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후원자의 탄생)카를5세 vs. 프랑수아1세

5. 다 빈치에 버금가는 천재 미술가가 필요한 카를5세

by 수다인

스페인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카를5세는 16세기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후원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힙니다. 본 시리즈는 카를5세의 미술 후원에 나서기 전, 그가 미술 후원에 관심을 쏟게 되는 배경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 시리즈를 평생의 숙적이었던 프랑스의 국왕 프랑수아1와의 치열한 경쟁 관계가 미술 후원자로서의 카를5의 행보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주목합니다. 총 다섯 편으로 구성된 시리즈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카를5세,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를 두고 프랑수아1세와 경쟁하다!

2. 이탈리아 문제를 두고 심화된 카를5세와 프랑수아1세의 대립

3. 프랑수아1세 문화 군주로서 우위에 서다: 루브르 궁 건설 프로젝트

4. 카를5세와 프랑수아1세, 이상적 군주가 되기 위한 미술에서의 경쟁

5. 다 빈치에 버금가는 천재 미술가가 필요한 카를5세




amMagazin_MonaLisa_Teaser.jpg da Vinci, <Mona Lisa> (1503-1506)


지적 능력, 행동거지, 검투 능력, 피지컬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자신보다 우위에 있었던 동년배의 프랑수아1세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를 프랑스로 초빙하여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궁정인』 속 이상적인 새 시대의 군주의 덕목을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는 상황에서 카를5세가 카스틸리오네의 충고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평생의 라이벌로서 프랑수아1세를 모든 면에서 압도하고 싶었던 카를5세였으므로 미술에서도 프랑수아1세를 압도하고 싶었을 겁니다.


스크린샷 2025-08-31 오후 4.47.28.png van Orley, <Margarete d'Austria as a Widow> (1550)


어린 시절을 당시 유럽에서 가장 세련된 미술 취향을 지닌 고모 마르가레테의 메헬렌(Mechelen) 궁정에서 고모가 수집한 뛰어난 미술 작품들에 둘러쌓여 그녀가 당대의 미술가들을 후원하는 걸 곁에서 지켜봐 온 카를5세는 고모를 통하여 미술 작품을 수집하고 미술가들에 관한 후원이 군주의 덕목이라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미술에 관한 취향이 고모 마르가레테 수준이 아니더라도 모범적인 궁정인이자 세련된 궁정사회를 건설해야 하는 군주에게는 미술품을 수집하고 미술가를 후원하는 게 군주의 의무임을 내재화 하였을 겁니다. 여기에 더하여 그의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프랑스의 프랑수아1세의 행보는 미술의 수집가, 후원가로서의 카를5세의 행보에 깊은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프랑수아1세 못지 않은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모범적인 미술의 후원자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싶었을 테니까요.


스크린샷 2025-08-31 오후 4.59.36.png Tiziano, <Federico Gongaza's Mother: Isabella d'Este> (1536)


프랑수아1세는 이미 당시에도 신으로부터 그 재능을 부여받은 희대의 천재로서 살아 있는 전설로 평가받는 말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프랑스로 초빙하며 앞서 나갔습니다. 다 빈치와 함께 이탈리아 미술계의 거장으로 또 다른 거장으로 평가받는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는 37살의 나이로 1520년 이른 죽음을 맞이합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otti, 1475-1564)는 여전히 건재하지만 그는 율리우스2세부터 레오10세 시대에까지 교황청의 여러 미술 작업에 참여하며 라파엘로와 더불어 거의 교황청 소속 미술가와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거기다가 클레멘스7세는 이탈리아에서 신성로마제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프랑스아1세와 협력하며 카를5세와 대립각을 세우는 과정이었으므로 오랫동안 교황청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던 미켈란젤로를 카를5세가 선택하기에는 어려웠을 겁니다. 미켈란젤로 역시 교황청 뿐만 아니라 교향 피렌체(Firenze)를 중심으로 활동했기에 메디치 가문이라는 든든한 이중의 후원자가 있었기 때문에 황제의 후원이 간절하지 않았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지나치게 고집불통의 성격 역시 카를5세와는 맞지 않았을 겁니다. 프랑수아1세가 다 빈치라는 거장을 후원했듯, 카를5세도 다 빈치에 버금가는 거장을 찾아야 했습니다. 카를5세는 1520년대까지 그런 미술가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1529년 만토바의 남서쪽에 위치한 파르마(Parma)에서 만토바 공작 - 당시는 후작 - 페데리코 곤차가의 소개로 한 미술가를 만납니다. 이 미술가는 황제를 알현하기 위하여 베네치아(Venezia)에서 만토바까지 건너옵니다. 그렇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5세와 베네치아 화단을 대표하는 르네상스 미술의 4대 거장 중 한 명인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1488?-1576)과의 역사적인 첫 만남이 성사됩니다.


- (추천) 르네상스 4대 거장, 티치아노 편: https://brunch.co.kr/@grandauphin/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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