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셉(St. Joseph) 이야기 1

이 그림이 예수,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의 성 가족을 그린 종교화라고?

by 수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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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그림이 예수와 성모, 성 요셉을 그린 성 가족 그림이라고?: https://youtu.be/Gz9byrrKy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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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Madrid)에 위치한 세계 최고 미술관 중 하나인 프라도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에는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1660)와 더불어 17세기 스페인 미술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는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é Esteban Murillo, 1617-1682)의 여러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가로 188㎝, 세로 144㎝의 중대형 크기의 캔버스에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표현한 것 같은 그림 한 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크린샷 2025-05-28 오후 5.27.24.png Murillo, <Sagrada Familia del pajarito> (1650)


그림의 가운데에는 어깨 높이 길이의 검고 긴 곱슬머리에 구레나룻에서 코밑과 턱까지 이어지는 수염을 기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신체 건강한 남성이 등장합니다. 이 남성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듯 한 한, 두 살 정도의 사내아이를 오른 다리 쪽에 기대어 놓고 한 팔로 가볍게 붙잡아 넘어지지 않게 아이를 돌보고 있습니다. 이 남성은 아이의 아버지이고, 이 아이는 남성의 아들로서 이 둘은 부자 관계로 보입니다. 선이 굵으면서 남자답게 잘생긴 얼굴과 대비되게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 이 남성의 표정은 매우 온화하고 자상합니다. 이 남성이 근엄하고 무서운 아버지가 아닌 자애롭고 가정적인 아버지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부자의 뒤로는 20대 중반 정도의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 어둠에 반쯤 가려진 채 드러납니다. 이 여인은 물레 앞에 앉은 채 오른손으로는 실을 잣고 있습니다. 오른 편에는 천이나 옷감들이 담겨져 있는 바구니가 놓여 있는 걸로 봐서 그녀는 바느질과 같은 가사노동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아이의 엄마이자 젊은 남성의 아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실을 잣거나 세탁과 같은 의복과 관련하여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요구되었던 가사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녀를 대신해서 아빠가 아들을 돌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녀는 물레 앞에서 여전히 집안일을 하고 있지만 고개를 아이와 남편 쪽으로 돌려 이 둘이 무얼 하고 있는지를 지켜봅니다. 입가에는 얇은 미소를 머금고 아이와 남편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서 아름다움과 더불어 우아한(grace) 기품까지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림의 가운데 가장 아래쪽에는 작은 흰색 말티즈 강아지가 오른 쪽 앞 다리를 들어 올린 채 꼬마 주인을 올려다보며 재롱을 피우고 있습니다. 한, 두 살 정도로 보이는 두 부부의 아들은 비록 아빠의 몸에 기대어 도움을 받고는 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두 다리로 서 있고 오른손에는 작은 새를 가볍게 쥔 채, 발아래 강아지가 귀엽다는 듯이 얼굴에 미소가 만발하며 강아지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엄마, 아빠, 아들 그리고 이들이 키우는 강아지로 구성된 가족의 일상을 다룬 그림입니다. 몇 백 년 전의 서양 의복을 입고 있고, 젊은 아이 엄마가 수동 물레를 이용해 실을 잣는 걸 제외하면 이 그림은 놀랍도록 현대 사회의 서민 가정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대한민국에서도 2010년대부터 아이들과 놀아주고 육아에 참여하는 게 아빠의 당연한 의무가 되었음을 되돌아보면 오히려 이 그림에서 제시된 가족의 모습은 40년 전 한국의 가족보다 지금의 가족의 모습과 더욱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게다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대부분의 선진국 및 중진국의 전반적인 출산율이 낮아져 대부분 한 명의 자녀만 낳고 강아지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 동물을 기르는 게 보편화 되었는데 그림 속 가족 구성 역시 지극히 현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그림이 특별한 건 현대의 평범한 가족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림이 그려진 17세기 중반 스페인의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그린 그저 그런 풍속화(genre painting)라고 생각되어 이내 다른 그림에 눈길을 돌리려는 찰나 그림의 제목을 보니 특이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프라도미술관은 이 작품을 <작은 새와 함께 한 성 가족 Sagrada Familia del pajarito>(1650)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그림은 이름 없는 평범한 서민층을 그린 풍속화가 아니라 종교화였던 거죠.


