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셉(St. Joseph) 이야기 4

1400년만에 자신의 본래 나이를 찾게 된 요셉

by 수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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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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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말, 17세기 초에 요셉은 완벽하게 부활합니다. 물론 당시에도 노인으로 묘사하는 전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부였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자 예수의 현세의 아버지로 분명하게 기술되어 있으므로 요셉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건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의 나이도 제 자리를 찾아 갑니다. 당시 유럽에서 여성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결혼하였으며, 남성들은 20대 중/후반 정도가 결혼 적령기였습니다. 로마 제국 시기 유대인의 경우 일반적으로 여성은 20대 초/중반, 남성은 20대 중/후반 결혼했음으로 요셉 역시 마리아와 혼인할 당시 그 나이 때였을 거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었습니다. 이 시기 요셉의 나이에 대한 인식 변화는 엘 그레코(El Greco)의 그림들에 나타납니다.


2. 베네치아 체류 시기 엘 그레코의 그림들 속 성 요셉


스크린샷 2025-06-08 오후 2.44.00.png El Greco, <Self-Portrait> (1595-1600)


그리스 크레타(Κρήτη) 섬 출신으로 “그리스인”이라는 뜻의 엘 그레코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도미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 Δομήνικος Θεοτοκόπουλος, 1541-1614)는 평생 성 요셉이 등장하는 다수의 그림들을 창작하였습니다. 1541년 출생한 테오토코풀로스는 1567년까지는 고향인 크레타 섬에서 활동하였습니다. 크레타 섬을 비롯한 그리스는 유럽의 대표적인 정교회(Orthodox) 지역으로서 그는 고향에서 정교회의 이콘(ikon)화들을 제작하는 미술가였고 1563년에는 대가(maestro)의 자리에 오릅니다. 하지만 그는 고향에서의 성공을 포기하고 1567년 이탈리아 베네치아(Venezia)로 건너갑니다. 당시 크레타 섬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그는 손쉽게 베네치아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베네치아로 이주한 테오토코풀로스는 빠르게 당시 베네치아 화풍을 습득합니다. 그가 베네치아로 건너갔을 당시는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77-1576)의 말년으로서 그와 더불어 틴토레토(Tintoretto, 1518-1594)와 파올로 베로네제(Paolo Vernese, 1528-1588)가 베네치아 화단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이 세 명의 미술가들의 작품은 대체적으로 둔탁한 색채에 묘사되는 대상들 간의 명확한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외형 묘사보다는 대상의 전체적인 시각적 효과를 더욱 중시합니다. 테오코토풀로스는 정교회의 이콘화 전통에서 벗어나 티치아노의 말기 및 당시 틴토레토의 화풍을 빠르게 수용하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빠르게 정립해 나가 1570년 즈음에 이르면, 시그니처 스타일을 완성하기에 이릅니다.


스크린샷 2025-06-09 오전 10.56.51.png El Greco, <The Adoration of Shepherds> (1570-1572)


베네치아 체류 막바지에 제작한 걸로 알려진 <목동의 경배 The Adoration of Shepherds>(1570-1572)에서는 테오토코풀로스의 그림들 중 성 요셉의 모습이 등장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목동의 경배>는 그리스도가 탄생한 직후, 주변에 있던 세 명의 목동들이 천사들로부터 이 땅에 구원자(messiah)가 나타났기 때문에 가장 먼저 그의 탄생을 축하하라는 안내를 받아 아기 예수와 성 가족을 찾아온 장면입니다. 목동의 경배 장면에서는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한 세 명의 목동들, 그리고 성 요셉이 등장하는 게 관례입니다. 그림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성모의 뒤에 서 있는 남성이 성 요셉입니다. 요셉은 비록 활력이 있는 남성의 모습이지만 백발이 성성하고 흰 수염을 기른 50대 말, 60대 초반의 남성의 모습입니다. 비록 머리가 벗겨지지는 않았지만 이 그림에서 성 요셉에 대한 엘 그레코의 기본적인 인식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의 <세례자 요한과 함께 한 성 가족 Holy Family with infant St. John the Baptist>, 일명 <도니 톤도 Doni Tondo>(1506) 속 성 요셉에 관한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노인도 그렇다고 성모와 비슷한 나이 대도 아니지만 두 모자를 지킬 수 있을 정도의 권위와 힘이 있는 가장으로서의 요셉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니 톤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donitop-removebg-preview.png Michelangelo, <Doni Tondo> (1506)


3. 스페인 시기 엘 그레코의 그림들 속 성 요셉


테오토코풀로스는 1570년 경 베네치아를 떠나 로마(Roma)로 간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마에서 그는 개인 후원자로부터 지속적인 후원이나 교황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작품을 의뢰받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그는 1575년까지 대략 5년 정도 로마에 머물면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의 그림들을 공부하며 자기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드로잉을 우선하며 외형에 대한 분명한 묘사를 강조하는 로마 특유의 미술 문화에 따라 이 시기 그의 그림들은 베네치아 시절과 비교하면 묘사하는 대상들의 윤곽이 뚜렷해지며 인물들의 외형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스크린샷 2025-06-09 오전 11.49.25.png El Greco, <La Adoración del Nombre de Jesús> (1578-1579)


