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큐레이션]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우리가 역사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

by 수다인
444512.jpeg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


긍정적 혹은 부정적 의미로든 20세기 현대사, 더 나아가 인류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는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가 열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물리학과 천문학에 1도 관심이 없는 사람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는 알고, 미술에 문외한이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를 모르지 않듯, 역사와 정치에 1도 관심이 없는 사람도 살면서 한 번쯤은 히틀러를 들어봤을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만한 인류 역사의 최고 슈퍼스타(superstar)가 또 있을까? - 물론 안티(anti) 히어로(hero)이기는 하지만 -


히틀러는 국가사회독일노동자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 일명 나치당의 대표로서 1934년 총통(Führer)의 자리에 올랐으며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며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1945)가 이끄는 이탈리아 및 일본과 합심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흉이다. 인류 최악의 전쟁에 대한 전범일 뿐만 아니라 그는 반유대주의에 기반한 유대인에 대한 대규모 인종 청소, 일명 홀로코스트(holocaust)를 자행함으로써, 인류 최악의 악마, 악의 화신으로 평가받는다.


역사와 교양에 별 다른 관심이 없는 일반 대중이라도 세부적인 사항은 모르더라도 히틀러와 그가 이치는 나치당이 어떠한 악행을 저질렀는지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역사 교과서에서 히틀러와 나치에 대한 내용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각종 미디어에서도 주기적으로 그들의 만행이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치가 운영한 대표적인 강제수용소인 폴란드(Poland)의 아유슈비츠(Auschwitz)는 오늘날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다. 비극적인 사건을 묻고 감추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벌인 악마같은 행위를 드러냄으로서 그들이 영원히 인류의 심판을 받도록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형벌을 내리고 있다.


eurom_auschwitz.jpg_en.jpg 아우슈비츠 박물관(Auschwitz-Birkenau State Museum)


이렇게 히틀러와 나치의 죄를 낱낱이 까발리는 작업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제대로 알림으로서 그들을 어설프게 두둔하거나 비호 혹은 미화(beautification)하는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건 히틀러나 나치와 유사한 또다른 인류 최악의 악마가 나타나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려는 목적이 크다. 오히려 보다 큰 중요성은 후자로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더 큰 목적일 것이다.


히틀러는 인류 최악의 악마, 악의 화신이며 동시에 20세기, 더 나아가 인류 최악의 독재자(dictator)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20세기 초반에서 후반, 더 정확하게는 1890년대에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발생 이전까지의 벨 에포크(bell epoque) 시대부터 1990년대까지 현대사는 특이한 정치 권력 체제, 전체주의(totalitarism)와 이러한 체제에서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인물, 즉 독재자들의 시대였다. 히틀러는 독일이라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독재자로서 11년을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Joseph-Stalin-1950.jpg 스탈린((Ioseb Stalin, 1879-1953)


유럽의 중서부에 독일에 히틀러가 있었다면 유럽의 동쪽 끝에는 이오시프 스탈린(Ioseb Stalin, 1879-1953)이 있었다. 스탈린은 공산주의를 표방한 소비에트 공산당의 총서기장으로서 소비에트 연방의 국가 통치자였으며, 히틀러는 나치즘을 표방한 나치당의 당수이자 독일 제3제국의 국가 통치자였다. 흥미롭게도 소련이 지향한공산주의는 극좌이며, 독일 제3제국이 추종한 나치즘은 극우로서 이 둘은 정치 이데올로기는 스펙트럼의 양 쪽 끝단에 위치하지만 그 외면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권위적이며 온갖 자유를 탄압하고 국민 전체의 획일화를 강요하며, 법의 합리성은 통하지 않으며, 공정성이란 사라졌으며 그저 반대자에 대한 폭력과 숙청만이 난무하는 그런 사회였다. 정당 행위는 사실상 유일한 당(party) - 소련의 경우 공산당, 독일 제3제국에서는 나치당 - 에게만 허용되었으며 그 당의 당수가 국가 통치자로서 국가 통치자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며 권력자의 말이 곧 법이고 진리인 사회이다. 겉모습만 보았을 때 극좌나 극우나 다를 바 없는 사회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히틀러와 스탈린에게는 큰 차이가 있었다. 20세기 최악의 독재자를 상징하는 그 둘은 권력을 장악하는 방식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20세기는 독재자들의 시대였다. 히틀러, 스탈린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는 독재자들이 마치 유행처럼 등장하였다. 중국에서는 마우저뚱(毛澤東, 1893-1976), 터키의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 1881-1938),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 캄보디아의 폴 포트(Pol Pot, 1925-1998), 이집트의 무바라크(Hosni Mubarak, 1928-2020), 짐바브웨의 무가베(Roberto Mugabe, 1924-2019), 북한의 김일성(1912-1994)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1917-1979)와 전두환(1931-2021)까지 20세기 동안 서유럽 일부와 북아메리카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대륙에서 독재자들이 등장하였으며 전체주의 혹은 그에 미치지 않더라도 권위주의 체제를 수립하여 종신 집권을 꿈꾸었다. 스탈린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독재자들이 무력 혹은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하여 기존의 권력자를 끌어내리는 등 현대 사회가 이룩한 지도자 선발 방식인 투표라는 방식을 거치지 않고 권력을 차지하였다. 당연히 히틀러같은 인류 최악의 독재자, 안티 크리스트 슈퍼스타(anti-Christ superstar) 역시 쿠테타 혹은 불법적인 방식으로 독일을 장악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된다.