holy-family.jpg 성 가족(Holy Family/ Santa Famiglia/ Sagrada Familia>


성 가족은 아기 예수를 중심으로 그의 부모인 성모 마리아(Virgin Mary)와 성 요셉(St. Joseph)의 세 사람을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룬 신약에서는 예수의 어머니의 이름이 마리아이고 그녀의 남편이자 예수의 현세에서의 아버지가 요셉이라고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이 그림의 제목이 성 가족이라는 건 그림 속의 어린 아이가 아기 예수, 실을 잣는 젊은 여인이 성모 마리아, 아이와 놀아주는 젊은 남성이 성 요셉이라는 얘기죠. 예수는 기독교의 창시자로서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존재로 신 그 자체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신은 아니지만 가장 고귀한 인간으로서 기독교의 모든 성인들 중 으뜸입니다. 성 요셉 역시 그에 준할 정도로 매우 고귀하고 성스러운 존재입니다. 무리요의 그림 속 성모의 우아한 미소, 성 요셉의 인자한 표정은 이들이 미천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게 해주지만, 이들이 고귀함을 넘어 신성한 존재로까지 보이게 해주는 건 아닙니다. 게다가 이들이 기독교의 신성한 성인들이라는 걸 나타내주는 별도의 표식이 제시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중세 동안 기독교는 시각미술에 관한 여러 표준들을 확립해 나갔는데 신성한 존재들의 머리 뒤에 후광(halo)을 표시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예수와 성인들 및 신성한 존재들의 머리 뒤에 황금빛 광배, 일명 후광을 표시하여 기독교 교리를 거의 알지 못하는 일반 신도들이 쉽게 기독교의 성스러운 존재들을 알아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황금빛의 두터운 후광은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 희미한 고리 수준의 표현으로 바뀌지만 후광의 존재 자체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새와 함께 한 성 가족>에서 예수를 비롯하여 성모와 성 요셉의 어느 누구의 머리 뒤에 희미하게라도 광배가 등장하지 않아 이들이 성스러운 존재라는 걸 알아차리는 게 어려울 지경입니다.


스크린샷 2025-05-28 오후 10.03.57.png Caravaggio, <The Cardsharps> (1596)


16세기 말, 17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카라바지오(Caravaggio, 1565-1609)는 회화의 사실주의(realism)를 주창합니다. 16세기 동안 이상화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결국 작위적인 수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흐름에 반대하며 카라바지오는 사실을 왜곡하지 않은 채 현실을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려는 새로운 회화 문법을 제시합니다. 그는 정물에 대한 묘사나 카드 게임하는 사람들, 과일 바구니를 든 인물 등과 같은 비(非) 종교적인 주제의 그림들에 사실주의를 도입합니다. 카라바지오는 세속적인 그림들뿐만 아니라 종교적 주제의 그림들에도 리얼리즘을 적용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와 같은 기독교 성인들과 같은 신성한 존재들을 이상화하지 않으며,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로 묘사하기 시작합니다.


스크린샷 2025-05-09 오후 4.16.01.png Caravaggio, <The Entombment> (1602-1603)


