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해 그 존재가 지워져야 했던 아버지의 기구한 운명
본 내용은 유튜브 "한양수다인: 그림에 관한 모든 수다" 채널에서 영상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예수를 위해 그 존재가 지워져야 했던 아버지의 기구한 운명: https://youtu.be/7HqcknLZeQE
▶ 한양수다인 공식유튜브 채널: www.youtube.com/@hysudain
1. 무리요의 <작은 새와 함께 한 성 가족>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é Esteban Murillo, 1617-1682)의 <작은 새와 함께 한 성 가족 Sagrada Familia del pajarito>(1650)에서 아기 예수와 직접 신체를 접촉하며 보호자로서 그림의 전면에 차지한 건 성모 마리아가 아닌 성 요셉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성모 마리아가 뒤로 물러나고 성 요셉이 그림의 전면에 위치하는 건 전혀 특이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은 가족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존재이므로 성 요셉이 성모 마리아보다 중요하게 묘사되어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종교화이며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하던 시기, 그 중에서도 유럽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가장 보수적이며 강경한 가톨릭 신앙을 지녔던 스페인에서 이런 그림이 만들어졌다는 걸 감안하면 이는 예사로운 건 아닙니다.
가톨릭 역사에서 성모 마리아는 늘 가장 으뜸이 되는 성인입니다. 가톨릭은 대단히 위계 지향적인 사회로서 종교화는 이 위계 서열에 따라 등장 위치가 결정됩니다. 예수가 가장 중심에 있어야 하며, 그 오른쪽에는 성모 마리아가, 왼쪽에는 그 다음 서열인 세례자 요한(St. John the Baptist)이나 성 베드로(St. Peter) 등이 위치합니다. 다음 서열의 성인들이 그 뒤에 차례대로 위치하죠. 그런데 성모 마리아가 뒤로 밀려나고 대신 성 요셉이 전면에 등장했다는 건 성 요셉의 지위가 성모 마리아보다 앞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스페인은 다른 어떤 가톨릭 지역들보다도 가장 열정적이며 보수적인 신앙심을 지닌 국가였습니다. 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이미지 생산은 있을 수 없었고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 악명 높은 종교재판소(Inquisición)에 기소되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리요의 그림은 당시에 전혀 어떠한 논란도 없었으며 문제의 소지도 없었습니다. 이는 성 요셉이 성모 마리아에 버금가는 또는 성모 마리아를 압도할 위치의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는 성 요셉의 존재가 당연하지만 성 요셉이 성 가족의 가장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현세의 아버지로서 가톨릭에서 성모와 더불어 최고 위치의 성인으로 인정받게 된 건 약 2,000년의 기독교의 긴 역사 중 최근 일입니다. 그 동안 요셉은 철저하게 부정당하고 외면당한 존재였습니다. 무리요의 <작은 새와 함께 한 성 가족>은 중세 시대 흑역사를 거쳐 지금과 같은 위상을 얻게 된 성 요셉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2. 마리아는 되고, 요셉은 안 된다?!
신약(Testament)의 초반부는 예수 탄생의 예언과 예수의 탄생 및 유년 시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Jerusalem)에 사는 요셉이라는 남성과 결혼이 예정되어 있던 젊은 처녀 마리아는 어느 날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됩니다. 남성과의 성 관계가 전혀 없었음에도 임신을 하게 된 것에 두려워하던 그녀 앞에 천사 가브리엘(Gabriel)이 나타나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이를 잉태하였으며 이 아이는 커서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됩니다. 약혼남인 요셉 역시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됩니다.
자신과 관계를 가진 적이 없는 마리아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던 중 요셉은 그녀의 몸을 빌어 하나님의 독생자가 잉태되었으며 그녀는 여전히 순결한 존재이기 때문에 괴로워할 이유가 없다는 꿈을 꿉니다. 꿈에서 천사는 예정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여 그녀와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합니다. 그러한 꿈을 꾼 후 요셉은 예정대로 마리아와 혼인하여 그녀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가 됩니다. 달이 차고 마리아는 아들을 순산합니다. 그런데 천사로부터 예수를 살해하려는 헤로데 왕의 계획을 사전에 알게 된 요셉은 마리아와 예수를 이끌고 이집트로 피신을 떠납니다. 그 후 천사가 다시 나타나 헤로데 왕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안내를 받고 요셉은 가족을 이끌고 나사렛(Nazareth)에 정착합니다. 요셉은 예수의 잉태 과정에서 나사렛 정착 과정까지 등장하며 신약의 내용대로라면 그는 아내와 아들을 보살피는 훌륭한 가장이며 전혀 문제될 게 없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First Council of Nicaea)가 발생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바뀝니다.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기독교는 정식 종교로 공식 승인을 받았지만 요셉의 시련은 이제부터입니다. 당시에도 이미 기독교가 탄생한지 300년이 지난 시점이라 기독교의 핵심 교리에 관해 상당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은 초기 기독교의 가장 핵심이 되는 논점이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완벽한 신으로 인정하게 되는 역사적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두 가지 견해가 있었습니다. 아타나시우스(Αθανάσιος, 296-373)는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Holy Father)인 하나님과 동일하며 그에게는 인간으로서의 본성(人性)은 존재하지 않은 채 오직 신으로서의 본성(神性)만 존재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반면, 아리우스(Άρειος, 250-336)는 예수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성부에게 종속되어 있는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예수는 불완전한 신이기 때문에 신의 속성과 더불어 인간으로서의 특성도 공존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최종적으로 아타나시우스의 손을 들어주고 아리우스의 주장을 이단이라 결론내리며 예수의 인간으로서의 속성은 철저하게 감춰져야만 했습니다.