로마 화단의 화풍까지 습득한 그는 1577년 스페인으로 건너갑니다. 그는 중세 스페인의 수도였던 톨레도(Toledo)에 정착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스페인에 이주하면서 그는 본명인 도미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보다 별명인 엘 그레코로 알려지게 됩니다. 엘 그레코가 스페인으로 이주한 주된 이유는 펠리페2세(Felipe II, 1527-1598)의 눈에 띄어 궁정화가가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스페인 왕실로부터 작품을 의뢰받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경배 La Adoración del Nombre de Jesús>(1578-1579)는 엘 그레코가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주문 받은 작품들 중 하나이며 주문자는 펠리페2세였습니다. 정확한 주문 경위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림은 펠리페2세가 개인적인 목적에서 주문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어 펠리페2세는 또 다른 작품을 주문합니다. 펠리페2세의 명령에 따라 1563년부터 수도 마드리드(Madrid)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57㎞ 떨어져 있는 엘 에스코리알(El Escorial)에 왕실 수도원이자 예배당, 납골당의 복합 시설물인 산 로렌조 수도원(Monasterio y Sitio de El Escorial)이 조성되고 있었습니다. 펠리페2세는 산 로렌조 수도원을 장식할 목적으로 엘 그레코에게 그림을 주문하였고 그 결과 <성 마우리아스의 순교 El Martirio de San Mauricio>(1580-1581)가 완성됩니다. 현재 이 그림은 산 로렌조 수도원에서 보실 수 있지만 완성 당시에는 펠리페2세로부터 거부당하였습니다. 종교화의 미학적인 기준보다 교리적인 기준을 더 중시한 펠리페2세는 결국 이 그림을 산 로렌조 수도원에 걸지 않기로 결정하였고 엘 그레코는 궁정화가에 임용되지도 못하였습니다. 이후 엘 그레코는 궁정사회로의 진출을 포기하고 스페인의 여전한 종교 중심지인 톨레도에서 교회를 상대로 작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평생 톨레도에서 활동합니다.


스크린샷 2025-06-09 오후 12.12.12.png El Greco, <St. Joseph> (1577-1580)


성 요셉에 관한 이미지는 엘 그레코가 스페인에 정착 한 이후 부쩍 증가합니다. <성 요셉 St. Joseph>(1577-1580)은 엘 그레코가 스페인에 도착한 직후인 1577년에서 1580년 사이에 제작된 걸로 추정됩니다. 이 그림은 가로 56㎝, 세로 68㎝의 소형 크기로서 노란색 토가(toga)를 걸친 성 요셉이 등장합니다. 이 그림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등장하는 성 가족을 그리기 위해 성 요셉의 모습만을 사전에 제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그림으로 추정됩니다. 성 요셉은 머리가 하얗게 쇤 채 머리가 벗겨져 있으며 구레나룻에서 코밑과 턱까지 이어지는 흰색 수염을 기르고 이마에 주름이 선명한 노인의 모습입니다. 이 그림에서의 요셉은 중세 시대 때의 90대의 노인보다는 젊지만 미켈란젤로의 <도니 톤도> 속 성 요셉보다는 나이가 많은 6/70대 정도입니다.


스크린샷 2025-06-09 오후 12.29.58.png El Greco, <Holy Family with St. Anne> (1586-1588)


<성 요셉>과 1610년 완성된 <목동의 경배 The Adoration of Shepherds>(1610)를 제외하고 엘 그레코의 그림에서 노인으로서의 요셉의 모습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1580년대 중반부터의 엘 그레코의 모든 그림 속 요셉은 젊은 청년의 모습입니다. 1585년경에 완성된 <성 가족 The Holy Family>(1585) 속 성 요셉은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 남성입니다. 그보다 조금 늦은 1588년에 완성된 <성 안나와 함께 한 성 가족 Holy Family with St. Anne>(1586-1588)에서 성 요셉 역시 이와 비슷한 연령입니다. 마찬가지로 1594년에서 1604년 사이에 완성된 걸로 추정되는 <성 가족 Holy Family>(1594-1604), 1595년의 <성 가족 Holy Family>(1595), 1595년에서 1600년 즈음에 제작된 <마리아 막달라와 함께 한 성 가족 Holy Family with St. Mary Magdalen>(1595-1600) 등 1580년대 중반 이후에 제작된 요셉이 등장하는 모든 그림에서 요셉은 예외 없이 모두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젊은 청년입니다. 16세기에서 17세기로의 세기 전환기에 요셉의 나이는 20대 초반의 젊은 여인과 결혼하는 여느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20대 중/후반 많아야 30대 초반의 결혼 적령기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남성으로서의 자신의 나이를 찾게 되었음을 1580년대 중반 이후의 엘 그레코가 제작한 성 요셉이 등장하는 그림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크린샷 2025-06-09 오후 12.50.11.png El Greco, <Holy Family with St. Mary Magdalen> (1595-1600)


17세기로의 전환기에 요셉이 제 나이를 찾게 된 건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종교개혁으로 서방의 보편 교회가 구교와 신교로 완전히 분리되고 가톨릭 사회가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세력을 재건하려던 노력들이 없었다면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하였을 겁니다. 성 요셉이 완벽하게 부활에 성공하게 된 건 개신교에 대한 가톨릭의 반격, 일명 반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이야기는 5부로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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