바티칸박물관(Musei Vaticani)의 <그리스도의 매장 The Entombment>(1602-1603)은 카라바지오의 리얼리즘이 종교화에도 적용되었음을 확인시켜주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숨을 거둔 그리스도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와 성모 마리아와 사람들에게 인계되는 장면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 요한(John the Evangelist)의 뒤에 푸른색 베일을 두른 여인이 등장하는데 그녀가 성모 마리아입니다. 이마와 입가의 주름이 선명한 그녀는 30대 초반의 아들을 둔 장년의 여성입니다. 아들의 죽음을 목도했기 때문에 그녀의 표정은 깊은 비통함이 서려 있습니다. 중세 신학자들은 성모가 늙지 않고 영원히 아름다운 존재였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주장에 입각하여 당시까지의 많은 시각미술에서 성모는 예수의 죽음의 순간에도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존재로 묘사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카라바지오는 이는 비현실적이라 보며, 성모도 인간이기 때문에 예수의 사망 시점에 마리아는 그에 걸맞는 나이의 여성으로 묘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카라바지오는 <그리스도의 매장>에서 성모 마리아를 주름이 깊게 패인 장년 여성으로 제시하게 됩니다. 종교화에서의 리얼리즘을 강조한 카라바지오는 <그리스도의 매장>에서 기존의 관행들에서 벗어나 예수를 비롯한 그림의 모든 등장인물의 머리 뒤의 후광 역시 생략하였습니다. 후광은 성인의 존재를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인공적인 장치일 뿐이므로 후광을 표시하는 건 그림의 사실성을 훼손할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17세기 회화의 사실주의를 주창한 카라바지오는 이미 생존할 당시에도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불러 일으켰고, 그가 제시한 회화의 리얼리즘은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카라바지오의, 일명 바로크 리얼리즘(baroque realism)은 이탈리아를 넘어 지중해 건너 스페인에도 전파되었습니다. 이미 1500년대부터 이탈리아의 새로운 회화 양식을 적극 수용한 스페인은 한 세기가 지난 후에 등장한 카라바지오의 회화 양식에도 열광하였습니다. 특히 카라바지오의 화풍에 가장 적극적으로 화답한 건 무리요의 고향인 세비야(Sevilla)였습니다. 이미 세비야는 카라바지오가 살아 있던 1600년대 초부터 카라바지오의 회화적 리얼리즘을 적극 수용하였습니다. 세비야 화단은 단지 사실주의만을 받아들인 건 아닙니다. 카바라지오는 그림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극적 효과를 창출하기 위하여 기존의 명암대비법(quiaroscuro)을 극대화하는 극단적인 명암대비법, 일명 tenebrism을 자신의 그림 곳곳에 적용합니다.


스크린샷 2025-05-29 오전 11.17.43.png Zurbarán, <The Apparition of Apostle St Peter to St Peter of Nolasco> (1629)


카라바지오가 제시한 리얼리즘과 tenebrism은 당시 세비야 미술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당시 세비야를 비롯한 스페인 전체는 가톨릭 부흥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이러한 종교적 열망에 따라 기독교 성인들의 순교(martyrdom)나 종교적 희열(ecstasy)의 체험과 같은 극적인 주제가 대단히 선호되었습니다. 이러한 다소 격정적인 주제들과 카라바지오가 제시한 극단적 명암대비법은 대단히 잘 어울렸고 세비야 화가들은 카라바지오의 화풍을 이탈리아 본토보다 더욱 지지하였습니다. 이렇게 1600년대 초반부터 스페인 세비야 미술계에 영향을 미친 카라바지오의 리얼리즘과 tenebrism은 1650년대까지 거의 50여 년 동안 지속됩니다. 바로 그 마지막 단계에 커리어를 시작한 인물이 무리요이며 세비야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던 초기에 완성된 작품이 <작은 새와 함께 한 성 가족>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아기 예수와 성 요셉에게 집중되도록 이 둘은 비교적 밝은 색채를 사용하는 대신 배경은 어둡게 처리하는 강렬한 명암대비법을 활용한 채 예수와 성모 마리아, 성 요셉의 성 가족을 묘사한 종교화이지만 이들을 전혀 성스러운 존재가 아닌 당시 세비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로 묘사하여 종교화임에도 전혀 종교화임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풍속화같은 그림으로 완성할 수 있었던 건 카라바지오가 이미 50여 년 전 이탈리아 땅에서 tenebrism에 기반을 둔 baroque realism을 개척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새와 함께 한 성 가족>의 흥미로운 요소는 단지 이 그림이 종교화이지만 전혀 종교화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성모 마리아가 그림의 뒤쪽에 위치하고 성 요셉이 아기 예수와 더욱 가까운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림의 전면에 등장하는 인물 배치는 오히려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이야기는 2부로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