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남은지 알 수 있다면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진짜 늦었을 수도 있다

by 수다인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3차원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단 한 치 앞도, 불과 1년 후도, 불과 한 달 후도, 불과 1주일 후도, 불과 하루 후도, 불과 1시간 후도, 불과 1분 후보, 심지어 1초 후도 알 수 없다. 지금 멀쩡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1시간 후에 길을 건너다가 다가 오는 차에 치여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불과 1시간 후에 이승에서의 삶을 다할 수도 있는 거다. 인간, 아니 지구 상에 살아가는 모두에게는 일정한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균 생존 연령으로서의 평균치일뿐 누구는 100년이, 누구는 80년이, 누구는 50년이, 어느 누군가는 그저 20년의 세월밖에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저 확실한 건 우리 모두가 주어진 시간이 제한적이며 남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전혀 모른다는 거다.


그렇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가다 보니 시간이 지나 어느 순간 우리는 그저 일정 정도의 시간을 살아 냈을 뿐이다. 올해 45살이 된 사람은 어쩌다 보니 44, 45년이라는 시간을 지상에서 살아낸 거고, 75살이 된 사람은 어쩌다 74, 75년의 시간을 지구에서 버틴 거다. 아마 75살인 사람은 45살이 된 사람에게 그렇게 말할 것이다.


"45살이면 젊은 한 참 나이지,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기도 충분하고 기회도 많고. 늦은 시기가 아니니 다시 도전하고 새로운 걸 시도해도 전혀 늦지 않아."


그런데 그 75살인 사람이 이제는 95살인 어르신을 만났다고 해보자. 그 95살의 어르신은 아마 75세의 그보다는 젊은 어르신에게 똑같이 말할 거다. 너에게는 앞으로 20년의 시간이 더 남았으니 인생을 정리할 준비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라고.


마찬가지로 45살의 중년은 25살에게, 35살에게 똑같은 충고를 할 거다.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얼마나 많은 기회가 남아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지 전혀 모른다. 그건 우리가 당시의 그 터널을 지나야만 할 수 있다.


27살이 되었을 때 나는 취업할 생각은 안 하고, 미술사 석사 과정에 진학한다는 게 동년배들과 비교하면 한 참 늦어지는 선택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내 남은 인생을 위한 탁월한 선택일 거라 생각했다. 29살 석사를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했지만 끝내 해외 유학을 하지 못한 32살의 나는 그 사이 변변찮은 직업도 경력도 없어 내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32살에서 37살까지 뜨문뜨문 계약직 연구원을 전전하던 나로서는 38살 갑자기 전혀 아무런 학문적 배경도 없이 전혀 새로운 분야에 박사 과정에 진학하기로 했을 때 그게 내 인생의 마지막 전환점이 될 기회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새로운 걸 시작하기에 이제는 마지막 순간이고 나에게는 지금이 마지막 남은 기회일 뿐이라고. 그런데 그러부터 7년이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아무 것도 이룬 것도, 남들에게 보여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존재로 전락했다. 학위를 받지도 못했고 그 사이 직업적 경력은 단절됐고 나이는 어느 덧 40대 중반이 되었다. 이제 새로운 곳에서 무언가 새로운 걸 하기에는 기회를 모두 소진해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도전할 수 있을까? 지난 7년의 세월을 실패는 실패일 뿐 그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얼마든지 새롭게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설 수 있을까?


안타깝게 27살의 나, 32살의 나, 37살 때의 나와 마찬가지로 45살의 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나에게도. 나는 여전히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 알지 못한다는 거다. 만약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지금 나에게 주어졌던 시간만큼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많다면 지금의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새로운 걸 도전하기에 전혀 늦은 때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안타깝게도 그저 한 방향으로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 나를 맡긴 채 덤덤하게 그 흐름을 타고 가야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한 참 지나서야 우리는 깨닫게 된다. 아~ 늦었다고 생각했던 그 때, 기회가 마지막으로 남았다고 생각됐던 바로 그 때는 전혀 늦었던 때가 아니고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다고. 그리고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 때의 그 고민고민에 쌓여있던 나에게 아니야 지금은 전혀 늦은 게 아니니 니가 원하던 바로 그걸 해,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더 후회할 거야. 32살의, 37살의 나에게 지금의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내가 그렇듯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으니까. 지금이 적절한 시간인지 이미 너무 늦었는지 알 수 없으니.


인간이 3차원이 아닌 4차원, 5차원의 세상 속에서 살면서 시간이 일방적으로 흐르는 것 이상의 것들을 볼 수 있다면 인간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아마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지 않을까? 아~ 물론 사는 게 재미는 없을 거다. 너무 뻔한 삶일거라 우리를 흥분시켜주지는 못할테니까. 인류의 절반은 너무 뻔한 것 정해져 있는 건 따분하다고 싫어할테지만 인륜의 절반은 불확실한 것, 알 수 없는 것들이 주는 불안함에 몸소리치게 괴로워할 수도 있다. 나처럼.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남은지 알 수 있다면 비록 인류의 절반은 인생에서 지루함과 따분함을 토로하겠지만 나와 같은 절반은 인생 살이가 더 편해지고 안락해지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유튜브 100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