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셉(St. Joseph) 이야기 7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강인한 보호자로서의 성 요셉

by 수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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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요셉이 아기 예수와 단 둘이 등장한 최초의 그림 이야기: https://youtu.be/Tt1_jOrDD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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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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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눈에는 성 요셉(St. Joseph of Lazareth)이 아들인 아기 예수와 단 둘이 등장하는 모습이 그다지 이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약 400년 전만 하더라도 성 요셉이 성모 마리아 없이 아기 예수와 단 둘이 등장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당시 성 요셉은 오늘날과 같은 위상을 갖지 못했고, 성 요셉 신앙 역시 널리 확산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수호성인으로 성 요셉을 선택한 신자들 또한 극히 드물었고요. 위상과 대중적 인기가 모두 낮았던 성 요셉이 가톨릭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지닌 성인인 성모 마리아 없이 아기 예수와 단둘이 등장한다는 것은 교리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허용되기 어려웠습니다. 성모 마리아 다음으로 높은 지위를 지닌 성인들인 세례자 요한(St. John the Baptist)이나 그리스도의 후계자인 성 베드로(St. Peter)마저도 당시로서는 예수와 단 둘이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와 단 둘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건 성 요셉이 세례자 요한이나 성 베드로의 지위를 넘어 성모 마리아의 지위에 근접해졌음을 의미합니다.


1303grec.jpg 엘 그레코, <St. Joseph and the Christ Child> (1597-1599)


도미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Δομήνικος Θεοτοκόπουλος, 1541–1614), 일명 엘 그레코(El Greco)는 스페인 톨레도(Toledo)의 산 호세 예배당(Capilla de San José) 중앙제단을 장식하기 위해 1599년 <성 요셉과 아기 예수 San José y el Niño Jesús>(1597–1599)를 완성합니다. 이 그림은 성 요셉이 아기 예수와 단둘이 등장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성부자상’이라는 새로운 기독교 미술 도상의 출발점입니다. 성부자상은 성 요셉이 성모 마리아라는 중재자 없이도 그리스도, 곧 신과 직접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을 정도의 교리적 지위를 획득했다는 시각적 선언입니다. 이는 단지 요셉이 예수의 현세의 아버지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성 요셉이 일정 부분 성모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의 권능과 정당성을 지녔다는 교리적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입니다. 성 요셉의 위상이 격상되고, 그 결과 미술에서 성모 마리아 없이 아기 예수와 단 둘이 등장할 수 있게 된 데에는 하나의 시각적 기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바로 성 요셉이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입니다.


2. 노쇠함의 상징인 지팡이


스크린샷 2026-01-06 오전 11.37.35.png 라파엘로, <The Canigiani Madonna> (1507)


성 요셉이 지팡이를 들고 등장하는 장면은 중세 미술에서도 이미 확인됩니다. 그러나 중세 미술에서의 지팡이는 성 요셉의 권능을 상징하는 기물은 아니었습니다. 중세 동안 성 요셉은 오랫동안 존재 자체가 의심받거나 부차적인 인물로 여겨져 왔습니다. 존재가 인정되더라도 성모 마리아의 처녀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聖)을 위협할 수 없게 고령의 노인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성 요셉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걸 넘어, 타인을 위협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로 표현되곤 했습니다. 이때 요셉의 손에 들린 지팡이는 성인으로서의 권위가 아닌 그의 노쇠함과 신체적 허약함, 무력함의 상징이었습니다. 따라서 중세 미술에서 성 요셉의 지팡이는 종교적 상징성이나 긍정적인 의미를 거의 지니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지팡이 혹은 막대기는 중세 시대에도 성 요셉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었습니다.


3. 가늘고 긴 막대기의 등장


mary05-2.jpg 지오토, <Sposalizio> (1304-1306)


중세 말기에 활동한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는 이탈리아 파도바(Padova)의 스크로베니 예배당(Cappella degli Scrovegni)에 《성모의 일생 The Life of the Virgin》(1304–1306) 연작을 제작합니다. 전체 여섯 장면 중 다섯 번째는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 즉 ‘스포살리치오’(sposalizio)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성 요셉은 신부인 성처녀 마리아와 비교해 나이가 매우 많지만 노인은 아닙니다. 요셉은 한 손으로 마리아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다른 손에는 흰색 비둘기가 내려앉은 백합꽃 줄기를 들고 있습니다. 백합과 흰색 비둘기는 순결과 헌신, 숭고한 사랑을 상징하며, 이는 성 요셉이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순수하고 희생적인 사랑에 대한 시각적 표현입니다. 이 장면에서 지오토는 노쇠함의 상징인 지팡이 대신, 사랑과 헌신을 상징하는 기물을 배치함으로써 성 요셉의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스크린샷 2026-01-04 오후 1.05.41.png 페루지노, <Sposalizio> (1500-1504)


