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큐레이션] 왜 우리는 무의미한 일을 그만두지 못할까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불쉿 잡』

by 수다인

본 내용은 유튜브 [책에 관한 모든 수다] 채널에서 영상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왜 우리는 무의미한 일을 그만두지 못할까: https://youtu.be/k-hKPZHMg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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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치에 맞지 않거나 도리에 어긋난 걸 부조리(不條理)라 합니다. 세상에는 부조리가 넘쳐나고 학교와 직장은 우리가 가장 흔하게 부조리를 목격하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현대 노동 현장에서의 부조리 현상을 고발한 대표적인 책이 David Graeber(1961-2020) 교수의 『불쉿 잡: 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는가? Bullshit Jobs: A Theory』(2018)입니다. 불쉿 잡은 한국어로는 쓰레기같은 일, 개똥같은 일 등으로 번역될 수 있지만 번역서에서는 원어 그대로 ‘불쉿 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원어를 그대로 사용해 오히려 한국 독자들에게 그 개념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불쉿 잡: 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는가?』는 그레이버 교수가 불쉿 잡이라는 용어와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책이자 불쉿 잡에 대해서 심도 있게 탐구한 책이라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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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버 교수는 불쉿 잡의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 우선 일(job)을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 작업부터 시작합니다. 첫 번째는 일반적인 일(job)입니다. 이 유형은 일 자체가 의미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어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 유형은 ‘쉿 잡’(shit job)입니다. 쉿 잡은 육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힘은 들지만 사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종류의 일을 말합니다. 환경미화나 상담사와 같은 감정노동이 이에 해당하죠. 하지만 노동 강도가 심한 것이 쉿 잡의 유일한 기준은 아닙니다. 그레이버 교수에 의하면, 노동자들이 받는 형편없는 보수와 처우는 쉿 잡의 주요 구성 요소입니다. 따라서 육체적인 노동 강도가 높지만 연봉이 매우 높은 일부 대기업의 현장 근로자들은 이 쉿 잡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레이버 교수가 제시한 세 번째 노동 유형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인 ‘불쉿 잡’입니다. 불쉿 잡은 쉿 잡과 완전히 대척점에 있습니다. 불쉿 잡은 일 자체가 무가치하며 사회적으로도 무의미하며 심지어 해롭지만 해당 노동자들의 보수와 처우는 턱없이 좋은 일 혹은 그러한 직업들입니다. 그레이버 교수는 여기에 불쉿 잡으로 분류되기 위한 주요한 기준 하나를 더 제시합니다. 바로 노동자 자신의 주관적인 인식입니다. 즉, 노동자 스스로 해당 일이 무가치하며 조직이나 사회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고 인정해야만 불쉿 잡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 박사는 최종적으로 불쉿 잡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불쉿 직업(bullshit job)이란 유급 고용직으로 그 업무가 너무나 철저하게 무의미하고 불필요하고 해로워서, 그 직업의 종사자조차도 그것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직업 형태다. 그가 고용되려면 그 직업의 존재가 전제 조건인데도 말이다. 종사자는 그런 직업이 아닌 척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낀다.”


그레이버 교수는 사회적인 해악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 불쉿 잡의 종류와 그 수가 늘어나는 이유를 사회학적으로 탐구하고 결론을 대신한 마지막 장에서는 불쉿 잡을 근절해나가기 위한 방안까지 제안합니다. 『불쉿 잡: 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는가?』에서 특히 흥미로운 건 불쉿 잡에 재직하고 있거나 혹은 재직했던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의 서면 인터뷰 부분입니다. 그들은 전 세계 다양한 직군에서 발생하는 불쉿 잡의 실상을 그레이버 교수에게 증언할 뿐만 아니라, 불쉿 직업 노동자로서의 솔직한 감정 역시 저자에게 고백합니다. 불쉿 잡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무가치 하거나 심지어 해롭기까지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고소득을 거둔다면 직업적 만족도가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레이버 교수에게 사연을 보낸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비참함으로 대표되는 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2.

아버지의 직업을 아들이 세습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딸들 역시 부모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해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살아야 하는,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미래가 이미 결정된 시대는 지났습니다. 현대인에게는 직업을 선택할 자유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자유에는 본질적으로 모순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유는 긍정적인 개념이지만 동시에 차가운 개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결정할 자유가 주어지면서 동시에 그 결정의 책임 역시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업을 선택할 자유와 권리가 주어짐으로써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의무도 발생하게 된 겁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부모 잘 만나 부모의 넉넉한 경제적 지원을 받아 살아갈 수도 있고, 재벌 집 자녀들은 부모의 가업을 물려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은 사회 전체에서 극소수일 뿐 일반인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부모의 직업과 지위를 물려받을 수 없습니다. 만약 부모가 자영업을 하더라도 해당 업종이 위기거나 사양사업이라면 자녀는 스스로 직업을 찾아야 합니다. 불쉿 잡 노동자들이 느끼는 비참함의 근원은 직업에 대한 현대인의 숙명에서 비롯됩니다. 그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이 불쉿 잡이라는 걸 잘 알지만 그 일을 그만두면 소득이 없어지고 그러면 생계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그 일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 일을 떠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점점 심해져 스스로에 대한 비참함을 느끼며 급기야 정신건강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는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불쉿 잡이 현대사회에서 계속해서 생겨나고 유지되는 건 여러 가지 배경이 있지만 현대인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일, 노동을 해야 하고 직업이 필요한 구조 역시 결정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C7r2Qk3zrY_GmM-_xMNgyvhjcuRDEiF_BkULEyK9cEsCha_xBrYHNBJwlP89aE2Bj1aSsr6KivOMQQ-pSVdOlQ.jpg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


대한민국의 주당 근무 시간은 52시간입니다. 1주일은 총 168시간으로 그 중 52시간을 일터에서 보낸다면 대략 1주일의 1/3은 일터에서 보냅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법정 근로 시간일 뿐 많은 경우는 52시간을 훌쩍 넘는 시간까지 일에 매달립니다. 경제학자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는 1930년에 2030년이 되면 주간 노동 시간은 15시간으로 줄어들고 남는 시간은 여가활동에 사용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2020년대인 현재 케인즈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고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할애합니다. 사람들이 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쓰도록 현대 사회에서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라”는 격언을 진리처럼 주입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일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고 우리는 그저 생계를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따름이지요. 그나마 불쉿 잡은 쉿 잡에 비해 높은 소득 수준을 제공하지만 높은 소득은 불쉿 직업 노동자들에게 별다른 위안을 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최상위의 욕구인 자아실현의 욕구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불쉿 잡에 재직한다는 건 생리 욕구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된다는 겁니다. 인간은 낮은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면 다음의 높은 단계의 욕구 충족을 원합니다. 문제는 불쉿 잡이 고차원의 욕구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 해소되지 못한 욕구가 지속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악영향을 주어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하는 겁니다. 그레이버 박사는 불쉿 잡이 또 다른 불쉿 잡을 발생시키고 인간과 사회 전체의 노동력과 생산성을 저해시키는 점을 불쉿 잡이 미치는 사회적 해악으로 규정합니다. 그러한 것들도 심각한 문제지만 보다 심각한 문제는 불쉿 잡 노동자 개개인의 정신 건강이 위험해져 사회 전체의 정신 보건이 흔들리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현대인들은 늘 일을 잃어 버릴까봐 불안해 하지만 그 불안감의 실상은 일이 자기 자신의 본질을 지워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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