한 꽃처럼 직관적인 요소들로 봄을 시각화한 반면, 보티첼리 시대의 사람들은 보다 은유적이고 관념적인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보티첼리와 당시 유럽인들이 봄을 비롯한 계절, 사랑, 아름다움, 변덕, 시샘, 생명력, 시간과 같이 추상적인 개념을 실존하는 구체적인 대상, 더 나아가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하는 방식을 알레고리(allegory)라 합니다.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가 현대인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지는 건 이 그림의 제목이 단순히 <봄>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근·현대 시기의 풍경화나 사진처럼 봄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이 아닌 알레고리라는 현대인들에게는 낯선 방식을 통해 재현해 냈습니다. 따라서 보티첼리의 그림은 정확하게는 <봄의 알레고리>라 불려야 하며, 그림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봄을 표현하기 위해 어떠한 상징들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보티첼리는 봄을 형상화하기 위하여 아홉 명의 인물들을 이용하였습니다. 이 아홉 명의 인물들은 봄의 개념을 전달해줄 수 있는 요소들이 의인화(personification)된 존재들로서 그림을 이해하는 데 핵심 열쇠입니다.


-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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