이후 르네상스 시대의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400?-1455),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1446-1523)와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와 같은 후대의 미술가들은 스포살리치오 도상에서 중세 시기 요셉을 상징하던 노인의 지팡이도 그렇다고 지오토의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벽화에서의 백합꽃 줄기도 아닌 이 둘을 섞은 기물을 그림 속에 등장시켰습니다. 프라 안젤리코는 신랑인 성 요셉의 한 쪽 손에 꽃이 핀 나뭇가지를 쥐어 주었습니다. 이 나뭇가지는 가운데 이파리가 보이지 않아 얼핏 보면 긴 막대기처럼 보입니다. 페루지노의 <스포살리치오>에서는 성 요셉이 한 쪽 손으로는 마리아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어주며 왼손에는 장식이 달린 가늘고 긴 막대기를 들고 있는데 이는 지오토나 프라 안젤리코의 <스포살리치오> 속 꽃이 달린 나뭇가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입니다. 스승 페루지노의 그림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 라파엘로의 <스포살리치오>에서도 성 요셉은 장식은 보다 소박해졌지만 가늘고 긴 막대기 형태의 기물을 왼손에 들고 등장합니다. 이처럼 백합이 달린 나뭇가지는 점차 장식이 있는 가늘고 긴 막대기로 변해갔고, 16세기 초가 되면 스포살리치오 도상에서 성 요셉이 길고 가느다란 막대기를 든 채 등장하는 전통이 확립됩니다.


4. 성모자를 지키는 몽둥이의 등장


06christ.jpg 지오토, <Flight into Egypt> (1304-1306)


스포살리치오 도상에서 등장하는 가늘고 긴 막대기는 지팡이는 아닙니다. 지팡이는 신체를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크고 단단해야만 합니다. 크고 단단한 성격의 막대기는 지오토의 또 다른 연작인 《그리스도의 생애 The Life of Christ》(1304–1306)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성모의 일생》과 같은 시기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조성된 연작으로 총 25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곱 번째 장면은 <이집트로의 피신 Flight into Egypt>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 예수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성 요셉은 성모자를 이끌고 이집트로 피난길에 오릅니다. 지오토의 그림에서 성 요셉은 두껍고 투박한 몽둥이를 들고 있습니다. 이는 성모자(聖母子)를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무기입니다. 언제 어디서 적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므로 방어 수단이 필요한 건 당연하죠. 지오토는 이 상황에 맞게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두껍고 단단한 몽둥이를 제시하였습니다.


스크린샷 2026-01-05 오후 12.21.49.png 프라 안젤리코, <Flight into Egypt> (1451-1452)


지오토의 시각 전략은 프라 안젤리코의 <이집트로의 피신 Flight into Egypt>(1451–1452)으로 계승됩니다.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 속 요셉은 장년 혹은 노년의 남성이지만 꼿꼿한 허리와 힘찬 발걸음, 강렬한 눈빛으로 요셉은 전혀 노쇠해 보이지 않습니다. 지오토의 그림처럼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에서도 역시 두껍고 단단한 몽둥이가 등장합니다. 지오토가 그랬던 것처럼,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에서도 성 요셉은 몽둥이를 한쪽 어깨에 짊어진 채 성모자가 탄 당나귀를 따라가고 있다는 점에서 요셉은 이 몽둥이를 보행 보조도구로 이용하는 게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 요셉의 막대기는 지팡이가 아닌 성모자를 지키기 위한 무기입니다.


