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 뮤지엄 [One Basquiat]
이스트 리버 East River
브루클린으로 향하는 길. 풍경은 흥미로웠다.
어퍼 이스트사이드에서 출발한 셰어 라이드 카는 이스트리버 East River를 따라 달린다. 2월 중순,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늦겨울 풍경을 간직한 채, 이스트 리버는 언제나처럼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었다. 주말 오전이라 막힘없는 *FDR. 달리는 차창 밖으로, 강 건너 펼쳐진 브루클린 풍경 또한 시야에서 재빨리 스쳐 지나간다.
*FDR: 이스트 리버를 따라 건설된 맨해튼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 Franklin D. Roosevelt East River Drive
이스트리버를 따라 십여분 남짓 미끄러지듯 달리더니,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브루클린 브리지.
맨해튼 로어 이스트 사이드 부근에 다다른 셰어 라이드 카는 어느새 브루클린 브리지 위를 쌩쌩 달린다.
영상 속에서 봐 왔던 뉴욕의 이미지에 가려 두 눈으로 분명히 보고 있어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뉴욕의 풍경을, 브루클린으로 가는 길목에 와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브루클린 Brooklyn
덤보 DUMBO(브루클린 브리지 아래 지역) 지구를 지나는 셰어 라이드 카는 십여분 남짓 더 달려 목적지인 브루클린 뮤지엄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곧바로 코트 안까지 파고드는 겨울 날씨. 대기는 매우 축축한 상태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수분기 가득 머금은 촘촘히 짜인 구름이 금방이라도 머리 위로 떨어질 듯 낮고 묵직해 보였다.
“눈이 오려나..?”
정신까지 얼어붙기 전에, 나는 얼른 뮤지엄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되어 개방감을 주는 뮤지엄 로비. 로비 한켠에는 나무 크레이트를 투박하게 쌓아 올려 만든 카페가 있다. 나는 진하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해서 홀짝이며 로비 안 풍경을 찬찬히 둘러본다.
로비에는 가족, 연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유로운 주말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카랑카랑한 느낌의 맨하튼 뉴요커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조금 느슨한 듯 편안하고, 나른하기까지 보이며, 동시에 아티스틱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지적인 인상까지 준다.
뮤지엄 창 밖으로 여전히 차갑고 조금 쓸쓸한 겨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나는 손에 들린 커피 한 잔과 이곳에 모인 느긋한 사람들을 모닥불 삼아 추위로 굳어버린 몸과 마음을 녹여 본다.
White Cube and One Basquiat
티켓팅을 하고 들어선 전시장 입구에 있던 굵직하고 검은 기둥 위로 핏빛깔의 레이저 빔이 “One Basquiat”라는 전시 제목을 비추고 있었다.
전시장 안. 30평 남짓 되어 보이는 *화이트 큐브. 그리고 그 안에는 시야를 파고드는 백색 적막감을 깨트리는 블루&블랙 바스키아가 홀로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화이트 큐브 white cube, 백색 입방체라는 뜻으로, 주로 미술관 갤러리 내부의 전시 공간을 칭할 때 사용되는 미술 용어이다.
텅 빈 전시장 안에 단 한 점의 작품만 전시된 경우는 나도 처음이라 이러한 설정은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러한 전시 컨셉은 확실히 작품에 몰입하기에 적합한 환경이다. 만약 세상 모든 작품이 이렇게 전시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그냥 스치듯 지나 칠 수 있는 작품이 없을 것 같다.
Sound of image
시각 이미지임에도 사운드로 먼저 다가오는 회화 작품들이 종종 있다. 평명 회화 작품을 보면서도 마치 실제 혹은 영상을 보고 있는 듯, 이미지의 격한 움직임을 연상하게 하여 그 풍경에 어울릴 법한 사운드가 들리는 것과 일루젼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작품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미지가 분열하고 부서지는 소음 가득한 영상을 보는 듯 바스키아의 작품 untitled은 그렇게 시끄러운 소음이 들리는 듯 한 강렬한 첫인상을 주었다.
가로세로 비율이 같은 150x150cm 크기의 정방형 캔버스 밖으로 거친 비트감을 쏟아내는 바스키아의 사운드가 그렇게 뮤지엄 안의 새하얀 고요를 깨트리고 있었다.
선, 색면, 그리고 레이어가 만드는 사운드
얼기설기, 그 형태와 경계가 모호한 색면과 선으로 주요 형태와 바탕이 시끄럽게 혼재하는 바스키아의 작품을 보고 있으니, 눈앞에 보이는 것은 분명 회화 작품인데 마치 고장 난 브라운관 텔레비전 화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려지고 덮이고, 그위에 다시 덧 그리는 작업을 반복하며 완성된 바스키아의 작품. 그의 작품을 이루는 수많은 레이어를 찾다 보면, 어느새 아티스트의 예술 세계와 그것의 깊이감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아크릴, 스프레이 페인트, 크레파스를 손에 쥔 채 캔버스 위에 스트록을 거칠 게고 빠르게 긋는 바스키아를 떠올리며 그의 움직임과 움직임이 만들었을 사운드를 상상해본다.
Colors
한눈에 보아도 바스키아의 컬러 팔레트는 시각적 호소력 이 짙은 색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블루 컬러의 색면과 그 위를 오가는 블랙 스트록의 스컬(skull, 해골) 이미지는 작품 untitled에서 가장 먼저 캐치되는 시각적 요소이다.
-Blue & Black
블랙은 모든 색을 뒤덮어버릴 만큼 압도적인 무게감과 힘을 갖는 컬러이다.
하지만, 바스키아가 택한 강렬한 블루 컬러로 덮인 투박한 색면 앞에서, 블랙 컬러의 스컬은 푸른 사파이어 블루 톤의 색면을 압도하기보다, 공존 혹은 경쟁하면서 긴장감 있는 하모니를 이루며 독특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블루 & 블랙, 이 두 가지 파워풀한 컬러 매칭은 서로의 힘을 과시하듯 관람자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곳곳에 은근한 명도 차이가 보이는 푸른 색면은, 날것의 이미지를 주면서 동시에 상쾌하면서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이 창창한 블루 컬러 위를 오가며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서 투박하게 휘갈겨진 블랙 스트록은 스컬이라는 형태를 지향하며 동시에 해체되고 있다.
Layers
나는 작품 앞에 한참을 서서 인내심을 가지고 스컬의 윤곽선과 이목구비 아래로 아래로 쌓인 수많은 레이어를 찾아보기로 했다.
크레파스로 추정되는 매체로 거칠게 스케치된 블랙 스컬 레이어 아래로, 드문드문 보이는 화이트와 그 아래로 레드, 그 곁의 오렌지 컬러까지, 그 형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다양한 컬러의 레이어들은 쌓이는 것을 반복하며 그 사이사이로 일부분의 그 모습이 아주 조금 드러날 뿐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어떤 이미지를 그린 뒤 그 위에 다른 컬러를 사용해서 이미지 위에 덧 그리고, 또다시 덧 그리는 작업은 마치 존재는 ‘하나’ 이지미나, 여러 개의 캐릭터를 갖고 있는 한 인간의 다중적인 면모를 묘사하고자 한 것 같다.
하나의 레이어가 곧 하나의 면모라고 가정한다면, 바스키아는 이 작품을 통해, 인체의 본질적 모습을 상징하는 한 개의 ‘스컬’과 그 안 혼재하는 여러 개로 분열된 자아, 그리고 그로 인해 끝없이 방황하는 “혼란한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