the-great-dictator_1280x720.jpg 영화 <위대한 독재자 Great Dictator> (1940) 중 일


하지만 놀랍게도 히틀러는 스탈린이나 마우저뚱, 프랑코나 박정희, 전두환과 달리 전임 대통령인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rburg, 1847-1934)에게 어떠한 군사적 위협도 없이 총리 자리를 제안 받아 임명되었다. 나치당은 민주적인 선거와 투표 과정을 통하여 독일 내 제2당이 될 수 있었고 193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힌덴부르크에 이어 2위를 기록하며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독일에서는 지배적인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우파적인 성향의 거국 내각을 완성하고 싶었던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히틀러에게 총리 자리를 제안하여 결국 그가 실질적인 독일의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었다.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져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한 후 그는 그 전까지 분리되어 있던 대통령 직과 총리 직을 합친 총통을 만들어 내 독일의 모든 권력이 총통인 자신에게 집중되도록 만들었다. 비록 총리가 된 이후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1933년 2월 27일)을 기점으로 국회를 해산하고 자신에 적대적이었던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을 모두 척결할 수 있었지만 그가 총리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그가 당시 독일이 구축한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 제도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권력을 쥐어 준 직접적인 원인은 전임 힌덴부르크 대통령이지만 평소 히틀러를 "보헤미아 쫄병"이라며 무시하며 싫어하였던 힌덴부르크가 결국 히틀러를 총리에 임명할 수밖에 없었던 건 당시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와 나치에게 선거로 대단한 지지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결국 악마에게 왕관을 씌여준 건 독일 국민들 스스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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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카터 헷(Benjamin Carter Hett, 1965-)의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The Death of Democracy: Hitler's Rise to Power and the Downfall of the Weimar Republic>(2018)은 일반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그 부분, 즉 히틀러와 나치가 어떻게 독일을 집어 삼킬 수 있었는지의 과정을 서술한다. 본격적으로 정치계에 몸 담기 전 히틀러의 개인적인 삶의 여정 및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더불어 1920년대 그가 독일 정치계에 발을 들여 놓는 과정, 1920년대에서 30년대 초반 바이마르 공화국(Weimar) 시기의 혼란스럽고 복잡한 상황, 여러 정당들과 인물들이 이해관계에서 히틀러와 나치가 기회를 포착하는 과정을

마치 흥미진진한 심리 소설을 읽는 듯이 서술되고 있다.


Adolf-Hitler-associates-Landsberg-Prison-Munich-Beer.jpg 1923년 비어홀 폭동 당시의 히틀러와 동료들


스탈린이나 마우저뚱 및 박정희, 전두환과 달리 히틀러가 군대나 무력을 동원해서 권력의 중심에 다가가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로 히틀러가 1923년 비어홀(beer hall) 폭동으로 인한 반역죄로 1924년 투옥된 사건을 꼽을 수 있다. 그는 그 과정에서 군대, 경찰, 치안 그리고 이 모두를 아우르는 헌법과 법률에 맞서서 권력을 장악하거나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이들 세력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 들여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결국 그는 쿠테타나 내란 등과 같이 불법적으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서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독일에게는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히틀러에게는 유리한 상황이 그 기간 동안 전개되었고 그와 나치는 이를 이용하면 될 뿐이었다. 이런 게 운명이라는 걸까? 결국 분노에 휩싸인 독일 국민들은 나치와 히틀러에게 표를 던졌고 대중의 인기를 얻은 히틀러가 나치를 집어 삼켰고 독일을, 유럽을 그리고 인류 전체의 역사를 송두리째 망가뜨리게 되었다. 헷의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는 히틀러가 총리의 자리에 오르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멸망하는 시기에서 끝이 난다. 히틀러가 총리의 자리에 오른 직후 최악의 결과로 치닫지 않을 수 있을, 즉 히틀러를 제거할 수 있을만한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기회마저 사라졌고 결국 히틀러는 인류 최악의 독재자가 되었고 독일 제3제국의 서막이 오른다.