예수는 신성만을 지닌 완벽한 신이기 때문에 예수의 신성에 위협을 될 요소들은 철저히 부정되고 제거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 20절에서 21절에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성 관계라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녀에 관한 논쟁은 비교적 빠르게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431년 개최된 에페소 공의회Council of Ephesus)에서 마리아는 “신의 어머니”, 즉 “Theotokos”로서의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일찌감치 기독교 최고의 성인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달랐습니다. 여호와가 예수의 친아버지라면 요셉의 존재는 설명이 어려웠습니다. 또한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하였다면 두 사람은 부부가 되는데 예수를 출산한 이후 마리아와 요셉이 부부관계를 맺게 되어 마리아는 더 이상 순결한 존재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됩니다. 존재 자체로 모순이자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위협 요소인 요셉은 결국 중세를 거치면서 그 흔적이 사라지거나 완전히 왜곡되었습니다.
3. 요셉의 흔적 지우기
중세 기독교는 요셉을 아예 존재했던 적이 없던 인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애초에 마리아에게는 약혼자가 없었고 결혼을 했다는 사실마저도 지워버렸죠. 중세 초기에서 말기까지 약 천 년 동안 대부분의 평신도들은 글을 몰랐습니다. 글을 모르는 일반 평신도들이 기독교 교리를 습득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사제나 설교사들의 설교였습니다. 이들은 성경 속 요셉에 관한 내용은 뺀 채 사람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당연히 중세의 평신도들은 요셉의 존재를 몰랐고, 마리아에게 남편이, 예수에게는 현세에서의 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켰습니다. 요셉의 제거는 결국 가장이 부재한 가정에서 마리아가 홀로 아들을 키웠다는 얘기가 됩니다. 21세기인 오늘날에는 한 부모 가정이 흔하며 별문제가 되지 않지만 지금으로부터 천 년도 더 전에는 이는 상당히 부정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예수가 성인으로 자라는 동안 어른의 보호와 양육을 받아야 하는데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우는 건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처럼 여성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하고 여성의 외부 활동에 매우 부정적인 시대에는 특히 더 더욱 어려웠습니다. 10에서 11세기경에 이르면, 마리아와 예수를 지켜주는 가장의 존재에 관한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요셉의 존재를 복원하는 대신 성모의 친어머니로 알려진 안나(Anne)를 발굴하며 그녀를 가족의 가장으로 제시합니다. 그렇게 성 안나(St. Anne)는 가정의 수호성인으로 민간에서 열렬한 숭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가장인 성 안나를 중심으로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의 3대로 구성된 성 가족(Holy Family/ Santa Famiglia/ Sagrada Familia) 개념이 형성되며 대중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걸작 <성 안나와 함께 한 성모자 The Virgin and the Child with St. Anne>(1510)는 이러한 중세 신앙의 전통에 기반을 둔 그림입니다. 아기 예수는 흰색 아기 양을 붙잡고 놀고 있습니다. 그런 아기 예수가 사랑스러운 듯 온화한 미소로 아기 예수를 내려다보며 아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두 팔로 감싸고 있는 젊은 여인이 성모 마리아입니다. 그녀의 뒤에는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또 다른 젊은 여인이 등장하는데, 그녀가 바로 성 안나입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이 그림은 성모자와 가톨릭 성인이 동시에 등장하는 그림으로 보이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이 그림은 전형적인 성 가족을 묘사한 그림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림 속 세 사람이 서로 혈연관계라는 걸 강조하듯, 이 세 명의 신체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두 팔로 아기 예수를 붙잡고 있으면서 어머니인 안나의 두 무릎 위에 앉아 있습니다. 현실에서 아이를 둔 성인 여성이 또 다른 성인 여성의 무릎 위에 앉아 있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다 빈치는 마리아가 안나의 무릎 위에 올라가 있는 구도를 선택합니다. 비현실적이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인물들을 배치하는 건 성 안나, 성모 마리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이 세 사람의 혈연관계를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성 안나는 그저 중세 후반부터 민간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은 가톨릭의 성인들 중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성 안나는 교리 상의 문제로 그 존재가 대중에게 잊혀져야만 했던 요셉을 대신하여 이들 모자를 지켜주는 수호자이자 완전하지 못한 예수의 가족 관계를 채워주는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다 빈치의 이 그림은 인물과 배경에 대한 놀랄 정도로 사실적인 표현, 이상적인 신체 비례에 기반을 둔 인물의 표현 등 그 표현 방식은 대단히 르네상스적이지만 성 안나를 가장으로 제시한 성 가족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리적으로는 지극히 중세적인 전통에 착안한 그림입니다.
가장으로서 성 안나라는 인물이 제시되었지만 예수의 가족 관계는 여전히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통상적으로 가족의 핵심은 부모와 자녀로 구성되어 있는데 성 안나가 성모자를 지켜주는 집안의 어른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집안의 중요한 한 축인 아버지의 자리까지를 채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 안나가 제시되며 성 가족의 개념이 형성되었어도 예수의 가계가 편부모 가정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요셉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대신 그리스도의 인성과 마리아의 순결이라는 기독교의 오랜 논점이 위협받지 않도록 요셉의 이미지를 조작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예수와 요셉은 친부자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며, 마리아와 요셉이 부부 사이였지만 요셉을 마리아의 순결을 위협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 이야기는 3부로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