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릿을 지나 스튜디오로 간 바스키아의 그래피티
캔버스 위를 오가던 그의 손은 단지 손목 스냅을 사용하며 붓질을 하는 정도를 넘어 팔꿈치 아래로 이어지는 팔 한 마디를 모두 사용하면서 한 획 한 획 과감히 그었던 필치였음을 알 수 있다.
바스키아는 브러시를 사용하여 채색한 것이 일반적인 아크릴 물감도 사용했을 테지만, 그가 사용한 오일스틱, 스프레이 페인트는 바스키아라는 아티스트의 신체 움직임을 더욱 즉각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매체적 특성을 갖는다. 이런 매체적 특징과 바스키아 작품에 드러나는 작품 이미지의 투박하고 날것 그대로의 이미지 간의 연관성은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포인트이다.
가볍고 빠르게 그릴 수 있는 스프레이 페인트가 그 가벼운 무게만큼이나 한 획 한 획 더 빠르게 그려 속도감을 내며 원하는 이미지를 완성할 수 있었던 점을 생각할 때,
길 위의 랜덤 한 벽 앞에서부터 스튜디오 안에 있는 매끈한 정방형 캔버스 앞으로 자리를 옮겼음에도 여전히 그에게 익숙했을 그래피티 특유의 속도감 넘치는 작업 방식이 고스란히 작품에 남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컬러와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바스키아의 관념 속의 이미지를 캔버스 위에 구현되기까지 그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실감 나게 묘사를 하게 되었는지 그 생생함은 헝클어지고 불규칙적으로 드러나는 작품 속 이미지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추상과 구상이 혼재하는 강렬한 인상의 작품을 완성해 낸 바스키아의 작품 속 수많은 스트록과 레이어 사이에는 거리 위에서 바스키아가 만끽했을 짜릿한 스릴, 재빠른 움직임, 그리고 젊음의 에너지와 자유 또한 포개져 있었다.
한 겹 한 겹, 작품 속의 수많은 레이어와 움직임을 찾다 보니, 나는 어느덧 그의 *SAMO 마킹이 적힌 맨하튼 로어 이스트 사이드 lower east side 지역의 그래피티를 지나, 크로스비 스트릿 Crosby street 스튜디오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스물 한 살의 바스키아 곁에 서 있었다.
*SAMO 는 same old shit의 약어로, 70년대 후반 바스키아가 그의 친구 Al Diaz와 활동했던 그래피티 듀오를 뜻한다. SAMO시절 바스키아의 그래피티는 바스키아 특유의 시적인 문장으로써 여타 그래피티 아티스트들과 차이점을 보였으며, 이들의 듀오 활동은 80년대 초까지 지속되었다. 이들의 결별 이후 바스키아는 자신의 그래피티가 있던 곳에 SAMO is Death/ SAMO NOMO 라고 마킹하면서 이들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렸다고 한다. 그러다 곧 다시 바스키아는 그의 작품 서명으로 SAMO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피티, 확장되는 낙서의 영역
누구나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도저히 집중 할 수 없을 때, 교과서 귀퉁이에 지금 느끼고 있는 심정(지루하고 답답한, 자유를 원하는)을 반영한, 알 수 없고 의미 없는 조잡한 낙서를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금 마땅히 해야 하는 일(수업시간이라면 수업에 집중하는 일)을 외면하고자 교과서 귀퉁이에 의미없는 낙서를 하며 주어진 상황에 대한 소소한 반항심과 일탈을 갈망하면서 말이다.
낙서의 영역은 때론 과감해진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비밀을 폭로하거나 서약을 공표하는 의도로 한 낙서는 학교 화장실, 혹은 불법적으로 점거(?)한 관광지의 벽면, 혹은 다리와 같은 공공장소에 설치된 난간 표면에서 우리는 익명의 인물이 남긴 크고 작은 고백, 혹은 고해의 매세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낙서의 영역이 개인적인 사유물/사유지를 떠나 익명의 공간,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 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적인 메세지(타인과 공유하지 않을 법한 사안)를 익명의 사람들, 즉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공언하거나 폭로하기도 한다.
이것은 익명성을 빌어 용기를 내 본 용기 없는/힘없는 자의 외침이거나 설령 거짓을 고해서라도 메세지의 주체가 되는 타자에게 어떠한 메세지를 알리는 거친 방식 중 하나이다.
Depict & Run
허가받지 않은 곳에 낙서를 한다는 기분을 상상해본다.
한 공터의 벽면을 다 채워 버릴 정도로 과함 하게.
내가 발설하고 싶은 시각적 혹은 문학적 메세지를 표현하는 것에 대한 열망과 그것을 기여이 저질렀다는 사실에서 오는 쾌감은 분명히 존재 할 것이다. 그리고 짜릿할 것이다. 동시에 경찰에 연행되어 처벌을 받을 수도, 큰 액수의 돈을 물어야 할지도 모르는 긴장감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그래피티의 시간은 은밀하고 치밀하며 신속해야 한다. 인적이 드문 아주 늦거나 이른 시간이어야만 했을 것이고, 신고가 들어오기 전에 최대한 빨리 끝내야했을것이다.
Blue-covered Curiosity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이미지인 ‘스컬’ 바깥의 영역을 단순히 일반적인 작품의 배경, 여백의 공간이라 칭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스컬 바깥 영역은 강렬한 블루 컬러로 불규칙적으로 뒤덮여 있다. 누군가 이를 두고 ‘미완의 채색’이라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불규칙적이고 투박한 스트록 , 마치 아무렇게나 채색하다가 멈춘 듯 경계가 모호한 푸른 색면, 그리고 그 추상의 색면에 아래로 그 사이로 삐죽하고 튀어나온 이미지들은 수수께끼처럼 일부만이 제시된다.
이렇듯 색면에 뒤덮여있는 이미지는 극히 제한된 단서만을 제공하며 블루 커버 아래 상황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스컬 머리 위로는 화이트 컬러로 여러개로 나뉜 셀cell 안에 S,O, X 등의 표시가 시시한 낙서처럼 그려져 있고, 이 또한 핑크, 레드, 옐로우, 제이드 컬러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헐거운 색면으로 뒤덮이다 말았다.
마치 그가 말하고자 했던 내용의 메시지 전부를 보여주기보다는 최소한의 힌트 만 남겨둔 채, “의미가 있었을 무의미한 낙서”를 통해 바스키아가 말하고자 했을 메시지가 정확히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지게 만든다.