독일 국민들의 선거에 의하여 나치당이 독일 주요 정당으로 떠올랐으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에 대해 지금 우리의 시각에서는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조금만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분별력을 가졌다면 히틀러와 나치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고 비논리적이고 모순적이며 위험한 주장을 하는지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막힌 일이 1930년대 독일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건 전 세계에서 우파적 성향의 정치와 정당들이 서서히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1월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트럼프(Donald Trump, 1946-)가 취임하였고 잠시 민주당의 바이든(Joe Biden, 1942-)에게 대통령의 자리를 건내 준 후 다시 제47대 대통령으로 백악관에 다시 입성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이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으나 좌익 정당들이 연합하여 가까스로 극우 세력을 물리쳤다. 그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는 보수적 성향의 정당들이 선거에서 승리하거나 점점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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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는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 Identity: the Demand for Dignity and the Politics of Resentment>(2018)에서 정치의 우익화 상황에 대하여 설명한 바 있다. 경제적 불안과 불평등, 자신들의 정체성이 훼손된다는 감정,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배신감, 자신의 당연한 몫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을 남들과 나눠야 하는 상황, 소외 받는다는 분노의 감정 등등이 사람들이 합리적,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대신, 보다 분노의 감정에 이끌려 비이성적인 정치적 선택을 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정치 시장에서 정치 브로커들은 이 분노의 감정을 이용하여 정치 시장에서 사람들의 표를 획득하게 된다. 소외되거나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오직 우경화 된 정치인들만이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들을 대변해준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의 영역에서도 감정이 이성을 이기게 되고 그 불길을 앞선 상황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더욱 더 번져나가게 될 것이다. 그 상황이 정도의 차이만 있지 1920년대에서 30년대 독일에 그대로 아니 보다 더 복잡하게 작용하여 결국 독일의 극우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Benjamin Hett.jpg 벤자민 카터 헷(Benjamin Carter Hett, 1965-)


작가 헷은 자신의 책에서 무서운 지적을 한다. 당시의 대부분의 독일 국민들은 18세기 계몽주의 이래로 유럽이 창출한 이성주의, 합리성, 논리정연함에 환멸을 느꼈으며 이성, 합리성, 논리정연함이 자신들의 현실에서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느끼고 오히려 의도적으로 비합리적, 비이성적인 주장에 이끌렸고 폭력과 광기, 체제 전복에 대해 강하게 이끌렸다고 보았다. 히틀러와 나치가 그 판을 깔았다기 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정신이, 당시의 독일 국민들의 지배적인 정신이 비합리성, 비이성적, 극단적, 불법 등을 원했으며 히틀러와 나치는 그 시대적 흐름을 다른 누구보다 잘 파악했다는 게 저자 벤자민 카터 헷의 주장이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건 없지만 만약 당시 히틀러와 나치당이 이를 영리하게 이용하지 못하였다면 아마 그 반대편에 위치한 극좌 세력인 공산당이 그 자리를 차지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극좌와 극우는 완전히 반대 방향이지만 앞서 서술했듯 좌파든 우파든 극단으로 치닫는다면 결국 그 외피는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물론 히틀러와 나치를 옹호하거나 정당화 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하지만 히틀러와 나치는 군대나 경찰력을 이용하여 불법으로 쿠테타를 일으킨 게 아니라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권력을 장악하였으니 당시 독일 국민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폐망 이후 독일이, 그리고 전후 독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총리로 기억되는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1954-) 총리가 수차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또 사과하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죄가 히틀러와 나치라는 일부 독일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히틀러와 나치에게 권력을 쥐어준 독일 국민들에게도 그 책임이 일부 있으며 당시에 히틀러와 나치에게 표를 던진 지금까지도 생존한 독일인들 혹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 후손들인 현재의 독일인들을 대신하여 독일의 총리가 대표로 끊임없는 사죄를 하는 것이다.


