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때문에 급 노화를 맞게 된 아버지 요셉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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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 때문에 급 노화를 맞은 아버지: https://youtu.be/DsF8FOBCY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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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인이 되어 버린 요셉
요셉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아니며, 마리아의 순결을 위협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를 노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요셉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던 중세의 일부 신학자들은 요셉이 마리아와 혼인할 당시 90세 정도의 노인이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자신의 신체마저도 온전히 건사할 수 없을 정도의 노인이어야 마리아의 순결도 예수의 신으로서의 속성(神性)에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성경에서 그가 마리아의 남편이라고는 나와 있지만 그는 마리아의 허울뿐인 남편이자 성 가족의 가장일 뿐, 가장으로서의 어떠한 권위나 영향력도 없으며 예수의 친아버지도 아니라는 게 중세 신학자들의 입장이었습니다.
중세 신학자들은 요셉을 단지 무기력한 노인으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가 아둔하고 미련한 존재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예수탄생과 같은 역사적인 순간에도 그 중요성을 알지 못한 채 그저 방한 구석에서 잠이나 자고 인류 구원에 관한 예수의 과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멍청하고 아둔한 존재로 폄하되었습니다. 지능적으로 아둔해야 그가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전혀 위협할 수 없을 거라 본 거죠. 요셉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건 아니지만 요셉에 관한 민간에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며 그의 이미지를 왜곡, 날조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반격에 나선 요셉
15세기 중/후반이 되면 요셉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유럽은 13세기가 되면 지중해를 중심으로 무역과 상업이 상당한 발전을 이룩합니다. 게다가 14세기 중반 발생한 흑사병의 대유행은 토지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사회 구조를 완전히 붕괴시키며 사람들의 도시 이주를 촉진시킵니다. 이들이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건 상업 분야였습니다. 상업 활동은 기본적인 읽고 쓰기 능력을 요구하였습니다. 14세기 후반, 15세기 초가 되면 상업 활동에 참여하는 인구수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유럽 평신도들의 문해력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사제의 설교 없이도 직접 성경의 내용을 습득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게다가 15세기 중반에는 인쇄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출판 산업이 급격하게 성장하며 성경을 쉽게 구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제 요셉의 존재 자체를 무턱대로 부정하는 것도, 그가 90세의 무기력한 노인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3. 미켈란젤로의 <도니 톤도>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반에는 요셉에 관한 중세적 시각과 새로운 시각이 공존하였지만, 요셉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90세의 무기력한 노인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중세 시대와 비교하면 요셉은 훨씬 젊게 묘사되는 등 외형적인 분명한 변화가 발생합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의 <아기 세례자 요한과 함께 한 성 가족 Holy Family with infant St. John the Baptist>, 일명 <도니 톤도 Doni Tondo>(1506)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미켈란젤로 초기를 대표하는 이 회화 작품은 성 가족과 더불어 여러 인물들이 동시에 등장합니다. 그림의 뒤쪽에는 다섯 명의 나체의 남성들과 함께 상반신만 보이는 4-5살 정도의 소년이 등장합니다. 바로 이 소년이 아기 세례자 요한입니다. 아기 세례자 요한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 그림의 전면에는 이 그림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성 가족이 등장합니다.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성 안나와 함께 한 성 모자The Virgin and the Child with St. Anne>(1510)와 완전히 대비됩니다. 다 빈치의 그림과 미켈란젤로의 그림의 다른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선 그림의 재료 자체부터가 다릅니다. 다 빈치의 <성 안나와 함께 한 성 모자>는 가로 130㎝, 세로 168㎝의 나무 위에 유화로 그려 우리에게 익숙한 직사각형의 캔버스의 형태와 거의 유사합니다. 반면에 미켈란젤로의 <아기 세례자 요한과 함께 한 성 가족>은 그 별명인 <도니 톤도>에서 알 수 있듯, 원(circle)을 뜻하는 “톤도(tondo)”, 즉 원형의 패널 위에 안료와 달걀노른자 등을 섞어서 만든 템페라(tempera)로 그려졌습니다. 두 그림의 구도 역시 정반대입니다. 다 빈치의 그림은 성 안나에서부터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로 이어져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입니다. 