스크린샷 2026-01-05 오후 12.38.13.png 코레지오, <Rest on the Flight into Egypt> (1520)


신약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중세 말·르네상스 시대에 기독교 미술의 주요 주제로 부상한 기독교 도상이 있습니다. 바로 ‘이집트로의 피신 중의 휴식’(Rest on the Flight into Egypt)입니다. 자연을 배경으로 피난길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 성가족의 한가로운 한 때를 묘사한 이 도상은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주제가 됩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된 여러 ‘이집트로의 피신 중의 휴식’ 그림에서 성 요셉은 성모자와 함께 휴식을 취하거나 성모자가 먹을 음식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 장면에서도 그림 속에는 두껍고 단단한 몽둥이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몽둥이는 적으로부터 성모자를 지켜야 하는 무기이기 때문에 그림에서 요셉의 주변에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졌습니다. 이처럼 르네상스 시대 동안 ‘이집트로의 피신’, ‘이집트로의 피신 중의 휴식’과 같은 도상을 통해 몽둥이 형태의 막대기는 성모자의 수호자로서 성 요셉을 상징하는 기물로 자리를 잡아 나갔습니다.


5. 긍정적인 의미로 재소환 된 지팡이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엘 그레코는 <성 요셉과 아기 예수>에서 성 요셉을 나타내는 오래된 기물인 지팡이를 재소환해 냅니다. 그러나 엘 그레코는 지팡이를 노쇠함의 상징으로 사용하지 않고 중세 말·르네상스 시대에 축적된 ‘보호자’와 ‘수호자’로서의 상징성을 지팡이에 부여합니다. <성 요셉과 아기 예수>에서 성 요셉은 20대 말에서 30대 초반의 건장한 청년입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지팡이가 필요 없을 나이죠. 그럼에도 요셉은 길고 단단한 지팡이와 함께 등장합니다. 성 요셉은 오른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습니다. 왼손으로는 아기 예수의 어깨를 감싸 아들인 예수를 보호하는 포즈를 취함으로써 요셉의 지팡이는 보행 보조물이 아닌 적으로부터 예수를 지키는 방어 수단으로 읽혀지도록 도움을 줍니다. 이 그림에서 성 요셉은 단지 아기 예수의 현세의 아버지를 넘어 든든한 수호자로서 시각화 되었습니다. 엘 그레코는 성 요셉의 오래된 기물인 지팡이를 재소환 해냈고 중세 시대의 그림이나 엘 그레코의 그림에서나 지팡이라는 외형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엘 그레코는 성 요셉의 나이를 젊은 청년으로 바꾸고 아기 예수를 보호하는 포즈를 부여함으로서 지팡이에 완전히 새로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해냈습니다. 지팡이를 통해 성 요셉은 성모를 대신해 아기 예수를 지키는 보호자이며 더 나아가 성모자를 지키는 수호자로서 성공적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지팡이는 성부자상이라는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는 파격적인 도상이 교리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해준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6. 스페인 왕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성부자상

<성 요셉과 아기 예수>는 엘 그레코가 스페인에 정착한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온 성 요셉 이미지의 정점이자, 성부자상이라는 새로운 도상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예술가로서 엘 그레코의 창의성이 돋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성모 마리아라는 중재자 없이 성 요셉이 아기예수와 단 둘이 등장하는 최초의 성부자상인 <성 요셉과 아기예수>가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스페인은 15세기 말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고 보수적인 가톨릭 신앙을 지닌 국가였습니다. 16세기에서 17세기 동안 스페인 왕실은 가톨릭교회의 수호자를 자처하였으며 국가의 모든 정책이 가톨릭 신앙의 수호로 귀결되었습니다. 톨레도는 그런 스페인의 종교 중심지입니다. 엘 그레코의 <성 요셉과 아기 예수>는 오늘날에도 스페인의 종교 수도로 여겨지는 톨레도에 위치한 산 호세 예배당의 중앙제단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성모 마리아 없이 성 요셉이 아기 예수와 단둘이 등장하는 성부자상이 등장할 수 있었던 건 당대 스페인 왕실과 교회가 이를 용인했음을 의미합니다. 엘 그레코의 <성 요셉과 아기 예수>는 미술사적으로는 성부자상이라는 새로운 도상의 시초라는 의미도 있지만, 종교사적으로는 스페인이 국가 차원에서 성 요셉 신앙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스크린샷 2026-01-06 오전 10.49.07.png 벨라스케스, <Felipe III on Horseback> (1634-1635)


실제로 이 작품이 완성된 1599년 당시 스페인은 펠리페3세(Felipe III, 1578-1621)의 통치 하에 있었습니다. 1599년 21세의 젊은 국왕은 스페인의 왕위에 오른 지 2년 차였습니다. 펠리페3세는 아버지 펠리페2세(Felipe II, 1527-1598)보다 신앙심은 부족했지만 성 요셉에 관한 믿음만큼은 부왕 못지않았습니다.


- 이야기는 8편으로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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