191206112729-06-auschwitz-merkel-1206.jpg 아우슈비츠를 공식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당시 독일 총리


벤자민 카터 헷의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를 읽으면서 100년 전 지구 반대편 독일의 상황이지만 소름끼치게 2020년대 대한민국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비록 당시 독일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1910년대까지 독일은 세계 최고의 선진국, 최강대국 중 하나였으며 오스트리아, 터키와 더불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이었다. 한민족은 단 한 번도 외국에게 침략 전쟁을 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20세기에는 일본에게 강제로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였다. 1920년대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인한 베르사유(Versailles) 조약으로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고 슈퍼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며 심각한 경제 재난을 맞이하였다.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독일은 전쟁으로 영국과 미국의 세계 질서에 굴복하여야 했다. 국가와 독일 국민들의 자존심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역설적이게도 1920년대에서 30년대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독일은 문화적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19세기의 수도인 파리의 명성은 1910년대 이후 점점 쇠락하기 시작하였고 진보적인 예술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보다 자유로운 바이마르 공화국의 베를린(Berlin)으로 몰려들었고 이 시기 독일 미술은 상당히 전위적이었다. 희곡과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무엇보다 1920년대 영화는 독일 바이마르 시기를 빼놓으면 이야기할 수 없을 지경이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이 1920년대 실험주의를 등에 업고 만들어졌다. 경제적 위기, 정치적 불안감, 양극화 등의 상황에서 바이마르 독일은 상당한 문화적 성과를 이루며 전 세계 문화예술의 새로운 선도 국가로 떠오르고 있었다.


Alfred-Abel-Brigitte-Helm-Rudolf-Klein-Rogge-Metropolis-1927.jpg 영화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1927) 중


한국은 거의 10여년 전부터 K-Pop을 필두로 전 세계에서 중요한 문화 선도 국가로 발돋움하였다. 유튜브의 국뽕 채널들에서 개오바싸는 게 아니라 음악, 영화, 드라마, 음식 심지어 문학 등 문화 전반에 Korea의 K를 갖다 붙이며 전 세계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힙(hip)한 문화 생산국, 트렌드 리더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한국의 경제적 상황은 오히려 더욱 극단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지며 소득 격차는 더욱 심해졌다. 심지어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내수 경제는 더욱 불안해져서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1997년 12월 발생한 IMF 외환위기보다 더욱 심각한 불황이라고 이야기 한다. 환율은 어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달러(dollar)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1,400원대를 지속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 환율이 1,400원대가 맞다는 이게 새로운 표준이라는 - 이른 바 new nomal - 이야기까지 나온다. 사회 영역에서는 기존의 지역 간 대립을 더하야, 도시와 농촌, 세대 간 대립, 남녀 간 대립 뿐만 이제는 서울/수도권 vs. 비수도권, 서울/수도권 아파트 거주자 vs. 나머지, 다문화 갈등 등등 온갖 사회갈등이 난무한다. 정치 영역에서는 어떻게든 선거에서 표를 얻고자 이러한 갈등을 교묘히 이용하기도 하며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 또한 2010년대 중반, 특히 박근혜 탄핵 이후 극우 정당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으며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독일과 마찬가지로, 극우 정당들은 빨갱이, 종북 좌파를 내세우며 자신들의 주장이 정당하며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지지를 호소한다.


나는 좌파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우파를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이 둘의 진영 중 정확하게 가운데 위치하지도 않으며 정확한 중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어느 정도 더 끌리는 이데올로기가 있을 것이다. 한 국가,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보수가 바로 서야 한다. 보수가 바로 서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자 할 때 이를 견제하고 보수주의가 생각하지 못한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지도록 이끄는 게 혁신주의자들의 역할이다. 보수를 대변하는 게 우익/우파라면, 혁신을 대변하는 게 좌익/좌파일 것이다.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힘과 새로운 활력을 도입하려는 힘이 상호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이를 실제로 적용하는 게 가장 이상적,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 정치에서는 어떤가? 우파는 뭐고 좌파는 뭘까? 보수는 뭐고 혁신은 뭘까?