하지만 <도니 톤도>는 아기 예수와 요셉을 정점으로 마리아로 내려오는 역삼각형의 구도를 형성합니다.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라는 두 사람의 평소 성격을 반영하듯 그림의 분위기 역시 확연하게 다릅니다. 다 빈치는 당대에도 잘생긴 얼굴과 뛰어난 사교 능력, 세련된 에티켓으로 궁정 사회에 특화된 인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런 천성이 반영되어 있듯,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등장하는 다 빈치의 그림들은 르네상스 식의 우아함(grace)이 돋보이는데 <성 안나와 함께 한 성 모자>는 그런 다 빈치 회화의 특징이 절정에 도달하여 그림 전체가 여성스러운 우아한 기품이 넘쳐흐릅니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사회성이 부족하며 고독한 편이며 불같은 성격으로서 우아한 에티켓의 르네상스적인 궁정인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의 조각과 회화는 우아함 대신 남성적인 역동성이 두드러지는데 <도니 톤도> 역시 남성적인 활력이 그림을 지배합니다. <성 안나와 함께 한 성 모자>는 몽환적이며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로서 성 가족의 가장으로서 성 안나를 제시하고 있는 것과 대단히 잘 어울립니다. 다 빈치는 비록 남성인 아기 예수를 제시하지만 외할머니에서 어머니와 아들로 내려오는 모계 중심적인 가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도니 톤도>는 분명한 채도를 사용한 명확한 윤곽 표현에 걸맞는 대단히 파워풀한 분위기로서 요셉을 가장으로 제시하며 부계 혈통을 강조하고 있는 것과 대단히 상응합니다. 두 미술가의 개인적인 성향도 큰 몫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일가의 가장으로서 여성인 성 안나를 제시하느냐, 남성인 성 요셉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확연히 다른 그림이 탄생하게 된 거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풀 밭 위에 성모 마리아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고 그 위에 아기 예수와 요셉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아기 예수는 성모의 머리 위에 두 손을 올리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오른 다리는 마리아의 오른팔 위에 올라가 있고 왼쪽 다리는 마리아의 어깨 너머에 가려져 있습니다. 마리아의 도움을 받는 아기 예수가 두 다리로 곧게 서기 직전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뒤에서 아기 예수가 혼자 힘으로 설 수 있도록 부축해줍니다. 요셉의 두 다리 사이에는 성모가 등을 기대고 있고 그녀의 오른팔은 요셉의 오른 무릎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게 마리아가 거의 온 몸을 요셉에게 기대고 있음으로서 요셉이 마리아의 보호자라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요셉에게 기댄 마리아를 발판 삼아 아기 예수는 두 다리로 일어서려고 합니다. 이러한 구도가 무얼 의미할까요? 마리아는 요셉의 아내로서 그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편 요셉이 예수의 보호자라는 것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가 요셉의 몸에 직접 밀착해 도움을 받는 건 아니지만 예수의 도움닫기인 마리아의 오른팔은 요셉의 무릎 위에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예수는 요셉의 도움을 받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요셉의 두 팔은 성모자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두 팔 혹은 적어도 한 팔이라도 아기 예수가 넘어지지 않도록 아기 예수를 붙잡고 있을 겁니다. 이는 요셉이 뒤에서 묵묵하게 예수를 도와주고 지켜주는 존재라는 걸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는 기독교의 공식 입장 때문에 요셉을 예수의 친아버지로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건 어렵지만 그가 예수의 보호자로서 예수에게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게끔 미켈란젤로가 고도의 전략을 사용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 성모자를 지켜주는 성 가족의 믿음직한 보호자로서의 가장의 면모는 그의 외형 묘사를 통해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도니 톤도> 속 요셉은 머리가 벗겨지고 여전히 마리아보다 훨씬 나이가 많지만, 중세 시대 때의 노인이 아닌 50대의 장년 남성으로 훨씬 젊어졌습니다. 그저 나이만 젊어진 게 아닙니다. 한쪽이 올라간 두 눈썹, 굳게 다문 두 입, 아기 예수가 쓰러지지 않도록 온 집중을 다하여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매섭게 보일 정도의 두 눈빛에서 나약함이란 보이지 않습니다. 성 가족에게 어떠한 위험도 다가올 수 없을 정도로 요셉에게서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느껴집니다. <도니 톤도> 속 요셉의 모습은 미켈란젤로의 <모세 Moses>(1513-1515)를 연상시킵니다. 교황 율리우스2세(Julius II, 1443-1513)의 무덤 조성을 맡게 된 미켈란젤로는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모세를 조각합니다. 모세는 통상적으로 머리에 두 뿔이 돋아나고 수염을 길게 기른 6-70대의 노인으로 묘사됩니다. 미켈란젤로 역시 오랜 전통에 따라 모세를 노인으로 묘사하지만 미켈란젤로의 모세는 전혀 연약하거나 나약해 보이지 않습니다. 근육질의 몸매에 강렬한 눈빛, 허리를 곧게 세운 바른 자세는 그의 강인함과 카리스마를 대변합니다. <도니 톤도> 속의 요셉 역시 <모세>와 마찬가지로 강렬한 힘이 느껴집니다. 이처럼 16세기가 되면 요셉은 비록 여전히 마리아와 나이 차이는 많지만, 성모자를 위험에서 지키고 예수가 안전하게 성장하여 인류 구원의 과업을 이루는 데 공헌해야 하는 성 가족의 든든한 장년의 가장의 이미지를 얻게 됩니다.
- 이야기는 4부로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