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서 요셉이 아들 예수와 단 둘이 등장하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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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이 아들 예수와 단 둘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 https://youtu.be/k2RXa-smW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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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톨레도의 산 호세 예배당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Santa Teresa de Ávila, 1515-1582)는 살아생전에도 스페인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마르틴 라미레스(Martin Ramírez, ?-1595)는 성녀 테레사의 추종자 중 한 명으로서 1582년 테레사 수녀의 선종 직후, 톨레도(Toledo)에 그녀를 기념하기 위한 예배당을 건립하기로 결심합니다. 6년 동안의 공사 끝에 예배당은 그녀와 그녀가 창설한 맨발의 카르멜수도회(las Carmelitas Descalzas)의 수호성인인 성 요셉에게 봉헌되기로 결정됩니다. 그렇게 톨레도에 성 요셉에게 봉헌된 최초의 예배당인 산 호세 예배당(Capilla de San José)이 1588년 축성됩니다. 이 예배당은 당시 스페인 사회에서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에 관한 깊은 존경심을 상징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이 시기 스페인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의 역량이 집대성 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2. 산 호세 예배당 중앙제단 프로젝트
산 호세 예배당은 1597년 11월 9일, 중앙제단을 장식하기 위해 그리스 사람 도미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 Δομήνικος Θεοτοκόπουλος, 1541-1614), 일명 엘 그레코(El Greco)에게 작업을 발주합니다. 예배당 측은 중앙제단화뿐만 아니라, 제단 상부 좌우를 장식할 그림과 제단 자체에 대한 디자인 및 함께 봉헌될 두 점의 조각상에 관한 드로잉 작업에 이르는 중앙제단 작업 전체를 엘 그레코에게 의뢰합니다. 중앙제단은 종교 시설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엘 그레코가 중앙제단 작업 전체를 수주 받았다는 건 그가 톨레도에서 상당히 인정받은 미술가였다는 걸 뜻합니다.
원래의 작업 완료 시한은 1598년 8월이었지만, 작업량에 비해 촉박한 기일이었으며, 당시 다른 작업들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1년 이상 지연되어 1599년 말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계약서의 내용대로 엘 그레코가 제작한 네 점의 유화 모두 납품 즉시 산 호세 예배당 중앙제단에 봉헌되었습니다. 하지만 제단 상단부 오른쪽의 <성 마르티나와 성 아그네스와 함께 한 성모자 The Virgin and Child with St. Martina and St. Agnes>(1597-1599)와 왼편의 <성 마르티누스와 거지 St. Martin and the Beggar>(1597-1599)는 1906년 매각되었습니다. 이 두 그림은 1942년 9월 미국 워싱턴 D.C.(Washington D.C)의 내셔널갤러리(National Gallery of Art)가 입수한 후 내셔널갤러리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미술 사업의 핵심인 중앙제단화는 최초 봉헌 당시 그대로 톨레도 산 호세 예배당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3. 파격 그 자체인 엘 그레코의 <성 요셉과 아기 예수>
톨레도 산 호세 예배당의 중앙제단화는 가로 147㎝, 세로 289㎝로서 상단이 반원 형태인 루네트(lunette) 모양입니다. 화면 가운데에는 성 요셉과 아기 예수가 등장합니다. 이들 부자의 머리 위에는 두 명의 아기 천사들의 보좌를 받으며 붉은 색 옷의 여성 천사가 요셉과 예수의 머리 위를 날고 있습니다. 화면 왼편의 아기 천사는 월계관을, 오른쪽 아기 천사는 화환을, 가운데 붉은 옷의 천사는 백합꽃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월계관, 화환, 백합꽃은 요셉과 예수 부자를 축복하기 위해 준비한 선물입니다. 이 예배당이 성 요셉에게 봉헌된 예배당이라는 걸 감안하면 천사들이 들고 있는 봉헌물의 진정한 주인공은 성 요셉임을 알 수 있습니다. 1577년 톨레도에 정착한 이후부터 엘 그레코의 그림에서 성 요셉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1580년부터 성 요셉은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 사이의 남성으로 완전히 자리 잡습니다. 산 호세 예배당의 중앙제단화 속 성 요셉 역시 예외 없이 청년으로 묘사됩니다.
<성 요셉과 아기 예수 San José y el Niño Jesús>(1597-1599)가 파격적인 이유는 성 요셉이 아기 예수와 단 둘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성모 마리아의 처녀성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요셉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했던 시기를 지나 요셉의 존재가 기독교 미술에서 다시 등장을 하더라도 요셉은 어디까지나 예수와 성모가 주인공인 이야기 구조에서 비중 있는 조연에 가까웠습니다. 중세 말, 르네상스 초기 성 요셉이 가톨릭의 주요 성인으로서 복권되었음에도 요셉은 아기 예수와 단둘이 등장하는 경우가 없었고 늘 성모 마리아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성모 마리아에 관한 가톨릭 교리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기독교 초기만 하더라도 마리아는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신의 어머니”(Theotokos)로서 존경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학자들은 성모 마리아를 인간이 신에게 가는 통로, 중간자 혹은 매개자의 지위까지 격상시킵니다. 평신도들이 마리아에게 기도하면 마리아가 그 기도를 신에게 전달해준다고 여겨진 겁니다. 모든 인간은 예수와 직접 소통할 수 없고 마리아라는 중간자를 통한다는 가톨릭의 교리에서 요셉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요셉의 성인으로서의 지위는 인정하지만 그 역시 그저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성모 마리아 없이 아들인 예수와 단 둘이 등장하는 건 교리 상으로 맞지 않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이 예수와 함께 등장할 때는 늘 마리아라는 중간자와 함께 등장하는 성가족(Holy Family) 도상이 선택되어졌습니다.
하지만 톨레도의 산 호세 예배당은 이러한 전통을 과감히 벗어났습니다. 만약 산 호세 예배당이 전통을 따랐다면, 엘 그레코에게 성가족 도상을 의뢰했을 겁니다. 혹은 1580년대까지 엘 그레코가 완성한 성가족 그림들과 달리, 아기 예수를 중앙에 두고 오른쪽에 성모 마리아와 왼편에 성 요셉을 대등한 위치로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당시로서는 충분히 성 요셉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톨레도 산 호세 예배당의 중앙제단화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화면에서 생략한 채 성 요셉은 아기 예수와 단 둘이 등장하였고 기존에는 유례를 찾기 어려웠던 가톨릭의 새로운 도상인 “성부자상”을 제시합니다.
1870년 제255대 교황 비오9세(Pio IX, 1792-1878)가 성 요셉을 “가톨릭 보편 교회의 수호자(Patron of the Universal Church)”로 선포한 이래로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현세의 아버지, 성모 마리아의 남편, 성가족의 가장으로서의 성 요셉의 위상은 매우 당연합니다. 또한 현세의 아버지인 요셉이 아들인 예수와 단 둘이 묘사되는 것 역시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부성애와 남성 육아가 강조되는 21세기에는 더더욱 그렇고요. 하지만 400년 전 종교개혁으로 서방 교회가 완전히 분열되고 가톨릭은 떨어진 위상과 세력을 회복해야 하는 당시의 시대적 관점에서 보면 엘 그레코의 <성 요셉과 아기 예수>는 파격 그 자체인 작품입니다.
- 이야기는 7편으로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