자연의 모든 요소들은 거의 대부분 정규분포를 따른다. 즉 거의 대부분은 평균을 향하여 수렴하는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규분포는 달리 생각하면 극단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극단치 혹은 이상값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규분포라는 개념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의 모든 요소들이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건 이들 모두에는 예외적인 것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백 만 명 중의 한 명 꼴로 희귀 질환을 지녔다는 건 생물학적, 유전적 특이값이다. 한편 사고관, 정치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도 거의 대부분은 정규분포를 띈다. 이를 정치학에서는 "중위 선거자 정리(Median Voter Theorem)"이라 한다. 실제로 투표자들인 일반 시민들은 조금 더 좌파적 혹은 우파적일 수는 있어도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가운데를 상회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파 정당이든 좌파 정당이든 결국 정치 시장에서 이들 대다수의 유권자들 - 즉 정치 스펙트럼에서 정규분포에 위치하는 - 의 표를 얻기 위하여 결국 공약이나 주장이 비슷해지며 둘 사이의 차이가 거의 없어진다. 이러한 중위 선거자 정리의 원칙이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투표 혹은 정치의 결과이다. 하지만 이 원칙에서 벗어나 극좌 혹은 극우의 어느 한 쪽이 우세해진다는 건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독일은 그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주었고 벤자민 카터 헷은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에서 일정한 시간적, 공간적 거리를 두고 이 과정을 보여주었다.


2020년대 현재 대한민국을 사는 나는 이렇게 극단화 되어가는 역사적 과정의 한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닌가? 너무나 자명한 그 과정에 있는 데 나는 그게 마치 100년 전 독일에서 일어난 과거의 일이라고 치부하며 내가 사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는 기민하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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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우리가 왜 역사를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알아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헷은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의 마지막 장인 제8장: 우리가 그를 제거해야 해에서 다음과 같은 문단으로 글을 마치고 있다.


"트레블링카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바비 야르 학살이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마지막 몇 달 동안 이뤄진 죽음의 행진을 1933년에 상상할 수 있었던 독일인은 거의 없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미리 내다보지 못했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순진해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도통 몰랐기 때문에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다.

나중에 태어난 우리에게는 당시 독일인보다 유리한 점이 한 가지 있다.

그들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는 점이다."(pp.352-353)


2024년 12월 3일 현직 대통령이 아무런 비상사태도 아닌 데 비상계엄을 발동하는 내란을 일으켰다. 불법으로 군대를 이용한 친위 쿠테타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국회는 2024년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고 현재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계엄을 발휘한 후 모든 대한민국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 이미 2024년 8월에 그가 계엄을 발령할 거라는 정황이 국회 상임위에서 보고 되었지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지금 이 시대에 무슨 계엄이냐고 억측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억측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충격을 받았지만 내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석열이 석열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그에게 표를 던졌던 사람들은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에게 표를 던졌던 사람 중 일부는 그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그에게 호감을 느껴서 그러한 행동을 했을 수도 있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혹은 이후보가 싫어서 윤에게 투표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중위 투표자들 대부분은 그가 내란을 일으킬 거라는 생각까지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헷의 글처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미리 내다보지 못했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당시 독일 국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국민들 역시 "순진해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진지 도통 몰랐"었다. 다만 계엄 발령이 된 순간 자기의 일처럼 국회로 달려가 맨몸으로 군인 앞으로 가로 막고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국회의원들을 지켜준 국민들, 그리고 그런 국민들에게 보답하듯 바로 계엄 혜지안을 의결하고 가결시킨 국회가 있었기에 더 이상의 "끔찍한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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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사적 상황에서 나는 비겁하고 천하태평하게 집에서 잠이나 잤다. 이기적인 인간 그 자체이다. 그 마음의 짐은 한 편으로 요즘 계속 내 머리 속에 새로운 지적 호기심이 자라나게 만들었다. 왜 그토록 많은 내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이미 깜냥도 안 되고 이상하고 문제가 많은 인물이라는 걸 대통령으로 뽑기 전에 이미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그에게 표를 주었는가? 히틀러와 나치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선거로 권력을 장악하고 공화국의 가치, 민주주의의 원칙을 무너뜨리게 된 과정이 충분히 내가 품게 된 이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답이 되지 않을까? 아마 작금의 대한민국의 상황으로 인하여 나와 같은 의문을 품게 된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벤자민 카터 헷의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는 그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을 해 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현재의 점차적으로 보수화 되어 가는 정치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읽어봐야 할 책일 것이다. 역사는 그저 과거의 지나간 재미 있는 이야기 거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역사는 과거의 사례를 참고하여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방지하거나 그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 히틀러와 나치가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권력을 장악한 역사가 깊을 울림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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